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보다 THAI - Que sera, s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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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방콕. 마이 방콕!
일단 겨울 옷차림부터 갈아입자.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데 친구 얼굴이 울상이다.
"자물쇠가 안 열려."
- 뭬야? 내가 해 볼게. 옷 갈아입고 와 봐.
"옷이 그 안에 있잖아..;;; "
- 맞다. 어쩌지?
"일단 나도 화장실 좀.."
노란머리 단체관광객들이 모여 웅성대는 한 켠에서
나는 열리지 않는 친구 캐리어의 자물쇠를 따느라 쭈그려 앉아 낑낑대 보았다.
안에서 뭔가 고장이 났는지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도 열리질 않는다.
머리에 꽂았던 실핀까지 동원해 본다..
어디서 본 건 있지만, 기술은 없었고..
일단 급한대로 시내로나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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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버스 티켓, 공항버스 티켓.....
어디서 파는지 모르겠다;;
그럼 인포메이션, 인포메이션....
똑같은 길을 왔다, 갔다 왕복 3번. 한국인은 삼세 번=_=
두리번거리다가 서양인 할아버지랑 살짝 스쳤는데, 분명 쌍방과실인데도
쏘리를 연발하시며 길을 내어주며 먼저 가라시는 매너!
멋지다
겨우 발견한 인포메이션 바로 옆에서 공항버스 티켓을 팔고 있었다.
150밧. 아래로 내려가서 지금 서 있는 버스를 타면 된단다.
벌써 버스는 꽉 차있었다.
자리가 있나 몸만 살짝 올라탔다가 가방에 사람에 복잡한 모양새를 보고 내리니 안내원 언냐가 앞쪽에 자리가 있다며 어서 타란다.
가방은 분명 들고는 탔는데, 어디다 두는지 알 수 없다..
차에는 태웠으니 알아서 잘 오겠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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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 기운이 느껴지는 일본남 옆에 가 앉게 되었다.
기회가 닿으면, 인사 한 번 건네보리라ㅋㅋ
눈에 익은 풍경들이 지나간다. 이제야 실감이 난다.
처음 자리에 앉았을 때, 난 앞자리에 앉은 친구와 종알거리느라 타이밍을 놓쳐버렸고
그도 이쪽을 힐끔힐끔거리는 듯 하더니
버스는 고속도로로 진입하고, 고속도로를 빠져나갈 때까지 서로 한 마디도 건네지 못했다.ㅎㄷㄷ
몇 번이나 하품을 쩍쩍 해대길래
오지게 피곤한가보다 하고 아쉽지만 신경을 껐는데, 결국 자버린다.
버스가 처음 정류장에 도착하고, 사람들이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우왕좌왕할 때
난 자랑스럽게 태사랑 지도를 펼쳐들었다.
기사 아찌가 분명히 지금은 '빠아팃'이라고 했거덩..
옆자리 일훈이(일본훈남)도 깨어나 가이드북을 꺼내 들고 지도를 한참이나 살핀다.
"여기 아직 카오산 아니죠?"
-응, 그 쪽도 카오산까지 가요? 나도 거기까지 가는데, 우린 마지막에 내리면 돼요.
태사랑 지도를 가리키며 일본어 가이드북의 지도와 비교를 해 보곤 빙긋 웃는다. 그의 가이드북엔 람부뜨리나 빠아팃 쪽은 나와있지 않았다.
태사랑 지도 만쉐이~
앗, 옆모습만 봐선 잘 몰랐는데 정면을 보니 꽃돌이다!!
그가 묻는다.
"한국인?"
-얍. 너 일본인이지?
"응, 카오산 어디서 묵어?"
-아, 난 거기서 약간 떨어진 한국인 많은 게스트하우스로 갈 거야.
마침 오사카 카이유꽌에서 산, 복어와 꽃이 번갈아 달린 팔찌가 내 오른팔에 채워져 있었다ㅋ
- 나 일본 간 적 있는데.
엄청 반가워한다.ㅋㅋ
"그래? 어디?"
-음... 오사카, 교토, 뭐 그런쪽..
"정말? 나 오사카에서 왔어."
- 아~ 참, 나 이 팔찌 카이유꽌에서 산 거야.
"그렇구나~"
이러쿵저러쿵 블라블라......
하는 사이 버스는 벌써 종점까지 도착했다.
뭐 이렇게 빨리 온담;;; 이제 한창 말 트기 시작했는데
짐끌고 북적이니 정신이 없다. 빨리 여길 빠져나가야지. 눈인사를 하고 디디엠으로 향했다.
