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28일 여행 65일째
룸 메이트 중의 한명인 독일분이 나를 보더니 매우 놀랬다. 맙소사...나는 5시에 잠자리에 들어가 아침 9시에 일어나 버린 것이다. 방안에는 어제 클럽에 함께 했던 한국분 한 분과 다른 클럽에서 엄마뻘되는 아줌마와 놀았다던 그 캐나다 청년, 그리고 G군이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모두 나와 비슷한 시간대에 부엌에서 얘기 나누다가 잠든 사람들... 그치만 나는 무슨 강철 인간인 양 말똥말똥 눈을 떠버렸던 것이다. 뭐랄까... 아침이 상쾌했다. 기분좋은 일이 있으면 아침에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기분, 그런 느낌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방에서 꽹과리라도 치면서 "WAKE UP!" 을 외치고 싶었다. ....물론 꽹과리가 없어서 실현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살짝 그의 침대 쪽으로 가서.. 까치발을 들어 자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혹시나 내가 어제 데낄라썬라이즈 한잔에 나도모르게 꼴딱 취해서 두 눈에 콩껍데기가 휘릭하고 씌워졌던게 아닌가 의심이 들어서였다. 근데..다행이다. 자고있는 모습이 왠지 귀여워보이는게...취하지는 않았었나 보다. (이래뵈도 한때는 꽤 주당이었다--;;)
너무 정신이 말똥하게 들어서 다시 잠들기는 글렀다 싶으니...씻고 상쾌한 거리산책이나 잠시 하다 와야겠다. 밤의 번화가와 아침의 번화가는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며, 어제의 느낌과 오늘의 공기는 내 기분따라 카멜레온처럼 변해 있을 것이다. 어디가서 아점이라도 먹고 오면, 그때쯤에는 G군이 일어나겠지~ 슬금슬금 번화가를 걷는다. 아침의 신선한 공기와 출근 하는 사람들의 비장하리만치 상쾌한 표정이 기분을 좋게 한다만- ..........여전히 춥구려. 아무래도 웃도리 하나를 장만해주셔야겠다. 아...이거참, 예상치 못한 지출 목록 하나 늘어나겠군....끌끌 다행히 번화가인지라...여기저기 기웃기웃대며, 어느 가게에 가서 개시 손님이 되어줄까 고민해본다. 밝히지만, 난 그닥 쇼핑을 좋아라하는 편이 아닌지라...쇼핑 시작 20여분만에 지루해져버렸다. 뭐 특이하고 이쁜게 있다면 모를까, 이것 뭐, 대부분의 옷들이 한국 명동에서 흔하게 볼 법한 것들밖에 없어서리... 에이씽, 추운데 대충 사야겠다 하고 적당히 저렴한 옷가게에 가서 가디건 하나를 찜한 뒤, 돈을 뽑기 위해 은행에 가려는데- 아뿔사...은행 카드를...G군한테 줘버렸다-_-; 어젯밤에 이런저런 장난치면서 숙소로 돌아오다가, G군이 숙소 열쇠를 가지고 장난을 쳤으며... 나는 이내 응수하며 나 좀 들여보내달라고 현금카드를 줘버린게다 -_-; 뭐 그런 어이없는 짓을-_-;; 나 어제 술한잔에 취했나보다. 혹은 기분에 취했던가--;;
뭐, 신용카드도 아니고 돈도 별루 없는지라 크게 걱정은 안된다만, 여하간 G군이 깨어날때까지 나는 추위에 발발 떨어야하는 구나. 오호..그걸 핑계로 숙소 들가자마자 깨워야지. 랄라~ 갑자기 깨울 핑계를 찾은 나의 잔머리에, 쓰다듬어주고 싶을 만큼 대견함을 느꼈다. ㅎㅎㅎ
그래도 일단 아점먹으러 여까지 나왔으니, 오랜만에 여유로운 브런치를 즐겨줄까!? (사실 여행 내내 언제나 여유로웠다!) 오랜만에 스타벅스에 들어간다...그저께도 갔으니 그닥 오랜만은 아니다만... 대만에선 오랜만이자너!? 커피한잔과 와플 셋 하나를 시키고 어제의 설렘을 일기장에 담아본다. 일기 쓰면서...혼자서 키득키득.. 아침부터 저 여자애가 실성했나 싶었을꺼다.
(G군을 기다리며 찍은 사진 - 사진의 날짜는 잘못된 거야요)
지금쯤은 G군이 일어났을까~!? 랄라~ 콧노내를 부르며 정오쯤 되어 숙소에 들어갔다. 여전히 침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울 숙소 남정네 3인방. 캐나다인은 낮에 일어나는 걸 아무도 보지 못하였다니까 그러려니 하고... 한군 아해는 부스스 일어날 기미가 보인다. G군 옆으로 다가갔다. "Lazy boy! Wake up!!!" 애교 섞인 한 마디로 깨우는 나를 보며 부스스 눈을 떠 미소짓는 그 아이... 쫌만 더 자겠단다--; 아...나 할일 없는뎅. 그냥 혼자 나가서 놀까???
