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7반 초등학생 부부의 캄보디아/태국 배낭 여행기-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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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7반 초등학생 부부의 캄보디아/태국 배낭 여행기-1편

킹콬콩 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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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5학년7반 초등학생 부부의 캄보디아/태국 배낭 여행기

“일 달러!, 세 개 이 달러!, 언니 예뻐, 오빠 딸려.... ”라 외치면서 해맑은 미소를

가지고 반갑게 다가오는 어린 캄보디아 소녀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아른 거리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면서 또 다른 여행의 행복감 느낀다.

공차기 놀이를 하던 한 무리의 소년 소녀들이 우리 부부를 보고는, 마치 담임선생님을 맞이하듯이 반갑게 달려 와서는 “ 사진 찍어 주세요! 사진 찍고 싶어요!”하기에, 순수함

그대로가 좋아 선뜻 응했으나, 그 다음 그들 전체가 모이를 받아먹으려고 하는 제비

새끼들처럼 우리들을 가로 막고는 “일 달러 주세요! 일 달러 ^^^ ” 나도 장난삼아

“안 줘! 왜 ?”하니까, 그들 중 제일 큰 소녀가 앞에 나서서 “ 책도 사고 공부도 해야

되요. 일 달라 주세요! “ 하지 않는가. 우리의 어린 때 기억이 나서는 눈시울이 뜨겁게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xml:namespace prefix = w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word" />하였다.

나는 결혼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아내 몰래 배낭여행 준비를 연초부터 시작하여

인도 네팔, 캐나다, 일본, 캄보디아 태국 그리고 스페인 등을 선정하여 집중적인 조사를

하여, 모든 여건이 맞을 것 같고, 그 동안 가고 싶었던 앙코르 왓트, 팟타야와 치앙마이를

결정 하고는 우선 회사의 업무 여유가 있는 3월 초가 적기일 것 같아서 3월 1일부터 3월

11일까지 일정으로 비행기 표부터 구매하고는 세부 일정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집사람은

회사 일이 힘든지 그녀의 몸 상태는 출국일 가까워질수록 악화되고 있어서 생각지도 않은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기게 되었다. 일정 중에 제일 어려운 코스인 방콕에서 캄보디아

시엘렘으로 가는 길이 차멀미가 심한 집 사람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몇 번이고 없이

방콕, 시엘렘 항공기 구입을 고려하였으나 경비 문제에서 선뜻 결정을 하지 못했다.

지난 터키 배낭여행보다는 조금이라도 편하게 그리고 아내를 즐겁게 하려고 많은 비용을

투입하려고 했으나 도저히 용납지 못해 그냥 육로 교통편을 이용하기로 했다.

요번 일정은 아래와 같이 3월 1일 출발하여 태국 방콕 -> 캄보디아 시엘렘 -> 태국

치앙마이 -> 태국 파타야 -> 태국 방콕 순으로 3월 11일 귀국하는 일정으로 170만원 비용이

소요 되었다. 물론 될 수 있으면 한국인을 접촉하지 않으면서 현지인 및 외국인의 생활을

엿볼 수 있도록 하였으나 준비 시간이 없어 준비가 미흡한 관계로 많은 시행착오 발생을

각오하면서 출발하려고 하니 조금 부담이 되었고, 특히 태국이나 캄보디아 모두가 영어

사용권이 아닌 나라기 때문에 더욱 어려울 것이라 예상하였던 대로 많은 일정과 비용

면에서 많은 차질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더 재미있었고 더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아

좋았다.

이번 여행 후기는 눈으로 본 것보다는 마음으로 느낀 점을 중심으로 하여 쓰려고 애

쓰겠지만 잘 될지 모르겠고 더욱 내 특유의 독수리타법으로 써 내려가려니 오타에 신경을

쓰면 내용이 끊기고 내용을 연결시키려니 오타가 많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빨리 독수리 타법을 탈피해야 하는데 게을러서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시작 했으니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3월 1일 아침부터 장롱에 있는 수영복과 여름 의류 등을 찾으니 근 10년 만에 찾은

물안경부터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챙기지만 학생 때

수영장가기 위해 준비할 때 기분보다는 별루인 것 같다. 우리가 여행사 카탈로그에 나오는

페러셀링, 스노클링, 제트스키, 씨워킹 등 태국 파타야 의 코란 섬에서 즐길 물놀이를

즐길 수 있을는지 의심스럽다. 나는 이런 젊은이들의 놀이를 좋아하지만 집사람은 유난히

겁이 많아서 어떻게 안심시키고 한두 가지만이라도 꼭 하도록 해야 하겠다.

