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 [여행의 시작과 두려움]
공기가 무거웠다.
공항이라는 곳은 생각보다 거대하고,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곳이었다.
쓸쓸함과 공항의 웅장함이 느껴졌다.
처음으로 외국여행을 간다.
이것저것 준비를 하긴 했지만, 부족하다.
너무 얕봤던 것 같다.
겨우겨우 탑승수속을 마쳤다.
계속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가서 이것저것 묻다보니,
내가 너무나도 작게 느껴졌다.
공항에는 어린 애들부터 내 또래, 그리고 중년부터 노인들까지,
정말 많은 사람이 있었다.
이렇게 외국으로 움직이는 유동인구가 많았는지,
오늘 또 새삼스레 처음 알았다.
뭐가 자꾸 불안한지,
수속을 마쳤는데도, 계속 움직여다녔다.
담배를 피고, 바람을 쐬고, 화장실에 가고,
편의점에서 바나나우유를 사먹었다.
그러다 나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지,
한 인포메이션 데스크에서 내게 말을 걸었다.
왜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움직이는지,
나는 뭐가 빠진 것 같은 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분은 내게 다가와서 하나하나 체크해주셨다.
정말 새삼스럽게도 아직 세상은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들은 말이, 이제 게이트로 가면 된다고 했는데,
여기가 게이트 아니에요? 라고 여쭤보니,
여긴 그냥 로비라고,
가서 물품검색하고 면세점에서 담배도 사고 좀 준비를 하라고.
나는 몰랐다. 그냥 로비에 있는 상점들이 듀티프리라고 생각 했고,
물품검색도 그냥 탑승하기 직전에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고맙다고 인사를 드리고 게이트로 향했다.
면세점에서는 아무 것도 살 수가 없었다.
왠지 그들의 농간에 빠져드는 것 같기도 했고,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담배도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나는 그렇게 두 시간을 다시 그곳에서 보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탑승하면서, 어쩔 수 없는 남자인 게,
자꾸 승무원에게 눈이 갔다.
승무원들은 어쩜 저렇게 예쁠까, 진짜 외모로만 뽑는 걸까.
비행기 안으로 발을 딛자, 타이항공의 승무원들이
합장을 하며 인사를 하는 것이,
뭔가 어색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
자리를 찾으면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퍼플로 꾸며진 항공기 내부였다.
보라색은 그저 좋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나를 차분하게 해주면서도,
타이에 대한 신비감을 줬다.
내 자리는 창가였다.
마음속으로 브라보를 외치며,
드디어 비행기가 뜨는 순간을 볼 수 있는 걸까.
정말 하늘에서 땅을 볼 수 있는 걸까.
하고 들떴었다.
비행기가 뜨기 시작할 땐,
클래지콰이의 lover boy -as pop as mix 를 듣고있었다.
음악에서 카운트를 하는 게
절묘하게 비행기가 완전히 속도를 냄과 맞아 떨어져서,
이 순간에 이 음악이 없었다면 또 달랐겠지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비행기는 떴고,
비구름 사이를 헤쳐 나갔다.
비구름 사이를 헤치고 나가니, 맑은 하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깨끗한 하늘은 처음 봤다.
그리고 구름밭도 처음 봤다.
구름이 내 위가 아닌 아래에 깔려있다는 걸,
나는 상상도 못했었다.
내 옆에는 중국인이 탔는데,
뭔가 무뚝뚝해보이는 게, 조금은 무서웠다.
이상하게 말을 걸고 싶은데,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기내식과 이것저것 음료들을 먹고,
대만에 도착했다.
기내식이 너무 느끼했던 탓인지,
담배가 몰려 죽는 줄 알았다.
바로 달려가서 스모킹 룸을 찾았는데,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하는 사람이 70%에 육박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혹시 날 보고 욕하는 건 아닐까해서,
그냥 나도 모르게 그들을 보고 웃어보였는데,
그들도 웃어주었다.
신기했다.
표정하나로 내 감정이, 내 의사가 전달이 된걸까.
