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
에까마이에서 파타야 가는 버스를 타는데,
지금까지 정말 심하게 속았다는 느낌이 든 것은.
버스요금이 117밧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택시비로 까오러이밧, 투헌드렛밧을 계속 내왔던 나로써는,
진짜 열받을 노릇이었다.
그래도 그러려니 했다.
이 놈의 포기근성.
버스를 탔다.
버스에 외국인은 나 혼자였다.
조금 부담이 되었달까.
태국의 새벽 고속도로는,
내가 상상했던 그런 고속도로였다.
허름한 건물들이 옆으로 보이면서,
곳곳의 공터와 벌판들.
꼭 텍사스에서나 볼 법한 그런 풍경들.
그리고 새벽색깔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그런 느낌의 색이었다.
한참가고 있는데,
웬 아주머니가 내 자리 아래쪽으로 와서는 (버스 중앙에 작은 문이 하나 있다)
웬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아주머니가 들어가고 나서 문을 보니, 토일렛이라고 적혀있었다.
버스 안에 토일렛이라니.
우리나라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광주 갈 때마다, 휴게소 안 나오면 정말 미치는데....
웰컴투파타야시티가 보인다.
그리고 곧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듣던대로 썽태우가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워너고투 파타야세컨로드 쏘이쌈, 했더니,
투웨니밧. 아 싸다...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보통은 10밧을 내고 타는 거라고 했다.
정말 교통이용이 이렇게 믿음직스럽지 못해서야....
퍼스트로드에 닿자, 파타야의 해변이 빛났다.
눈이 부셨다. 하지만 뭔가 해운대에 야자수가 많은 느낌.
하지만 바다라서 마냥 좋았다.
숙소로 이동했지만, 체크인을 오후 1시에 한다고 했다.
앞으로 숙소 이동을 할 때는 정말,
차라리 늦게 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좀 짜증이 나서, 그냥 도깨비투어나 찾아볼까하고,
찾아봤으나, 잘 보이지 않아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
인터넷카페에 들어갔다.
코리안 컴퓨터가 있다고 해서 들어갔는데.
키보드는 일판이다. 뭥미.
아무튼 이렇게 저렇게 해서 위치를 확인 했더니,
파타야 버스 터미널에 있었다.
다시 되돌아가야한다.
그러기 전에, 짐이 너무 무거워서, 세탁을 아예 맡기기로 했다.
세탁을 맡기고 5시에 찾기로 하고 돌아섰다.
그래도 가방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도깨비를 이제 찾아가야하는데,
썽태우에 관해서는 이 때 몰랐던 것이,
항상 직진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과,
현지인은 10밧을 내고 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첫 번째 썽태우를 잘못 탔을 때,
그저 방향만 잡고 타는 바람에,
파타야해변 북부까지 가버려서, 그곳 시장에서 내렸다.
나중에 맵을 보니까 정말 버스터미널까지는 먼 거리였다.
그곳엔 또 썽태우가 보이지 않아서, 고생 좀 했다.
거의 1시간 30분 정도를 무작정 걸어 다녔다.
걷다보니, 태국인만 보였다.
정말 현지인들만 있어서, 길을 물어보기도 어려웠다.
그들이 영어를 못 알아듣는데다가,
영어를 한다고 해도, 발음이 꽤나 이상하다.
그래서 정말 유로피안이나 아메리칸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걸었다.
겨우겨우 파타야 시티 입구(?)
왕의 사진이 있는 곳까지 달했을 때,
뒤에서 조깅을 하던 서양인을 찾았다.
확실히 서양인들의 발음이 듣기도 쉽고 말할 때도 부담이 없다.
알아서 들어주니까.
방향은 알았지만, 방향 외에는 모른다고 했다.
어쨌거나 방향을 알았으니 다행이다.
또 다시 1시간 정도를 계속해서 걸어갔다.
이 때 시각이 10시 30분쯤 되어있었다.
한참을 걸었지만, 터미널이 보일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썽태우를 다시 타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역시 외국인은 나 밖에 없었다.
앞에서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웃었더니,
아이 대신에 아주머니가 웃어주셨다.
썽태우의 운전사는 여자 였는데,
타기 전에 내가 버스 터미널 투 방콕에 가냐고 물으니
간다고 그랬다.
