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태국 여행기 - 빠이로 출발!
오늘은 정이 들대로 들었던 치앙마이를 떠나 빠이 가는 날. 빠뚜 타패쪽과 님만해민만 다녀서 잘 몰랐는데, 전 날 깐똑쇼 픽업차를 타고 치앙마이의 여기저기를 돌다보니, 안 가본 동네 중에도 예쁜 곳이 참 많구나 싶어 떠나기가 더 아쉬웠다. 나중에 꼭 다시 와야지 결심했지만, 그 '나중'이 1년 후가 될지, 5년 후가 될지, 10년 후가 될지 기약이 없으니 치앙마이가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미소네에서 마지막 아침을 먹고 아쉽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빠이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치앙마이 아케이드로 향했다.
빠이행 버스, 어떤 놈인지는 대충 들어 알고 있었는데, 우오... 이거... 생각보다 더 열악하다.
좁은 좌석에,
나무바닥...
게다가 에어콘이 없어서 문을 활짝 열고 달리는데, 의자의 방석 부분(?)이 고정되어있지 않고 버스가 움직이는 대로 똑같이 이리저리 움직여, 엉덩이에 힘을 주고 앉지 않으면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질 것 같았다. 게다가 하필 내 자리가 저 활짝 열린 문 바로 옆자리. 안그래도 독한 멀미약을 먹어 잠이 엄청나게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깜빡 잠들었다가 저 문 밖으로 떨어져 절벽 밑으로 구를까봐 걱정되어 잠을 쫓기 위해 안간힘을 다 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불편한 상태로 구비구비 산길을 세 시간 반 정도 달려 도착한 작은 산골마을 빠이. 산 속에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고립된 동네일줄은 몰랐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띄는 곳 아무데에나 들어가서 허기진 배를 달래기로 한다. 이 곳은 DUANG레스토랑. 게스트하우스와 식당을 겸업하는 곳. 당시 우리의 눈에 비친 빠이의 첫인상은 정말 영 아니올시다였다. 이 곳 두앙 레스토랑의 메뉴판에는 껌이 붙어있었으며, 빠이 읍내는 그렇게 시시하고 답답하고 좁아터져보일 수가 없었다.
'여기가 여행자의 쉼터라는 빠이 맞아?' '자연 경관이 그렇게 수려하다던데...?' 라는 의문이 계속해서 들 뿐. 이양 박양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그 때 나는 사실 '우리 다시 치앙마이로 갈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밥을 먹고 태사랑에서 호평을 받고있는 팜 하우스를 찾아가 방을 잡기로 했다. 헌데 팜 하우스에는 트리플룸이 없기에 더블 룸을 두 개 잡아야 한단다. 다른 게스트하우스도 두어개 들어가봤지만 역시 트리플 옵션은 없음. 에휴... 어쩔 수 없이 팜 하우스에 500밧을 주고 더블 룸을 두 개 잡기로 했다. 에누리를 시도해볼까 했으나 쉬고싶은 생각만이 간절했던 우리는 군소리 없이 체크인을 하고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침대로 쓰러져 푸푸 잠결에 빠져들었다.
세 시간쯤 자고 일어나 저녁도 먹을 겸 빠이 읍내 산책에 나선다. 고립된 왕 시골 동네이지만, 의외로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아트샵을 몇 군데 찾아볼 수 있는곳이 빠이이다. 이 곳의 아트샵들에서는 빠이라는 도시 자체에 영감을 받고 이를 하나의 브랜드화 하다시피하여 제작한 디자인 문구류, 악세사리, 의류들을 팔고있다.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그저그런 기념품이 아닌 오로지 빠이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별한 것들! 게다가 손수 그림을 그려 만든 수제품들도 값이 무척 싸서 부담없이 쇼핑할 수 있다.
아트샵이라해서 뭐 거창한 건 아니고, 이런 수수한 외관을 하고있다.
사바이디 갤러리.
엽서들은 대부분 빠이를 폴라로이드나 로모카메라로 찍어 편집한 것들이었다.
티셔츠도 오로지 빠이를 위해 디자인 된 것들이 많았다. 'Do nothing in Pai'라는 문구가 쓰여진 티셔츠가 무척 인상 깊었는데
이때까지는 그 문구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
소박한 외관의 갤러리. 우리가 갔을때에는 지키는 사람조차 없었다.^^;
한 면 가득 이렇게 폴라로이드 사진을 전시해놓기도 했고 사진이 크게 인쇄된 포스터가 걸려있기도 했는데, 판매용같지는 않았다. 사실 사고 싶은것도 그리 없긴 했지만 ^^;
음... 여기는 벽면 색이 예뻐서 찍어두긴 했는데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_-
빠이의 아트샵 중 가장 유명할듯한 '밋타이 아트샵'. 간판의 저 글자들은 벗겨진 것인지 원래 어런 디자인인 것인지?
