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자유여행기 (여행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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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여행을 계획한 건 지난 3 월부터다. 우연히 ‘낫티의 타일랜드’라는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그 블로거의 말솜씨에 휘말려 들어 태국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그때부터 시간 날 때 마다 영어로 된 태국 관련 사이트와 ‘태사랑’ 등 국내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했다.
5 월이 되자 수집한 정보의 양이 제법 방대해지고 적어도 방콕에 관해서는 가보기도 전에 여행기를 써도 감쪽같을 만큼 지리, 동선, 포인트, 이동수단 등에 대한 지식체계가 잡혀갔다. 실제로 이 시기에 ‘나는 혼자 태국에 간다’라는 예고편 여행기를 써서 여기저기 올리기도 했다. 6 월경에는 3 박 5 일 자유여행 일정을 시간대 별로 구체적으로 작성하여 가족들에게 공지사항으로 이 메일을 통해 발송했다.
8 월에 비행기 표 수배를 시작했다. 일종의 비즈니스 관계로 매년 가을 서울에 가는데, 원래는 에어캐나다 에어로플랜 30,000 보너스 마일을 사용하여 스타 얼라이언스 항공사의 인천-방콕 비즈니스 클라스 비행기표를 구입하려 했었다. 그런데 에드먼턴에 소재한 해피 여행사를 통해 인천 왕복 항공요금에다 불과 100 불을 추가하면 스톱오버를 허용하는 조건으로 방콕까지 연장 왕복이 가능하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러니까 어차피 한국에 가는 길에 별도의 비행기 삯을 크게 더 들이지 않고 다녀 온 셈이다.
그 동안 여기 저기 다니면서 깨달은 사실은 내가 박물관이나 문화유적, 또는 일반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볼거리를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 이었다. 그냥 다니면서 그게 이동하는 도중의 비행기 안이 됐든, 걷다가 피곤해서 잠시 들른 노천 찻집이 됐든, 처음 접하는 생경한 분위기와 환경 그 자체와 만나고 대화하는 것을 기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내 여행 타입을 깨닫게 된 뒤로는 시간이 쫓기며 어디 어디를 가 보아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사라졌다. 이번 방콕 여행은 일정을 미리 짜놓긴 했지만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좀 교양 있게 표현하자면 꼴리는 대로 돌아 다녔다. 밤에 늦게 자도 아침 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한(?) 체질 덕분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기억을 남길 수 있어 다행이다.
도착 다음날은 카오산과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한 구 시가지 일대를 미친 듯이 싸 돌아다녔다. 밤에는 야시장을 돌아본 후, 수쿰윗 일대의 밤 문화를 섭렵했다. 3 일 째는 일어나자마자 강을 건너 씨리랏 병원으로 직행했다. 오후에는 싸얌과 칫롬 일대에서 태국의 중산층들을 만났고 밤에는 라차다피섹의 유흥가에서 열광적인 성지순례자들을 취재(?)하며 시간을 보냈다. 4 일 째는 비교적 고급스런 스파에서 3 시간짜리 스파패키지를 받으며 다음 날부터 일주일간 한국에 머물면서 처리해야 할 일들을 머리 속으로 하나씩 체크했다. 그리고 그날 밤 10 시 45 분에 출발하는 인천 행 밤 비행기에 탑승했다.
왕궁과 왓 프라께우를 제외하면 알려진 명승지 어디에도 일부러 찾아가지 않았다. 이 두 곳도 솔직히 아침에 시간을 때울 겸 배타고 지나가는 길에 있다니까 간 것이지 지금 생각해 보면 별로 기억해 둘 만한 특별한 것이 없다. 왕궁 근처에서 본 것 중 아직까지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타 창 근처의 시장 통 길바닥에서 구걸을 하는 걸인 아주머니의 등에 업힌 채, 지나가는 나를 힘없이, 그러나 빤히 쳐다보던 두 세 살쯤 된 어린아이의 슬픈 눈망울이다.
안 보면 반드시 후회한다는 싸얌 니라밋 쇼를 보러 가는 대신 오이시 익스프레스에 들어가서 400 바트(12 불)라는 가격에 비해 놀라우리만큼 가지 수가 많은 일식 buffet를 배가 터지도록 때려 먹었다. 트랜스젠더 쇼로 유명한 아시아 호텔의 칼립소도 파타야의 알카자도 보러 가지 않았다. 쇼를 관람하기로 한 그 시간에 아마 나나엔터테인먼트의 노천 술집에서 유럽에서 온 건달들과 사교모임(?)을 가졌던 것 같다. 다만 이 쇼들은 내년(2009 년)에 다시 갔을 때 시간이 나면 보러 갈 생각이다.
내가 태국에 갈 거라는 소문이 나자 누군가 짐 톰슨 하우스를 꼭 들러 보라며 그곳에서 파는 실크타이를 추천했다. 그러나 결혼식과 장례식 참석할 때 외에는 넥타이를 맬 일이 없는 내가 짐 톰슨 박물관까지 일부러 찾아가서 실크타이를 살 일은 없었다.
짐 톰슨이라는 사람만 해도 그렇다. CIA 의 전신인 OSS 공작요원이었다가 1967 년 말레이시아에서 실종된 수상쩍은 경력을 가진 그 사람이 태국 역사에서 무슨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곳에 가느니 카오산 길거리의 노천식당에서 팟타이를 사 먹으며 현지인이나 여행객들과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는 게 ‘내가 시간을 더 의미 있고 재미있게 보내는 법’인 것 같다.
내년에는 진짜 프랭크 루카스처럼 보트나 땟목을 타고 열대 밀림 사이의 계곡을 따라 골든 트라이앵글까지 올라 가 보고 싶은데 사고 당하지 않고 제대로 살아 돌아오려면 지금부터 또 정보수집을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