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1 [그래도 행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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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
눈을 뜨니 팔이 조금 욱씬거렸다.
사고 났었다는 걸 깜박했는지, 팔을 갑자기 움직이니, 너무 아팠다.
그래도 어제보다 나은 건, 붓기가 좀 가셨는지,
움직이기에 조금 무리가 있긴 했지만 괜찮았다.
대충 씻고,
로비로 내려 가보니, 오토바이 수리비가 나왔다.
4200밧 정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셨다.
항상 거래를 해오던 쪽이라서 절대 바가지는 씌우지 않는다고.
4200밧.
그렇게 계속 나름대로 돈을 미칠 듯이 아껴왔었는데,
이런 것으로 4200밧이 한 번에 나가니 가슴이 쓰라렸다.
그것보다 원래 오늘 가기로 한 트래킹도, 내일 빠이도..
이 사고 때문에 못 가게 되어서, 시간이 너무 아쉽고, 아까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어제 계산했던 13000밧이 약 7000밧으로 확 줄어버렸다.
죽어도 부모님께는 말씀드리기 싫었다.
분명 걱정 때문에 폐가 될 것 같아서...
삼촌에게 전화를 드렸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상하게 감정이 복받쳐서, 조금 울고 말았다.
어제 형들에게도 미안해서, 계속 눈물이 나왔다.
내가 다치고 내가 피해를 입는 건 괜찮은데,
남에게 까지 내 피해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다.
삼촌은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도 내 걱정 하지 말고, 부모님께는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내일 견적이 나오면 다시 연락하겠다고..
그리고 아래에서 아침으로 김치찌개를 먹고,
형들에게 괜찮냐고, 다독임을 받았다.
이래서는 눈물이 자꾸나서 뭘 먹을 수가 없었지만,
참았다.
그냥 꾸역꾸역 먹었다.
이제 앞으로의 여행 일정을 어떻게 해야 할 지가 고민이다.
걱정이다.
그저.
눈물이 앞선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들이 너무 아까웠다.
낮잠을 자다가,
몸을 안 움직여서 더 아픈 건 아닐까 해서,
조금 움직일까 하고, 여기저기를 다시 돌아다녔다.
반경은 2KM 정도.
한참을 걷다가 팔을 보니, 붓기가 많이 가라 앉아있었다.
왠지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계속해서 음악을 들으면서 걸었다.
넬, 에픽하이, 니요, 커몬, 엠플로, 클럽에잇, 클래지콰이.
해가 지고 있었다.
뭔가 또 다시 새로운 이미지들이 여럿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느낌이 너무 좋다.
내일 다가올 경찰서에서의 결판은 생각나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선, 형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잠에 들기로 했다.
국수를 먹었고.
약을 샀고.
짐을 꾸렸다.
형들과 했던 이야기는.
뭐든 네 결정이라는 거다.
여행은 결정을 배우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것이라는 것과.
그리고 내가 영화를 다시 찍을 수 있게끔 생각해주셨다.
3월 25일
아침에 일어나서 긴장을 했는지, 계속 줄담배를 피웠다.
오늘은 경찰서에 가서 결판을 내는 날이다.
경찰서로 가는 도중에 왜 그렇게 긴장이 되던지,
경찰서에 제 시각에 도착을 해서, 그 여자와 담당 경찰을 찾았으나,
그 여자는 도착하지 않았다.
조금 황당한 경우랄까..
다시 담배가 땡겨서,
경찰서 앞에서 담배를 피는데,
경찰관이 노려봤다.
알고 보니 노 스모킹.
서둘러 끄고 미안하다고 했더니, 웃어줬다.
큰일 날 뻔 했다;
시간이 지나도 그녀가 오지 않자,
여자에게 전화를 해봤더니 아직 자고 있었다.
겨우겨우 깨우고선, 빨리 오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했다.
그녀가 오는 도중에,
코리아하우스 사장님께서 이것저것 알아봐주시더니,
사장님께서 아시는 이민국 쪽 경찰이 알아봤더니,
그녀는 무면허 운전에 차 소유자가 아니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방방 뛰고, 무서워했나보다.
그녀가 오고 나서 이것저것 복잡해질 줄 알았는데,
친절하게도 경찰 분들이 그냥 너는 너 알아서 차 책임져라,
얘는 자기 오토바이 수리를 책임진단다.
그렇게 하라고 여자에게 말했더니,
아무 말 않다가, 알았다고 했다.
그녀는 일본인 남자친구와 함께였고, 차도 그의 소유였다.
