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ped moment @ Phi P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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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Stopped moment @ Phi Phi

Leona 20 4106


세상 부러울 것 없을 정도로 편히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또 슬슬 하산했다.
메뉴를 보러 리셉션으로 가는데 한 청년이 싱긋 웃으며 말을 건다.

-헤이, 헤어스타일 멋지다. 그거 어디서 했어?

-고마워. 이거 카오산 로드에서 한건데 거기서 머리 해준 애들이랑 친구도 됐어.
나 카오산 로드 너무 좋아.

-헤에...카오산 로드 좋지...태국사람들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피피는 어때?

-피피? 오...말도 마. 여긴 파라다이스야. 너 여기서 일하는거야?

-응. 여기 사장님이랑 아는사이인데 도와달라고 해서 7개월 전부터 와 있어.

-부럽다...ㅠ 진짜 부러워.

-에이...뭘. 그나저나 오늘 재밌게 보냈어? 뭐했어?

-음...몽키비치도 가고 스노클링도 했는데 넘 재밌었어.

-샤크포인트는 가봤어?

-아니. 샤크포인트가 뭐야?

-샤크 포인트 몰라?

-응...(피피섬에 대해 아는 게 없다 -_-;)

-그럼 내일 나랑 같이 카약타고 샤크포인트 갈래?

-음...나 내일 끄라비 가는데.

-야, 끄라비 뭐하러 가. 거기 볼것도 없는데. 피피가 훨씬 좋아. 그냥 여기 있어.
나랑 같이 스노클링도 하고 밤엔 여기 사람들이랑 같이 클럽도 가고 그러자.
너...그냥 이렇게 가면 나중에 후회한다...?

-음...가고싶긴 한데...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끄라비도 가봐야지.

-내일 몇시 배로 가는데?

-오후 3시.

-그래? 그럼 나 내일 아침 8시부터 쉬는시간 이니까 잠깐 갔다가 가.
여기서 가까우니까 2-3시간만에 돌아올 수 있어.

-그래? 그럼 그러지 뭐.


그땐 몰랐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 지.


다음날.

짐가방을 미리 챙겨서 리셉션으로 나갔다.
디파짓으로 1000밧 맡긴 거에서 그동안 먹은 음식값을 제하고
미리 첵아웃을 한 뒤 돌아서는데 그가 웃으며 다가왔다.

-Leona, r u ready?

-Yes, I'm ready.

자, 그럼 가 보자구.


카약을 타고 샤크포인트로 나갔다.


shkp.jpg

(상어가 다닌다는 샤크포인트.
두세시간 더 일찍 갔으면 볼 수 있었을텐데 더워져서 상어가 숨어버렸다고 한다;)


그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노 젓기를 멈추고 풍덩 뛰어들었다.
나도 내 생명줄;; 튜브를 뒤집어쓰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태국의 바다는 얕은 줄 알았는데 그래도 한가운데는 꽤 깊이가 있다.
끝도 없는 심연이 내 발을 잡아당기는 것 같다.
튜브 사길 잘했어;;

물에 둥둥떠서 고개만 바다 속으로 집어넣은 채 스노클링을 하는 나를 보고
그가 약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하하하...이게 뭐야. 애도 아니고. 너 수영 못해?

-응. 못해. 너처럼 바다에서 사는 사람이랑 같냐? 흥...

-어이, 나 이래뵈도 씨티보이거든? 내 고향은 방콕이라구.

-흥. 몰라. Whatever! 난 튜브 있어서 수영 못해도 괜찮다구.

-잠깐 튜브 벗어봐.

-왜? 싫어 무서워. 나 수영 못한단 말야.

-괜찮으니까 벗어보래도. 그렇게 튜브끼고 있으면 바다 안쪽으로 못 들어가잖아.
깊이 들어가면 더 멋지단 말야. 내가 잡아줄께. 나 믿고 한번 시도해봐.

-흐응...나 죽으면 니가 책임지고 우리집에 연락해줘야돼.

