음식여행일기-15밧짜리 비빔국수
내가 이놈을 처음 먹어본 것은
8년 전 끄라비에서였다.
나는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의
호오가 분명한 편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음식에의 도전을
주저하는 타입은 아니다.
즉, 먹어보지도 않고 ‘맛없을 거야’라고
선입관을 가지기보다는,
먹어본 후에 ‘음... 괜히 먹었네’라고
후회하는 편이라는 것이다.
암튼 그런 성격 탓에
낯선 지방에 가면
뭐 새로운 먹을 것 없나 하고
미각의 안테나를 세우고 다니는 편이다.
한 가지 더 첨부하면
내 입맛은 그리 고상한 편이 못 되어
근사한 레스토랑쪽보다는
시장통이나 거리를 주로 헤매고 다니는 편이다.
그날도 햇빛에 축축하게 젖은 채로
끄라비 타운을 좀머(쓸데없이 쏘다닌다는 독일식 은어)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좀머할 때의 주의사항은
쉬지 않고 눈알을 굴리며
사람들이 대량으로 모여 있는 장소를 찾아내는 것이다.
사람들이 대량으로 모여 있는 곳은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있거나
무언가 맛있는 것이 있는 곳이다.
그러던 내 눈에
어느 조그만 골목에 놓여 있는 식탁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둘러앉아 있는 광경이 포착되었다.
나는 슬그머니 다가가서
그 사람들 틈에 끼어 앉았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들이 무얼 먹나 둘러볼 틈도 없이,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먹는 걸 보고
그 중 제일 많이 먹는 걸로 주문해야지 하는
생각이 꽃을 피우기도 전에,
내 앞에는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이 한 그릇 놓여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의 메뉴는 단 한 가지뿐이어서
고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음식은 조그만 접시에
카레 국물을 끼얹은 소면 몇 가닥이 달랑 담겨 있었다.
아니, 이렇게 보잘것없는 음식을 먹기 위해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단 말이야?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주위의 사람들은
식탁 위에 있는 넓은 소쿠리에 담긴 무언가를
그 소면에 주섬주섬 넣고 있었다.
내 식탁 위에도 그 소쿠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소쿠리에는 각종 야채가 담겨 있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소쿠리의 야채를
소면에 넣고 비비기 시작했다.
보잘것없던 음식에 졸지에 풍성해졌다.
한 젓가락 집어서 입 안에 넣었다.
오~ 입 안 가득 풍기는 초원의 향내!
마치 푸른 들판을 통째로 삼키는 듯 했다.
머릿속이 맑아지고 기분마저 상쾌해지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이 음식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이 음식의 이름은 ‘카놈찐’.
맵고 짠 음식에 길들여진
한국인에게는 좀 심심할 수 있다.
하지만 육고기의 노린내를 싫어하는 분들에게는
강추 음식이다.
한 가지 애석한 사실은 카놈찐은
태국 남부 지역에서만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콕 근처에서는 꿈도 꿀 수 없고
푸켓이나 끄라비는 가야 맛볼 수 있다.
카놈찐은 주로 노점에서 파는데,
아침 일찍부터 오후 3~4시까지만 여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푸켓 크리스탈 인 맞은편
라이브 바 앞 노점에 차려진 카놈찐 식당.
아침 산책을 하다가 이 집을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한 그릇에 15밧.
카놈찐은 카레를 끼얹은 소면에 각종 야채를 넣어서 비벼 먹는 음식이다.
야채를 넣기 전의 모습...
야채를 담뿍 넣은 모습...
푸켓 크리스탈 인 맞은편 라이브 바 앞의 카놈찐 노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