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ped moment @ Bangkok
오늘은 피피를 떠나는 날.
생각같아선 이 섬의 야자수가 되어 소리소문 없이 숨어 지내고 싶지만
자금의 압박과 비행기 일정 변경을 너무 심하게 자주 한 관계로;;
주섬주섬 짐을 챙겨 하산했다.
(헬로타이 여행사 직원분들, 죄송해요...그리고 고마워요...ㅠ_ㅜ)
여유만만하게 첵아웃을 하고 미케씨에게 피피돈으로 나가는 롱테일 보트를 불러달라고 했다.
그리고 늘 먹던대로 아메리칸 브랙퍼스트를 주문하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에서 바다를 보며 식사를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퀘군은 보이지 않는다.
'아직 자나보네...'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는데 매니저 몽이 몇시 배로 나가냐고 묻는다.
-음...9시30분일걸? 슬슬 나갈 때 됐어.
-뭐?! 너 지금 제정신이야?
-왜?
-지금 9시 20분이라구!!!!
-그래..그럼 지금 나가면 되겠네.
-배는?
-불렀는데?
-언제?
-30분 전에.
-배 없는데?
-뭐?! 내가 아까 미케씨한테......미케씨!
미케씨를 돌아봤다.
-미케씨, 아까 배 부르지 않았어?
미케씨는 못 들은 척하며 고개를 푹 숙인채 비질을 하고 있다.
바닥엔 아무것도 없는데...
-레오나, 레오나, 레오나아~~~~~~~~!!!!
몽이 또 발을 동동 구른다.
-배 지금 부르면 안돼? 너무 늦나?
몽은 한심한듯 나를 째려보더니 해변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더니 셔츠를 벗어들고 마치 무인도에서 구조요청 하듯 소리를 지르며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저러다 팔이 빠지는 건 아닌가 걱정 될 정도로...
그러자 저 멀리서 롱테일보트가 방향을 틀어 이쪽으로 왔다.
-몽, 저기 그 동안 고....
-알았어, 알았어. 이럴 시간 없어. 서둘러!
...또 몽에게 떠밀리다시피 해서 배를 탔다;;
-고마워, 몽. 건강해, 다들.
미케씨, 나도 여기 떠나고 싶지 않았어. 당신 맘 알아.
그리고 퀘군...당신은 뭘 해도 잘 해낼거야. 꼭 꿈을 이루길 바랄께.
세상에 당신처럼 멋있는 남자도 있다는 거 알았으니까...나도 열심히 내 짝을 찾아볼께....
멀어지는 바이킹 리조트를 보며 혼자 속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부랴부랴 배를 잡아타고 푸켓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공항으로 갔다.
♬ I'm go to phuket~♬ 을 흥얼거리며 폴짝폴짝 뛰고싶던 열흘 전과는 달리 한쪽 발이 자꾸 질질 끌린다.
여행의 마지막을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 안.
너무 아쉬워서 자꾸만 창문에 머리를 처박고 아래를 보게 된다.
창밖으론 이제 구름밖에 안 보이는데도...
창밖을 보다가...너무 신기한 구름 발견!
옆자리에 앉은 영국 아저씨랑 저게 개냐 고양이냐 호랑이냐 늑대냐를 놓고 토론을 하다보니
어느새 돈므앙 공항에 도착했다.
여전히 숙소 예약은 안 해놓은 상태.
수쿰윗 쏘이11에 있는 쑥11을 누가 권해준 게 생각이 나서 그리로 향했다.
그리고 역시나...방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잠시 비틀거리고 있는데
직원이 미안하다며 인근 호스텔과 가격/연락처 등이 정리돼 있는 종이를 한 장 건넸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이리저리 전화를 걸었으나 모조리 Full.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맨마지막 호스텔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방이 있단다. (왜 꼭 이런건 제일 마지막에 있는걸까?;;)
그래서 도착한 곳은 수쿰윗 쏘이25에 있는 호스텔 인터네셔널.
어차피 하루만 있을거라 도미토리로 하기로 했다. 조식포함 1박에 600밧.
시트와 베개커버를 들고 방으로 갔다.
이층침대 3개가 있는 방이었는데 이미 4명의 여자아이들이 있었다.
-Hi
다들 일제히 인사를 한다.
또 늘 그렇듯이 대화의 시작은 Where r u from?
(왜 꼭 영어책 제일 첫 문장은 Where r u from인지 한국에서 자란 나는 이해를 못했는데
지금은 너무 잘 알겠다;;)
-난 제니. 뉴욕에서 왔어
-난 에밀리. 시드니에서 왔어
-난 ***. 아르헨티나에서 왔어 (얘 이름은 까먹었다;;)
-난 베들레헴. 그냥 베티라고 불러. 남아프리카에서 왔어.
-응, 난 레오나. 한국에서 왔어. 만나서 반가워.
-오, 한국? 나 김치 좋아해.
한쪽 구석에서 쏨땀과 춘권을 먹고있던 마치 치약 광고 모델처럼 생긴
남아프리카에서 온 아이가 고른 치열을 드러내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 정말? 김치 언제 먹어봤어?
-지난번에 도쿄갔을때. 그치만 한국 김치가 더 맛있다고 들었어.
