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태국 여행기 - 2.19 시엠리업으로
제 여행기 제목은 '한 달간의 태국 여행기' 이지만 사실 그 한달의 중간에는 4박의 캄보디아 여행기도 꼽사리껴있습니다. 이걸 빼야하나, 캄보디아 게시판에 따로 올려야하나 삼박 사일동안 고민을 했는데, 중간에 자르기가 애매하여 그냥 같이 태국 게시판에 올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죄송해요 언능 캄보디아 여행기 후딱 써버리고 태국 여행기 올릴게요 ^^
------------------------------------------------------------------------------------------------
새벽 두 시 반 경 수완나품 공항 도착. 여행 계획을 짜며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하면 공항 바닥에 입을 맞추겠어!" "푸미폰 국왕님 사진 앞에서 백팔배 좀 올리겠다능!" "'나 울어도 못 본 척 해줘!" 같은 얘기를 수도없이 했던 우리였는데, 어쩐지 담담하기만 하더라. 엥, 얼마나 고대하던 여행인데? 이렇게 흥분 안 되면 안되는데? 설마 여행 끝까지 계속 이러는 거 아니겠지 싶어 걱정마저 들 정도였다.
캄보디아의 시엠리업으로 육로 이동하기 위해 방콕 북부터미널로 가는 택시를 잡았다. 어디 가냐고 묻는 공항의 택시 잡아주는 직원들에게 "콘쏭 머칫마이"라고 했더니 다들 무슨 양키와도 같은 과장된 제스쳐로 "우호호~" 웃으며 "오올~ 콘쏭 머칫마이!"라고 소리를 지르더니 옆에 앉아있던 동료들에게도 '얘 좀 봐!'라는 제스쳐를 취하며 "오~호호~ 콘쏭 머칫마이!"라고 하며 다같이 웃는다. 뭐 잘못 말했나...-_- 싶었는데 그냥 외국인이 태국어 하는게 신기했던 모양이다. 아니 근데, 외국인들이 수도 없이 들락거리는 공항에서 북부 터미널같은 간단한 단어 얘기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단 말이냐!
아무튼 너무 웃어서 좀 그랬지만 친절하긴 했던 그들이 잡아주는 택시를 타고 북부터미널로 고고. 택시를 탄 후 기사분께 "콘쏭 머칫마이"라고 했는데, 이 아저씨마저 "오호호~ 콘쏭 머칫마이"하고 양키 스타일로 오버하며 웃어주신다. 대체 뭐가 웃긴겁니까?
허나 웃음이 끝이 아니었다. 이 아저씨, 내가 태국어를 할 줄 아는줄로 생각하셨는지 태국어로 이런저런 얘기를 마구 던지시는데, 저... 태국어 전혀 모르거든요. 아는 태국어 단어 다 합쳐도 서른 개 될까말깐데...ㅠ_ㅠ "아하~" "이예스~" 로 간간이 대답을 하며 겨우 얼버무렸다. 휴.
북부 터미널 도착. 다섯시정도 되어야 첫 차가 출발하는데 아직 네 시 조금 넘은 시간이라 열리지 않은 창구도 많다.
크~ 낭창낭창한 오빠 발견! 사실 내가 태국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저 가늘고 유연한 태국 옵빠들의 몸매 때문이다.
조금 더 기다리자 창구가 열리고 국경도시 아란야쁘라텟(이하 '아란') 행 표를 팔기 시작한다. 아란행 버스는 파란색 2등 버스 한 종류뿐인데, 장거리 이동이 아닌 이상 아주 무난하고 좋은 버스이다.
이렇게 간단하지만 간식도 주고 말이지. 냉방은 VIP버스와 차이가 없이 잘 된다.
버스가 출발하고 서서히 해가 떠오르며 창 밖에 비치기 시작한 소박한 생활의 모습들.
지난 여행에서는 방콕과 파타야만 들렀었기에 도심지 구경만 실컷 하다 왔는데, 아란행 버스를 타고 본 태국의 모습은 그 때 내가 보았던 곳과는 사뭇 달랐다. 외진 곳이라 사람이 많이 살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생활의 터전이 드문드문하게나마 죽 이어져있는 걸 보니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도로 부근에 한산하게 늘어서있는 작은 구멍가게들, 식당들, 동이 튼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며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학교 갈 준비를 하는 교복 입은 예쁜 꼬맹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니 내 마음에도 활기가 생겼다. 이때부터 비로소 여행을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더라.