근 일 년 만에 찾는 영종도 인천공항 가는데 새로이 공항철도가 있어서 나에게는 공항

버스 이용 시보다 좋은 듯하였다. 항공사 카운터 역시 비수기이라서 그런지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려고 줄 서있는 많은 사람들은 젊은이들보다는 나이든 사람 그 중에서도 골프백

을 부치려는 여행객이고, 이들 중에는 부부가 같이 가는 모습이 나의 시선을 멈추게

하였으나 나는 전에처럼 그들을 부러워하지도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배낭끈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공항 면세점에서 살 물건들을 보라 백화점을 다니느라 신이 난 집사람의

눈가에 실망하는 모습인 반면, 나는 반대로 구조 변경 작업 중이여서 오픈하지 않은 면세점

들이 나의 큰 고민을 덜어주고 있었다. 중간 중간에 간이 판매대에서 겨우 찾은 화장품

매장에서 일부만 구입하고 나머지 물건을 다른 매장에서 값을 지불하려고 하니 D/C가 된다

는 이야기를 듣고는 먼저 산 화장품 매장으로 가서 취소하고 다시 D/C된 화장품을 사고는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아줌마들은 대단한 생각이 들었다. 영수증을 보니 겨우 5%밖

에 되지 않은 데도 번거로움과 피곤함을 부담하면서까지 하는 그녀의 모습이 새삼 우리

가족의 빠듯한 살림살이를 이끌고 온 그녀의 숨은 모습인 것 같아서, 더욱 더 행복감을

그녀가 느낄 수 있도록 추가로 화장품을 사 주었다.

비행기 우리 좌석 주위가 가는 동안 시끌 법적 하여, 그 일행에게 물어 보니 광주에서 온

여고 동창생 15명이 졸업 20주년 기념하여 해외여행 중이라 하였는데, 어찌나 시끄러웠지만

그들의 대화 내용들은 나이가 들었지만 여고 시절 교실에서 수다 내용과 꼭 같아서 짜증이

나지 않게 가는 동안 웃음을 같이했다. 우리 모임도 기회가 되면 한번 이런 여행을 주선하

도록 생각해 봐야겠다.

3월 2일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 박물관을 찾기 위하여 두리번 두리번거리는 우리 모습이

안타까워 보이는지 젊은 여대생이 유창한 영어로 안내해주고 가는 모습이 1978년 이곳을

방문했을 때보다는 교육 수준이 많이 몰라보게 달라진 방콕의 첫 인상이 나를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지만 역시 시내관광을 하는 중에는 계속 언어 소통 중 불편함을 느꼈다.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들은 탐마쌋 대학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었고 그 학생은 그 대학교

학생이었을 것 같다. 나는 여러 번 사전에 준비한 태국 말로 이야기도 해 보았지만 억양이

틀리는지 대부분 방콕 인들은 나의 태국 어 발음을 알아듣지 못했다. 이것은 나의 여행 중

의 불편한 사항 중에 하나로 가끔은 서양인들에게 물어 보는 것이 더욱 편 했고 젊은 승려

들도 이 불편함을 덜어 주었다.

왓 포에서 조금이라도 빠른 길로 따 띠안 포구를 가기 위해 시장 골목길로 들어선 우리

앞의 상점 진열대에는 진열된 건어물, 젓갈류 등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는 영락없이 인천

연안 부두의 어시장 냄새와 똑같았다. 좌판 비닐 봉투에 담긴 작은 말린 고등어, 줄에 매달

린 말린 꼴뚜기, 이상하게 생긴 생선들, 드럼통에 담긴 밴댕이 젓갈 등 하나 하나 호기함에

끌러 침침한 상가 안쪽으로 발길을 옮기다 보니 우리들 앞에 나타난 거무칙칙한 강물

보이는 막다른 골목, 당황해서 골목에 누워 있는 반바지차림의 현지인에게 길을 물으니

웃으면서 손짓으로 가르치는 손가락 방향은 우리들이 온길, 즉 되돌아가라는 뜻이었다.

여기서도 잔머리는 안 통하는 것일까? 지름길로 가려고 하였는데.

빨리타라고 손짓을 하는 승무원의 외침 소리에 무리지어 왓 아룬을 보기 위하여 강을

건너가는 배를 타 띠안 어구에서 탔지만 배는 건너편 왓 아룬으로 가지 않고는 타 싸톤까지

태워 주고는 뱃삯조차도 받지 않아 돈이 절약됐을 뿐만 아니라 오후에 일정을 단축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방콕은 베네치아처럼 도심의 강과 운하가 발달되어 큰 바지선이 끊임없이 다니고 있어서

국민 경제에 많은 도움을 줄 것 같아 우심히 수로의 상황을 보니 우리 내 한강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수량이 많아서 가능한데, 우리 새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대운하도 부족함

이 없는 수량으로 경제적 효과가 있을까? 나는 부정적이다.