아니 근데, 혼자 나가 노는 것도 이상해 보일 것만 같다. 어제 그렇게 같이 놀아놓고 일어나보니까 혼자 관광나가고 없다? 그거 이상하자너-_-;
어쩌지? 어쩌지? 하며 고민고민을 하다가... 괜스레 벽에 걸린 타이뻬이 관광 책자나 들썩들썩이며 할일없이 시간을 보냈다. 음...여기저기 설명된 관광 명소들 중에 Fine Art Museum 이 눈에 띄었다. 아..아시아에서 젤로 큰 거라니... 낼은 여기나 가봐야지...
낼 새벽, G군은 일본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아무리 오늘 같이 다닌다 하더라도...내일은 나 혼자 이 곳을 돌아다녀야 했던 것이다. 그는 지금 캘리포냐에 살고 있지만, 잠시 친척 방문을 위해 일본에 간다는 것이다. 아...그 아이가 일본에 살면 좋을텐데~
한참 멍 때리며 기다리니 부스스 그가 일어난다. 나의 놀라운 체력에 감탄하며 그도 외출 준비를 시작한다. 나...당신때매 긴장해서 눈뜬 거거든??
점심 때가 훨 지난 시간이기에, 그와 나..그리고 룸메이트 독일분 이렇게..셋이 일단 밥을 먹으러 나왔다. 시먼띵 지역을 한바퀴, 두바퀴 돌면서 뭘 먹을까 심하게 고민한다. 전혀 다른 대륙의 전혀 다른 나라에서 온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세 사람이 만났으니, 메뉴 정하는 것도 상당히 만만치가 않았다. 계속 거리 배회만 대략 1시간--; 돌아다니는 중간에, 약장수 스러운 거리 품바 아저씨와 우옷 내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든 훤칠 남도 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하나가 더 위로 솟아 있으며, 윤기나는 피부 때깔과 골격을 자랑하는데다가...모두들 달려들어 싸인 받으려 아수라장이 된 걸 보니...심하게 유명한 연예인인가 보다. 나도 호기심에 후닥후닥 뛰어 달려들었으나... .........앞모습을 보지 못했다. -_-;; 난 역시 이 동네 청소년들한테도 치이고 밀리는 존재였던 것이다. 제발...나 밟지만 말아줘--;
(사실 이 아저씨 정체는 모르겠다.)
(그의 정체는 몰라도 상관 없을 만큼 멋진 외모~* 였을 것이다...... 앞모습을 못봤다-_-)
대충 한 시간 여가 흐르자 지친 우리는 근처에 살짝 우람해 보이는 가게에 들가기로 했다. 그 곳은, 주 메뉴는 딤섬이며, 상당히 고가를 자랑하는... 그니까 선 볼때 오는 쭝국집이었다 -_-; 뭐 어때 셋이서 또이또이 하믄 대자너?
어제 클럽 갈 때 그랬다. 우리 무리는 한국인이 4명 일본인이 한명, 서양인 2명 이었는데... 어딜가든, 무엇을 하든.... 모든 사람들이 서양인을 제치고 동양인 얼굴을 가진 우리에게 말을 걸곤 했다. 주문도 우리를 보며, 설명도 우리를 보며, 찌라시도 우리를 보며 광동어로 찌엥찌엥...했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일제히 파란눈의 장신 독일 오라버니를 쳐다본다. 그러면 그는 외모와 절대 어울리지 않는 유창한 광동어로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우리에게 영어로 통역을 해준다. 그 상황이 겪어보면 얼마나 웃긴지 모른다. 중국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 우리가 멀뚱멀뚱 오매불망 서양 오빠만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 여지없이 이번 식당에서도 그랬다. 그 모습이 하도 웃겨서...나는 그 광경을 동영상으로 찍기까지 했다... 정말 우리 독일 오빠가...광동어를 할때는, 그 안어울림으로 인해 어찌나 재미있는지...
