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K 4일 - 26일 BTS 아쏙(asok)역에서 수언룸야시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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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K 4일 - 26일 BTS 아쏙(asok)역에서 수언룸야시장까지

siasiadl 3 1994

땀 범벅인 채로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셋트 속옷을 챙겨 입었다.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을 건 뻔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그렇다. 보이든 안 보이든 좋아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할 때 여자의 마음이란거다.

태성이를 만나 둘이 데이트(!)를 할 때 이렇게 입고 가야지, 준비했던 옷들을 꺼내입었다. 샤랄라한 분홍 꽃무늬 반팔 원피스(비슷한 옷)에 옅은 남색 가디건을 걸쳤다. 검정 레깅스를 입고 종아리 반까지 올렸다. 반묶음 머리를 하고 흰색 작은 백을 오른쪽 어깨에 메고 앞 코에 장미꽃이 달린 분홍색 샌들을 신고 거울을 본다, 음... 뭐 이정도면.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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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쏙역에서 태성이를 기다린다. 문자가 온다.

- 수언룸나이트바자 가봤어?
이게 뭐지? 언니한테 물어보니 야시장이란다. 여기서 머냐고 물으니 BTS 몇 정거장이면 된다고 한다. 으음... 나보고 여기로 오라는 건가 싶어서 문자를 보낸다.
- 그럼 내가 그리로 갈까?
- 아냐, 내가 아쏙역으로 데리러 갈게.
- 응 그래~ 나 지금 아쏙역이야. 4번출구로 오면 되.

언니랑 얘기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저기서 태성이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다.

"헥헥, 안녕!"
"안녕~ ^^"
"미안, 늦었지. 너 역에 있단 얘기듣고 마음이 급해서 막 뛰어왔어."
"하하~ 언니랑 같이있어서 괜찮은데. 온지 얼마 안 됐어."

언니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짐을 넣을 커다란 백팩을 사겠다며 혼자 계단을 내려갔다. 난 태성이를 보고 웃으며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 쇼핑백을 건넸다.

"자, 선물!"
"오... 이게 뭐야?"
"미안 별거 아냐. 책인데... 진짜 미안. 서울 관련된 책인데... 난 이거 인터넷에서 보고 사진이 많을 줄 알았거든. 그런데 글씨가 훨씬 많아. ㅠㅠ 아 몰라~ 그냥 기념으로 가져!!"
"오 고마워~~"
"아 그리고 이건 과잔데 나 출발하는 날 회사 사람이 먹으라고 줬는데 너 주려고 그냥 가져왔어."
칸쵸를 꺼내서 보여줬다.

"회사사람 남자?"
"응, 당연하지! 하하"
그리고 빅뱅씨디를 꺼내서 건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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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뭐야? 음... lady?"
"하하 넌 여기 큰 글씨 있는데 그거부터 보니? 빅뱅 씨디야. 뭐, 여기서도 팔겠지만 그래도 이 똑같은 건 여기서 안 팔잖아. 것두 역시 기념으로..."
"맞아~ 고마워. 그럼 니가 여기다 싸인해줘."
"하하~ 내 싸인이 무슨 의미야."
"왜? 중요하지~"
"하하 그래? 뭐 나중에 해줄게!"

이런 얘기를 나누며 계단을 내려오는데 태성이가 내게 묻는다.

"야시장 괜찮아? 너 안 가본거 맞아?"
"응 안 가봤어. 좋아!"
"근데 좀 걸을건데 이런 신발 괜찮아? 아니면 호텔가서 갈아신고 갈래?"
참... 이 아이. 내가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이런 꽃 달린 신발을 신었는데. 갈아신으라니...

"아냐, 괜찮아. 습관됐어. 그리고 나 호텔열쇠 없어. 언니한테 있어. 그나저나 너는 괜찮아? 이 책 꽤 무거운데... 어쩌지. 미안, 내가 들까?"
"하하~ 괜찮아. 괜찮아."

