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7반 초등학생 부부의 캄보디아/태국 배낭 여행기-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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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7반 초등학생 부부의 캄보디아/태국 배낭 여행기-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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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5학년7반 초등학생 부부의 캄보디아/태국 배낭 여행기

망고는 우리 여행 중에 매일 빼놓지 않는 과일로 보통 2kg 정도 먹은 것 같다. 오늘도

어김없이 재래시장에서 잘 익고 싱싱한 노란 망고를 사들고 왔지만 이상하게도 단 맛이

나지 않고 신 맛이 나는 것이다. 보통 파란 망고는 현지인들이 설탕을 찍어 먹는 것으로

알고 파란 것을 보지도 않고 노란 망고만 고집했는데 그만 착오가 난 것 같다. 나중에

알아보니 노란 망고 중에서도 단 맛이 나는 “메이 피오우 망고”를 사야 된다고 한다.

순진해 보이는 현지 재래시장 상인들에게는 우리 부부 역시 어수룩한 외국인으로 보고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 하는 것이 아닌 가 즉 캄보디아에서는 망고 1kg에 1달러, 태국은

30밧트인데 3달러를 요구하거나 70밧트를 요구하는 경우를 종종 접하니 여의가 없었다.

망고 가격만은 확실히 잡고 있는 나에게는 그들의 바가지요금이 통하질 않았다. 물론 서울

에서는 아마 15,000원 정도가 되는 듯하다.

톰 레이더인가 인디아나 존스인가 영화에 나오는 앙코르 왓의 영화 장면 중 톰 마논의

고대 유적물 파괴을 파괴하는 형태를 보여 주기 위하여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유적지

로 거대한 나무가 유적지 구조용 돌 틈에서 성장함으로 유적지에 마치 꽂혀있는 듯하다.

이 모습이 많은 관광객을 불러 들여서 국가의 수입으로 도움이 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우리도 비록 인재로 인한 피해 당한 숭례문을 복원치 말고 후대에 교훈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우리도 생각을 바꾸어 역사적 유물을 후대에게 있는 그대로

넘겨주는 풍토가 바꾸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후손은 관광 수입 적자를

계속 부담하여야 할 것이 걱정된다.

9개의 머리를 가진 뱀의 정령이 살고 있다는 전설을 가진 피미아나 가스 사원 근처에

가니 박장대소의 웃음소리가 나 쳐다보니 1명의 서양 젊은이가 70도가 넘는 계단 중간에

서서 아래 있는 짧은 스커트를 입은 장신의 여친에게 올라오라고 소리치고 또 한 친구는

사진기 포커스를 맞추느라고 정신이 없어 우리도 쉴 겸 아니 저 처자가 올라가는 광경을

보기 위한 내 흑심으로 그늘에 쉬자는 집사람은 알아챘는지 빨리 가자고 재촉하여 하는

바람에 끌려갔지만 못 본 내 자신은 못내 아쉬웠다.

저녁때 이곳의 일몰이 유명하다고 하여 가보기로 하고 그만 중간에 되돌아 숙소에 왔다.

왜냐 하면 비포장도로를 툭툭이를 타고 가니 얼굴에 흙먼지, 땀, 더운 바람 그리고 툭툭이

매연이 썬 그라스도 준비 못한 집사람의 안면을 괴롭히니 자꾸만 짜증을 내는 것 같고 나

역시 70도 경사 계단을 수도 없이 올라 다니다 보니 피로감이 몰려와 강행하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신만이 올라 다니는 계단이지만 신이 아닌 나 같은 중생들도 올라 다릴 수 있게

배려하는 존경받는 신은 태국이나 캄보디아에는 없는 것 같아 약간 섭섭했다.

3월5일 오늘은 앙코르 외곽 유적지를 보기로 하였지만 그보다는 앙코르 톰과 앙코르

왓트를 다시 자세히 보는 것이 좋을 것 같고 툭툭이 공해에 시달리면서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것이 별로 값어치가 없는 듯하다. 여유 있게 쉬어가면서 유적지 이곳저곳을 들러 보았다.

물론 이것이 패키지여행이 아닌 배낭여행을 선택한 나의 생각이다.

옆에 무리를 지여 지나가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 아줌마 한분이 갑자기“ 지금 몇 시? ”

“ 9시 34분이야” “아니 내 핸드폰 시계는 12시야 고장 난 나 봐”하니, 소리에 나는

웃음이 나와 그 자리에 멈추고 그 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로밍을

하지 않은 핸드폰은 당연히 12시를 가리키고 있겠지.

