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 고성에서~
마양에서 버스를 타고 봉황 터미널에 도착하니
빈관 삐끼 아줌마들이 모여 들었다.
마음씨 좋고 젊게 보이는 아주머니를 따라 터미널에서
멀지 않은곳에 숙소를 정했다.
골목길을 따라 내려 가니 고성 건물이 나타났고
고성 아래로 아름답게 강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강물위로 조각배가 떠다니는 풍경은 한폭의 그림이었다.
봉황 고성은 아름다웠다.
고성문을 지나서 도로를 따라 내려 가는데 빵집이 있었다.
빵집에는 열여섯살 어여쁜 토가족 소녀가 있었는데
한달 월급 천위안 받고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이었다.
소녀는 생글 생글 웃는 모습이 정말 예뻤다.
나는 매일 이곳에 들러 빵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가격도 저렴 했고 맛도 좋고 빵종류도 다양해서 좋았다.
나는 토가족 소녀가 사는곳이 궁금했다.
소녀가 사는 마을은 어떻게 생겼을까 한번 가보고 싶었다.
소녀가 사는 집주소를 가지고 터미널에서 버스를 탔다.
그런데 버스안에서 봉황고성에 여행 왔다가
고성밖 농촌 지역으로 바람쐬러 가는 모녀를 만났다.
모녀와 나는 종점에서 내렸다.
시골 농촌 마을 풍경은 한가로웠다.
모녀와 함께 토가족이 사는 마을에 들어가 보았다.
모녀는 장작을 패고 있는 집에 들어가 도끼질을 해보았다.
그리고 언덕위 토가족 외딴집에 들어가 과일도 먹었다.
토가족 사람들이 온순하게 보였고 인심도 좋았다.
마을길을 돌아 나와 논둑길을 걸었다.
2010년 12월, 텅빈 들판 논둑길을 모녀와 함께 걷는게 좋았다.
논둑길이 끝나고 아스팔트 포장도로 따라 걸었다.
모녀와 함께 버스가 올때까지 걷기로 했다.
오고 가는 차량들도 드문 포장도로 따라
천천히 걸어가는것도 자유로워 좋았다.
버스가 왔고 우리는 버스를 탔다.
모녀가 버스 안내양에게 토가족 소녀 주소를 주면서
마을을 알려달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미리 모녀에게 부탁을 해뒀었다.
어느 마을에서 안내양이 소녀가 살고있는 주소가 맞다고 알려주었다.
오늘은 늦었기에 내일 오겠다는 생각을 하고 봉황 고성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나는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소녀가 사는 마을에 내려 조그만 구멍가게로 들어갔다.
구멍가게 안에 아줌마 둘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구멍가게에 앉자 맥주를 마셨다.
"니 한궈런?"
"응 한궈런"
두 아줌마는 내가 궁금한듯 보였다.
나는 이마을까지 오게된 사실이야기를 했다.
봉황 고성 빵집 소녀는 조카라고 했다.
두아줌마는 웃었다.
두아줌마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맥주를 마셨고
결국 취해서 버스가 끊어진 밤에
빵차를 불러 봉황 고성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