(동영상 캡쳐 : 직원과 대화를 나누는 독일분과, 통역을 기다리고 있는 G군 외모상 심하게 교수님 포스를 가지고 계시는 독일분은 놀랍게도 절대적으로 "오빠"나이였다...-_-;; ...................첨엔 못 믿었다--;)
(딤섬집에 걸린 대만오리... 이런거 보면 채식하고 싶은 맘이 솟구쳐 오른다 -_-)
앵간큼 비싼 점심을 먹고, 독일 분은 숙소로 돌아가고...(그는 여행자는 아니었다) 나와 G군은 일단 지하철을 탔다. 낼 떠나야하는 그는 스린 야시장에 가고 싶어했고...나는...그냥 별 생각 없이 따라 탔다. 그가 "어디가고 싶니?" 라고 물어서 "미술관" 이라고 대답은 했으나, "우리 어디갈까?" 라고 묻지 않은게 영 신경이 쓰인다. ....같이 가는거야? 각자 갈 길을 가는거야?? 아...평소 같으면 이렁거 신경도 안쓰고 그냥 내 갈길을 갈텐데... 이 아이한테는 요런 뉘앙스 하나 가지고도 신경을 쓰는구나. 나답지 않다! 기어코 못 참고 말했다. "나..니가 나랑 같이 같음 좋겠어!"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던 그 아이 "...당연한거 아냐? "
(날아오는 뱅기 사진을 찍고자 미술관 앞에서 몇 분동안 하늘만 주시한 G군)
그렇게 아시아에서 젤로 크다는 미술관에 갔다. 마침 다행히 스린 야시장 가는 중간에 있었고, 찾아가는데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둘이서 전시관 하나하나의 그림을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갑자기 G군이 수첩을 꺼내더니..어렵게 어렵게 한국말을 한다.
"당신의 신발 싸이즈는 얼마 입니까?"
......-_-?
내 신발싸이즈를 정말 말해줘야하는 걸까-_-?? 미국에 많은 한국인 친구가 있는 G군이 한 아이로 부터 배운 한국말이란다. 가장 이상한 질문을 갈쳐달라는 G군의 부탁에...그 친구가 갈쳐준 질문. 흠...성공했다. 저 질문 정말 이상하다. 신발가게 직원이 아닌이상 절대 쓸일 없는 질문...--;
이에 질세라 나도 내가 아는 일본말을 다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소개부터...인사까지... 거기에 결정타로
"와따시와 비진 데쑈~!?" (나...미인이죠?) .... 갑자기 입을 다무는 G군. .....
이 후에 이 질문, 새로 룸메이트가 된 일본 아해에게도 써먹었드랬다. ...그리고 그 역시 입을 다물었댔드랬다. 일본인과 있을때 혹시 그가 너무 수다스런 사람이라면, 이 질문을 한번 써먹어보시라. 효과 만점이다...--; 물론 나는 G군에게서 침묵을 기대한건 아니었지만...ㅎㅎㅎ
전시물을든 상당히 내 스타일이었다. 현대 미술 중에서도 특히 마그리뜨의 그림을 매우 좋아라 하는 나는, 그림들이 그의 화풍과 흡사함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G군 G군, 이거 마그리뜨 그림하고 비슷하지? 장르가 초현실 주의 아닐까?" G군이 말없이 벽을 가리킨다. ....거진말 하나 안보태고 초등학교 교무실 벽을 두개 합친 듯한 벽면 한 가득 [초현실주의 작가전!] 이렇게 써 있었다-_-;; 전시는 5시까지 관람이 가능했었다. 그러나 우리가 늑장부려 점심을 먹고 도착한 시간은 대략 4시 고작 한시간 동안 둘러보기엔 흥미로운 그림들이 꽤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5시에 나가야하니... 어쩔 수 없이 낼 또 와야겠다는 다짐을 뒤로하고 나와야만 했다.
그리곤 쓰린 야시장으로 향했다. 이전 방문에서 나는 야시장을 들렀었으나, 뭐 상관없었다. 뭘하든 좋았다. ㅎㅎ 그는 그의 누나님을 드릴 옷가지를 하나 사고 싶어했고...나는 별 생각이 없었으나... 너무 추워서 가디건 하나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다. 더구나 내가 너무 추워하자 G군이 겉옷을 벗어주는 바람에... 그에게 미안해져서 더욱 빨리 사야겠다는 조급한 마음마저 생겨버렸다.
...생판 모르는 누나님의 선물을 골라주기란 쉽지 않다. 나는 겨우 내 옷만 재빠르게 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굴전 및 오징어 스프...(쉣입니다.)등등을 주서먹었다. 그는 항목을 바꿨다. 우롱차를 사기로. 그래 대만은...우롱차가 유명하지. 이제는 차를 파는 곳을 열씨미 찾아다녀야했다.
아...다시한번 심하게 느끼지만, 대만은 정말 지지리도 영어가 안통하는 곳이다. 까페에서 커피 한잔 하면서 차 파는데 아냐구 물으니 직원이 당황하며 딴 사람을 부른다. 그리고 그 딴사람에게 다시 질문을 하면 그는 이 까페에서 차를 판다고 엉성하게 대답한다. 아니아니 말구 찻잎 파는데 아냐고 물으면... 그도 갑자기 나 영어 못해 모드로 태도를 돌변하기 다반사였던 것이다. 아...답답해 답답해.