갑자기 앙코르 왓 2층 입구 옆에서 혼자 앉자계시는 60대 여자분 옆으로 쉬는 척하면서

슬그머니 앉는 집사람, 아니나 다를까 말을 거는 집사람 여행 중에 수다를 받아 주는 일행

이 없어서 그런지 기회만 되면 영락없이 한국인 관광객에 다가가서 이야기를 거는 습성이

생긴 것 같다. 사위와 딸 자랑을 늘어놓는 할머니와 맞장구치면서 좋아하는 집사람, 한

시간은 걸리겠군. 생각하고 나도 땀을 시키고 가끔 말참견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무리 샅샅이 돌아보고 알아 봐도 모르겠고 쪽지 시험 보겠다고 하는 사람도 없으니 재촉

할 필요도 없고 그녀가 이를 즐기니 돈 안 들리고 하니 일석이조라 할까. 할머니 왈 도저히

무릎이 아파 따라 다릴 수가 없어서 애들 구경하고 올 동안 이렇게 쉬고 있다고. 구경도

젊어서 다녀야지 하는 말씀이 곧 우리에게도 현실로 돌아오겠지. 건너편에도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할아버지도 마찬 가지 이겠지. 요번 여행은 먼 거리 이동, 급경사 계단, 흙먼지 등이

모든 나이 든 관광객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보다 더 나이가 든 서양 노부부들은

더 높은데도 경사진 곳에서도 머뭇거림이 없이 젊은 들과 같이 올라갈 뿐 아니라 방콕의

카오산 거리에서도 나보다 더 큰 80kg 배낭에 침낭까지 메고 다니고, 길가 카페에서도

정답게 맥주를 즐기는 모습은 결코 이상한 광경이 아니다. 이는 삶의 환경 또는 목표가

다른 결과일까 ?

지난 터키 여행에서는 우리를 “사장님 ! 사모님 !”하고 구매를 종용하는 어른들이였지

만 이곳 동남아에서는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어린 캄보디아 애들의 첫 마디 “언니

예뻐 ! 오빠 미남이야 ! 한 개 일 달러, 세 개 이 달러 !”하는 소리가 지금도 캄보디아

여행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선명하게 기억된다. 맨발로 세수도 인한 얼굴, 헝클어진 머리,

누렇게 찌든 옷 그리고 나무젓가락 같은 팔과 다리로 열심히 뛰어 다니는 애들마다 누가

어떻게 가르쳐 주었는지. 물론 우리도 미군들한테 껌을 얻어먹기 위하여 했을 때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먹고 살기 힘든 나라에 태어난 애들이지만 청순함과 행복감은 우리

보다도 절대적으로 낮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물론 물질적으로는 우리와 비교되지는 않지만

생활 행복 성취감은 그들이 낮지 않을까 생각된다.

툭툭 기사인 샤배트 군의 이야기로는 최근 정치 안정되고 나서 인구가 300백만 명이 늘었

났다면서 오는 길에 보듯이 애들과 학교들이 무척 많이 눈에 띠고 있고 그들에 대한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는 관계로 우리나라 같은 선진국에서 조금 더 도와주면 수년 안에 자립 할 자신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이 77년 바레인현장에서 내가 영국인 심슨 감독관에게 “우리도 10년 안에 세계 중진국 대열에 들어 갈 자신이 있다“ 고 이야기한 기억이 난다.

들판에서 소몰이 하는 애들, 큰 책가방을 등에 메고 누나 따라 등교하는 애들, 자전거

뒷 자석에 앉아서 흙먼지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애들 그리고 흙탕물 웅덩이에서

물고기를 잡기 위해 물을 푸고 있는 애들, 그들이 다 자라는 20년 후에 다시 한 번

캄보디아를 방문해야겠다. 지금의 모습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내일은 다시 태국으로 갈 여정이므로 캄보디아 마사지를 받기로 하고 카운터에 요청

하니 잠시 후에 젊은 처자가 준비물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오면서 미소지면서 공손히 인사

하는 첫 인상이 좋아 나도 하겠다고 하니까 입이 귀에 걸리도록 좋은지 “1시간 3달러,

두 분에 6달러“ 하면서 확인을 시키는데 나는 어찌 이런 일이 시간당 3,000원으로 외국인

에게 마사지 하는 그들의 경제 수준을 알 수가 있었다. 물론 기사 포함 툭툭 일일 전세도

10달러로 구두 계약 했지만, 정말로 싸고 방콕의 180밧트의 반값으로 어제 만난 스웨덴

친구도 매일 저녁 마사지를 받고 있다고 자랑을 하면서 받아 보라고 강추했다. 기대를 하고

누웠지만 늦은 시간 피로해서인지 아니면 잘하지 못해서 인지 실망스럽지만 끝나고 나서 팁

을 주니 무척 좋아하는 모습이 인상적 이였다.