다시 트랜짓을 하기 위해 게이트로 갔는데,
나는 트랜짓을 할 때,
같은 항공기가 아닌 다른 항공기로 환승을 해야 하는 줄 알고 겁먹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다시 항공기에 탑승했을 때는,
창문 밖에 정말 깜깜했다.
그러다가 비행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타이의 야경이 보이는데,
너무너무 신기해서,
내 기억 속에 꼭 담아두고 싶었다.
조그만 불빛들이 자글자글하게 움직이는 게 너무 신기했다.
마치 내게 이곳에 그냥 머물러달라고 이야기 하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니 내가 어둠 속으로 가버린 거겠지.
타이항공의 승무원들이 얼마나 친절했던지,
마구마구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렇게 5시 30분에 출발해서,
태국 현지 시각으로 11시 10분에 도착했다.
8시간.
정말 긴 비행시간이었는데.
나중에 꼬피피로 여행갈 생각을 하니.
갑자기 막막해졌다.
20시간이 넘는 승차시간을 어떻게 견뎌야할 지, 답이 나오질 않는다.
도착해서 짐을 찾는데도 공항 직원 분들이 도와주셨다.
진짜 세상이 이렇구나 라고 생각했다.
입국심사를 하는데,
난 별에 별 상상을 다 했었다.
질문하면 대답할 준비도 다하고 있었는데,
그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도장만 찍어줬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고마워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공항에서 나오는데 열기가 바로 느껴졌다.
짐도 많고해서,
택시를 바로 잡아서 타버렸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 악명 높은 미터기 안 누른 택시...
갑자기 생각나서 미터기 안 누르냐고 물어봤더니,
노노 이러길래.
아, 걸렸구나..
라차다까지 가는 게 원래 150밧에서 200밧 정도 나온다고 들었다.
200밧을 불렀지만, 그래도 노노를 하길래 300밧을 불렀다.
그래도 노노,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무슨 소릴 하는지를 못 듣겠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500밧을 불렀으나.
자꾸 노노하면서 뭐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태국어를 공부한다고 해갔는데,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 때 생각 났던 게, 은현이가 900밧을 줬다고 했다.
그래서 꺼우러이밧? 했더니
오케이오케이 하면서 능글맞게 웃길래,
아, 수정과의 잣처럼 되버렸구나.
하면서 혼자서 열심히 중얼거렸다.
그러다 생각난 게,
900밧이면 여기서 하루 생활비로 쓸 수도 있는 돈인데..
라차다가서 왓타나맨션에 가고 싶었는데...
그게 이상하게 너무 분해서,
카오산까지 가자고 했다.
그랬더니 한참 말이 없더니,
오케이오케이.
오케이오케이.
오케이가 마치 넌 잣됐다 라는 말로 들렸다.
그래서 왜 이렇게 받냐고 물어봤는데,
깎아보려고 하니,
기사가 메뉴판을 꺼내들면서,
방콕 전역 900밧,
치앙마이,
파타야,
뭐 이런 식으로 거의 무슨 광역택시..
파타야까지 가버릴까 생각하다가,
그냥 카오산 로드로 가자고 했다.
도착해서 내렸을 때 시각은 현지시각 12시.
무서웠다. 소매치기니 뭐니하는 소리가 많아서,
최대한 빨리 방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돌아다녔는데, 당최 가이드북에 나오던
게스트하우스들이 안보였다.
짐은 많은데, 방은 안 보이고,
유러피안, 아메리칸, 중국인들은 넘쳐나고,
누가 한국 사람인지조차 구분할 수가 없었다.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어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겨우겨우 방향을 잡고, 어느정도 거리를 파악한 후,
어느 골목에 들어섰는데,
그래도 잘 몰라서 한참을 헤매던 도중에,
한 태국인이, 헤이 프렌드 하면서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 골목엔 나와 그 태국인 밖에 없었다.
뭔가 준비를 해야겠다 싶어서, 손에 핸드폰을 꽉 쥐고 여차하면,
휘두를 생각이었는데,
그 태국인이 헤이 프렌드 웨얼 아유 고잉 하길래,
나는 벨라벨라하우스를 찾는다고 했다.
그랬더니, 너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 거다.
좀 길이 복잡해서인지 난처해하면서
적은 영어단어로 열심히 설명해줬다.