왜 그들이 요금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가는 3월 10일 다시 따 티안 어구를 갔을 때

그 이유를 알고는 79년 첫 로마 관광 시 버스 요금을 내지 않은 경우와 같은 상황을 재연

시키고 말았다. 타기 전에 표를 사야 했고 이곳에는 표를 수거하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

누가 우리의 모습을 보았으면 어찌할꼬.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미국사람이 서울에

와서 시내버스 요금을 내지 않고 내렸다고 하면 이를 UCC로 찍어 인터넷에 올려놓을 수도

있는데 그 주역이 우리 부부고 그를 많은 방콕인 본다면 얼마나 쪽을 팔릴 수도 있는데.

오후에 택시비 75밧트 주고는 위민벡 궁전을 보고는 이스탄불의 도르마바흐체 궁전과

비교 되어 실망스러운데다가 날씨도 덥고 지처서 일찍 숙소로 가기로 하고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반갑게 우리를 맞이하는 툭툭 기사에게 카오산까지 가는 요금을 흥정을 시작하는데

툭툭 기사가 매우 난감을 표정을 지면서 “꽤 먼데요. 특별히 100밧트에 해 줄 테니 어서

타세요.” 하니 더욱 더 더워지는 것 같아 그를 물리치고는 택시 기사한테 “택시 메타로

갑시다.” 하니 “ 노우” 하면서 웃으면서 그들이 모여 있는 나무 그늘 밑으로 가고 만다.

마치 “ 재수 없는 쪼잔 한 놈들, 가다가 넘어져라”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는

수없이 짜증을 내면서 한참 걸어오면서 택시를 세우니 그냥 지나치니 더욱 짜증이 났다.

어렵게 택시를 타고 숙소에 오니 39밧트가 나오니 더욱 더 어이가 없었다. 이곳도 관광

책자에 나오듯이 요금 바가지가 꽤 심한 도시가 맞는 것 같았다. 특히 관광지에서는.

저녁때 내일 캄보디아로 가는 방법이 확실히 알기 위하여 한국인 식당인 DDM에 가서

한식을 먹으면서 거기에 온 젊은이들에게 물어 보기로 했다. 이틀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한국 음식이 그리운지 집사람은 무척 좋아하는 것이 오늘 하루 종일 관광

하는 것이 힘들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몸이 아직도 좋지 않았는지, 숙소에 가서 마사지를

좀 해주어야겠다. 역시 소문대로 DDM에는 한국인 젊은 친구의 천지여서 누구에게 말을

걸을까 망설이는 동안 집사람은 잽싸게 젊은 처자에게 말을 붙이고 있었다. 참으로

기특한 모습이었다. 젊은 처자는 그동안 자주 국경을 넘나들은 남자는 친구를 소개해

주어서 자세히 알았지만 그래도 확신은 가지지 못한 상태로 직접 시도해보기로 하고

내일 새벽에 갈 때 필요한 현지 태국 어를 DDM 사장님께 여쭈워 알고는 식사를 맛있게

먹든 중 내일 새벽에 먹을거리로 남은 공기 밥과 김치를 싸달라고 부탁하니 고맙게도 새로

밥을 지어서 싸주니 고맙다는 인사만하고 나오는 나의 모습이 집사람은 우스워 죽겠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한 나의 행동이.

그러나 다음날 새벽에 쌀밥, 김치, 고추장, 김 그리고 신 라면을 먹으면서 행복감과 만족

함을 우리 부부에게 주었다. 침대에서 먹는 아침 식사는 어떤 식사 때보다도 좋은 기억을

남겨주었다. 요번 여행에서는 지난번 때 먹을거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라면, 고추장,

김 특히 라면을 많이 가져 오기 위하여 컵과 내용물을 분리하여 부피를 축소하여 넉넉히

가져와 여행 중 만나는 장기 배낭족들과 나누어 먹으려고 하였으나 결국은 한인 숙소를

이용하지 않아서 만나지 못하고 귀국 가방에 일부를 되가져왔다. 이곳에서는 흰밥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을 감안하지 못한 결과다.