3월6일 캄보디아 일정을 끝내고 태국의 치앙마이로 이동하기 위하여 방콕 공항으로 가는

과정에서 일이 벌어졌다. 도로가 폐쇄되어 밭길로 돌아가는 우리 승용차는 위태위태하게

움직이고 앞선 차들은 바퀴가 빠져 많은 사람들이 합심하여 들어서 겨우 통과시키려고

하니 한 시간 이상이 늦어지고 있었다.

요번 일정 중에 치앙마이는 유일하게 호텔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고 밤늦게 도착되는 곳

으로 약간 불안한 상태에서 공항에 도착하니 지연 방송도 없이 한 시간이상 지연되니 더욱

더 긴장되어 고민하고 있던 중 공항 대기실 안으로 한국인 부부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집

사람에게 가서 한국인 인지 물어보고 도움을 청하라고 했다. 천만 다행이 그 부부는

치앙마이에 사시는 목사 가족으로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우선 숙소의 위치를 알려고

주소를 보여 주었으나 그들도 모른다고 하고는 여기 저기 찾아보더니 자기 동네에 호텔에

데려다 줄 테니 그곳에서 머물다 가라고 하는 순간 제일 큰 고민이 해결됨과 동시에 여러

가지 그곳의 지역 정보를 사전에 얻는 도움을 받았다. 특히 그의 성직자 마음에서 소소한

부분까지 배려하여 치앙마이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나에게 심어 주었다. 참으로 고마운 백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3월7일 아침부터 생태우를 전세 내어 하루 만에 치앙마이 유적들을 다보기 위하여

서둘러 호텔 숙소를 나와 도이 쑤텝 사원으로 향하는 도로는 언양에서 밀양으로 가지산을

넘어 가는 길만큼 구불구불하였지만 도시를 벗어나서 그런지 공기는 상쾌하여 기분은

좋았고 사원으로 올라가는 300개 계단 역시 신체의 활력을 불러 넣는 과정이 되었다,

이곳은 매우 신성한 장소로 많은 신혼부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처음 보는 그들의

복장은 태국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세련된 복장과 미모의 커플이 나를 현옥시켜 버렸다.

전에부터 이곳 태국 북부지역의 처녀들은 미모가 뛰어나다고 알고 있지만 오는 비행기에서

본 여 승무원과는 또 다른 미적 매력이 있는 것 같았다.

사원 한 면에는 종이 연달아 매달려 있는데 가는 사람마다 종을 치면서 가기에 궁금해

물어 보니 종을 치면 행운을 준다고 해서 우리도 구경하는 사원 마다 종을 치면서 우리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복을 달라고 억지를 부렸다. 근데 우리나라

절에는 이 같은 종이 없는지 종파가 달라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심하게 화려한 불교 사원

과 불교 용품 특히 금으로 입히는 불교 용품은 태국 국가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것 같다. 시내 중심가에 산재되어 있는 사원과 자주 눈에 띄는 승려들 또 그들을 신처럼

따르는 국민들 모두가 불교로 뭉쳐져 있는 것 같았고 선할 것 같았다.

모처럼 태국 국수를 먹기 위하여 기사를 앞세워 태국 서민 음식점에 들어가 적어 가져온

“ 쿠웨이 티이오, 샐랙, 마이타이 팍처 ”하니까 생태우 기사가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

자기가 알아서 시켜준 쌀국수는 생각보다도 깔끔했고 감칠맛이 좋아 금방 한 그릇을 먹어

치고는 다음에도 아니 팟타야나 방콕에 가서 재 도전해보기로 하고 미처 왜 그가 웃었는지

를 확인하지 않은 결과가 방콕에서 벌어졌다. 방콕 식당에서 몇 번이고 똑같이 읽으면서

주문하였지만 종업원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지 웃고만 있다가 나를 잡고는 조리장까지

데리고 가 손으로 지적하라고 하지만 내가 전혀 분간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난감해

하니까 손님 중에 한 여자 분이 중국 사람이냐고 묻더니만 자기가 먹고 있는 음식을 먹어

보라고 권하기에 시켜 먹어 보았더니 집사람은 먹지 못하고 나는 그런대로 먹을 수 있어

억지로 맛없게 먹으면서 다시 잘 알아보고 재도전하도록 했다. 그러나 결국은 못하고

맥도날드의 햄버거로 대체하고 말았다.