난 그제서야 프랜드 땡쓰라고 할 수 있었다.
나쁜 사람이 있는가하면,
분명 좋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분명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겨우 찾아갈 수 있었지만,
한번 다른 곳을 도전해보자 해서,
그 주위의 다른 곳으로 들어가서 방을 잡았다.
오늘 900밧을 지출했으니까 좀 아껴야지 하면서,
노 핫워터에 노 에어컨디셔너인데,
이건 참을 만한데, 6층에 위치해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없고...
예전에 5층 아파트의 5층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가는 기분..
땀으로 흠뻑 젖어있어서, 샤워를 했다.
분명 노 핫워터라고 했는데,
이곳의 기온 때문인지,
콜드워터가 웜워터로 느껴졌다.
일단 샤워를 하고, 짐을 정리하고,
지갑과 여권만 챙겨서 밖으로 다시 나갔다.
나가서 돌아다니면서 길을 눈에 익혔다.
그 유명한 동대문도 봤고,
여기저기 가이드북에 나왔던 장소들을 기억해내며,
그냥 돌아다녔다.
그렇게 돌아다니다보니, 카오산도 별 게 아니었다.
그렇게 길을 다 익히고 나서,
담배가 떨어져서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들어갔다.
음료도 하나 마실까 해서,
가격을 봤는데.
그래도 편의점인데....
환타가 14밧?.....
..........
...........................
ㅁ니ㅏ릊대ㄷ쟈ㅕ휘마줄뎌ㅜ님ㅈ
담배와 라이터, 스포츠 음료까지해서 80밧이 나왔다.
음료가 14밧이니까.
담배와 라이터가 .....
..............
면세점에서 사면 얼마나 더 쌀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일단 그렇게 80밧을 쓰고,
다시 돌아다녔다.
정말 이렇게 다르구나 느껴지는 것이.
거리의 한 구석에는 이제 막 걸음을 시작했을 것 같은 아이와 함께 구걸을 하고 있었고,
또 다른 한 쪽에서는 부어라 마셔라 하며 있고,
또 다른 곳은 태국 여자가 서양인을 꼬시고 있었고,
또 다른 곳에서는 열심히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태국 소년이 있었다.
얼마나 열심히 부르는 지, 잘 부르기도 잘 불렀다.
그런데 그 앞에서, 서양인들이 계속 약올리면서
지폐를 열심히 뿌리는 가 하면,
그 꼬마와 나이가 비슷할 것 같은 데,
나름 잘 차려입은 애들이
그 꼬마 머리를 만지작 만지작하면서
지폐를 하나 둘 씩 떨구고 있었다.
화가 났다.
그래도 소년은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는 분명 태국어였고, 알아 들을 수 없는 노래였는데,
너무 와닿았다.
그 소년을 보면서 다시금 내가 지금껏 어떻게 살아오고,
어떻게 영화를 쫓아갔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30분쯤 그 소년을 보고 있다보니, 그 주위에도 눈이 갔다.
거리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
얘기를 대충 들어보니, 다들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 같았다.
나도 그 자리에 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태국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왠 꼬마가 우리 주위에서
얼쩡 대냐고 할 것만 같은 느낌이 자꾸 들었다.
내가 먼저 그런 생각들을 지우고 다가 가야하는 데,
난 아직 멀었나보다.
카메라를 들고 주위를 찍는데,
한 외국인이 자기를 찍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보고 공짜로 찍어주고 공짜로 뽑아주는 거냐고,
.........................
그냥 웃으면서 돌아섰다.
그에게 내가 뭐라고 해야할 지 아직도 모르겠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를 사진 찍어주면서 돈 버는 태국인으로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냥 술에 취해서?
아니면
그냥 이야기를 걸어보고 싶어서?
..........................나는 아직 멀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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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여행기는 매일 하나씩 올라갑니다.
3월 13일부터 31일까지의 이야기입니다.
P.S
저의 첫 외국 여행을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만들어주시고
많은 추억을 남겨주신 파타야의 도깨비 여행사,
제가 치앙마이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무사히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신 치앙마이의 코리아 하우스,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