지도를 잘 보는 친구 덕에 찾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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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버릇 멍멍이 못 준다고, 결국 출국 직전에 디디엠에 하루치 예약을 하고 온 터였다.
무계획이라면서 갈수록 스멀스멀 예약들이 하나 둘 늘어가는 시츄에이션..
반질반질한 종이에 컬러로 인쇄된 태사랑지도까지 다시 받아들고, 4층 여자 도미토리로 올라갔다.
오~ 엘리베이터가 있다. 덜컹거리긴 하지만 있는 게 어디야~
문제는 이제 시작이다. 친구 캐리어의 자물쇠를 열자니, 열쇠집은 이미 문을 닫았다고 하고
우리의 세면도구들은 모두 그녀의 몫이었기에 씻는 게..ㅎㄷㄷ
뭐 이것도 하루 정도 사정해서 빌려쓰면 되겠지.
하지만 친구의 옷과 신발이 대략난감이었다.
그 더운 날씨에 운동화와 긴 청바지. 자리만 대충 잡아놓고 급한대로 여름옷과 슬리퍼라도 살 겸 카오산으로 간다.
드디어 밟아보는 카오산로드.
책과 사진으로 무수히 봐와서인지 낯설지가 않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친구의 슬리퍼와 원피스를 사고 이제 저녁을 좀 먹어야겠는데, 이거 뭐 너무 더워 의욕이 하나도 없다. 지친다 지쳐;;
결국 카오산에서 처음 먹은 식사가 서브웨이 샌드위치였다.
에어컨이 있는 곳에서 숨통을 틔워주어야 했기 때문..
당장 볼 일은 해치웠겠다.. 어슬렁거리며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호객꾼 아찌에게 낚여 맛없는 칵테일도 먹었다.
"헤이! 칵테일 한 잔에 80밧!! 스트롱~~"
한 잔 할까? 찬성~
해서 주문을 하고,
길가에 펼쳐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기다리면서 첫 소감을 물어봤다.
"방콕, 사람 많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이라고 했지? 그리고 카오산, 일명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곳이야. 어때? 맘에 들어?"
- 쏘쏘. 활기찬 곳인 것 같애. 여긴 상인들 빼놓곤 다 외국인만 있는 것 같다.
순식간에 칵테일이 나왔다.
내 것은 특별히 알코올을 많이 넣지 말아달라고 얘기를 했는데
웬걸, 안 먹던 술이라 그런지 1/4정도 홀짝거렸을 때 이미 내 얼굴은 토마토 사촌이 돼 있었다..
속도 다시 메슥메슥해 온다.
"하하하 너 얼굴이 홍당무가 됐어!"
나의 블루레이디를 만들어 준 바텐더(?)가 반도 줄지 않은 칵테일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웃어제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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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자지껄함 속에서 살짝 비껴나와 사람 구경을 하면서
카오산이구나..싶다.
이런 모습을 보려고, 나도 이 거리의 인파 속에 함께 쓸려가려고
그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왔구나.
이제부터 나는 시험에 떨어져 스스로를 위로하려 온 사람이 아니라
그냥 배낭쟁이의 한 사람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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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투어를 가려면 모자를 사야지.
이것저것 써보고 흥정을 하는데, 결코 예전의 싸다고 느낀 물가가 아니다.
챙 넓은 것 하나를 골라 사기로 했다.
"꺄아아아아악"
개 한마리가 내 종아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태국에서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눈알을 바쁘게 굴리며
개와 고양이를 요리조리 피해가려는 쪼그만 동양여자애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나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난 걔네들이 싫다ㅠ 가까이 오지 않는다면 상관없지만, 그들 근처에 가면
머리칼 잘린 삼손처럼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만다.
모자가게 아주머니가 행거를 이리저리 움직여 개를 쫓아주셨다.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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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나 또 올라올 것 같애ㅜㅜ"
- 뭐? 안 돼. 너 봉지도 없지? 빨리 가자.
칵테일 마신 후 꾸르륵대던 속이 또 말썽이다. 혐오스런 카오산 구토女가 돼긴 죽어도 싫다.
슬리퍼를 신은 발엔 어느새 물집이 잡혀 걸음도 절뚝절뚝.
혼신을 다해 숙소를 향해 걷는다.
걷다보니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해진다.
어, 우리 내일 깐짜나부리 가기로 했는데.. 바우처 아까 깜빡하고 안 받아놨는데?
들어가니 사장님은 이미 집으로 돌아가신 후였다.
어떻게든 되겠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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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꼬 창에서 만난 친구에게 메일이 하나 와 있네요ㅋㅋ 번역기로 돌렸나 봅니다.
낯간지럽지만, 귀여워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