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간의 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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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간의 일탈

갈꼬암 5 1690


하루만 혼자 있어도 심심해하면서도 그러지 못할 때는 심술처럼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입에 걸린다. 그 때문일까 섬에서 좀 쉬어
보자는 친구의 말에 이번 비자 클리어는 라농으로 가기로 했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는 비도 많이 오고 파도도 심한데 작은
나무보트에 의지하여 미얀마를 갔다 온 기억이 생생한데 다시
그 먼 곳으로 가는 것은 단 하나 섬에서의 휴식 때문이다.
마치 신고식을 하듯 너무 많이 마신 술 때문에 하루 종일 고생을
하면서 9시 출발하는 VIP버스를 타기위해 6시 10분에 탄 택시는
지겨운 교통체증에 막혀 2시간이나 지난 8시 30분 콘송따이마이에
도착했다. 수쿰빗 로드만 통과하는데 한 시간 그리고 이거 납치되는
거 아닌가 싶게 돌고 도는 택시 안에서 또 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여전히 울렁거리는 속을 맛없는 국수 한 그릇으로 달래고 차에
오르니 24인승에 맨 앞자리다. 태국친구가 일주일 전에 미리 예약을
했다더니 자리가 좋다. 근데 차는 너무 낡아서 오히려 옆에 있는
버능버스가 더 좋아 보인다. 빨리 시간이 지나 라농에 도착했으면
싶다. 지겹게도 가지 않던 시간도 지나 라농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6시 지나가는 썽태우를 세워 이민국에 도착 아직 열리지 않은
사무소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책을 보고 있자니 무언가를 가지러
온 듯한 사람이 스템프는 여기서 찍지 않는단다. 아무런 안내문도
없었고 아무 얘기도 들은 적이 없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아무튼
그 사람 얘기대로 1킬로 정도 걸어 사무소를 찾아보니 선착장에
붙어있다. 여행자들에겐 잘된 일이지만 어쩜 그렇게 안내문 하나
없을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인사성 밝은 내 친구가 지나가는
그 사람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면 누군가 가르쳐 주기를 기다리며
몇 시간을 더 허비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왕복 250바트에 올라탄
배는 세 곳의 사무소에 잠깐씩 서고 미얀마 이민국에서는 도착과
출발 스템프를 동시에 찍어줘 그곳에 머문 시간은 십분 남짓이다.
지난번에는 일부러 바로 가지 않고 시내를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요번에는 섬에 가는 것이 목표라 그냥 바로 떠났다. 라농으로
돌아오자마자 버스터미널로 이동 돌아가는 차편을 예약하고
시내에서 밥을 먹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이게 뭐야 싶을 정도로
선착장 시설은 말이 아니다. 배도 롱테일보트만 보일 뿐이다.
창섬과 파얌섬 중에서 친구는 파얌섬에는 가봤으니 더 좋다는
창섬으로 가잔다. 외국인 가족과 젊은 배낭족 그리고 현지인
모두 열다섯 명 정도가 탄 배는 한 시간정도 걸려 창섬에 도착했다.
내가 배삯으로 150바트를 냈는데 나중에 친구에게 들으니 요금이
다 달랐다. 현지인은 100밧, 그곳에 집을 빌려 한 달 째 거주하고
있다는 외국인 가족은 120밧, 그리고 우리같은 초짜는 150밧 뭐
그런 식인가 보다.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오토바이를 빌려 이동하자
는 우리의 생각이 무색하게 선착장에는 그야말로 암것도 없었다.
배 안에서 자신이 방갈로를 운영한다며 한 번 보라고 했던 아주머니
의 친절로 마중나온 오토바이에 올랐는데 이건 뭐 어디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게 멀리도 간다. 뭘 타고 가란 말인가?
어쩔 수 없이 오늘 하루는 여기서 지내야지 싶다. 와우 정말
오랜만에 이런 숙소에 들었다. 화장실은 내가 싫어하는 태국식이고,
나무로 얼기설기 지은 방갈로는 찡쪽과 정말로 커다란 도마뱀이
붙어있고, 화장실문은 아예 없었다. 모기가 많은 지 모기장이
걸려 있고 물론 선풍기를 비롯한 가전제품은 없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자가 발전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듯 저녁을
먹으며 한 잔 하려는데 얼음이 없단다. 방값 200바트보다 많은 음식
값을 지불하고 잠이 오지 않아 맥주한잔하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저녁 9시에 불이 꺼졌다. 할 수 없이 잠을 청하는데 문을 다 열어
놨음에도 덥다. 코까지 고며 잠이 든 친구 녀석이 미워지기까지
하는데 더 웃긴 건 그 곳에서 키우는 개까지 방에 들어와 있었다는
거다. 닫혀있는 문을 어찌 열었는지 또 들어왔으면서도 왜 얌전히
보고만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국 잠자는 걸 포기하고
촛불을 켜고 책을 본다. 한비야씨가 쓴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나도 여행을 좋아하고 배낭여행도 여러 번 했지만 저런 여행은
못하겠구나 싶다. 지금 이곳에서도 못견뎌하는데 어떻게 하는
자조적인 한숨이 나온다.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했던 촛불도꺼지고
완전한 암흑 잠이 들어 빠져나가지 못하고 여기서 하루를 더 살아야
한다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멀뚱멀뚱 조금 이른 시각 밖으로 나섰다.
그래도 바닷간데 일출은 멋지겠지 하는 기대를 안고 할 일없이
서성인다. 섬에서의 무위와 자유를 그리워 했던가 그런데 지금은
섬을 빠져 나가지 못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워하려면 철저히
미워하란 말인가 일출은 보지도 못하고 하늘이 밝았다.