-하하...걱정마삼.

조심스레 튜브를 벗었다.

허억-!!!!!!!!

발이 땅에 안닿는다. 발이 땅에 안 닿는다....ㅠ_ㅜ
나는 겁에 질려 허우적거리며 살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는 괜찮으니까 제발 릴렉스 하고 자기 손을 잡으라고 했지만
아무리 심호흡을 해도 절대 괜찮아지지 않았다....ㅠ_ㅜ

그는 그런 내 꼬락서니를 보고 짧게 한숨을 쉬더니 그럼 잠깐 혼자 여기 있으라고 하고는
물 속 깊이 헤엄쳐 들어갔다.

나는 고글을 통해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봤다.

허리와 두 다리를 지느러미처럼 움직여 바다속으로 들어가는 그의 모습은
마치 힘차게 헤엄치는 돌고래 같았다.

오...수영하는 거 좀 멋진데?


이쯤에서 우린 그를 잠깐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자, 다 같이 Say Hello!


don.jpg

(프라이버시를 위해 그를 'Mr.퀘스천마크(혹은 퀘군)'이라 부르겠다)

잠시 후 그는 물 밖으로 나왔고 우린 카약에 몸을 기대고 바다에 둥둥 뜬 상태로
담배 한 대를 나눠 피웠다.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남자친구 있어?

그가 물었다.

-아니, 얼마전에 헤어졌어.

그는 오른손 주먹으로 가슴을 톡톡 치며 말했다.

-오, 그럼 Fixing heart 하러 온 거?

-아니. 그건 이미 치료됐어. 내 심장은 튼튼하거든. 그냥 휴가차 온거야.

-흐응...그래?

-넌 여자친구 있어?

-응. 많아.

-뭐?! 농담 아니구 진짜로.

-응. 진짜로. 방콕에도 있고 푸켓에도 있고 또 여기 피피에도 있어.

-뭐냐, 그게? 너 바람둥이구나? 나쁘다, 너...

-하하하하...농담이야.

-흐응...

-야, 지금 몇시지?

-몰라. 시계 안가져왔는데.

-배 시간 다 돼가는거 아냐? 이제 슬슬 가자.

-그래.

둘이서 열심히(아니 사실은 퀘군 혼자) 노를 저어 숙소로 돌아갔다.

저만치서 숙소가 보이는데 이게 왠걸?
매니저 몽이 내 가방을 해변까지 끌고나와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카약에서 내리자마자 몽이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레오나, 뭐하는거야? 지금 두시 오십오분이라고.
-어, 진짜? 그럼 지금 가면 되겠네.
-야, 빨리 배타. 내가 배 불러놨어. 빨리가. 배 놓치기 전에.

옆에서 미케씨가 한마디 한다.

-레오나, 배 이미 갔어. 가지마. 그냥 여기있어.

몽이 내 등을 떠민다.

-자자, 빨리 타. 어서. 어휴 너 정말.

나는 몽에게 떠밀리다시피 해서 롱테일 보트에 올랐고
선착장에서 막 출발하려는 배를 붙잡아 겨우 탈 수 있었다.

그렇게 끄라비로 가는 배를 탔다.

그러고보니 모두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떠났네...
다들 너무 고마웠는데...다시 볼 날이 있을까...?

디카를 꺼내 그동안 찍은 사진을 넘겨보다가 문득, 어느 한 사진에 시선이 멈췄다.
아까 샤크포인트에서 스노클링 하면서 찍은 퀘군의 사진.

그땐 몰랐는데 퀘군...수영하는 것만 멋있는게 아니라 웃는것도 귀엽구나.

태국의 햇살을 닮은 환한 미소, 수영으로 다져진 건강한 근육.
도시의 매연과 과로에 찌든 나와는 정말 다르구나...

그냥 좀 더 있을걸 그랬나?
그냥 좀 더 있을걸...그랬나....?

그냥...지금...돌아갈까....?

배를 당장 피피로 다시 돌리고 싶어졌다.