그리고 방콕에서 아란 가는 길에는 도로 주변에 목조, 혹은 도예 공방같은 곳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이 쪽이 혹시 그런 걸로 유명한 곳인지?
아무튼 네 시간 조금 안 되게 달려 드디어 국경에 도착을 했다. 80밧에 뚝뚝 한 대를 대절해서 캄보디아 비자 받는 곳까지 이동했다. 에누리를 시도해볼까 생각했는데, 80밧이 정가라고 터미널에 붙은 가격표 팻말을 보여주더라.
뚝뚝을 타고 캄보디아 국경이 인접한 쪽에서 내리니, 웬 야외 테이블 같은 곳으로 우리를 안내하며, 여기서 비자를 받아야한단다. 응? 비자를 공식적인 건물이 아닌 이런 곳에서 발급한다고? 지난 태국 여행에서 바가지란 바가지는 다 쓰고 다녔던 국제 호구였던 나,(그나마 사기는 안 당했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절대 그 짓 안 하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기때문에, 일단 경계하는 태세로 여기 오피셜 맞냐고 물었다. 국경 공무원으로 추정되는 청년 왈, 맞단다. 그리고 비자 피는 1000밧이란다. 무슨 소리야? 20달러인거 다 알고 왔는데? 20달러가 아니냐고 묻자 무조건 1000밧이란다. 그것도 원래 1200밧인데 깎아주는 거라며, '비자피 1200밧'이라고 인쇄된 가이드북을 보여준다. -_- 이보세요. 그거 뻥인거 다 알거든요.
하지만 주변에 사무실같은것도 안 보이고, 우리 옆 테이블의 서양인들도 어찌할줄을 몰라 갈팡질팡하고있는 걸 보니, 독하게 먹었던 우리 마음도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어떡하지? 그냥 1000밧 내고 비자 받아?" "그럼 어떡해... 지금 달리 할 수 있는것도 없는 것 같은데..." 흑. 우린 그게 공식 가격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눈물을 머금고 1000밧에 비자를 받기로 합의를 했다.
입국신청서와 간단한 비자 신청 서류를 작성한 후, 직원(인지 아닌지 알게 뭐냐만) 한 명이 서류와 여권을 수거해서 어디론가 가져가고, 다른 직원 한 명이 캄보디아 관광지 사진이 붙어있는 두꺼운 노트를 펼치며 썰을 풀어대기 시작한다.
"이게 우리 나라 사진이예요."
응. 나도 알아.
" 한국 사람들이 우리 나라를 많이 도와줘요. 우리 나라가 가난하기 때문에요."
허거덩.
"외국인들은 우리 나라를 안 좋게 생각해요."
왜 그런 얘기를 나한테 하는거냐! 마음 약해지게!
그리고 우리 여권 가지고 간 직원, 왜이렇게 안 와? 이래저래 불안했던 나는 비자피 영수증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 직원, "날 못 믿어요?"라고 하며 조금 슬프게 웃는다. 뭐야. 또 미안해지잖아. 하지만 영수증을 주겠다고 몇 번이나 대답해놓고서, 결국 안 줬다는 거. 원래 안 주는거면 주겠다는 대답을 하지나 말 것이지! -_-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 직원이 우리의 여권에 캄보디아 비자를 붙여서 가지고 온다. 어디, 캄보디아 비자는 어떻게 생겼나 한번 보자... 하고 구경하고 있는데, 비자 아주 자~알 보이는 곳에 US 20달러라고 써있더라. 하하하. US달러 안 받는다더니? -_-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어쨌든 그들은 친절한 편이었고 안 그래도 아까 들은 '외국인들은 우리 나라 싫어해요.' '우린 가난해서 한국인들의 도움을 받고 살아요'같은 얘기들 때문에 그들을 나쁘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
허나... 비자를 받고나자 갑자기 그 직원들이랑 같이 있던 무리 중, 유니폼(으로 추정되는 옷)을 입지 않아 직원이 아닐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젊은 남자가 택시를 흥정하라고 말을 붙이는데, 와, 살벌 그 자체다. 40달러 정도가 적정가라고 알고 있었기에, 우리가 처음부터 40달러를 불렀는데, 그 남자가 바락바락 따지면서 "니가 가지고 있는 가이드북을 봐라. 60~70달러라고 분명히 써있을거다. 너희는 구두쇠다!" 라는 식으로 살벌하게 쏘아대더라. 무시무시한 흥정 끝에 결국 45달러로 낙찰. 휴. 캄보디아 가기도 전에 벌써 진 다 뺐다. 게다가 아까 그렇게 친절하던 여권 발급 직원들, 택시 기사(알고보니 기사가 아니라 그냥 삐끼였다만)가 언성 높이는 거 보고도 뒤에서 팔짱 끼고 싱글거리고 있더라. 뭐야. 아까 내가 오피셜 맞냐, 영수증 달라, 하면서 까다롭게 군거 미안해하고있었는데, 미안한 거 취소다!