 


숙박비를 계산하던 친구가 투덜댄다. 아줌마의 친절이라고 생각했던
픽업이 꽁짜가 아니란다. 배삯이 150밧이었는데 오토바이도
150이란다. 어이가 없어 괜히 친구 녀석을 탓한다. 태국어도 잘하고
사람들과 싶게 친해지는 이놈은 이익보다는 손해를 더 많이 본다.
그만큼 세상이 계산적이고 이물스러워서겠지만... 아무튼 섬에서의
탈출은 성공했다. 배안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는데 한 외국인
아줌마가 100바트만 내겠다고 선언한 것이 발단이 됐다. 외국인
아저씨와 동행하던 태국아줌마가 나서고 그 바톤을 이어 그녀의
남자친구인 외국인 아저씨가 나서고 태국인들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결국은 그 아줌마가 50밧을 더 내는 것으로 끝났지만 왠지
서글프다. 이중요금이 존재하는 이곳의 차별이 싫고, 말다툼이 싫다
고 달라는 대로 주는 우리네도 싫고, 자신의 생각만 옳다는 식의
아줌마의 당당함도 싫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아줌마는 들어가는
배삯으로 100밧을 내셨단다. 뭐야 우리만 왕복 150바트 씩 낸 건가?
거기다 덧붙여 아줌마는 자신은 픽업비용을 따로 내지 않았단다.
자신은 손님이므로 그들이 픽업하는 건 당연하단다. 우씨 또 한방
먹었다. 함께 역에서 내려 우리는 10퍼센트의 위약금을 물고
후아힌으로 표를 바꾸었고 아주머니는 촘폰으로 가신단다.
출발하기 전에 배를 채우고 6시간을 달려 서서히 어두워지는
후아힌의 거리에 섰다. 친구가 전에 묵은 적이 있다는 호텔에 짐을
풀고 나이트마켓으로 향했다. 두 블록 쯤 되는 차도를 막고 식당과
노점이 가득하다. 태국 티비에도 소개되고 유명한 철판볶음 요리사
가 있을 거라고 해서 찾아 보았지만 없다. 포기를 모르는 친구 그곳
경찰에게 묻고 그 경찰 장사하는 노점에게 묻고 해서 알아낸 사실
여기서 1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서 여전히 영업 중이란다.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다 한 식당에서 하나에 300밧하는 티본스테이
크에 여러 가지 안주를 시켜 가지고 갔던 소주를 마셨다.
한국인에게는 역시 소주가 최고다. 처음 이곳에 와서 얼마간은 싸게
마실 수 있는 양주들이 많아 좋았는데 이제는 뭐니 뭐니해도 소주가
좋다. 잦은 또 기나긴 이동에 힘이 겨웠는지 술이라면 한 자락 씩
하는 우리가 소주 한 병에 취했다. 째즈에 분위기 좀 내보자고
간 곳은 문을 닫았고 아가씨들이 즐비한 펍들은 그렇고 해서 맥주를
사서 들어와 하루를 마감한다.