그날 많은 사원을 부지런히 돌아다녔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감이 잡히지 않아 내일

온천을 가기로 한 스케줄을 변경하려고 생태우 일일 전세를 끝내 버리고 말았다. 이상하게

도 내가 지도를 보고 찾아 가지 않는 여행은 금방 잊혀지고 마치 구경을 하나도 하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오늘 본 사원이 다 도보로 관람이 가능한 곳인데

생태우는 나를 태우고 바쁘게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면서 방향 감각을 익히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았다. 비록 태국의 제 2의 큰 도시이지만 그래도 스케일을 잡지 못할 정도는 아닌데,

숙소에 가서 다시 한 번 자세히 보고 내일 도보 관광을 다시 해야 갰다는 생각을 하고,

아침에 도이 쑤텝 입구에서 파는 딸기가 먹고 싶어서 왓조루 시장에서 100밧트 주고 1kg을

사가지고 로마에서 맛본 무공해 딸기의 맛을 기대하면서 제일 잘 익은 딸기를 입에 넣어

씹는 순간 내 얼굴은 뭐 씹은 죽상으로 변하고는 먹던 딸기를 입 밖으로 쏟아내고 말았다.

신 맛으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아까 팔고 있는 좌판을 연상해보니 큰 설탕 그릇이

있었고 컵에 담으면서 설탕을 넣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는 수없이 신 딸기 2/3을 덜어가지

고 프런트 직원에게 주고 설탕을 주방에서 얻어 달라고 해서 겨우 먹었다. 지난번 먹은

망고보다 더 신 딸기였다.

3월8일 14시40분 에어아시아 FD-2235편으로 방콕으로 가기 전에 치앙마이의 시내를 도보

로 탐색하기 위하여 둘이서 가까운 사원부터 찾아서 가자고 생수 한통을 챙겨서 메고는

호텔을 나서니 왠지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 같고 정말 외지에 여행을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아 발걸음도 가벼웠다. 첫 사원에 들어서니 마당을 쓸고 있는 승려들이 있어 이

사원에 이름을 물으니 얼굴에 미소를 지우면서 손가락으로 반대편에 있는 승려 쪽을

가르치니 그 승려는 우리에게 다가와 유창한 영어로 사원 이름뿐만 아니라 내력까지도

이야기를 해주니 비록 우리가 가지고 간 관광가이드북에는 등재되지 않은 절이지만 왠지

호감이 가서 경내를 돌아보니 조그만 사원 안에 어제 왓 프리싱에서 본 타계한 고승의 모형

이 있어서 기웃거리고 있는데 집사람이 갑자기 시주를 하게 돈을 달라기에 시주 돈을 건네

주고는 사진 찍을 곳을 찾고 있는데 집사람이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여 아무 생각 없이 들어

가니 아니 타계한 고승이 아니라 살아 계신 고승으로 왓 부르팡 사원 주지스님인 프라씨로

한국에 대해서는 서울, 부산 만 알고 있으며 일본에서 오래 수도 생활을 하였다고 하면서

본인에 대한 사진첩을 보여주면서 하나하나 설명하시고 선물로 사진첩 한 권을 건네주시니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xml:namespace prefix = w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word" />나는 실로 당황해 했다. 좀 더 성의 있는 시주금을 주어야 했는데.

가까이 본 90세 이상 고승은 피부는 처녀 피부 같이 탄력이 있었고 비록 마른 체구였지만

꼿꼿한 자세와 포근히 감싸주는 포용감은 우리를 감동케 하고, 더욱 손수 엮어 주는 면실로

만든 행운의 손 팔찌, 또한 지난번 왓 포에서 승려들과 사진을 찍을 때 집사람을 앉히고

승려들이 서있으며 거리감을 두고 응해주는 것과 같이 나는 내 손목에다 직접 만들어 주고

집사람은 자기가 만들어 두 손 모아서 집사람이 받아서 끼도록 하는 것이 불교의 교법인 것

같다. 승려들은 절대로 여자와 신체 접촉을 하지 않는다는 것. 또 나는 자주 뉴스에서 천주

교의 행사나 석가 탄신일에서 보았지만 직접 우리들에게 성수(?)를 뿌려주시는 행운의 기회

를 요번 치앙마이 왓 부르팡 주지 스님으로 받았다. 정말로 요번 여행에서 받은 제일 큰

선물인 것 같았고 그가 만들어 끼워준 손 팔찌가 우리 가족의 행운을 주리라고 믿는다.

