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차원 소심녀 ☆ 67일 혼자 여행하기 - 63일째 방콕하루
2008년 2월 26일 여행 63일째
늘 그렇다.
빨리 가고 싶을때는 차 막히고, 신호 걸리고, 운전사 느긋하여 3~4시간 오바하길 밥먹듯이 하면서... 꼭 이럴때는 누구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예상보다 꼭 2~3시간씩 일찍 도착해주시더라.
30분 마다 일어나서 고인 물을 닦아 내야 했던 버스에서...고인 물이 거진 사라져 겨우 잠들만 했던 새벽4시... 우리는 예상보다 너무 일찍 에까마이 터미널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아직 어둠이 내려 앉아 있는 새벽...
졸린 눈을 가까스로 비비고 아직 정신 못차린 채로 떠밀리 듯 버스에서 내려오니... 오늘은 새벽 공기의 상쾌함 보다는...아...뭐 이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카오산으로 도착한 것도 아니고, 터미널로 왔는데...우리보고 어디가라고 이렇게 악셀을 밟고 온 것이여???
화장실에 가서 고양이 세수를 하며 눈꼽을 띠고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처럼 새벽에 도착한 많은 이들이, 그러나 우리와는 달리 아주 바쁘게 각자의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웬 봉고차들을 타고 어디로든 가는데-
물어볼 외국인이 단 한명도 눈에 띄지 않아, 어떻게 가야할 지 한참을 서서 고민을 했다.
대략 30분여가 흐르고...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수 만은 없기에 택시 기사들을 붙들고 쇼부를 치기 시작했다.
카오산까지 부른 가격은 250~300밧.
이 돈이면 공항에서도 오겠다 싶어 미터기로 가자고 조르고 조른다.
우리를 유인하시던 한 전문 삐끼 아저씨가 ... 미터기로는 더 많이 나온다고 엄포를 놓으면 예의 그..."그러시던가~" 멘트를 날린다.
......
나 이제 저 멘트에 속지 않는다구~
그렇게 미터기 약속을 받고 택시는 출발을 했다. 지금 시각 대략 4시 45분...
택시가 부릉 하며 시동을 거는 순간,
카오산 가는 버스의 첫 차가 터미널 안으로 들어오는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_-;
아...진짜. 이러기야???
내릴까 말까 대략 30초 동안 고민을 했지만, 미터기 운운하며 실갱이를 벌인 뒤라... 이제와서 내린다고 하면 아저씨가 우릴 가만두지 않을 것만 같았다.....
소심함에 깨갱하며...택시타고 카오산으로 향한다.
이 맘때 즈음엔 나의 물가 개념에 살짝 적응 하신 칭구님도... 30초 동안 같이 고민을 해주셨더랬다.
미터기 킨 총알 택시는 달리고 달려 120밧에 카오산에 당도했다. 시간은 대략 5시...
전날의 파티의 흔적들이 을씨년스럽게 휘날리는 카오산 새벽.
청소부 아저씨들은 비질을 하며 오늘도 분명 궁시렁 대고 계시고,
경찰 아저씨들은 일렬 종대로 서서 오늘도 카오산의 범죄를 근절...아니 정신 나간 외국인들을 구제하자 다짐을 하고 계셨다.
문 닫힌 상점들, 아직 술이 덜깬 사람들, 아직도 맥주 한병 들고 댕기는 넋 나간 젊은이...
그리고 그 어둠에 불을 환하게 밝히고 우리에게 손짓하는 24시간 맥도날드~
아...카오산에 왔구나.
이런 휑한 시각에 마저도 편안한 불빛이 꺼지지 않는... 그 카오산에 왔구나...!
(새벽 5시 경의 카오산...)
(오늘도 술취해 쌈박질 하는 외국인 집중 근절하자구...가 아니라...언제나 계단에 앉지 말라 주의만 주시는 경찰아저씨들...경찰 아닌가??)