 

아침식사를 마다하는 친구를 놔두고 혼자 식당에 내려가 아메리칸
브랙퍼스트를 주문했더니 와우 정말 저렴한 식사가 배달된다.
베이컨 한 조각, 쏘시지 한 개, 계란후라이 두 개, 파인애플 여섯
조각 정말 눈물 난다. 짜식 그래서 아침을 안 먹겠다고 했구나...
징한 놈. 식사 후에는 혼자 아침해변을 산책했다. 한가로이 천천히
아침향기를 느껴 본다. 나와 같이 산책 나온 커플들 가족들 그들이
타기를 기다리며 왔다 갔다 하는 작은 말들 그들도 나와 같이 여유
롭다. 여기까지 왔으니 몸이라도 함 담궈야지 싶었는데 바다에


돌도 많고 물속도 투명하지 않아 수영하는 맛이 나지 않는다.
친구와 오토바이를 빌려 절순례에 나섰다. 전혀 어울리지 않게 공룡
조각이 있는 한 절에서 원숭이의 습격으로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었
던 술안주를 빼앗기고 수영하기 좋다는 해변도 보고 후아힌역에
가니 엠티라도 오는 지 많은 태국젊은이들로 붐빈다. 그곳에서 한참
을 달려 'Wat Huay Mongkol'이라는 곳에 도착하니 다른 절과는 달리
정말 커다란 스님동상이 있다. 와 얼마나 대단한 스님이기에 했더니
친구 왈 우리나라 성철스님정도 되신단다. 또 동상에 새겨진 문양이
여왕을 상징한단다. 아무튼 이 녀석 아는 것도 많다. 내리는 비를
잠시 피하다가 폭포까지 달려보자고 나섰는데 이정표에 30킬로가
넘는단다. 포기하고 돌아오는 길에 장이 섰길래 내려서 이것저것
군것질을하고 내가 운전하겠다고 우겨 탔는데 처음 타는 기아 넣는
큰 놈이라 부담스럽고 거기다 비까지 내려 운전대를 친구에게
넘겼다. 비도오고 갈 곳도 없고 버스는 시간마다 있다니 빨리 올라
가자는데 의견이 일치해 바로 터미널로 가서 3밧하는 화장실에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몇 장 남지 않은 책을 마저 읽었다. 이번
여행에서 확실히 남은 것은 책 한권을 읽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5시 출발 9시 도착 쫑파티는 자주 가는 후워이꽝 시장에서 이것으로
우리의 짧은 여행은 끝이 났다. 친하다 면서도 둘만의 여행이
없었던 우리에게는 비록 사흘간의 일탈이었지만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사랑한다. 친구야.

아 그놈이 여자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다.
이놈을 수술을 시키던지 해야지...

근데 “스님, 저희도 성불할 수 있을까요?”



5 Comments
우리함께 2008.11.05 12:51  
  아... 나를 짓누르는 이 압박감은...^^;
_RUBY_ 2008.11.05 19:20  
  컥;;;눈 빠져요.ㅠ.ㅠ줄 바꾸기 띄어쓰기 신공을 한번 펼져보아요~ㅋㅋ아래 스크롤바까지 컨트롤하느라 정신없이 읽었네요.ㅋㅋ
flame111 2008.11.05 19:33  
  참으로 대단한 내공이십니다요 ㅋㅋㅋ
팥쥐맘 2008.11.06 01:01  
  불상(?)..땜시 넘 놀랐음
갑자기 나타난 대빵 큰 주름진 분..
갈꼬암 2008.11.06 02:06  
  죄송함다. 한글에서 작성한 것을 복사로 옮겨보니 그렇게 되는군요. 사진도 다시 올렸습니다. 불편함을 무릅쓰고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넷만 빨랐어도 금방 끝냈을 일을 거의 40분이나 소비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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