바구니를 전등갓으로 쓸 생각을 하다니! 굿 아이디어다^^
밋타이 아트샵 밖에는 이렇게 테이블과 의자, 작고 예쁜 우체통(진짜 우체통이다!)과 자유롭게 찍을 수 있는 스탬프들이 있다. 나도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보낼 엽서를 여러 장 샀는데, 스탬프만 멋지게 팡팡 찍어대고 그냥 돌아왔다^^;; 밋타이 아트샵에서 우표도 판매하고 있으니 진짜로 엽서를 쓰실 분들은 꼭 우표까지 같이 사셔서 그 자리에서 바로 써서 우체통에 슉 넣어버리시길!
예쁜 스탬프가 많다. 오른쪽 재생지 봉투 위에 찍힌것들이 그 스탬프들. (잘 안 보이지만^^;;)
그리고 의자. 저 개... 맞아서 피눈물 흘리고 있는걸로 보인다 ㅜ_ㅜ
나무에 비치는 전등 빛의 어둑어둑한 질감이 예쁘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들어온 블랙 캐년 커피. 빠이에 이런 대형 체인 카페가 있는것이 썩 어울려보이지는 않았는데, 안 오면 후회할 뻔했다. 이 작은 카페에서 우리는 그 어떤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받아본 적 없는 엄청나게 친절한 서비스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삭발을 한 남자분, 중국계로 보이는 남자분, 이렇게 둘이서 홀서빙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중국계 남자분도 엄청 친절했지만 삭발하신 분은 가히 우리가 살면서 경험해본 사람 중 베스트라 칭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가 스프라이트를 주문하자 스프라이트는 없지만 그것과 거의 똑같은 세븐업이 있다며 세븐업이라는 음료가 어떻게 스프라이트와 비슷한 음료인지 우리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무척 상세한 설명을 하셨던 그 분, (우리도 세븐업 알아요~;;;) 음료, 음식 하나하나 서빙하면서도 행여나 실수할까 엄청 조심조심하시고 일일이 익스큐즈미를 하셨던 그 분, 빨대는 더 필요하지 않은지, 얼음을 더 가져다줘야하는지("It's free"라는 설명과 함께) 내내 미안할 정도로 신경써주셨던 그 분, 게다가 다 먹고 계산을 마친 후 여행의 총무 이양이 음식값을 여행 노트에 하나씩 옮겨적을 때 우리에게 계산기까지 가져다 주신 그 분!
너무나도 극진한 서비스에 팁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었지만 호텔도 아닌 곳에서 팁을 주는것이 영 이상하고, 준다해도 거절하실 것이 분명하여 그냥 그만두었다. 대신 다음 날도 또 오기로 결심! ^^
그리고 소화도 시킬 겸 빠이의 밤거리를 잠깐 산책했다. 작은 산동네이지만 많은 여행자가 몰리기에 그들을 수용하기 위한 바가 아주 많은 빠이. 특히 라이브 바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남루한 피씨방이 왠지 빠이스럽다.
폭스바겐 웨건을 개조한건지 겉모양만 비슷하게 꾸민건지, 아무튼 깜찍한 칵테일 바! 이건 왠지 카오산스럽기도 하다.
짧은 산책을 마치고 숙소 팜하우스로 돌아와 테라스에 가만히 앉아 밤하늘을 보며 음악을 듣고, 긴 일기를 써 보았다. 일기장에 한 자 한 자 이런저런 생각들을 적어나가며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 이런 시간을 마지막으로 가져본 것이 언제인지... 그동안 여행의 재미는 새로운 것들을 구경하고 경험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빠이에서는 이렇게 가만히 앉아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 또한 여행의 묘미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되었다. 빠이에 막 도착했을때의 실망스러웠던 첫인상은 어느새 싹 잊혀져버린 상태. ^^;
허나... 저렇게 멋진 척 구구절절 써 놨지만, 사실 이 날 하루는 친구들과 함께 고스톱으로 마무리했다는 거! 점당 1밧으로 쳤는데도 90밧이나 딴 나... 꾼이다, 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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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가 좀 늦었죠? 사실 제가 내일 1년 여정으로 호주로 떠난답니다. 그 준비에, 갑자기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까지 생겨 거기에 온 정신이 다 팔려있었던지라 이렇게 되었네요. 호주에서도 제 노트북을 가지고 인터넷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여건이 되려나 모르겠지만, 이왕 시작했으니 열심히 끝까지 써보겠노라 결심했습니다^^;; 재미는 없지만, 그래도 끝까지 다들 읽어주세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