정말로 좋은 인상을 받았다. 고승의 인자한 모습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특히 불교를 믿는

집사람은 너무도 좋아서 어쩔지를 모르고 있었다. 시간을 내어 받아온 명함주소로 감사

편지를 보내야겠다.

“아빠 ! 왜 비행기가 이륙했는데 음료수도 안줘 !” 집사람 물음에, 웃으면서 이 비행기

는 저가 항공기로 아무 기내 서비스가 없을뿐더러 생수도 돈 주고 사야데. 우리나라에도

점차 저가 항공기가 생기고 있어서 만약 우리가 이용해 보면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팟타야를 방콕 남부 터미널을 거치지 않고 공항에서 출발하는 시외버스로 가니

시간도 돈도 절약되어서 기분이 좋았는데 팟타야 종점에 내려서는 정말로 황당하고 화가

났다. 우리는 인테넷 카페의 팟타야 소재 한인 여행사를 통하여 숙소를 예약 선불 받고는

숙소 안내는 찾아가는 지도도 올려놓지 않고는 무조건 터미널에 와서 전화 만하면 픽업해

준다고 하여 내려서 전화를 하니 우리가 잘 못 내려서 픽업을 할 수 없고 200밧트를 내고

생태우를 타서 기사와 자기를 연결시키라하니 도대체 이런 경우가 있나 화가 치밀어 숙소를

변경하고 나중에 처리하려고 하니 집사람이 극구 말리는 바람에 생태우를 타고 찾아가니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골목을 왔다 갔다 하는 생태우를 타고 있는 나는

머리끝까지 악이 올라 다시는 이런 실수 즉 여행지 한국인과는 거래를 하지 않을 거라고

마음을 먹었다. 첫 날 숙소에서 한국인 젊은 친구를 만나서 수상시장가는 것을 물어 보았을

때도 “담넌 싸우윅”이라 가르쳐 주면서 여행사를 통해서 가라고 권장하면서 절대 한국인

이 경영하는 여행사에는 가지 말라고 뒷말을 남기면서 갈 길을 가는 그 청년들이 이제 또

이해가 간다. 현지 한국인들 대부분은 국내에서 오는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을 할 텐데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84년 이락 바그다드의 무랑루즈 레스토랑에 공연 온 한국 무용수들도

현지인이나 서양인에게는 팁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하고 우리들에게만 과대한 부담을 안겨

주어 원성을 사고 떠났지만 이 곳 팟타야에서도 아직도 주 고객인 자국민을 만족시키지 못

하는 상술은 고쳐야 될 것 같다. 여행사 사장님과 이 건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었지만 다음 날 똑 같은 상황이 벌어져서 또 한 번 심적 고통을 받았다.

피로한 몸을 이끌고 배정된 숙소에 가니 전등, 냉장고, TV, 특히 가스보일러의 작동이

안돼서 카운터를 4~5번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겨우 잠을 청하니 젠장 에어컨 작동 소음

및 밤새도록 차음되지 않는 외부의 소음 아니 굉음은 우리들을 피로를 풀 수 없을 뿐더러

빨리 팟타야를 떠나야겠다는 생각만 갖게 하였다. 78년 이 곳에 왔을 때는 호텔 스위트룸을

이용하여 좋은 기역만이 있어서 집사람을 이곳에 데리고 와서 그녀를 안락하게 지낼 수

있도록 계획하였는데 호텔 예약과정에서 내가 예약할 호텔이 FULL HOUSE 가 됐다는 통보를

받고는 변경한 것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물론 여행사 직원들에게 그렇게 심하게 불평

했으니 개선되고 더욱 더 좋은 서비스 아니 고객 감동의 영업 목표로 운영하여 좋은 여행

사로 번창하길 바랄뿐이다.