3월 3일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캄보디아 갈 준비를 끝내고 택시 기사에게 “ 바이

슈완 룸피니 !“ 하니 룸피니 파크 앞 우 추리앙 빌딩 건너편에 내려주니 호화로운 2층

버스가 대기하고 있어, 이 버스가 캄보디아 국경지대에 있는 카지노까지 태국인들을 태워

주는 관광버스로 주로 태국인 노인분과 우리와 같이 국경을 넘는 여행 족들이 이용하지만

자세히 홍보되지 않아서 특히 말이 통하지 않아서 한국인 이용객이 거의 없었다. 우리에게

는 무척 편한 교통수단으로 올 때도 이용할 예정 이였지만 방콕공항으로 직접 가는 버스 편

이 있어 이를 이용치 않았다. 늦은 버스를 선택하여 새벽 5시30분에 출발하면서 중간에서

음료수와 간단한 식사를 제공하였고 승차감이나 쾌적함은 터키 여행 시와 거의 같았다.

앞서 뛰어가는 태국인을 따라가서 태국 출국 신고를 하고 나오니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내 이름을 쓴 피켓을 들고는 웃으면서 시엘렘 골든 템플 숙소에서 왔다고 캄보디아 입국

비자 및 수속을 도와 줄 것이니 따라 오라고 하니 한편 반갑기도 하고 경계심도 들었다.

다행히 나는 사전에 e-Visa를 받아 와서 특별히 그의 신세를 지지는 않았고 어떻게 나를

알았는지 만 관심이 있었다. 역시 먹이사슬에 의한 국경에서 시엘렘까지 가는 택시회사의

브로커로 우리에게도 커미션을 요구하기에 택시회사에게 받으라고 하고 떨쳐버렸다.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예측하지 못해 무조건 그들이 요구한 요금을 지불하기로 하고

포이펫을 출발하기로 했다. 조그만 개울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 앞에 전개된 현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60년 시대와 2000년 시대 사이를 옮겨 간 순간 변화인 것 이었다.

허름한 옷차림에 수레에 물건을 산 덤이 만큼 실고는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가는 행렬

이 마치 영화에서 본 육이오 사변 피난민들의 이동 행렬과 꼭 같았고 그 앞에서 구걸하는

꼬맹이들의 모습은 내 조국을 부유하게 만든 박대통령이 갑자기 존경스러워졌다.

비포장도로를 질주하는 앞차에서 발생된 흙먼지는 우리의 시야를 가리고 있는 정도로

비가 안 내리는 건기인 관계로 몹시 심하였고 이는 3시간동안 일부 포장 구간을 제외

하고는 계속되었다. 물론 택시는 계속해서 요동을 치면서 달려서 옆에 탄 집사람 멀미가

언제 터질까 조마조마 하며 창밖을 보니 밖은 더욱 과관 이였다. 걸어가는 사람들, 자전거

를 타고 가는 여학생들, 픽업 자동차 짐칸에 탄 20여명쯤의 현지인들 모두에게 흙먼지는

마치 폭우 쏟아지듯 퍼붓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쓴 사람이 대부분이나 개중에는

쓰지 않은 사람도 많았어. 우리 차라도 천천히 가게하려 하였으나 도로 공사 중인 비포장

도로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참으로 안쓰러운 모습이고 그들은 이렇게 더운데도 눈만 내

놓고 타고 있으니 얼마나 괴로워할까? 차는 꼬리를 물고 연신 도로를 질주하고 있으니

도로가에 심어 놓은 모든 나무 잎들은 흙먼지에 덮여 누런색의 잎사귀로 변해 있었으니

이 곳 학생들은 혹시 가로수 잎을 흙 색깔로 그리지나 않나 한번 보고도 싶다.

지난 78년 방글라데시의 다카를 갔을 때 철도 차량에 매달려 가는 많은 사람들은 요금을

내지 않는 다는 기억하고 있지만 이곳에는 공짜로 타는 것도 아니겠고 어떻게 저렇게 많은

사람을 태워갈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려움 없이 앉아가는 승객도 대단하고 특히 흙먼지

바람에 견딜 수밖에 없는 그 들의 처지를 이해하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마땅히

없고 단지 이곳에서 많은 경비과 팁을 지출해야 하는데, 이것에 익숙지 않은 내가 실행

가능할까?

역시 인도네시아에 본 것 같이 길가 상점에서 음료수 페트병에 담아 파는 기름들을 모습

을 보니 새삼 우리의 경제 성장 효과를 느낄 수가 있었다. 우리 차가 가스를 넣기 위해

정차하고 가스 넣는 모습은 전혀 상상치 못한 방법 즉 땅에 앉은뱅이저울을 놓고 그 위에

가스통을 올려 저울 눈금을 보면서 소형 주입기로 넣는 가스 충전소는 참으로 위험해

보였다.

