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차원 소심녀 ☆ 67일 혼자 여행하기 - 64일째 로맨스
후훗 내친김에 또 하나 씁니다...
ㅜ.ㅜ 이제 막바지예요.
2008년 2월 27일 여행 64일째
그 아이... 느낌이 참 좋다.
아니, 사실...심장이 두근거리는게 멈추지 않는 것만 같다.
누군가를 만나고, 설레는 감정을 가지는게 이런거였구나...
실로 오랜만에 느껴지는 가슴 떨림... 늦은 시간 임에도 잠이 오지 않을 것만 같다.
비포 썬라이즈 라는 영화를 잼있게 본 사람이면 누구나 여행 중의 로맨스를 꿈 꾼다.
여행은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다른 마음 가짐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에 로맨스에 대한 기대는 더욱 더 크다.
그러나 실제로 살짝 시니컬한 성격을 지닌데다가, 하필 영화라는 직종에서 일을 하였다보니..영화는 영화일뿐 착각하지 말자 라는 현실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해 온 나였다..
특히, 에단 호크 같은 남자는... 로맨스는 커녕 지나다가라도 스칠 확률 제로라고 생각했다.
이 아이는... 에단 호크 만큼 화려하고 잘생기진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나와 느낌이 통하는 데가 있었고, 하필 우연찮게 여러 공통점을 가졌기에 남다른 관심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이 아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
지금 나와 그 아이는 새벽 4시에........같은 공간에서.......
...........
한국영화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다 -_-;;
이 무슨 로맨스 깨지는 시궁창 밥 말아 먹는 시츄에이션인가 하지만...
분명 내게 로맨스는 다가왔다...
분명히...
설령 그게 너무나 일시적일 지도 모른다 하더라도...
방콕을 뜰 때 까지만 해도...기분이 묘했다.
이렇게 익숙한 공간을 떠야 한다는거..절대 인정할 수, 실감할 수 없었다.
떠나면...낼 모레 다시 그 곳에 닿아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맡겨 뒀던 짐까지 합쳐...다시금 22kg의 가방을 어깨에 매는 순간, 현실이 내 어깨에 와 닿았다.
아...이 여행이 끝나기도 하는구나...
마침 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거리를 적시는 비를 보며, 하늘도 내가 떠남을 슬퍼하는 구나 했다.
누군가는 떠나고...누군가는 돌아오는 거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떠나는 자가 된 것만 같다...
친구님을 남겨놓은건 그리 걱정되진 않았다.
특히나 어제 만난 Y군이 있어서 더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하필 떠나는 날 비가 내리니...괜스레 내 맘이 먹구름 낀 듯 갑갑했었다.
아니 었던 것이다.
언제나 내게 따사로운 햇살만을 주던 하늘이, 내게 작은 선물을 주는 것이었던 것 같다.
아니면...어떻게든 앞날을 축복하는 의미로서 평소와는 조금 다른 표현을 한 것이었게다.
(가위로 싹뚝...앞머리를 짤랐다...
잘려진 앞머리의 길이만큼.. 내 자신이 좀 더 자라났길 바란다.)
다시 한번 오늘 하루를 정리해 본다.
나는...저 아이에 대한 얘기를 먼저 들었고...
몇 분 뒤 도미토리에 들어오는 저 아이를 만났고...
저 아이와 인사를 나누며 웃었고...
저 아이가 귀엽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곤...
거절을 못해...다 같이 나가는 길에 따라 나섰고...
사람 많은 그 곳에서 따로 놀다가...
같이...대화를 나눴고...
서로 느낌이 통했고...
잠시 둘이 거닐었다...
다시 그리곤...
두 손 꼬옥 잡고 숙소로 돌아와...
부엌에서 맥주를 마시며...대화를 나눴고...
서로 쳐다보며 웃었고...
다시 웃으며...토론도 했고 .....-_-;;
그리곤...
각자의 침대로 돌아가...
지금 두근 거리는 심장을 기쁜 마음으로 잠시 달래보고 있다.
공항에서 잠시 문제가 있었다.
살짝 늦게 도착한 나는 일분 일초가 급했었는데...
전화로 두번이나 미룬 나의 비행기 티켓이 예약이 되어 있지 않던 것이었다.
다행히 예약증을 가지고 있어서...들이밀고 잠시 기다렸다.
사실...재촉하지도 않았다.
오늘 못가면, 담에 가면 되지 뭐.
그럼 다시 카오산으로 돌아갈까?
어쩌면 내심...오늘 빈 좌석이 없다고 하길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태국 에바에어 직원님들께선 20여분 만에 좌석을 마련해 주셨고,
나는 들입다 뛰어서 30여분만에 출국 심사를 마쳤다.