(절대로 안판다는 오토바이들. 칭구님에 의하면 매우 비싼거라는...)
(여행 60일 동안 그렇게 오가면서 꼭 같이 사진 찍고 싶었던 맥아저씨...싸왓디 카...)
맥도날드에 앉아 해가 뜨기를 기다린다.
햐...근데 그 새벽부터 햄버거를 뜯고 있는 분들이 꽤 되시는구나...
고기도, 콜라도 별루 안좋아하는 나는 아침 메뉴가 시작될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지루하기 짝이없다.
아...그나저나 이빨닦구 싶다. ㅜ.ㅜ 내 입에서 노린내 나는 거 같어 ...
대충 7시쯤 되자, 불친절함이 묘하게 중독성이 있는 그 곳. 람부뜨리 빌리지로 향했다.
로비에 앉아서 누구 첵 아웃 하는 사람 없나~ 서성거리다가... 1시간여 만에 다행히 싱글룸 두개를 잡을 수 있었다.
여기는 그게 매력이야. 나가는 사람 붙들고 그 방 저 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이쯤 되니까..언니들의 썩소가 이뻐보이기까지 한다.
얼릉 씻고 집을 나섰다.
내일 방콕을 떠나야 하는 나는...오늘 하루 아주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그 동안 지지리 궁상으로 아끼며 살아왔던 날들에 마침표를 찍으며 각종 기념품 덩어리들을 한아름 장만할 계획이며, 살짝 무리를 해서라도 짐톰슨 실크 하우스 한판 들려주실 꺼고...결정적으로 이곳을 다음 올때까지 가슴에 담아두려면 여기저기를 두 눈에 꼭꼭 넣어두어야 한다.
오늘 하루는 먹는 시간도 아깝다. 바쁘게 날아다녀볼까 한다.
이게 몇 달을 기다린 쇼핑시간인데...ㅡ.ㅜ;;;
단단히 각오한 터라...칭구님을 데리고 댕겨도 될까 심하게 걱정을 해보지만...
방콕 들어온 다음날 남부로 내려갔다온 사람을...혼자 버려둘 순 없었다.
첫번째 코스는 나라야.
접때 H언니 한국 들갈때 나라야 쇼핑하면서 찜해논 기저귀 가방을 사서 새로 태어날 조카를 위해 선물을 해야만 한다. 이번엔 지난번 갔던 매장이 아닌 수쿰빗 매장으로 가 본다. 어쩐지 뭔가 더 새로운게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나라야 수쿰빗 매장에는...팟퐁 매장보다 물건을 적었지만, 내가 찜해놨던 것 보다 더 멋진 기저귀 가방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방의 한쪽을 펼치면 짜잔 즉석 기저귀갈이 담요가 되는 획기적인 아이템!
이 폭신하고 귀여우며 실용적이면서도 기발한 가방이 단돈 380밧~ (찜해논 ..우유통 들가는 가방보다 비싸다) 후훗, 돌아가면 배가 남산만해져 있을 새언니님께 선물로 당첨!
그 밖에도 각종 가방들을 마구마구 질러 넣기 시작했다.
흠...안경집도 필요할 꺼 같고, 보조 가방도 필요할 꺼 같고, 파우치도 필요하고, 휴지가방도 필요하고..이건 누구주고 저건 누구주고...등등...
하지만...여행가서 산 물건들이 대부분 그렇듯...- 내가 쓴다고 산 물건들은 지금 책상 옆 구석탱이에 얌전하게 포장도 안 벗으신채로 차곡차곡 쌓여계신다-_-;; 아...말이 나와서 말인데... 엄마 못보게 감춰둬야겠다. 도대체 왜 안경집은 모냥별로 3개나 산 걸까-_-;
평소에 쇼핑을 안하는 자는...절대 급하게 뭔가를 사면 안된다는 교훈을 얻는다....--;;
나라야에 가서 기저귀 가방을 보며 흐뭇해하는 순간...칭구님이 다가와 같은가방 두개를 자신의 장바구니에 넣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이건 누구꺼 이건 누구꺼 누구꺼 누구꺼 누구꺼 누구꺼...하며 거진 나의 두배 되는 물건을 나보다 2배 빨리 질러버리시더라.
