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ped moment @ Khaosan
-Where r u from? Japan?
그가 물었다.
여행하는 내내 똑같은 질문을 삐끼들에게 수도없이 들었다.
일본인처럼 생겨서? 아님 일본에서 왔다고 하면 좋아할까봐? 헐...
나는 어쩐지 심사가 뒤틀려서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I'm from North Korea.
순간 그의 동공이 커졌다.
-Kidding.
나는 또 한 번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순간 그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스치고...얼굴이 순식간에 확 펴졌다.
무슨 변검 하는 것처럼.ㅋ
그 후 잠시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매장 안에서 다른 점원이 그를 부르자
엄지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키며 가봐야겠다는 손짓을 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매장 쪽으로 몇 걸음 가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더니
태국인 특유의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Welcome to Thai.
응. 정말로.
태국에 오게 돼서 나도 너무 기뻐.
시암 파라곤에서 지쳤던 마음이 눈녹듯이 사라지며 내 얼굴엔 다시 생기있는 미소가 떠올랐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룰루랄라 거리를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You've got a friend'가 흘러나왔다.
우리가 흔히 아는 Carole King의 원곡이 아닌 보사노바 풍으로 편곡한 것이었는데
폭신폭신하고 달콤한 보컬의 목소리와 보사노바 리듬, 그리고 따뜻한 남국의 노을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시암스퀘어 거리를 적시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오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어느 레코드 가게 앞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주인 아저씨에게 지금 틀고있는 CD를 달라고 말했다.
주인아저씨는 그치? 참 좋은 노래지? 라고 말하며 먼지 쌓인 선반에서 CD를 찾아 내게 건넸다.
Premium 이라는 레코드사에서 2006년에 발매한 Stacey Kent Collection III.
스테이시 켄트는 알고보니 꽤 유명한 미국출신 재즈보컬리스트였는데
만약 그녀의 목소리를 한국에서 들었다면 별 생각없이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음악은 물론 지금도 즐겨 듣고있지만 어쨌든 태국에서 들어야 제 맛이다.
아아...태국 가고싶어...ㅠ_ㅜ
어느덧 거리에 어둠이 깔리고 있었고 오후 2시에 일어나서 4시에 호텔에서 나온 덕분에
별로 한 거 없이 태국에서의 두 번째 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자, 그럼 이제 뭐하지?
원츄리스트를 볼까?
아. 뚝뚝타기!
마침 눈 앞에 뚝뚝 아저씨들이 모여있길래 어슬렁어슬렁 다가갔더니
대번에 어디로 모셔드릴깝쇼? 라며 선수 친다.
Kaosan Road, Please. 라고 하자 태국여행 초보인 거 딱 눈치 챈 듯
300밧을 부른다.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하냐.
Oh, too expensive. I'll take a cap. 이라고 하며 택시 잡는 시늉을 하자 내 팔뚝을 붙들며
Ok, Ok 150밧. 이런다.
-No. 50.
-No~nononono~100.
-No. 60.
-Ok, 70. Ok?
-Ok, fine.
-Let's go.
훗. 실은 처음부터 70밧 생각했었다.
여기 물가가 어떤지 전혀 모르겠지만 어쩐지 70밧이 적당해 보였다.
(제 생각이 맞나요? 아시는 분 계시면 조언 부탁드려요)
난생 처음 타 보는 뚝뚝.
브레이크등이랑 사이드미러, 너무 귀여운거 아냐? ㅎㅎ
옆 뚝뚝에 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랑 서로 인사도 하고 나름 재미가 있긴 했으나
차 막히는 도로에서 어쩐지 혼자 퍼레이드 하고있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눈이 맵고 머리가 아플 정도로 매연을 들이마셔야 하는 단점이 있으므로
뚝뚝은 방콕에서는 이제 그만 타도 될 것 같다.
한 15분정도 갔나?
이태원같은 거리에서 아저씨가 차를 세웠다.
약속대로 70밧을 지불하고 내리려는데 아저씨가 묻는다.
여기 말고 팟퐁이 더 좋은데 거기 안 갈래?
-(단호) NO.
-Ok, bye~
푸핫. 그래도 두 번은 권할 줄 알았는데(그래봤자 안가겠지만)
바로 포기하는 걸 보니 또 어쩐지 아쉽다. ㅋ 아 놔, 이 변태 성격-_-;
나름 15분 동안 드라이브 하며 정 든 아저씨를 보내고 카오산 거리에 들어섰다.
아아.......
여기.......
어쩜 좋아.......
너무 좋아.............
뭔가 좋은 것을 표현할 때 우리는 종종 좌청룡, 우백호, 거기다가 살을 더 붙이고 싶으면
남주작, 북현무로 비유하곤 한다.
카오산 로드는...하하...
좌 꽃미남, 우 먹을거리, 남 예쁜 원피스, 북 프리스타일 노천바.
이랬으니...정말 어찌 아니 반할쏘냐다. ㅋ
혼자 괜히 실실 쪼개며 걷고 있는데 칵테일 포장마차 삐끼가 나를 불러세운다.
-언니, 우리 칵테일 끝내줘. 여기 앉아.
-그래? 그러지 뭐.
테이블도 없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으니 괴발개발 써 놓은 메뉴판을 준다.
대충 훑어보고 있는데 삐끼가 다시 와서 어떤 맛을 원하냐고 묻는다.
음...보드카에 피치트리랑 라임, 혹은 오렌지 주스나 파인애플 들어간 거.
이렇게 구체적으로 얘기했더니 아, 그럼 내가 니 취향에 맞게 만들어 줄께.
이러더니 금방 인디언 핑크색 음료로 채워진 플라스틱 컵을 건네준다.
