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보다 THAI - 깐짜나부리 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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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보다 THAI - 깐짜나부리 투어 ◈

아리따 8 1697

답답한 도시를 떠나고 싶은 마음 가득 싣고 난 달리네
내 옆을 스치는 모르는 얼굴들이 왠지 반가워
(중략)

돌아가면 다시 시간 속에 엉켜있는 나를 보겠지만
사랑스런 나를 만난다면 후회하진 않아

[유리상자, 나를 찾아서]





#.

1. 느지막히 들어와 샤워를 하던 여인네들께서 화장실에서 벌레와 인사하셨다.

2. 어쩌다 깨서 일어나 불을 껐다.

3. 냄새에 중독되기 직전 화장실 문을 닫았다.

4. 방콕에서 냉동死 하기 전 에어컨 온도를 높였다.


대충 이렇게 여러 번 눈을 뜨고 나니 날이 샜다.


몸도 안 좋았고, 비행기도 타고 왔고, 카오산과 그 주변도 얼마나 나돌아다녔는데

어쩌면 이렇게 잠이 안올까?


어차피 투어하려면 7시까지 내려가야 하니 깨어있는 상태로 누워배기기를 종료하고 일어나 씻고 친구를 깨웠다.
준비를 하고 나가니 10분 정도 이른 도착.

아침은 못 먹었고, 앞으로 언제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오늘의 교훈, 투어 전날엔 아침거리를 사 두자.ㅠㅠ







#.

어느 여자분과 "오늘 투어 가세요?"로 시작해

처음 본 여행자들끼리 나누는 같은 패턴의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아침 7시 경 디디엠 로비는 투어를 기다리는 많은 한국인 여행자들로 분주하다.

입구에 자리한 테이블 한켠에 자리 잡고 방콕의 아침 공기를 마셔본다.
사실 매연이지;;


투어용으로 보이는 미니버스가 도착했다. 깐짜나부리 투어 버스다.
바우처를 걷는 기사아찌.





헉;; 둘 다 멍때리고 있다가 바우처 생각을 못 했다.

"우리도 오늘 투어 예약했는데, 바우처를 못 받았어요. 어제 저녁에 왔는데 깜빡하고..☞☜"


일단 타란다. 디디엠의 신용도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버스에 오르기 직전 기사아찌의 농담 한 마디에 마음이 살포시 아팠다.
안 그래도 잔뜩 배곯은 참인데..ㅠㅠ

- 너희는 바우처 없으니까 점심 안 줘!


차 안에는 디디엠에서 함께 기다리시던 아저씨 네 분과 한국인女 2,
서양인 넷이 타고 있었다.

나와 친구는 또 떨어져 앞 뒤로 한 자리씩 차지하고 간다.

깨끗한 15인승 도요타 미니버스 안에서 친구는 일찌감치 상모돌리기를 시작했다.







#.

피곤했지만 제대로 잠들지 못한 김에 눈을 억지로 비벼 뜨고 방콕의 아침풍경에 시선을 던져 본다.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여행 때마다 내려지는 같은 결론.


헌데 왜 난 자꾸 또 어디론가 떠나려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고 그 답을 찾으려 했던 적이 있다.

"왜 그렇게 밖으로 나돌려고 해? 한국이 그렇게 싫어?"





never.

난 코리언으로서의 내 모습도 소중하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입맛부터 써지고, 이 나라가 그래도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지만,


'독수리여권을 가진 사람들은 여행이 더 편할까?' 하는 철없는 궁금증도 품어보았지만,


한국이 싫어서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럼 왜?









#.

어느 女들의 대화

화제 : 돈 벌면 뭐 할 거야?


친구1 : 마리프랑스 회원권부터 끊어야겠어!


친구2 : 꼭꼭 모아서 집부터 살 거야. 한국에서 살려면 자기집부터 있어야 돼.


친구3 : 돈으로 또 돈 벌 거야ㅋㅋㅋ (친해져야겠죠?)


아리따 : 세계일주



나를 향해 걱정 반, 놀림 반으로 말한다.

"찾아다닐 수 있겠어?"

나는 엄청난 길치다.