이미 보딩은 시작하였지만, 어쩐지 아쉬운 마음에...면세 구역은 조금 천천히 걸어보았다.
날짜를 기약할 수 없는 약속을 해야한다.
나...다시 올께...언제든...나를 반겨줘야해!
벌써부터, 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 그리울 것만 같아.....
(공항에서 가장 태국적인걸 찍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선택된건...팟타이와 똠양꿍...)
(그 사진을 보며 배가 고파 허겁지겁 싹싹비운 기내식... 그치만 저 햄색깔 국수는 정말 퐈~다...--;)
인연이란거...
내 여행에 마무리가 이렇게 심장떨리는 근사한 인연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가슴 아파하며 시작한 여행이었다.
상처받고 결심한 여행이었다.
그래서..이런 설레임 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렇게 크게 심장이 뛰는 소리를 언제 들어봤나 싶어서, 새삼 살아있음을 느낀다.
저 아이와의 만남은이번 여행의 어떤 미련도 아쉬움도 잠재울 수 있는 완벽한 마무리이자,
한국에 돌아가 멋진 삶을 시작라는 훌륭한 격려인 듯 하다.
여행자로서, 국적이 다른 사람들로서,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로서...
다음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어쩔 수 없지만, 그것때문에 지금의 설레임과 호감까지 막고 싶지는 않다.
오늘의 순간순간을 다시금 떠올리니...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오른다.
이번 타이뻬이 방문은..처음이 아니기에 어쩐지 자신만만했다.
숙소를 예약하지도 않았고, 그다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음에도, 나는 어쩐지 내가 가야할 길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여유와 자신감에.. 밖이 어두워졌음에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지멘 지역은 지난번 방문 때 까르푸에 들르며 잠시 지났던 곳이다.
관광청 자료에서는 이 곳이 한국의 명동 같은 곳이라 했으나, 그 땐 쇼핑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잠시 스쳐지났을 뿐이었다.
그런데 들리는 정보에는 숙소들도 많이 있단다. 게다가 기차역과 한 정거장 밖에 안되기에...
정 못구하면 기차역 쪽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쉽다.
어쩐지 오늘 밤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아.. 나도 저 아이도 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밖에 해가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이렇게 앉아서...계속 손잡고 웃으며 얘기나 나눴음 좋겠다.
그러나 새벽이 오는 기운이 느껴진다.
...특히... 우리방에 같이 묵는 클럽 광 캐나다 청년이 돌아오면, 이건 아침이 되었다는 증거란다.
...올 것이 왔다...
그가 돌아왔고, 샐러드를 씹으며 오늘의 클럽에 대해 얘기했고, 클럽에서 만난 어머니뻘 되는 아줌마에 대해 살짝 약먹은 듯한 발음으로 얘기를 시작했다.
숙소를 찾아 헤맨지 고작 30여분 만에
6인 도미토리에 구석 침대 한켠을 얻었다.
그리곤 같은 방의 룸메이트가 된 J양으로 부터 다른 룸메이트에 대한 얘기를 한 명 한 명 듣게 되었다.
그녀는 간호사 시험을 치르러 온 동갑 내기.. (분명 훌륭한 간호사가 되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한국인 동갑 내기 남아인 H군이 있고...
언제나 밤에 나가 아침에 들어오는 클럽 쟁이 이상한 캐나다 청년이 있으며,
중국말을 아주 유창하게 하시는 파란 눈의 키 큰 독일인이 한 분 계시며...
그리고...
바로 그 아이...일본인 동갑내기.. G군이 있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3살때 미국에 건너가 미국 국적을 가진 이 아이는.. 나와 같은 전공을 하고, 한국 영화에 대해 관심이 많아 수 많은 한국 영화를 섭렵한...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아이였다.
그 얘기 대화를 나눈 몇 분 후... 바로 그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방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저녁을 먹고 돌아왔고, 누군가는 외출을 한 후 돌아왔으며
그리고 그 아이는 샤워를 한 후 들어왔다.
남녀 공용 도미토리에서 아주 그냥 민망하게 웃통을 홀딱 벗은 채로 자연스럽게 들어와, J양과 나를 내심 깜짝 놀라게 만들면서...
간호사 시험에 합격한 J양을 축하하기 위해 늦은 시간에 모두 밖으로 나가 한잔 할꺼란다.
같이 가자고 G군이 웃으며 나를 조른다...
한국에서도 여럿이 모이는 술자리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기에
나는 잠시 망설여진다.