그리곤 내가 고민하는 동안 슬슬 동네 산책을 하고 돌아오셨더랬다...
돌아와서 하는 말이... 이 거리는 뭐 볼게 없단다.
......
어쨌든 둘다 큼지막한 나라야 비닐봉다리를 하나씩 들고 덜레덜레 가는 길.
흠...내심 재미 없어하는 것 같아 신경쓰이는 마음으로 씨암에 가자 청했다.
씨암에서 특별히 사려고 생각해 둔 건 없지만, 그래도 명색이 젤로 번화간데...씨암가면 나도 살게 보일꺼고, 칭구님도 살짝 흥미로워하지 않을까?
근데, 사건 발생.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휴~ 그냥 쇼핑을 혼자 나올껄...하고 딴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때릉때릉 자전거 경적을 울리며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경비 아저씬지 경찰인지 구분이 잘 안가는 복장을 하고 있었으나...갑자기 대뜸 경찰 신분증을 내미는 것이다.
겨..경찰...흠....나...경찰 무서워!!! 우리가 뭐 잘못했어???
뭐랄까, 왜 그렁거 있지않나...죄진건 없어서 제복입은 사람 보면 덜컥 겁을 내는 그런 마음..
공항 검색대에서 이유없이 심장이 뛰고, 스튜어디스가 노려보기만 해도 괜스레 스스로 안전벨트를 매며, 경찰을 보면 이상하게 도망가고 싶은 그 마음...
나...그거 좀 심하다.
그가 주먹에서 뭔가를 보여주며...뭐라뭐라 한다.
그것은 아주 좀 전에 칭구님께서 피다 버린 담배 꽁초...
아.........바닥에 버렸다고 그러능겨???
지금까지 열씨미 쓰레기통에 버려왔단다. 근데 딱 증말 첨으로 바닥에 버렸는데- 하필 그게 관공서 앞이었나보다... 이 아저씬 초소에서 몰래 지켜보다가 이때다 하고 달려오신게고...
뭐라뭐라 계속 뭐라하신다.
영어를 잘 못하는 칭구님은 놀랜 눈으로 "What? What?" 을 연신 외치고 있었고,
나는 순간 완전 얼어버려서 망부석이 되어 있었다--;;
말이 안통하는 듯 하자...아저씨가 따라오란다.
칭구님은 황당해 하는 얼굴로, 나는 만화책에서 얼굴에 빗금 그어진...딱 그 표정으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무조건 잘못했다 그래...무조건 잘못했다 그래!!!'
가면서...겨우 정신 차리고 속닥여본다.
초소...(그니까 방범초소임) 에서 경고문을 보여준다.
이 건물 앞에서 꽁초 및 쓰레기를 버리면 최고 2000밧 까지 벌금을 내야 한다는 경고문!
켁...이..이천밧!?
아저씨는 이내...다른 사람이 벌금내고 서명한 싸인들을 보여주면서... 벌금으로 1000밧을 내라고 한다.
첨엔 당당하게 "야, 뭐래는 거냐??" 하던 칭구님도...
이제..."I'm sorry..."모드로 바뀌었다.
자꾸 미안하다 다신 안그러겠다는 말만 하자,아저씨가 경찰서 가서 2000밧 낼래? 하고 겁을 주신다.
"저기.....그냥 내야댈꺼 같아...ㅜ.ㅜ"
하여 눈물을 머금고...1000밧을 내며 조서를 썼다.
조서라 하면...그냥 이름 국적..싸인 정도...
근데 칭구님. 국적에 순간 Japan 이라고 쓰시는게 아닌가?