보통은 정말 이런 외국인 사고가 늦게 끝난다고 하는데,
정말 여기저기서 도와준 덕분에 쉽게 끝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답례로 뭘 해드리긴 해드려야 할 텐데,
돈 같은 경우에는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고,
내가 부끄러워서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다음에 만약 한국인 여행자가 사고가 나면, 나와 똑같이
잘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래서 뭘 해드려야 할 까 싶어서, 아이스크림 케익을 사러갔다.
쇼핑몰을 들려서 아이스크림 케익을 사고, 그 분께 드렸더니,
아주 좋아하셨다.
그리고 오토바이 상점에는 피자를 돌렸다.
여행자보험을 위해 이것저것 서류를 떼었는데,
이게 잘 해결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모든 게 어쩌면 다 내 탓이기 때문에..
음주에..무면허에..헬멧도 안 썼었고..
하지만 다행이었던 건,
그 쪽 경찰에서 내게 대한 건 아무 것도 조사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숙소에 다시 돌아왔다.
너무 피곤했다.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니, 몸이 주저 앉았다.
아침에 모든 것이 끝났다.
정말 차 수리비 몇백만원 정도는 물 줄 알았는데..
여행을 다시 계속 하기 위해,
삼촌에게 돈을 부탁했다.
25만원 정도를 부탁 드렸는데,
그것가지고 되겠냐면서 50만원을 부쳐주셨다.
이것저것 사고 때문에 돈을 25만원 가까이 썼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 분들이 없었다면, 완전 바가지 썼을 순간이었다.
다신 남들에게 누를 끼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낮이 되었고, 할 일이 없어서 빈둥대고 있는데,
레게머리를 한 형이 할 일 없으면 자기랑 같이 걷자고 해서,
밖으로 나갔다.
저번 때와는 또 다른 풍경이다.
해가 오늘은 정말 참 예쁘게 떴는지, 계속 해질녘 같은 느낌을 주어서,
또 다른 느낌을 전해줬다.
여기서 다시 한번 느낀 건,
날씨가 다르고, 햇빛이 다르면,
같은 장소라도 정말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같이 걷다가, 누가 더 멋진 사진을 찍는지 배틀을 붙게 되었고,
아무래도 승자는 내가 아니었나싶다.
카메라 기종부터가 다르기도 했지만 서도...
사실 기종 핸디캡을 줬다면, 그 형이 더 잘 찍었을지도.
그렇게 돌아다니니 꿀꿀했던 기분이 정말 싹 날아가셨다.
다시 나는 헤헤 거리는 얼굴로 돌아와서,
여기저기를 신기한 듯 계속 둘러보고 있었다.
숙소에 다시 돌아오니,
온천(?)에 가자고 하신다.
치앙마이에 온천마을이 있는데, 노천 온천이 있다면서,
그래서 온천에 갈 준비를 했다.
갈아입을 옷이며, 수건이며, 온천욕을 즐기면서 먹을 무언가들 까지.
밤에 출발을 해서
나이트 바자에 들려서, 쏨땀과 까이(닭) 그리고 찰밥을 사고,
사모님의 차를 타서 이렇게 저렇게 가는데, 길이 얼마나 어두운지,
위험하기도 하고, 정말 무서웠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관광지가 아닌, 온천마을이었다.
주위는 아주 깜깜했고, 온천이 노천식으로 몇 군데가 종류별로 있었는데,
정말 물이 뜨거우면서도 기분 좋은 그런 물이었다.
하늘을 보니, 밤하늘이 또 그렇게 예쁜 태국은 처음이었다.
정말 별이 그렇게 많을 수가 없었던 게...
온천욕을 즐기다가, 조금 출출해져서,
아까 사온 쏨땀과 까이, 찰밥을 먹기 시작했다.
찰밥을 얇게 펴서 까이 조금과 쏨땀 조금을 올려먹었는데,
난 그 순간 정말,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였었던 것 같다.
그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건,
분명 온천욕을 즐기며 먹었던 탓도 있었던 것 같다.
뭐가 부족했는지, 캔맥주까지 함께하니,
무슨 신선이라도 된 것처럼 노곤노곤해졌다.
정말 행복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갔는데, 코끼리가 도로에서 사람에게 끌려다니고 있었다.
내 꿈이 끌려다니는 것만 같아서 슬펐다.
그래도 코끼리는 정말 내 로망인데...
온천욕 덕분인지, 몸이 한결 가벼워져서,
내일 트래킹을 가기로 하고, 예약을 했다.
아까 그런 생각을 해놓고, 코끼리를 타러간다니...휴..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가보다..그렇게 밤은 깊어만 갔고,
다시 나는 잠에 들었다.
정말 달콤한 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