와~색깔 예쁘다. 고마워. 라고 하고 한 모금 마셨는데...오, 맛있는걸?
이거 맛있다고 하자 삐끼가 이 칵테일 이름이 뭐게? 하고 묻는다.
글쎄, 뭔데? 라고 하니 삐끼 왈.
"Pink Pussy"
풉-!
What a naughty!
이냥반이 증말! ㅋㅋㅋ
근데 진짜 웃기긴 웃기다. (실제로 핑크푸시라는 칵테일이 있긴 있다)
칵테일도 마시고 싸고 예쁜 옷도 샀으니 이번엔 헤나와 레게머리를 할 차례.
사실 타투를 하고싶었으나 비용도 만만치 않고 위생, 질병 등의 위험이 있으므로
헤나로 대리만족하기로 했다.
거리에 진열해 놓은 샘플사진들을 가리키며 얼마냐고 물었다.
헤나랑 레게머리 둘 다 할거라고.
그랬더니 두개 하니까 싸게 해서 1200밧에 해주겠단다.
아이쿠. 한국의 10분의 1가격이다.
머리를 하는데 걸린 시간은 총 두 시간 반.
오른쪽은 여자가, 왼쪽은 남자가 맡았다.
처음엔 서로 어색하게 앉아있다가
Where r u from? 으로 시작해서 수줍게 말 문을 열고...
그 후 두 시간 반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됐다.
(참고로 카오산에서 노점 장사를 하려면 한 달에 30만원인가 60만원인가를
관할 기관에 내고 등록을 해야 한단다. 하루 단위인지 일주일 단위인지
이렇게도 돈을 내고 할 수 있단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며 지나갔고
헤어디자이너? 레게이스트? ㅋㅋ 뭐라고 불러야 되지?
암튼 이들의 친구인듯한 태국 청년 세 명이 우리의 수다에 동참을 했고
그러더니 문득 한 청년이 옆의 친구를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He said u r pretty. He likes u.
으하하.
-Oh, thanks.
-His name is boy. lady boy.
캬하하. 뭐라고? 진짜야?
아니, 농담. 근데 얘 좀 레이디보이 같이 생기지 않았냐?
응, 좀 그렇다. ㅋ
뭐 이런 얘기 속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지고 순식간에 이들과 친구가 되어버렸다.
머리 하다 말고 한 컷.
(여기서 누가 '레이디 보이'인지 맞혀보세요~! ㅎㅎ)
이래저래 시간은 흐르고...
드디어 머리가 완성됐다.
완성작이 마음에 쏙 들어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했고
어쩐지 그냥 헤어지긴 아쉬운 차에 알고보니 내가 마지막 손님이라길래
끝나고 맥주나 한 잔 할까? 하고 내가 제안했다.
그들은 태국어로 뭐라뭐라 서로 얘기를 하더니 알았다고.
근데 일단 짐정리 해야 되니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잠시 후 다 같이 바로 옆에 있는 펍으로 갔다.
일단 싱하맥주 피쳐를 주문하고 안주를 고르는데 모든 결정권을 나에게 줬다.
음식천국 태국답게 안주 메뉴만 5-6페이지 가득이었다.
감자튀김, 양식부터 태국음식까지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일단 태국에 왔으니 태국음식을 먹어보잔 생각에
다들 강추해 마지 않던 똠양꿍과 그냥 무난한 새우튀김을 시켰다.
거기다가 애들이 가져온 태국 과자, 통닙까지 곁들여주시고. ㅋ
똠양꿍을 여기서 이런식으로 먹게 될 줄은 몰랐다. ㅋ
오 근데 정말 얼큰하고 시원한게...이건 딱 소주 안주인데..ㅋ
저 주황색 물체가 통-닙. 아니 터엉-닙 이던가?
애들이 열 번 넘게 발음해줬는데 아직도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암튼 코코넛으로 만든 과자였는데 묘하게 달콤한게 매력적이었다.
한창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묘령의 여인 등장!
알고봤더니 미우(홍일점)의 어머님이시란다.
어머님 역시 카오산에서 레게머리와 악세서리 장사를 하고 계신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사진 오른쪽 아래에 카키색 비니 쓴 총각.
저 아이의 이름은 봄. 봄과 미우는 남매.
더 놀라운 건 왼쪽 아래 중절모 쓴 리와 옆의 보이
(네, 그가 레이디 보이라는 별명을 가진 바로 그 보이랍니다)는 형제.
리와 보이, 미우와 봄은 이종사촌지간.
그리고 오른쪽 위에서 왼쪽에 있는 아이는 내 머리를 담당했던 바-스.
바스 역시 미우와 이종사촌.
이들 모두가 카오산로드에서 레게머리, 헤나, 악세사리, 가방 등을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태국 온 지 하루만에 무려 일가족과 친구가 되다니.ㅋ
즐거운 분위기 속에 맥주 한 잔씩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12시가 넘었다.
미우와 바스가 숙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라차다 피섹에 있다고 하자 약도 가지고 있냐고 묻는다.
다이어리를 뒤져 약도를 건네주자 택시를 잡아서 기사분께 약도를 보여주며
뭐라고 태국어로 말을 하더니 나보고 타란다.
택시 타기전에 미우와 서로 전화번호 교환하고 인사를 하니
미우가 숙소 도착하면 잘 도착했다고 확인전화 해 달란다.
이런, 가정교육 잘 받은 착한 아이들 같으니라고!
아무튼 덕분에 편하게 숙소에 도착해서(물론 택시 바가지 안 쓰고)
미우에게 잘 도착했다고 전화한 뒤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아, 참. 이것은 나의 연애 이야기다
-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