.......좀 재패니즈 같이 생기긴 했다. 하고 댕기는 모냥새도 딱 그러하여 삐끼들로 부터 헬로우보다 곤니찌와를 더 많이 들어왔다.
근데 Japan이라고 쓰는 순간, 아저씨...갑자기 다른 경고문을 보여준다.
.....일본말로 된 경고문 -_-;;
2000 숫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벌금 맥시멈이 2000밧이라고 거듭 강조하신다.
갑자기 사색이 된 칭구님
"야야...뭐라는 거야???" 라고 한국말로...것도 크은 소리로 물으시는게 아닌가.
나는 내심 그래도 일본이라고 쓴게 찔려서...고개를 돌려 복화술로 속삭였다.
"잘못하면 이천밧이래-_-;;;"
"아~ 난 또 일본이라고 거짓말한거 걸려서 이천밧 내라는 줄 알았지!"
......그래놓고 계속 한국말을 한다. --;;
그리고...영수증은 기념(?)으로 챙기고...
내 참나 별 경험을 다 한다고, 여까지 와서 딱찌를 끊냐?? 하며...
한편으로는 웃기지만, 한편으로는 증말 심장이 콩알만해 졌다.
그리고 더욱 내 심장을 콩알만하게 만든건... 칭구님이었다.
행여나 기분이 상했을까봐, 행여나 짜증이 났을까봐, 행여나..1000밧이 머릿속에서 빙빙 돌까봐,
나는 칭구님보다 더욱 놀랜 얼굴을 하고, 더욱 눈치를 보고, 얼굴이 더욱 사색이 되어버렸다.
"괜찮아, 이런 경험도 하는거지 뭐. 근데 나 진짜 맨날 쓰레기통에 버렸었거든-_-??"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친구님.
일본 핑계를 댄건...일본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이 전혀 없는 내게는 개인적으로 살짝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그들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한은... 국가적인 적개심은 살짝 드러내도 좋다고 생각한다..........
................핑계도 갖가지다. ㅎㅎ
그래도 소심한 나는...괜스레 눈치보며... 기분전환으로 스시 수끼 부풰에 가자 조른다.
씨암 센터에 있는 회전 초밥 수끼 부풰집...
단돈 256밧에 1시간 15분 동안 스시와 수끼를 맘껏 먹을 수 있는 곳.
더 놀랜척, 더 맛있는 척 오바하며 먹어본다. 일부러 이것 저것 음식을 갔다가 더 발랄한 척을 해 본다.
근데...나보다 스시를 더 좋아하는 칭구님이 맛이없는지 어쩐지...영 시덥잖은 반응에,
심지어 가끔씩 멍까지 때리고 있어서....먹는 내내 영 신경이 쓰여버렸다.
어쩐지 그리하여 나까지 depressed!
게다가 오늘 하루가, 방콕 시내를 돌아다닐 수 있는 마지막 하루가.....계속 지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것이다!!
씨암 센터를 나와, 칭구님이 사고 싶은게 있다기에...우린 헤쳐모여를 하기로 한다.
일단 칭구님이 원하는 걸 살 수 있는 곳을 알려주고...
나는 반대편인 짐톰슨 실크를 보러가기로 했다.
지금 시각 3시. 한 시간 반 뒤에...내가 칭구님 계신 곳으로 가기로 하고...
중간에서 만나자 하고 싶었지만, 길도 모르는 사람 어찌 부르겠냐 싶어..가겠다 약속 한 뒤, 실크를 보러 갔다.
짐톰슨 실크...
내 비록 태국에 오기 전까지는 짐 톰슨 아저씨 이름의 J도 몰랐지만...
이게 그렇게 유명하다고 여기저기서 들려 오기에 하나 사볼까 했다.
아무래도 종목으로는 아빠 남방이 적당할 듯 싶은데-
아...이건 아무래도 울 아빠가 소화해 내시기 힘든 너무 패셔너블한 패턴들만 가득하다.