(전략)
지적인 수준과는 상관없이 길치, 방향치로 대표되는 길맹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매번 반복적으로 곤욕을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능이 낮거나 치매 등과 같이 지각발달에 따라 방향감각이 없고 길을 잘 잊어버리는 것은 이해가 되나,

보통의 아이큐를 지닌 평범한 일반인이 그런다는 것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딱히 뚜렷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이러한 길맹의 상당수는 MBTI 검사결과를 살펴보면, 세계를 보는 시각이 넓고 직관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알려진 정도다. (후략)


어느 뉴스기사 중 하나.

과연 내가 '세계를 보는 시각이 넓고, 직관력이 남들보다 뛰어나'서 그런 것일
까?46.gif









[Ex.1]
아는 일본어라고는 고작 "스미마센" "곤니찌와"

그리고 어느 아름다웠던 일본영화가 주입해 준 "오겡끼데스까"


무작정 오사카로 날아갔던 나는 생전 처음 떠나보는 해외여행이란 설렘에 힘입으사 신이 나서 온 시내를 누볐다.


슬슬 숙소로 가야 할 시간이다. 근데, 내가 어디로 얼만큼 온거지? +_+;;

발걸음을 빨리 해 본다. 가도가도 똑같은 곳들 뿐...

어둠이 내린 지 한참이나 되어 주변은 알아볼 수 없는 일본어 간판들만 번쩍거리고 있다.

순간 가슴이 철렁ㅠㅜ

'다리'라고 하기에는 아주 많이 작지만 어딘가로 한참이나 더 이어지는 것 같은 그 다리 위에는


희한한 헤어스타일의 건장한 오퐈들이 대부분 웃통을 벗어던진 채 기대 서 있고,


'무서워'소리를 절로 내뱉게 생긴 언냐들은 길 양 옆에 앉아 담배까지 꼬나물고 있다.

여기가 도대체 어딜까.. 엄마....

헤매는 듯한 날 눈여겨보셨던 재일교포 아주머니가 아니었더라면!








[Ex.2]
베니스 국제 영화제가 열리는 곳을 찾아가 볼거야!

바닷바람이 매섭게 불던 리도섬에 도착했다. 황량하기 그지없다.

길을 물을 기회조차 잦지 않다. 그저 앞을 향해 걸을 뿐이다.

문을 연 식당도 수퍼마켓도 보이지 않는다. 간혹 보이는 행인들에게 물어물어 가보지만 이뭐병10.gif 


1시간쯤 걸으니 다리가 너무 아파 무작정 아무 버스나 집어탔다.
갑자기 따뜻한 버스 안으로 들어오니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내기 버겁다.

세상 무엇보다 무거운 눈꺼풀 앞에서 끝끝내 팔라초 델 치네마를 찾는 것은 포기하고 말았다.

손이 시려 카메라도 꺼내들지 못할 정도로 추운 날, 돌아가 이 몸 하나 뉘일 곳이 있다는 것,
이 피로를 달래 줄 뜨끈한 무언가를 사먹을 수 있는 몇 푼의 돈이 있다는 것,

그 사소한 것들의 감사함을 리도의 겨울바람은 가르쳐 주었다.....





















는 말로 이런 해프닝들을 미화시켜버릴 수는 있지만!!!

학교 주변 밥집 위치도 기억나지 않아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니다가 결국 지나가던 사람에게 물어본 적 있다.

물론 이 학교 학생이 아닌 척-_ -




쉼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정해진 일정 안에 최대한 많은 곳을 보고 싶은 것이

모처럼 시간과 돈을 투자해 여행을 떠나는 모든 이들의 바람일게다.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도와 눈싸움을 해도 결국에는 같은 곳을 맴돌이하는 시간들도 이제 내 여행의 일부다.


다른 사람들은 잘만 찾아다니는 곳을 겨우 찾아내고 기뻐해야 하고,

방향을 한 번 틀려고 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excuse me를 연발하는 상황이 언제나 반길 만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길은 나를 조용히 가르친다. 어디서든 네가 방향을 잃고 헤맬 때 도와줄 이들이 아직 이 세상엔 많이 있다고,

이제껏 그들 덕분에 항상 행복하게 돌아올 수 있지 않았느냐고..




