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in Pai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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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 in Pai #4

sankt 1 994

9/5 늦은 밤.

이미 시켜놓은 피나콜라다 한 잔과 방금 산 따끈한 엽서,

여행 시작부터 제대로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있는 책 한 권을 들고

니키가 이끄는 자리로 향한다.

니키와 매건 이외 아일리쉬 걸 디아나, 또다른 걸,

스콧랜드 보이, 독일 보이(라오에서 말라리아에 걸렸었다며 비실대고 있었다)

이렇게 네 명이 더 있었다.

그들만의 이야기는 한창 무르익어가고 있었고,

한 동양인 여성이 그들 틈에 끼게 되자 그리 달가운 표정은 아닌듯 했다.

니키와 매컨은 Pai에 언제 왔냐, 어디 묵느냐 등 가벼운 질문을 한다.

모두에게 간단히 내 소개를 한 뒤, 내 잉글리쉬가 베리 푸어하니

난 신경쓰지 말고 하던 이야기 계속하라..고 말한 뒤,

그들의 화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귀기울였다.

6명의 외국인이 때론 공통의 화제를 때론 각각 2인씩 찢어져 화제를 바꾸어

이야기할 때 나는 고난도의 잉글리쉬 리스닝&스피킹 테스트를 치르는 것처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해하지 못할때도 이해할때도 적절한 고개끄덕임과 감탄사를 섞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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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모두 다른 국적이었지만 서로 소통하고 교환하는 데 영어는 주요한 수단이었다.

그래, 인정해야했다.

영어란 더 넓은 세상의 많은 이들과 더 많은 세상의 즐길거리를 찾아내

신나게 놀면서 소통하는 기쁨을 알게 해주는 수단이다.

오늘 저녁 파타이 레스토랑에서 아름다운 여직원과 나 사이에서도,

이 뽀리너들과의 만남에서도 서로를 열고 나누게 하는 문은 영어를 통해 열렸다.

Anyway, 6:1 의 대화는 어려웠지만

나, man to man에 강한 사람이라 자부한다.

니키와 매건 이외에 디아나는 특별히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

자기 친구가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많은 돈을 벌었고

지금은 태국에서 소일거리(유아 영어가르치기)를 하면서 즐기면서 살고있단다.

그녀는 '너는 영어를 곧잘 하는구나. 내가 듣기론 한국인은 영어 무지 힘들어한다더라.'

면서 내 영어실력을 은근히 칭찬하려는 듯 했다.

나는 일종의 점수를 얻고 좋은 대학과 직장을 들어가기 위한 영어교육이 한국인의

영어 스피킹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말했고,

그녀도 동감한다면서 자기도 학교에서 French를 문법과 독해위주로만 배워서

스피킹이 약하단다.

난 디아나의 매력적인 외모뿐만 아니라 그녀의 살아온 과정, 삶을 대하는 태도에 점차 흥미를 갖게 된다.

그것은 나와 너무나 비슷하게 자라온 환경(엄한 어머니, 여러명의 형제가 있는 삶 등)과

특히나 내가 한때 너무나 사랑했던 작가,

Dubliners The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ng Man James Joyce 생가에서

단 5분 거리에 그녀의 집이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독서를 탐닉하며 인터넷 상의 chat 보다는 직접적인 대화와 소통을 무척 중시하는

문학과 글쓰기를 사랑하는 Girl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한참 현대 미디어, 게임, 인터넷 등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이야기했다.

그리고..결국..

저 하늘의 별과 이 사람들, Bar에서 생동하는 저 live music의 아름다움을 경험한 우리는,

현실에 끝없는 경쟁에서 비롯되는 초조와 이기심으로 차갑게 마음이 식어버렸을 때마다

스스로를 따듯하게 덥힐 수 있는 추억거리가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Bar의 라이브밴드 공연은 비수기여서일까..

밤 10시 훨씬 넘어서야 시작되었다.

밴드 이름은 모르겠지만, 그 보컬의 영롱한 보이스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또 매혹적이어서 하마터면 감성에 빠져 눈물이 나올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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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de.

니키와 매건은 대학생으로 현재 졸업후 취업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예전에 나와 현재 그들의 모습을 관통하는 고민들을 나누다보니,

나름 그런 시기를 거쳐온 인생선배랍시고 한마디 건냈다.

'너의 자리는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중요한 건, 네가 그 일에 임하는 태도에 있다. 즐거울테면 즐겁고

고역이면 고역이겠지. 하지만 니키, 넌 아직 젊고 기회가 많다.(누구나 하는 소리)

네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봐라. 이렇게 세상을

떠도는 것도 너의 진정한 마음을 들여다볼 수있는 좋은 시기니 놓치지 말고 즐겨라.

지금만큼은 네 마음의 번잡함을 비집고 침입하는 무거운 고뇌와 강요들을 잊어라.'

20대 중반의 기로에서, 삶의 고단함과 고민을 남겨놓고 훌훌

떠나온 이들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결국 Carpe dium !

시계는 1시가 다 되어 가고 있다.

레게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매력적인 타이 여직원이,

미안하지만 이제 마칠 시간, 더 즐기려면 아래 비밥을 가세요.

우리는 마지막 Samsem(?, 태국 로컬 위스키. 달고 새콤) 한 버킷과

리오 맥주를 마저 들이키고 일어선다.

이들은 싱하보다 조금더 쓴 리오 맥주를 더 좋아했다. 줄곧, 리오 비어만을 외치더라.

거리로 나온 일행은 비밥을 향하지 않고 숙소로 향한다.

내일을 기약함이리라.

길거리를 지나 쎄봉일레봉 앞에 로띠 가게가 아직 문이 열려 있었다.

무슬림 남편과 매우 동양적 페이스의 아내.

뽀리너들은 로띠보다는 팬케익(돌돌 말아준다)를 더 선호한다.

나는 오늘도... 어제 그제 글피에 이어... 오밤중에 바나나로띠를 혼자 다 먹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니키는 두 팔을 쫙 펴고 열심히 영화를 찍으신다. ㅡ.ㅡ;;

그리고 내게 말한다. 너무 아름답지 않아. 넌 얼마만에 이런 느낌이니?

어...난... 글쎄.. 이렇게 아무 근심없이 비를 맞을 수 있던 건...기억도 안나. 피식.

그리고 각자 숙소로 Bye Bye

한 밤의 Pai는 적막하다.

무서울 정도로, 게다가 부슬부슬 비까지.

돌아오는 길,

인연이란 생각을 해본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이 나라, 이 동네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마주하게된

희박한 확률이 어쩌면 예정된 인연일 수 있겠더라.

이건 분명한 변화다,

그 이전에는 세상을 내 필터로 걸러 판단하고 분석하고, 남과 다른 것을 찾아내려 애쓰고 더 선호했었다

이제 제대로 더 많은 사람을 만나 그들과 공통의 관심사에도 진심으로 귀기울일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내 자신은 여행의 주체이며 주관자였지만..

점차 시간이 흐른 뒤, 여행은 생각지도 못하게,

내 지각의 속도를 훨씬 뛰어넘는 지혜로 나를 이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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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사멧 핫싸이캐우 비치, 6:00 am)

1 Comments
etranger 2008.09.16 14:38  
  자유로움속에 힐끗 철학이 보입니다. 여행이 주는 성숙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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