난 그 말만 믿고 계속 갔는데, 날 이상한 허허벌판에 내려주었다.
또 다시 찾아야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버스 터미널을 한참 지났다.
그래서 다시 오토바이 택시기사에게 물으니
버스터미널 파타야 투 방콕 이러니 못 알아듣는다.
그래서 삼촌에게 전화를 해서
태국어로 버스 터미널이 뭐냐고 여쭙으니,
럿 매 터미널이라고 하라신다.
그래도 그들은 못 알아들었다.
다시 한참을 걸어가야만 했다.
이번에는 건물도 뭣도 보이지 않았다.
건너편으로 건너가기 위해서 육교를 건너는데,
좁은 육교 계단에 개가 자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건지 자고 있는건지,
내가 다가가니 눈을 뜨면서 움직이는 게 아닌가.
카오산에서의 사건 이후로 개가 너무 무서워져서,
(카오산에서 개에게 엉덩이를 물릴 뻔 했었다.)
이 육교를 건널까 말까 고민을 너무 많이 했다.
개와 눈이 마주쳤는데,
이미 개의 눈이 아니다.
정말 개들이 다들 약이라도 한 것처럼 눈이 이상하다.
미친 것 같다.
그 개를 뛰어 넘어서 또 열심히 달렸다.
90리터 배낭과 카메라와 노트북 가방을 들고 열심히 달렸다.
다행히도 그 개는 날 쫓아오진 않았다.
개가 신성한 동물이 아닌 그저 악마 같다.
20분 정도를 걸었더니, 오토바이 기사를 만났다.
어차피 태국어 발음은 못알아 듣겠지 하고,
영어로 묻기로 했다.
계속 열심히 설명했더니, 다행히 이번에는 알아들었는지.
오케이오케이하길래, 아 살았다 싶어서, 다시 물어보니까.
이 곳에서는
파타야 버스 스테이션 투 방콕으로 말해야한다고 했다.
터미널이 아닌 스테이션...
나는 스테이션이라고 물으면 버스정류장이 도처에 깔렸는데,
도대체 무슨 버스정류장이냐고
물어볼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었는데,
이것도 수업료의 일부다. (수업료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또)
오토바이 택시의 이용료로 100밧이나 냈지만,
그렇게 아깝지는 않았다. (살았으니까)
드디어 도깨비를 찾았다. 기쁜 마음에 열심히 달려갔는데,
도깨비는 닫혀있었다. 죽을 맛이었다.
간판을 보니, 전화달라는 내용의 글이 있었다.
편의점으로 가서 전화를 하니, 12시부터 연다고 그랬다.
버스터미널에서 그냥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 때 시각이 11시였다.
한 시간을 기다리는 도중에는 계속 뒤 쪽에서 한국말이 들려서,
말을 걸고 싶었으나, 걸지 못하고, 그저 글만 계속해서 써댔다.
12시에 갔다
안 열었다.
12시까지 기다렸다.
다시 전화했다.
식사하고 보자고 하셨다.
나는 체크인 하고 온다고 했다.
썽태우를 타고 다시 쏘이 쌈으로 갔다.
숙소에 좀 일찍 도착했는데,
그래도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첵 인을 했다.
씨 싸이드 게스트하우스.
가격대 시설은 정말 좋았다.
수영장과 레스토랑만 없을 뿐,
모든 게 다 좋았다.
650밧.
샤워를 하고 짐을 정리하고. 다시 도깨비로 갔다.
이번에는 실수가 싫어서, 그냥 바로 오토바이 택시로 가기로 했다.
도깨비 사장님은 100밧 정도 달라고 한다고 했는데,
친절하게도 택시기사들이 알아서 내려줬다.
50밧.
이게 아마도 적정가는 아닐테고...
어쨌든 도깨비에 도착
사장님과 대면
천밧 디파짓내고 가이드북,
그리고 단품 투어 3개,
다해서 2500밧.
손님이 또 오셨다.
한 명.
이름을 아직까지 모른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아저씨인데,
숙소를 같이 쓰자고 하신다.
이 때는 아무렇지 않게 네 그래요 했다.
왜냐면 한국사람과 말하고 있다는 것조차 기뻤으니까.