3월9일 집사람이 좋은 게 좋다고 하여 팟타야 관광을 여행사의 일일관광으로 하기로

하였지만 여행사 직원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만족해하지 못했다. 형식적이

관광 내용과 옵션은 못내 아쉬움을 나에게 주었고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코란 섬 파라솔 숲에서 강원도 옥수수를 팔고 있는 장사 “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는 옥수수 사세요. 하는 모습만이 생각나고 ”넘버원 베스트 드라이버,

넘버 텐“하시던 한국인 노인 분, 이에 맞추어서 모타 보트가 부서지도록 속력을 내는 모타

보트기사, 마치 테라반 테러 요인처럼 벙거지를 쓰고 우리들 곁에서 연신 사진을 찍는 현지

인만이 우리의 코란 섬 기억인 것 같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 하고 싶었던 페러셀링,

제트 스키는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다시 하고 싶은 충동의 계기도 만들지 못한 여행이

되고 말았다.

오후에 농녹 빌리지의 코끼리가 관객으로부터 받은 팁을 주인에게 기계적으로 주는 모습

은 인간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동물을 이용하는 인간의 만행인 것 같아 별로 보고 싶지

않았고 치앙마이에서 트레킹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이곳에서 보고는 잘 안

했다고 생각했고 방콕의 로즈 가든은 가지 않기로 했다. 저녁식사는 평창에서 오신 사장님과 사모님은 그 동안 현지 음식을 많이 드셔서 별로 인 것 같았지만 나는 또 한 번 현지 음식을 먹고 싶어서 현지 음식을 선택하여 먹었다. 매우 인상적 이였으나 음식 이름을 알아

보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그 시간에도 빨리 팟타야를 벗어나고 싶었다.

3월10일 오늘이면 우리의 결혼 30주년 배낭여행도 끝이 나고 가족 품으로 돌아가는 시간

이 됐다. 외곽 투어는 하지 않는 관계로 늦은 시간까지 호텔에 있으면서 여행 후기를 쓰기

위한 정리를 하고 지난번 못 가본 왓 아룬 사원을 가기 위해 강변 따라서 타 띠안 찾아 가

면서 인도 변에서 좌판을 펴놓고 장사하는 상품 중 “틀 이”도 팔고 있는 것이 매우 신기

하였고 마치 황학동 벼룩시장처럼 펼쳐진 노점상들과 상인들의 모습은 내가 보기에는 매우

여유가 있어 보였고 행복해 보였다.

왓 아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선창가 강물에 빗방울이 생기더니 곧 소낙비로 변하여

꼼짝을 하지 못하게 하니 많은 관광객들이 비를 피하기 위해서 좁은 공간에 모이니 한 무리

의 현지 학생들이 일본어로 무언가를 발표하고 필기하는 모습이 보여 가까이 가보니 일본어

전공 학생들이 현지 가이드 실습을 나온 것 같았다. 그 중에는 열심히 경청하는 여학생도

있고 뒤에서 문자 메시지나 친구들과 속삭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발표하는 학생이 잘하는

것 같아서 물어보니 과에서 2등하는 학생이라 한다. 우리 대학도 고궁을 찾아가서 이런

현장 실습도 하고 있겠지.

귀국 시에는 공항버스를 타지 않고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공항에 가보고 싶어서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으면서 556번 버스를 기다리니 다른 버스나 공항버스는 지나가나 1시간 이상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결국은 포기하고 공항버스로 방콕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7시밖에 되지

않아 난감해 하면서 티케팅을 하는 여직원이 여기 저기 통화를 하더니 항공사 라운지 이용권과 내가 예약한 비행기좌석이 아닌 07H, 07J를 주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관행인지 알고는 내부로 들어가서 잠깐 쇼핑을 하고 나서 쉴 때가 마땅치 않아 항공사 라운지로 가니 음료수

와 간식거리가 준비되고 편히 쉴 수 있는 좌석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게 무슨

행운인가 ? 요사이 세간에 떠들고 있는 어리 버드(EARLY BIRD)같은 현상이 나에게 벌어진

것 같다. 실은 오도 갈 데가 없어서 시원한 공항 청사를 찾았는데. 우리 비행기는 새벽 1시

3 Comments
시골길 2008.03.17 14:29  
  밀양, 언양 ,가지산 얘기를 하시기에 경남이 고향이신줄 알았더니..인천분이시네요...  여행기 잘 앍었습니다..두분 앞으로도 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운 여행 많이 하시길 빕니다..^^ [[하이]][[원츄]]
헐렁이1 2008.03.17 17:29  
  저도 인천출신 건설인입니다.  잘 읽었구요.
적지않은 연세인데.. 용기가 대단하십니다.
열혈쵸코 2008.03.18 23:43  
  지난번에는 열정을, 오늘은 행복을 보여주시네요.
두분과 가정이 모두 편안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에 남기신 글에서 한번 더 감동을 받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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