깐짜나부리 행 미니버스 창문에 머리를 박은 채로
'여행 중일 때 가장 자연스럽고, 눈이 가장 빛난다'는 걸 알아버렸다.


게다가 이제 난, 카오산과 람부뜨리 정도는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다규!^^V






#.

휴게소다. 화장실부터 들르고 아침거리 좀 사자ㅠㅠ

요런 화장실. 1994314482_f7491cf9_DSC04372.jpg

옆 칸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야! 여기 물 내리는 게 없어."

ㅋㅋㅋ



대충 허기를 면할 초코바를 사들고 차로 돌아왔다.

옆자리의 샤방원피스를 입은 두 한국女들에게 말이라도 걸어보고 싶은데,

왠지 타국에서는 한국인에게 말 걸기가 더 쉽지 않다.






#.

깐짜나부리 전쟁 묘지 앞에 내리자 현지인 가이드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

대략적인 설명과 함께 몇 시까지 돌아오라면서 투어팀 일행에게 하트모양 스티커를 하나씩 붙여준다.

묘지가 마치 정원처럼 아기자기하게 조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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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클러가 찰찰찰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어낸다.

빼곡이 들어찬 비석들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Whatever else we fail to do, we never fail to remember you

지금의 내 나이가 쓰여진 어느 비석의 글귀.

내가 지금 죽는다면, 진심으로 저런 생각을 해 줄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묘지 앞에서 수박과 파인애플을 사 먹었다. 수박맛은 그럭저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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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보는 과일이 하나 있다. 주황색으로 살구만한 크기에 감껍질처럼 반들반들한 외형을 가진 열매.

"이게 뭐예요?"

대답대신 그 과일 하나가 내 손에 쥐어진다. 쌩큐베리감사지만 맛은 GG

쉰 대추맛이 난다;;;
[태사랑 회원님들, 놈의 정체가 뭔가요?+_+위의 사진 속 주황색 물체요ㅋ]






#.
다음 목적지.

사실 가이드는 전쟁기념관 앞에 우리를 떨궈놓고 갔지만, 언젠가 이곳은 볼 게 없다는 글을 읽은 터라 패스!

대신 짱구의 궁둥이와 유쾌한 마네킹씨 감상.

전쟁 당시 일본이 사용했다는 저 낡은 기차는 올라가서 사진을 찍어도 되게 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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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으로 들어봤던 콰이강의 다리로 고고~


주변 경관이 탁 트인 것이, 곳곳에 예쁜 꽃들도 있고.. 지금 모습은 전쟁영화의 배경으로 잘 매치되지 않는 것 같다.

기찻길이 지나가는 광장 앞에서 점프샷을 찍기로 했다.

펄쩍!
다시!!

펄쩍!
한 번 더!!


이렇게 네 번을 더 뛰고야 제대로 된 점프샷을 찍을 수 있었다.


친구야, 쌩유~ 근데 다음부턴 되도록 한 번에 찍어주지 않으련?


등줄기를 타고 땀방울이 쪼로록 흘러내린다-_ㅜ


연속으로 뛰는 나를 흘끗거리며 쳐다보고 가는 시선들도 민망하다.


같은 투어팀은 아니었지만 전쟁기념관 앞 기차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인사를 나누게 된 언냐의 어머니께서도

"뛰고~ 또 뛰고~~"
추임새까지 넣어주고 지나가신다.

하이고..6.gif








#.
기찻길을 따라 걷는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마주치면 한 쪽은 살짝 옆쪽으로 피해주는 센스~

하지만 다리 아래는 물살이 세 보이는 시커먼 강물이다.

간간히 난간이 있는 곳이 있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선 아무 안전설비도 없는 강물 위 기찻길을 요령껏 지나가야 한다.


나는 수영을 못한다. 그냥 이유없이 물이 무섭다.


앞서가는 친구는 반대편 사람이 오면 레일 밖 나무 위로 성큼성큼 잘도 걸어가는데,


난 후덜덜~ 발 한 쪽은 레일 안, 한 쪽은..

그래도 길 내주는 척이라도 해보겠다고 레일 밖에 내놓고 뒤뚱거리며 걷는다.