-하하...그래? 안그래도 나 지금 김치 너무 먹고싶어...ㅠ_ㅜ
-너 방콕에 얼마나 있을건데?
-내일 떠날거야. 방콕에 3일정도 있다가 열흘 전에 푸켓이랑 피피갔다가 다시 돌아온거야. 넌?
-난 여기 3일 있다가 인도로 갈 거야. 그럼 너 방콕 어디어디 가봤어?
-시암이랑 카오산이랑 라차다...뭐 그정도?
-그래? 방콕에 진짜 어이없는 커플들 많지 않아?
거의 다 죽어가는 남자랑 젊은 태국여자랑...완전 Disgusting해.
-하하...나도 많이 봤어.
우리 얘기를 듣고있던 제니가 끼어들었다.
-레오나, 여기 바가지도 너무 심하지 않아? 나 첫날 공항에서 900밧 주고 택시 탔어.
-뭐? 정말?!! 너무 심하다!! 난 500밧 줬는데!! 그것도 바가지였어.
-그러게...말도 마...나도 나중에 알았어. 그리고 있잖아.......
그렇게 한동안 여자 다섯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태국은 바가지도 심하고 주책맞은 서양 노인네들도 많고 지저분하지만
결론은...밤새 놀아도 재밌고 무엇보다 끝내주는 음식이 많은 곳이라는 거. ㅎㅎ
다들 혼자 씩씩하게 여행 다니는 호기심 많고 밝은 아이들이었다.
-레오나, 오늘 뭐할거야?
베티가 물었다.
-전에 방콕왔을 때 카오산에서 태국 친구들을 사귀었거든? 그 친구들 만나러 갈거야.
-그래? 별 일 없으면 나랑 베드서퍼 클럽에 가자고 할랬지.
-그렇구나...너 셀폰 있어? 이따가 상황봐서 전화할께.
-오래 여행하는거라 전화가 없어.
-그렇구나...아쉽다. 재밌게 놀아.
-응, 너두.
모두에게 간단한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곧장 택시를 잡아타고 미우에게 전화를 했다.
-미우? 나 지금 방콕이야.
-정말? 언제 왔어?
-두세시간 전에. 나 지금 카오산 가는 중이거든? 조금만 기다려~!
-응, 빨리 와.
불과 보름 전까지만 해도 아는 사람 아무도 없고 낯설었던 이 곳에...
지금은 나를 기다려주는 친구들이 있다.
밥 안먹어도 배부르고 가득 채운 쌀독보다 든든하다.
카오산 로드는 마치 어제 갔다 오늘 온 것처럼 여전하다.
-헤이, 칵테일 한 잔 하고 가. 여기 칵테일 끝내줘.
-응, 좀 이따 다시 올께. 나 지금 바빠서...
곧장 미우 일행이 있는 스타벅스 쪽으로 갔다.
저만치서 미우가 보인다.
-미우~~~~~~!!!!!!!!!!!
미우가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든다.
있는 힘껏 달려가 미우를 껴안고 방방 뛰었다.
-미우, 미우~! 잘 있었어? 다시 봐서 너무 좋아. 보고싶었어.
미우는 활짝 웃으며 자기도 그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바스가 웃으며 서 있다.
-바스! 짜식, 잘 있었냐? 일루와!
바스를 껴안고 볼에 키스를 했다.
그랬더니 바스의 얼굴이 새빨개지며 몸 둘 바를 몰라한다. ㅋㅋ 귀여운 녀석!
-오, 레오나. 너 피부색이 우리랑 같아졌어.
저쪽에서 리와 보이가 나를 알아보고 다가와서 말했다.
-하하...그러냐? 어때? 섹시하지?
-으음...하얀게 더 좋은데;;
-야, 일부러 이렇게 태닝한거라구.
-음...글쎄...;; 등에 껍질 다 벗겨졌는데?
-아...그건 내가 썬크림 바르는 걸 깜빡해서...ㅋ 어쨌든 일루와봐. 맥주나 한 잔 하자.
바로 옆에 있는 펍-우리가 처음 갔었던-에서 맥주를 마시며 디카 사진과 함께 여행담을 털어놓았다.
친구들은 눈을 말똥말똥 뜨고 경청하고 있다. 헤에...이런것도 했네? 이런것도 먹었네? 이러면서.
-피피 너무 좋은거 있지...너네 피피 가봤어?
다들 고개를 젓는다.
-우린 방콕말고 다른데 가 본 적 없어.
이건 뭐...서울 토박이 남산 안 가본 꼴이다.
-가깝잖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잖아.
-응...올해는 우리도 휴가 내서 바다 보러 가보려고.
-그래. 꼭 가봐.
한참 또 수다를 떨고 있는데 바스가 헤나 샘플 책자를 불쑥 내민다.
-??
-레오나, 여기서 하나 골라. 너 돌아온 기념으로 내가 공짜 헤나 해줄께.
-와, 정말? 음...뭘로 하지? .....이거!
-에이...이거 전에 했잖아. 다른걸로 골라봐.
-아니야...난 이게 좋아. 대신 이번엔 다른 메시지를 넣을거야.
-그래. 여기다 적어줘.
바스가 헤나를 새기며 물었다.
-Seize the day.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Cause...
-??
-We are f*****g special, buddy!
-이것은 나의 연애 이야기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