도중에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정차한 상점에서 승용차 엔진 룸까지 깨끗이 청소 해 주는

서비스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머뭇머뭇 서있는 우리들을 앉으라고 권하는 상점 여

종업원이 한국말로 “화장실이라도 갔다 오세요”하는 것 역시 신기하였다. 그녀는 한국

사람 상대로 과자와 음료수를 파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우리말을 잘하고 있었다.

다시 출발한 택시 기사가 갑자기 미소를 지우면서 “죄송합니다. 잠깐 자기 집에 들렀다

가 가도 되나요? “ 하면서 시골 신작로 한참 가더니만 전통적인 캄보디아 가옥 앞에 차를

세우니 많은 사람이 몰려들면서 그를 반갑게 맞이하여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노모로 보이는

노인과 앳된 어린아이와 같이 나오더니 다시 “ 미안한데 제 큰 자식을 앞좌석에 태우고 같이 시엘림에 가도 되나요 ?”물으면서 늙은 노모 손에 고무줄에 둥글게 동여맨 돈 뭉치를 건네 주고는 다시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역시 이곳도 우리 삶과 같고 부모의 자식 사랑,

자식의 부모 공경은 우리와 같았다는 것을 재삼 일깨워주는 광경이었다. 연신 보조석에

아들의 모습을 넘겨보면서 싱글벙글 기분이 좋아하는 기사의 모습은 정말로 좋아 보였다.

아들에게 모처럼 맛있는 식사와 도시 구경을 시켜주겠지요. 무사히 호텔에 도착하여 택시

비를 지불하고 아들에게 학용품 사라고 돈을 주니 도중에 멀미하여 힘들어 하던 모습은

금방 없어지고, 고마워하는 부자를 뒤로 하고 숙소 프런트로 들어 왔다.

생각보다 너무 일찍 도착하여 앙코르 톰을 구경하기 위하여 호텔 앞에서 툭툭이를 타고

유적지를 향하면서 드디어 그렇게 보고 싶었던 앙코르 유적지가 내 눈 앞에 전개되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부푼 나와는 달리 집 사람은 비포장 길에 염려했던 멀미도 안하고 생전처음

타보는 툭툭이가 신기한 듯 아니 밀양 고정 집에서 경운기타고 역전에 갔다오던 기억이

나는지 매우 기분 좋은 모습을 하고 있어 더더욱 기분이 좋고 마음도 가벼웠다.

오후 늦게 방문한 앙코르 톰에는 예상외로 관광객은 많지 않았고 조용하였다. 남문 입구

에 사열한 밝은 27개의 미소 얼굴과 반대쪽 27개의 화난 얼굴들이 언제부터 우리 부부를

맞이하려고 대기하고 있었는지 얼굴에 상처도 많고 검은 반점도 많은 모습을 보니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좀 더 빨리 왔어야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4면상 군락이 있는 바욘 유적지

로 가는 옆 숲속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는 등에 애기 원숭이업고 있는 어미 원숭이의 모습이

인상적 이였다.

바욘에 대한 깊은 지식도 없이 이 구석 저 구석 위 아래로 두리번거리면서 사진을 찍고

있지만 나는 어떻게 집사람에게 조각상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할지 속으로 당황하고 황당하여

혹시나 있을 지도 모르는 안내판을 찾았지만 전혀 발견치 못하고 모처럼 발견한 입구 안내

판에는 빈약한 설명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숙소에 들어가서 다시 관광 자료를

챙겨야겠다. 그러나 4면상 하나의 얼굴의 모습은 모두가 환해 보였고 특히 입술들은 유난히

도툼하면서도 촉촉한 윤기가 흐르는 듯하다.

아침 일찍부터 설쳤기 때문인지 피로감이 몰려오는 것 같아 쉬기로 하고, 오는 도중에

재래시장에 들려서 망고를

4 Comments
시골길 2008.03.17 14:15  
  [[우오오]] 5학년 7반이신데도..젊은 사람들 못지 않게 자유여행을 아주 계획적으로 준비를 잘 하셨네요.. 두리안을 방으로 가지고 들어가면 종업원들이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 제지를 하던데, 용케 반입에 성공하셨네요..ㅎㅎ
[[씨익]]
alexis 2008.03.17 17:11  
  두분 너무 멋지세요 ^^ 근데 두리안은 호텔반입이 안되는거 아닌가요?
mloveb 2008.03.17 20:13  
  와 정말 멋지신걸요 ^^
열혈쵸코 2008.03.18 23:33  
  여행에 대한 열정이 느껴집니다. 정말 멋지십니다.
저희 아버지가 생각나네요. 인터넷에 글을 올리시는 걸 봤는데, 그글을 읽는 느낌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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