아무리 한참을 찾아도 차를 파는 곳을 도저히 찾지 못하자... 이내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숙소 근처에 까르푸가 있으니, 정 안되면 까르푸라도 들려 볼 셈산이었던 것이다. 결국 스린 야시장은... 내 가디건 사러 간 셈이 되어버렸다. 어쩐지 G군에게 미안한 마음이 솟구쳐 오르는 순간이다.
뭐랄까.. 떠나기 전날 누군가랑 같이 다니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이미 겪어보지 않았던가? 부디...G군이... 특별히 계획한 일이 없었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오는 초 저녁. 근데....으잉? 이게 뭐야. 숙소 바로 앞에 차를 그램으로 떠서 파는 찻 가게가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상당히 오래된 분위기가 운치도 운치거니와, 장인 정신마저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곳 할머니가 매우매우 느리기 때문에 성격 급한 사람에게는 비추-_-)
우롱차 한 아름을 사들고 숙소에 들어왔다. 어쩐지 벌써 들어오기가 싫었지만... 그는 내일 새벽에 떠나야하는 몸. 짐을 싸야만 하는 것이다. 6개월째 여행을 하고 있는 그는...굉장히 많은 짐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가방 하나는...정말 과장 하나 없이, 내가 통째로 들어갈 만큼 큰 푸대 자루였다. 일본에서 방문할 친척들을 주기 위해 인도에서 산 스카프가 한 아름, 향신료들이 한 보따리, 여기저기서 산 찻잎이 또 한 뭉치..... 그는 에티오피아, 인도, 태국 주변 등을 돌아다녔는데... 얘기하다보니, 나와 비슷한 시점에 나랑 비슷한 루트로 태국 캄보디아 말레샤등지를 여행하고 있었더랬다. 아아아...왜 우린 이제서야 만난 겐가요!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이던가요!?
짐이 너무 많아 숙소 복도에 일렬로 짐을 풀어 놓고 차곡차곡 정리를 하고 있는 G군. 나는 부엌으로 와서, J양이 떠난 자리에 새로온 룸메이트와 인사를 하고 사람들과 수다를 떨었다. 특히 이곳에 새로온 한 영국인은... 일본의 여자칭구를 만나기위해..일본으로 가는 길이었단다. 직업을 새로 얻고, 그녀와 새 삶을 하기 위해... 하여...일본에 대해 이것저것 얘기하다가, 새로온 일본 친구에게...그 한마디를 날렸던 것이었던 게다.
"나...미인이지요?" 그거....-_-;;
....근데 도대체 이 말을 나는 어서 배운 걸까?
(일본인, 한국인, 영국인 등...즐거운 다국적 수다)
그의 짐싸는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림에...나는 너무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같이 앉아서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별루...없는데...ㅡ.ㅜ 그치만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인터넷도 하고 수다도 떨고, 책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끝나지 않는 그의 짐싸기... 에라 모르겠다. 하고 방으로 들어와 일기를 쓰며 잘 준비를 하고 있었더랬다.
자정이 넘은 시간... 짐을 다 싼 그가 방으로 슬며시 들어왔다. 그리고...아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내 침대 앞 바닥에 주저 앉았다. (나는 1층을 쓰고 있었음)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 농담도 하고, 일상적인 대화도 하고, 서로의 이멜도 교환하고, 서로에 대해 묻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다른 사람들은 자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매우 작은 소리로 속삭여야만 했다. 그치만...그 순간... 그렇게 사람들 몰래 속삭이는 시간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영어로 토론할때 그렇게 가끔씩 턱턱 막히던 영어도... 이때는 너무 자연스럽게 나온 것만 같다. 살짝 어두운 스탠드 불빛 하나 켜놓고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이는 시간...
이 순간은... 그 어떤 순간보다 로맨틱한 시간이었다. 일분 일초가 너무나 소중했다.
(에로적인 상황은 전혀 없었음-_-)
새벽에 나서기 위해...아쉽지만 우린 2시경 각자 잠이 들어야만 했다. 혹시나...내가 일어나게 된다면, 그의 얼굴을 한번 더 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얼굴...가슴 깊이 새기며...잠들어야 한다. 그래...어쩌면 앞으로 일평생 못 만날지도 모른다. 운이 좋아...계속 연락이 닿을지도 모르지만... 한국에 돌아가는 순간, 그가 일본에 도착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까맣게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감사했다. 이런 인연으로 내게 소중한 추억을 안겨준 이번 여행이 ... 참으로 고마웠다.
그리고 덕분에, 타이페이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모른다. ^^
내일 하루는 이곳에 더 머물며, 혼자 남은 외로움과 그리움을 이겨내야 한다. 뭐할까...어디갈까... 고민하며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그치만, 지금은 어쩐지 아무 생각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져...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기만 할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