기분이 상한 난 "택시비 영수증에다 '노 커미션'라고 써주세요!"라고 요구했다. 내가 얘기하면서도 설마 그렇게 해줄까 싶었는데, 그 무리 중 한 명이 능글맞게 웃으면서 진짜로 노 커미션이라고 써주긴 하더라-_- 그러면서 "내가 노 커미션이라고 써줬으니까, 1달러 팁 줘"라고 농담을 하는데, 아, 나 마음이 약한가봐ㅠ_ㅠ 그런 농담을 들으니까 또 엄청 미안해졌다.
하여튼 비자를 받고서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거쳐 버스를 잠깐 타기도 하면서 국경을 넘었다. 나중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얘기를 들어보니, 식당같은 곳에서도 비자 발급을 한다고 하던데, 그런거 보면 우리가 국경 직원이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들이 직원이 아닐수 있겠다 싶더라.
아무튼 캄보디아 국경으로 넘어가 드디어 흥정한 그 택시를 타게 됐는데, 오 마이갓, 택시 앞 창문 좀 보시라. 이, 이거 뭔가요;; 어쩌다 이렇게 깨져있는겨? 저기 저거 스카치 테이프로 붙여놓은 거 맞지? T_T
휴. 이거 혹시 막 달리다가 와장창 깨지는 건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을 품고 흙먼지 날리는 길을 달리며 시엠리업으로 향했다. 아란 가는 길에 보았던 것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남루한 가옥들, 그리고 비쩍 마른 소들과 트럭 타고 일하러 가는 인부들, 황량한 나무들을 스치며 붉은 토양의 흙길을 세 시간 여 달려 드디어 시엠리업에 도착했다.
얼추 시내로 들어온 것 같은데, 누가 우리 차를 막아서면서, 택시 기사가 시내 모든 곳을 다 아는 것은 아니므로 우리가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에 가려면 자기 뚝뚝을 타야한단다. 택시 기사가 아무 말 안 하고 익숙하게 그를 우리에게 연결해주는 것을 보며 아, 이거 미리 이렇게 연결을 해뒀구만, 하고 생각은 했지만 가격을 물어보니 흔쾌히 1달러만 달라고 하길래 기분 좋게 그의 뚝뚝을 타기로 했다.
물론 우리의 택시기사, 우리가 팁을 1달러 드리자, 세 명이니 3달러 내놓으라고 뻔뻔스러운 요구를 잊질 않으셨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아까 써 온 '노 커미션'종이를 들이밀며 그의 요구를 살포시 묵살했다.
택시기사와 바이바이 한 후 뚝뚝에 몸을 싣고 달리는데, 한 20초....도 안 와서 내리란다. 지금 장난해? 뭐? 택시기사가 지리를 모르니까 자기가 태워다주겠다고? 걸어서 한 1분 30초면 가는 거리를 몰라? -_- 후... 어쩐지 1달러만 부르더라!
나중에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분들과 얘기를 해보니,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당하는거란다. 1200밧 주고 비자 받으셨다는 분도 계신다. 헉. 우리는 1000밧에도 부들부들 떨었었는데 그나마 싸게 한거니. 허나 1200밧 내고 비자 받으신 분들도 택시비는 다 35달러 이하로 흥정하고 오셨다는 거! 우왕. 우린 역시 봉이었어. 뭐? 가이드북에 70달러라고 써있으니 펼쳐보라고? -_-+
게다가 시엠리업 가는 길, 비포장도로를 달리면서 자잘한 돌이 엄청 튀길래, 아- 이런 것때문에 차를 일부러 안 좋은 걸 몰고다니는구나하고 생각했던 우리. 웬걸, 시엡리업에서 태국 국경으로 가는 길에는 단돈 30달러에 엄청 깨끗하고 좋은 차 타고 갔다. 흑흑. 작년 여행 때 바가지로 한이 맺혀 이번에는 알뜰살뜰하게 잘 여행하자고 결의를 다졌던 우리. 여행 첫 날부터 이렇게 허무하게 목표 성취에 실패하는거샤? T_T 또 국제 호구 되는거샤? T_T
게다가 장시간의 이동으로 무릎이 매우 욱신욱신 아파온다. "야. 혹시 무릎 아픈 거, 나만 그러니?" 하고 박양, 이양 물어보자 그녀들, "어. 나도 그런데!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하고 맞장구를 친다. 하... 비행기 & 버스 & 택시 삼종세트를 쉬지않고 두루두루 이용해주시며 꼼짝도 못 하고 앉아만 있었으니 무릎이 아플수밖에. 장시간의 이동을 처음 해본 우리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다. 젊어서도 이렇게 힘든데, 나이 들어서 여행 다니려면 을매나 몸이 고달플꼬.