그리고 또 한분이 오고, 또 한분이 왔다.
이 분이 폴이다.
정말 동안이신데 32이라고 했다.
정말 나보다 3-4살쯤 많은 형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참 저질토크와 여행이야기를 하는데,
폴 형(이하 폴)이 핸드폰하고 가이드북 복사할 거 있으면
같이 나가자고 하셨다.
같이 나갔다.
오토바이를 타는데,
흥정하는 것부터가 다르다.
2명이서 타는데 20밧부터 부르셔서, 50밧까지 만들었다.
그냥 부러웠다.
그리고 타고 가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아까 그 사람 숙소에서는 재우지 말라고,
이런저런 경험담과 여행에서는
원래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닌 이상 같이 숙소를 잡지 말라고,
생각해보니 그랬다.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폴 형 덕분에 좋은 이야기 많이 듣고,
750밧이라는 싼 가격에 핸드폰도 얻었다.
심카드는 100밧.
폴 형이 돈을 200밧 빌려줘서 가능했다.
그리고 보니 그 사람에게 600밧을 빌려줬는데, 받을 수 있을까.
오늘 알카자쇼에는 오기나 할까 이런 의문들이 계속해서 들었다.
도깨비로 돌아가자마자 죄송하다고,
같이 못 자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러려니 하셨다.
그래도 분명히 거절한 게 잘 한거라고 생각한다.
원래 그런 게 맞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폴 형이 그랬다.
한국 사람을 못 믿으면 안되지만,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못 믿게 만든 건 다 한국 사람이라고.
분명히 공감했다.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바가지 씌우고 등쳐먹는다고 그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나서,
다시 내 숙소로 가서,
돈을 받으시러 왔다.
그렇게 짐정리 돈정리를 하고 나가야하는데,
열쇠를 어디 뒀는지 생각이 안나서 한참 헤매다가,
폴형이 찾아주셨다.
진짜 무개념...ㅠㅠㅠ
나가서 같이 밥을 먹고,
치앙마이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
그런데 확실히 치앙마이에 갈 거라는 생각은 안 하고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꼬피피 혹은 꼬팡안에 갈 생각이었으니까.
그렇게 밥을 먹고 나중에 보기로 기약하고 형과 헤어졌다.
숙소에서 픽업을 기다렸고,
픽업이 도착했다.
알카자쇼는 숙소 바로 근처였다.
표를 받고, 자리를 찾아가는데,
그 분이 오셨다.
다행히도 600밧을 다시 받았고,
우리는 쇼를 감상했다.
생각보다 화려하고 재밌는 쇼였다.
단지 트랜스젠더를 본다는 재미 뿐만 아니라,
극이나 쇼로써의 재미도 갖고 있었다.
쇼가 끝나고 형님들과 사진을 두 장 정도 찍었는데,
그들의 목소리란...
너무 피곤했지만,
이대로 저무는 밤이 아쉬워서,
술을 마시러 갔다.
그 유명한 워킹스트릿.
거리의 분위기 자체는 카오산보다 별로 였다.
아고고와 클럽이 쭈욱 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밝은 분위기라서 놀랬다.
한참을 어디로 들어갈까 고민을 하다가,
어고고바를 들어가보기로 했다.
어고고바는 정말 한번쯤은 가봐야할 곳이 아닌가 싶었다.
문화적으로도 쇼크였고, 나름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곳이었다.
팁문화라던지, 푸잉들의 라이프 사이클이라던지..
그렇게 맥주 한잔을 하고
내일의 점심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나는 술도 깰 겸해서 워킹스트릿에서 쏘이3을 향해 걸어갔다.
해변에는 간택을 바라는 푸잉들이 계속해서 말을 걸거나,
눈빛을 보내거나, 손을 잡거나, 그런 것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쩌면 기분 좋은 일이지만, 나는 솔직히 이 해변과 거리가
슬프게 느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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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여행기는 매일 하나씩 올라갑니다.
3월 13일부터 31일까지의 이야기입니다.
P.S
저의 첫 외국 여행을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만들어주시고
많은 추억을 남겨주신 파타야의 도깨비 여행사,
제가 치앙마이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무사히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신 치앙마이의 코리아 하우스,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