그 모습을 본 친구가 자기가 민망했는지

"너 왜 그렇게 걸어?"
한다.


- 밑에 봐. 넌 안 무섭냐?


"아~ 그래? 나 지금 렌즈 안 끼고 선글라스 써서 뵈는 게 없다야ㅋㅋ 이제보니까 떨어지면 직빵이구나~"


그래, 때론 모르는 게 약이니라-_-;;;





p.s 잠겼던 친구의 자물쇠는 제가 과일 깎아먹으려고-_- 가져갔던 맥가이버 칼의 도움으로
[실은 그 칼을 쥔 친구의 의지와 힘으로;;]
무사히 열렸습니다. 이후 자물쇠를 훼이크;;로 달고 다녔지만 그럴듯하게 튼튼히 보여 아무 일 없었죠:)

8 Comments
동쪽마녀 2009.02.21 11:58  
저도 엄청난 길치입니다.
이사와서 10년 산 동네에서도 가끔 낯모르는 골목에서 헤매곤 하는.ㅠㅠ
넓은 세계관, 뛰어난 직관력이 헤매고 산 오랜 세월을 위로해 줄 수 있을까,
문득 서글퍼지네요. 흑흑.
아리따 2009.02.21 15:55  
잔뜩 헤매고 나면 몸이 힘들고, 마음도 허해지죠.
허허~
어쩌겠어요ㅠㅜ 전 카오산 찾아갈 줄 아는 걸로라도 만족하렵니다ㅎㅎ
동지 만나서 반갑다능..ㅋ
큐트켓 2009.02.21 14:28  
우리오빠도 약간 길치인데..어떻게 여기저기 여행을 다하고 다니나 싶어요..
그것도 투어패키지는 이용안하고 혼자서 ㅎㅎㅎㅎㅎ
그리고 그 노란과일..잘익은건 약간.. 맹탕같은 감맛이 나는데..이름을 까먹었네요.
저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아요 . 전 깐짜나부리 투어할때 너무 더웠는데...
아리따님은 괜찮으셨나보네요..정말 더위먹을것 같던데..;;
아리따 2009.02.21 15:57  
더웠죠. 전 더위먹을 정도라고까진 안 느꼈지만..
전 추위에 무지 약하고 차라리 더위를 잘 견디거든요:)

우리오빠ㅠㅠ 미래의 우리오빤 어드메 있을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늘을품어본 2009.02.21 18:28  
제가 어렸을때 살던 동네는 부천의 외곽쪽이었는데, 산으로 가는 길에 기찻길 다리가 있었죠. 어렸을 때 기억으로 저도 그 나무와 나무 사이에 공간으로 빠지거나 옆으로 균형잃고 넘어질까봐 엉금엉금 다녔죠. 하....아직도 고소공포증이...ㅠㅠ
그나저나 저도 친구분과 함께 잘 끝내고 돌아와서 여가활동중이랍니다. ㅋ
아우...친구분 사진을 공개하라 공개하라~
아리따 2009.02.22 22:10  
수고많으셨겠네요~
같은 공부하는 사람이라 궁금하실 그 마음 알지만..^^;;
오케이 해주면 올려볼게요ㅋㄷ 해줄라나~?ㅎㅎ;
레오와테드 2009.02.24 10:33  
전 길치라는 걸 믿지 않앗는데, 그저 여자들이 귀엽게 보일라고 하는 소리라고...생각햇어여
제 친구를 보기전에는.... 을지로3가에서 종로3가로 오라니깐 을지로 4가로 가버린..
초등동창을 보고는...과연 길치가 존재하는군....(제 친구 정말 심각한 수준...)
5분이면 올 거리를 결국 택시 타고 어쩌고 30분 걸려서 와서 저한테 무쟈게 구박당햇거든여..
것두 서울에서만 살앗는데...그정도니... 그래도 하와이는 어케 어케 가는거 보면..하긴 비행기
타면 데려다주겟지???
아리따 2009.02.24 14:38  
길치들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ㅠㅜ
본인들은 참 힘들답니다.ㅋㅋㅋ;;;;

길 한 번에 슉슉 잘 찾아다니는 분들 보면, 천재같아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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