욱신거리는 무릎을 부여잡으며, "얘들아. 우리 나중엔 돈 많이 벌어서 비행기 타고 캄보디아 오자"라고 굳게 다짐을 했다.
숙소에 짐을 푼 후 잠깐의 휴식 후 저녁을 먹기위해 올드마켓 거리로 나가기로 했다. 오늘 저녁을 먹기로 한 곳은 안젤리나 졸리가 툼 레이더 촬영 할 때 들렀던 걸로 유명해진 '레드 피아노'.
나름 유명한 스타마트를 지나,
거리 구경도 하며 계속 걷는데, 윽, 아무리 걸어도 레드 피아노가 안 나온다. 그렇다. 내가 지도를 잘못 읽은 거였다 ㅠ_ㅠ 심각한 방향치 주제에 난척하며 인도한것이 화근이구나. 이 날 이후로 난 길을 찾을때에는 빠지기로 했다.
한참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박양의 조리 끈이 끊어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_-
박양,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다 신을 신은 상태로 발을 바닥에 딱 붙인 후 질질 끌며 걷기 시작하는데, 역시 이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시속 1m의 속도밖에 낼 수가 없없다ㅠ_ㅠ 이걸 어쩔까... 고민하다가 길바닥에 떨어진 플라스틱 끈 같은 걸 주워 발과 밑창을 칭칭 동여맸는데, 오래 가질 못했다. 묶을 게 없어서 지푸라기같은 것까지 주워서 묶을까 생각하기도...;; 결국 중간에 들른 수퍼에서 명찰 목걸이를 사서 임시조치를 취하고야 말았다. 명찰 끈을 발에 묶은 박양에게 "어때?"하고 묻자 날개를 단 것 같다 하더라.ㅋㅋ
우여곡절 끝에 올드마켓 거리 입성!
그리고 드디어 레드 피아노 발견! 우왕 ㅠ_ㅠ
우리가 주문한 건 스파게티 '레드피아노'와 스윗&사우어 포크, 그리고 이름 기억 안 나는 밥+고기메뉴.
주문할 땐 몰랐는데 여섯 시부터 여덟시까지는 해피아워 시간이라 아시안, 파스타 메뉴를 주문하면 탄산음료가 공짜라더라. 그래서 음료는 공짜로 먹었음둥!
가격은 4달러 내외로 캄보디아 물가치고는 그리 싼 편은 아니었지만, 맛이 꽤 괜찮았고 분위기도 좋아 하루에 한 끼는 이 곳에서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레드 피아노 벽에 붙어있었던 찡쪽. 몽환적으로 찍혔다. 참고로 많은 분들이 찡쪽을 싫어하시던데, 이 녀석 다른 양서류들과는 다르게 겁이 많아서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면 막 도망가고, 위생적으로도 문제 없는 걸로 알고있다. 아무튼 그래서 난 매우 귀여워한다.
식사를 마친 후 밖에 나와 노점에서 과일 주스도 마시고,
(과일을 넣긴 했는데 거의 '향'만 느껴졌을 뿐, 연유 맛이 지배적이었다. 역시 노점 과일주스의 지존은 태국!)
거리 구경 하다가 요런 귀여운 꼬맹이들도 만나고.
저 연두색 옷 입은 초 멋쟁이 꼬마(귀까지 뚫었다)가 파란 옷 입은 꼬마 머리를 묶어주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파란 옷 꼬마는 도망가려 안달하는 광경이었다. 이 님하가 멋을 모르시네! ㅋㅋ
이렇게 시엠리업에서의 첫 날이 저물어갔다.
이 날 고생을 했던 박양의 조리. 파란 게 바로 명찰 끈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