연세가 드실수록 화려한게 좋아지신다는데...괜찮지 않을까? 라고 애써 생각해보아도,
내 눈에도 안차는 걸 10만원의 돈을 주고 살 수가 없었다.
정말 한참을 망설이고 고민고민한 끝에...그냥 돌아나설 수 밖에 없었다.
도저히 울 아빠 취향이 아니었다.
그리곤 그럼 딴걸 사야하겠는데...
아..4시가 넘었다. 어쩌지 어쩌지...4시 반까지 수쿰빗 가는 길의 Home Pro 매장으로 가지 않으면 서로 연락할 방법이 없다.
백화점 건물에 들어가면 최소 30분 이상은 걸릴텐데...
아...안되겠다 일단 친구님을 만나야지.
버스를 타고 5정거장 정도 가면 Home pro plus라고..뭐랄까 공구라던가, 가정 용품 같은거 파는 매장이었다. 인테리어를 잠시 하고 계시는 칭구님께서 한국에서 없는 문 손잡이가 필요하시다기에 동네 철물점 가서 물어 물어 알아낸 매장이었다.
건물 앞에 도착하니 약속시간 10분 전...
앉아서 기다려본다.
째깍째깍...
시간이 계속 흐르는데 코빼기도 안보인다.
계산대가 밀렸나-_-?
째깍째깍...
약속시간보다 20여분이 더 흘렀다.
뭐야 시간 까묵은겨???
째깍째깍...
안되겠다. 들어가봐야지.
들어가서 건물 가드 아저씨들을 붙들고 물어본다..
아저씨 아저씨... 저기 이따만한 노란색 비닐 봉다리 들고 있는 사람 못 봤어요?
...영어가 안통한다.
........이 건물에서 그 누구도 영어를 못한다.
째깍째깍...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와서 두리번거린다.
혹시 내가 들간사이에 길이 엇갈린건 아닐까?
높은 곳에서 보면 잘 보일까 싶어서 다리위에도 올라가본다.
.....역시 코빼기도 안보인다.
째깍째깍...
30여분이 지났다.
헉. 뭐야. 지금 어쩌라는 거야??
약속 장소를 딴데로 얘기했나??
혹시 우리가 헤어진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건 아닐까?
아...택시타고 빨리 씨암으로 가볼까???
째깍째깍...
10여분이 더 흘렀다...
이젠 머리가 아프고... 살짝 있던 감기 기운이 두통으로 인해 더 심해진 것 같다.
건물 문앞의 약국에 가서 항생제를 사왔다.
째깍째깍...
항생제에 쓰인 설명서를 열씨미 읽고 있었다...
헌데! 누가 후닥후닥 뛰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허.......45분만에...
뒤돌아보지 않아도 누가 뛰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정신이 있는거야? 지금??
"어딜 그렇게 뛰어가시나~!?"
사색이 된 얼굴의 칭구님.
내 앞으로 오자마자 헥헥 거리면서 버스를 반대로 타서 카오산까지 갔다 왔음을, 오는 길에 택시가 길을 잘못들어서 내리고 딴 택시를 타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왔음을... 행여나 내가 화낼까봐 인지... 쉼표도 없이 다닥다닥 변명하기 시작했다.
"알았으니까..물건이나 사오셔--;;"
같이 들어갔다 가자구, 10분만에 사겠다구...쪼른다.
"싫거든? 빨리 갔다 오셔--;;"
내 무표정을 읽었는지... 빨리 갔다오마 하고 약속에 약속을 거듭하며 헐레벌떡 뛰어들어간다.
........화낼 수가 없었다.