게다가 나는 이제 겨우 사람들과 눈인사만 한 처지였던 것이다.
"글쎄......"라는 애매한 대답을 남기고 잠시 거리 산책을 나섰다.
2월의 타이뻬이는 12월과 매우 달랐다.
그래도 12월에는 얇은 가디건 하나로 충분했는데-
지금은 이곳이 한겨울인지...도무지 추워서 나다닐 수가 없다.
J양이 추운 날씨를 우려하며 겉옷 하나를 빌려 줬음에도... 그걸로는 턱도 없었다.
흡사 명동과 같은 거리.
지멘...광동어로 시먼띵을 슬금슬금 탐색하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가뜩이나 추위에 약한데... 아무래도 태국 방문이후 더 약해진 것만 같다.
도저히 못견딜꺼 같은 매서운 바람이 부는 듯 하는데도...여긴 고작 15도 안팎이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나 이제 한국 가면 겨울에 어떻게 살아가나.
결국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곧 나갈꺼라는 무리들...
마땅히 거절할 핑계를 찾지 못해 따라나서기로 했다.
뭐...어때...맥주 한잔 정도 하고 오지 뭐... 이런 생각으로...
타이뻬이에는 Pub...그니까 호프집이 없단다.
밖에서 술을 먹고 싶다면 반드시 클럽에 가야 한단다.
근데 그걸... 입구에 다 가서야 알게 되었다.
나... 클럽에서 닐리리 놀고 뛰는거 좋아라 하지만, 도대체..이런 복장을 들여보내 주기나 하는 건지 걱정되었다.
이...다국적 모임에서 나때매 뺀찌먹으면 곤란... 일행을 보니...그닥 걱정 안해도 될것같다. 모두 여행자들이니...복장상태 뻔하지 않겠는가!
J양과 나는 남자들의 절반도 안되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클럽안에는 사람이 너무너무 많아서 정말 옴짝 달싹 하기가 힘든데다가, 음료를 받기 위해서는 기나긴 줄을 버텨야만 한다.
뭐...줄서며, 춤 추고, 그러면서 즐기고 그러는 거지.....생각한다.
옷과 카메라 등등을 J양이 앉은 (그녀는 절대로 술도 춤도 하지 않았다) 테이블에 놓고...클럽안을 돌아다녀보았다.
이번 여행에서 클럽이 두번째였으나, 그 분위기는 완전히 너무 달랐다.
뭐랄까...
호프집이 없다는 얘기를 들어서 였을까?
마치...타이페이의 모든 젊은이들이 이곳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카오산 클럽에서 공공연히 행해지던 '나몰라라 옆사람 때려 댄스' 따위는 꿈도 꿀수 없었다.
사람들 인파 사이사이로 파고들어 지나다니기도 힘들었던 것이다.
힘겹게 저 멀치감치 자리를 잡아 안정을 취하고 있는데
G군이 다가와...알콜 한잔 하자 하였다... 컵 주면 자신이 받아다 준다고...
여긴 무한리필이 가능하나, 한번 받는데 노력과 시간이 좀 소요되기에.. 마침 잘 됐다 하며 안마셔도 받아두기로 했다.
그걸 계기로...
우린 그 좁은 클럽 사람들 틈바구니를 같이 비비고 다녔고...
몇몇 일행이 피곤해 숙소에 먼저 들어올때 까지도 그렇게 함께 있었다.
내 카메라와 여권등을 J양이 숙소로 갖고 갔다는 사실을 꺠닫고는 G군과 나도 들어갈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클럽에 올때는 중국말이 유창한 독일 청년이 계셨드랬다.
......G군과 나는 지독히도 영어가 안통하는 타이페이에서.. 우리 숙소의 위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겨우겨우 근처까지 와서 한참을 걸어들어와야 했다.
그와 함께 걷는 길...
우리는 클럽에서보다 더 많이 웃었고,
더 많은 대화를 했으며...
더 많이 서로를 쳐다봤더랬다.
어느덧 새벽 5시가 되어버렸다...
혀 꼬불라지는 캐나다 청년을 부엌에 두고, 우리는 아쉽지만...우리의 자리로 가기로 한다.
각자의 자리에 불을 켜고... 못내 아쉬운 얼굴로 인사를 나눈다.
아쉽지만...피곤하다...
피곤하지만... 잠이 잘 올것 같진 않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설레임에 마음이 따뜻해진 기분이다.
환하게 웃으며 굿 나잇을 속삭인다...
갑자기 대만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나의 계획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지금 이순간 드는 생각은...
내일... 같이 다닐 수 있을까...
내일... 어떤 하루가 펼쳐질까...
이것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