택시를 잡았다. 택시 문을 열어서 나 먼저 타라하더니 자기도 따라 내 옆자리에 앉는다. 좋다. 오늘은 내 옆자리에 앉네...

중국에 있을 때 딱 한 번 태성이와 단둘이 택시를 탄 적이 있다. 난 당연히 같이 뒷자리에 앉는 줄 알고 뒷 문을 열었는데 그 아이는 앞 문을 열어 앉았었다. 왜 그랬을까... 한참을 생각했었다. 샤먼대학 서문에서 바이청 바닷가에 가려고 탄 택시였다. 그 밤 역시 더웠고 차창으로 불어오는 바람만은 시원했지만 난 그저... 그 아이의 너무나 자연스런 행동이 우리의 거리를 말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금 쓸쓸해졌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아이 아주 당연한 듯 내 옆자리에 앉는다. 왠지 또 기쁘다.

택시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수언룸 야시장.
태성이도 물건 사러 자주 온다는 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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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성이는 가이드 마인드가 발동했는지 이런저런 물건들을 보며 설명해준다.
정말 안 그래도 되는데.

"맘에드는거 있음 골라봐. 내가 선물 사줄게."
"아냐~ 됐어! 내가 선물준거 부담갖지마. 괜찮아."
"아니야, 진짜야."
"그래? 그럼 루이비똥."
"하하, 여기 루이비똥이 있어?"
"하하~ 그니깐 됐다구!"

마음은 콩밭에 가 있지만 쨌든 태성이가 데리고 와 준 이곳. 좋다. 파는 물건들도 우리나라 인사동 길거리 기념품처럼 조악하지도 않고 시장도 크고 길도 널찍하고 사람도 많지 않고, 옆에는 태성이도 있고. 너무나 좋다. 이것저것 구경하는데 한국 여자애들 무리가 지나간다. 태성이와 난 서로 눈짓을 주고 받고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그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제서야 웃으며 얘기한다.

"난 이럴 때 중국어를 할 줄 아는게 좋아. 내가 한국인이 아닌 척 하는거 재밌어."
"하하~ 왜 그래야되?"
"뭐 그냥~ 재밌잖아. 난 저 사람들 말 알아듣고 저 사람들은 내 말 못 알아듣고. 그런데 내가 아닌 척 해도 생긴거 보면..."
"딱 알아보지~ 한국인이라는거."
"응, ^^"

조금 지나가니까 중국인 가족이 지나간다. 아이는 뭐 사달라고 때쓰고 엄마는 안된다고 아이를 다그친다. 우리가 공유한 무언가가 눈앞에 드러날 때,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모른다. 오직 우리만이 알기에 우린 서로를 보고 빙긋 웃는다. 아, 나 중국어 배우길 정말 잘했어.

대강 구경하고는 밖으로 빠져나왔다. 태국의 밤은 여전히 덥다. 나도 그렇지만 태성이도 더워보인다. 날 보더니 더운 표정으로 묻는다.

"오늘도 참 덥지?"
"응, 그런데 습관 됐어."
"내가 이십년 넘게 살면서 습관이 안됐는데 너는 그게 가능해?"
"하하~ 그런데 난 아직도 한국의 추위에 적응 못했거든."
"하하..."

태성이가 말한 '괜찮은 커피숍'에 가는 길에 차가 왔다갔다하니 조심하라고 몇 번 말하더니 나를 인도쪽으로 걷게하고는 또 묻는다.

"오, 미안. 내 걸음이 빨라서 보폭 맞추기 힘들어?"
"^^ 아냐, 습관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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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spiral 2009.03.28 13:30  
태성이는 자상한 아이네요 ....
필리핀 2009.03.28 13:33  
택시 옆자리로
콩닥거리는 마음을 표현하는
심리묘사!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
카와이깡 2009.03.28 14:33  
설레임 두~~배!
이런 만남 싱그러운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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