그렇게 끄라비에 도착했다.

선착장에서 나와 택시를 잡았는데 기사가 잠깐 기다리란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땡볕에 택시 앞에서 기다리는데 10분이 지나도 기사녀석, 올 생각을 안한다.

짐가방을 끌고 선착장 쪽으로 가보니 기사가 다른 사람에게 삐끼질을 하고 있다.
(나 버스 아니고 택시 잡은 거거든? -_-+)

날씨도 덥고 아까 스노클링하면서 일광화상 입은 등도 따갑고 이래저래 확 짜증이 나서
지금 뭐하냐고 나 빨리 가야된다고 한소릴 했다.

기사는 '잠깐만...'이라고 말하다가 내 표정을 보고는 황급히 뛰어와 차에 시동을 걸었다.

푸켓에서 미리 예약한 아몬맨션으로 갔다.

가격대비 시설은 괜찮은 편.

방을 안내받고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선풍기를 틀어도 후덥지근하다.
해변가에 산책이나 가자 싶어 문을 여는데...안.열.린.다.

10분동안 낑낑대며 문고리를 이리저리 돌려봤는데 안열린다...ㅠ_ㅜ
나 여기 갇힌거냐. -_-;

수첩에서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여기서 꺼내달라고.

직원들이 달려왔다. 밖에선 잘 열린다. 그러나 안에선 안열린다.

다른 방으로 바꿔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방이 이거밖에 없단다.

이게뭐야 이게뭐야.

직원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문고리 수리해줄테니 잠깐 해변가에 산책다녀오는게 어떻겠냐고 한다.

물론 좋게 웃으면서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은 콩밭, 아니 피피에 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끄라비에 오픈마인드를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다른 숙소 구할테니 환불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무작정 뚝뚝을 잡아타고 아오낭 비치로드로 나갔다.

땡볕에서 한 시간 넘게 숙소 알아보러 돌아다녔다.

그리고 겨우 아오낭 프레지던트 호텔이란 곳에서 짐을 풀었다.
트윈 베드룸. 일박에 1600밧.

끄라비에선 싼 숙소에 묵으려고 했는데...예상에 없던 지출을 했다 (시설은 깨끗하고 좋다)

하아....나 그냥 피피로 돌아갈래.

밖으로 나와 곧장 여행사로 갔다.

-피피가는 배 제일 빠른거 몇시에요?

-음..오늘은 배 끊겼고 내일 오전 8시에 있네요.

-네. 그걸로 주세요.

표를 끊고 인터넷을 열라게 뒤져 겨우 바이킹 리조트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전화를 했다. 퀘군이 받는다.

-퀘군? 나 레오나.

-오, 레오나. 끄라비 잘 갔어?

-응. 근데 나 그냥 내일 피피로 돌아갈래.

-하하...거봐. 내가 가지말고 여기 있으랬잖아.

-응...그러게. 방 있어?

-응. 제일 좋은 방으로 예약해놓을께. 얼른 와.

-응, 내일 봐.

오후 5시에 도착해서 다음날 아침 8시에 끄라비를 떠났다.
그래서 사진도 없다. -_-;

지금도 끄라비에서 그렇게 보낸 걸 생각하면 두고두고 아쉽지만...
그땐 그럴 경황이 없었다. 다음에 찬찬히 둘러볼 생각.

피피돈 선착장에 다시 도착했다.

미케씨가 저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다.
있는 힘껏 달려가 미케씨를 끌어안고 폴짝폴짝 뛰었다.

미케씨와 함께 롱테일보트를 타고 다시 바이킹 리조트로 갔다.

리셉션에서 퀘군이 웃으며 내게 말했다.

-Welcome back, Leona.


-이것은 나의 또 다른 연애 이야기다.