솔직히 오늘 내가 계획한게 많이 틀어져서, 더군다나 나는 오늘 밖에 시간이 없었기에 하고싶은 것만 해도 아까운 시간이었는데..... 정말 무진장 화가 났으나,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물론 표정은 굳어있었을지 모르나, 뭐 진짜 이럴꺼야? 어쩔꺼야? 이러기야? 하며 큰소리를 내자니...
카오산으로 돌아갔다온 칭구님 역시 얼마나 노심초사 했을까 싶어 ... 애써 참아야했다...
.....근데 속으로 삭히려다 보니 더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다 -_-;
문고리를 사들고 나오자마자 카오산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 익숙한 방콕에서, 것도 마지막 날에.. 이런 다사 다난을 겪고 보니 피곤이 화악 밀려온다.
(( 버스 안에서 굳은 표정으로 졸다가 찍힌 사진이 있으나...너무 사람이 우스워보여, 기껏 지금까지 쌓은 이미지 (어떤 이미지?) 망칠까봐 차마 못올리겠다 ㅜ.ㅜ ))
숙소로 돌아와 나라야 노란 뭉탱이를 던져 놓고...다시 헤쳤다가 저녁에 만나기로 한다.
나는...일단 못 다 산 기념품을 사야만 했고, 그리고 살짝 달아올랐던 열을 식히기 위해서는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칭구님도 그걸 알기에, 살짝 흩어지기로 한다.
이것저것 돌아다니며 급하게 급하게 최소한 필요한 선물만 사러 종종거리고 있는데-
꺄악 이게 누구야!?!!?
방금 자메이카에서 갓 상경한 듯한 모습으로 탈바꿈한
Y군을 만난 것이다!!!
꺄악...이게 무슨일이야. 웬일이니 웬일이니~!?
꼬창에다 그를 두고 온지 대략 열흘 만인거 같다.
그 뒤 전혀 소식을 모르던 터에... 꺄아...우연히 만나다니!!
사실, 태국을 여행하면서 카오산에서 부딪힌다는건 아주아주 흔하디 흔한 우연, 아니 우연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누구나 머물고, 누구나 거쳐가는 만남의 광장이자 여행자의 집결소 같은 곳이 아니던가?
근데 막상 이렇게 지나다가 만나니까 그렇게 방가울 수가 없었다.
고작 3일 같이 지낸 사이지만...마치 3년만에 만난 것 처럼 방갑고 웃음이 나왔다.
여행자들끼리의 만남은 이런 의외의 친숙함이 쉽게 느껴져서 좋다.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곤니찌와~"인사를 시작한 Y군...흠 일본보다는 남미가 더 가까운거 같은데...흠...)
이미 기분은 다 풀렸다.
칭구님과 Y군 나...이렇게 셋이 모여 카오산 노천에 앉아 맥주 일잔을 했다.
사람들을 보며, 카오산의 분위기를 온 몸으로 담으며...
이렇게 나는 방콕에서의 마지막 밤을 친구들과 보내기로 한다.
에이 까짓거...기념품 좀 못샀으면 어떠랴...정 안되면 대만에서 사면 되자나.
방콕에서는 마지막 밤이지만, 나의 긴 대장정은 아직 끝이 아니다.
내일은 여행을 시작했던 타이뻬이로 돌아간다.....이동에 대한 설레임도 있지만...
사실, 아쉬움이 너무 크기에...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 싶은 맘이 간절하다.
(끝까지 칭구님을 공개하지 않는 건... 공개하면 어쩐지 크게 혼날꺼 같아서 입니다...^^;;)
난 오늘 이 거리의 일상적인 분위기만으로도 이 밤을 가슴 깊이 기억 할 수 있었다.
무질서 하지만 그 어느 곳 보다 흥미로운 독특함이 있는 곳...
지저분 하지만 그 어느 곳 보다 아름다운 젊음이 있는 곳...
내 기억속에 카오산은...
떠올리면 이젠 가슴이 아리는 전율이 올 만큼 그리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그냥 거리에 서 있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
붙잡고 싶은 밤...
안녕, 언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