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표로 부터의 이탈 - 번외) 베드버그Bed bug or Bad bug와의 일전
첫째날, 2019년 5월11일 토요일
베트남 e-visa의 승인서가 금요일인 어제까지 오지 않았다.
승인서가 오면 바로 넘어갈려고 타랑을 떠나 락사오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주말에는 발급을 안하기 때문에 굳이 락사오에서 더 머물 필요가 없다.
더구나 50km만 가면 타랑이 있으니 다시 타랑으로 가야겠다.
자정 무렵, 몸이 따끔거린다.
모기약은 이미 살포했기 때문에 모기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혹시나 해서 베개를 들춰보니 몸집이 부풀어 오른 베드버그가 있다.
잡으니 선홍빛 피를 터뜨린다.
아직 몸의 반응은 없다.
그 새벽에 할 수 있는 일은,
노출된 짐을 꾸리고 방을 나와서 아침이 올 때까지 밖을 서성거리는 일 뿐.
둘째날, 2019년 5월12일 일요일.
팔을 살펴보니 무엇인가에 물린 상처가 있다.
더 살펴보니 산발적으로 왼팔에 네 군데, 양 허벅지에 두 군데, 오른발 발등에 한 군데에
붉게 부풀어 오른 상처가 있다.
일렬로 이어져 있지도 않고 가렵지도 않다.
그 방에 있었던 것인지, 내가 어디선가 데려 온 것인지,
베드버그의 생태학적 특성상 특정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주인에게 투정하기 힘들다.
일단은 이 곳을 벗어나야 한다. 더구나 타랑에는 약국이 없으니 락사오로 되돌아 간다.
렌트한 오토바이의 체인이 헐거워져서 빠져버린 객을 돕는다.
렌트한 오토바이의 뒷바퀴가 펑크난 객을 만나서 그들 중 한명을 락사오까지 태워준다.
선한 일들을 했으니 베드버그로 부터 무사하기를
그것도 안되면 최소한의 고통만 있기를 누군가에게 빌어본다.
연락이 닿았던 한국인 여행자를 만난다. 심리적인 위로를 받는다.
락사오의 숙소에서 최소한의 조치, 짐을 햇볕에 노출시키고, 불을 킨 상태로 자고,
수시로 침대커버를 확인한다.
다행스럽게 상처가 더 생기거나 버그가 나오거나 심하게 가렵거나 하진 않다.
세째날, 2019년 5월13일 월요일
약국에 가서 상처를 보여주고 어설픈 라오스 말을 건네니
약사가 바르는 연고와 항히스타민 제재의 알약을 건넨다. 3만킵을 준다.
두 종류의 알약을 하루에 아침과 저녁에 2번 복용하란다.
설명서에는 하루에 1번 복용하라고 적혀있는데... 따질 여유도, 언어도 없다.
적극적인 수습을 위해서는 타랑의 사바이디 게스트하우스가 적격이다.
다시 타랑으로 내려간다.
짓고 있는 오른편의 건물 2층이 성수기에 텐트를 대여해서 투숙하는 오픈된 공간인데다
비수기인 지금은 독점할 수도 있다.
마당이 넓어서 모든 것을 햇볕에 쬐일 공간이 넉넉하다.
주인장 툰은 2만킵에, 2층에 텐트칠 수 있는 공간과 전기와 물을 제공해준다.
짐묶는데 사용했던 고무스트립으로 빨랫줄을 만든다.
세탁기가 고장이 나서 이 모든 것을 꼼꼼하게 빠는 것은 힘들겠다 싶다.
세재를 풀어 설렁설렁 세탁을 하고 설렁설렁 헹군다.
옷감이 딱딱할 정도로 바싹 건조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저녁에 베트남 이민국으로 부터 e visa 승인서가 메일로 도착했다.
아주 반가워해야 할 일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네째날, 2019년 5월14일 화요일
새벽 5시 조금 넘어서 닭소리에 눈을 뜬다.
꽤 잘 잔 것 같다.
기존의 상처는 어제에 비해 줄어든 것 같으며, 새로운 상처도 없다.
가려움은 일상적인 수준이고 특별한 다른 증상도 없다.
바람이 불어서 구름이 자주 모이고 비도 하루 한 차례 쏟아진다.
그래서 마당에 있던 모든 세탁물을 걷고 널기 편한 2층 옥상으로 옮긴다.
정오를 갓 넘긴 지금,
가렵지 않다.
새로운 상처도 없다.
바람이 강해지고 먹구름이 다시 모인다.
너른 이 공간에는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
전기도, 와이파이도, 화장실도, 비를 피할 처마도...
남은 바램 하나, 이렇게 스물스물 베드버그와의 전쟁도 끝났으면 좋겠다.
이 상태라면 내일 락사오에 가서 e visa승인서를 인쇄하고 국경을 넘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