                                                                                    -다음편에 계속


20 Comments
노노 2008.05.11 21:34  
  언니 여행기 너무 잼있어요ㅋㅋ
후치 2008.05.11 21:50  
  하루에 하나씩 넘 감질맛나요...ㅜㅜ...담편은 또 언제 올리시려나~~기대만땅~~연애이야기~~
김우영 2008.05.11 22:14  
  하하하하..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튜브와 함께...[[원츄]]
저도 그래요 ^^
랑그레이 2008.05.11 23:14  
  앗. 퀘군과의 연애 이야기인가요?
두근두근한 심정으로 여행기 재미나게 읽고있습니다^^
눈꽃무지개 2008.05.11 23:16  
  와우~! ^^
신수 2008.05.11 23:17  
  또다른연애이야기라,,,,계속 잘보고있습니다,,뒷이야기가 너무 기대되요..
helena 2008.05.11 23:18  
  헉~! 밖에서만 열리는 방..대.략.난.감..[[뜨아]]
아니다 싶을 땐 언능 계획수정~
 '피피' 로의 회귀~~
콩알만한 아가씨가 Coooooool~~[[으힛]]
아부지 2008.05.12 00:50  
  맘이 당길땐 그저 당기는데로 해야 후회가 없지염. 저도 전에 방콕에서 만난 사람들이 꼬사멧 무진장 가지말라거..전 꼬사멧 간다고 일정에 넣어놨으니 가야한다고 우겼다가 들어가는순간 감기걸리고 바람 엄청 불고..개고생하고 하루만에 나왔더니 감기 낫더군여.--;; 그보라고 왜갔냐고 한소리듣고..쯔압..
어쨌든..여행은 역시 맘이 말하는대로..^^;
앤디 2008.05.12 02:00  
  갈수록 재밌어요...갈수록 영화시나리오 같아요...
갈수록 여기가 우리집인게 화나요...췟
큐트켓 2008.05.12 04:18  
  옛전에 몇번봤던...할리퀸 같은 작은 연애소설같아요 ㅎㅎㅎ
mloveb 2008.05.12 18:55  
  오~~정말 무슨 소설책 읽는거 같아요~~ 담편도 넘 기대되요~~
lakill 2008.05.12 19:06  
  퀘군은 태국인이에요? 이야기 너무 재미있네요^^
자니썬 2008.05.12 20:54  
  무스 영화 같아요?
영화 제목을 지으다면___
        ;피피섬 에서 그대와 함께:
엣날 영화 같나?아니면
      ":폭풍우 의 피피섬":
잼 나는여행기 잘봤어요  ...  ~감 사~
Leona 2008.05.12 22:44  
  헬레나님. 콩알 치고는 근수가 너무 나가죠. ㅋㅋ
아부지님. 그러게요..여행은 마음가는 대로. 여행의 묘미를 아시는 분인듯. 
앤디님. 7월에 태국 가실거잖아요. 완전 부러워요..ㅠ_ㅜ
라킬님. 네 태국인이에요.
자니썬님. 나중에 영화화 하게되면...ㅋ 지어주신 제목 참고할께요. ㅎㅎ 고마워요~!
앤디 2008.05.13 01:16  
  푸화화화 ^^
타이킹왕짱 2008.05.13 14:48  
  완전 기대만땅!!!!
일곱빛깔무지개 2008.06.02 13:43  
  아.. 정말, 저도 언젠가는 레오나님처럼 멋진 사람들을 만나며 멋진 여행을 할 수 있을까요? ㅠㅠ 으.. 당장 떠나고 싶어요!!!!
달봉킴 2009.03.24 17:07  
오- 퀘군인가요..?ㅎㅎ
시리우스70 2009.03.28 21:46  
피피로 다시 돌아가서 친구들과 재회하는 장면에서 왜 내가 막 신이나지??
벌써일년 2009.07.03 17:02  
야, 끄라비 뭐하러 가. 거기 볼것도 없는데
야, 끄라비 뭐하러 가. 거기 볼것도 없는데
야, 끄라비 뭐하러 가. 거기 볼것도 없는데
야, 끄라비 뭐하러 가. 거기 볼것도 없는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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