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K 4일 - 26일 MK가는 택시 안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여행기

BKK 4일 - 26일 MK가는 택시 안

siasiadl 6 2013

2008년 봄 중국

나보다 한 학기 먼저온 태성이는 나보다 한단계 높은 반 수업을 듣는다.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같은 반 수업을 들을 수도 있었는데 참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같은반 한국인 누나... 이고 싶지는 않아서 그랬나? 아님 수업시간에 어리버리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거나.

그래도 같이 듣는 수업이 하나쯤은 있어야지 싶었다. 매일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치길 기대하는 것도 참 불쌍하잖아? 그래서 나는 수요일 선택수업을 택했다. 솔직히 내 수준에서 듣기엔 많은 무리가 있는 수업이었지만 그건 이미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한시간 반의 수업시간동안 그 아이와 같은 강의실 안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어느날은 그냥 인사만 해서 더더욱 우울해졌던, 어느날은 게이코와 내 자리로 다가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도 하고 또 어느날은 게이코가 내 옆자리에, 태성이가 내 옆자리에 앉기도 했던 그런 행복한 순간이 더 많았던 시간.

우리는 우연히 마주치면 여느 외국인 친구들과 같이 그냥 你好~(니하오-만날때 하는 인사), 헤어질땐 再见!(짜이찌엔-헤어질때 하는 인사, 또 보자는 의미이다.) 이었다. 언제 다시 볼 지 모르는 사이니까.

그러던 어느 화요일 태성이와 학교에서 서문까지 같이 내려온 적이 있다. 서문 앞에서 헤어지며 인사를 했다. 나는 '再见!(또보자)‘ 했는데 태성이는 ‘明天见!(내일 봐)‘이라 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인사에 놀라 다시 돌아봤고 태성이는 늘 그렇든 예쁜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런 태성이를 보고 나도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明天见!"

내일 보자니... 우리가 내일 보자는 인사도 할 수 있다니.

741592722_a6191331_x_006.jpg



26일 MK에 가는 택시 안

이놈의 택시는 뱅뱅뱅 돌아간다며 언니는 분통을 터뜨렸지만 난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조금 불안했다. 혹시 태성이를 못 보는 건 아닐까. 아냐, 연락 오겠지... 오겠지... 했지만 이내 불안해져서 문자를 보낸다.

- 태성, 너 언제 시간 되? 밤에 괜찮으면 내가 너 있는데로 갈게.

비굴하군. 그래도...
그래, 뭐 이렇게 보내놓으면 어떻게든 연락이 오겠지. 피곤해서 아무 생각없이 차 창밖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웨이, 니하오!"
"웨이, 안녕, 너 어디야?"
"어, 나 지금 택시 안이야. 밥먹으러 가려구. 넌?"
"나 지금 가족들이랑 밥 다 먹었어. 일본 대사관에 갈거야. 비자땜에... 언제 보지?"
"아... 그래? 나 밥 먹고 일단 호텔에 다시 들어갈거야. 너 비자 다 받고 끝나면 연락해."
"그래 알았어. 一会儿见(이따 봐)."

一会儿见...

기쁘다. '내일 보자!' 이 한마디에도 기뻐 어쩔 줄을 몰랐던 나였는데. 머리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하는데 마음은 자꾸만 조금 더 원한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욕심이 난다.

6 Comments
바나나마토 2009.03.27 08:19  
사진은 수요선택수업의 그 강의실..인가요.
남들은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사진이겠지만,
글쓰신 분은 저 사진 볼 때 마다 마음이 쿵쾅거리고, 거기에서의 기억 몇 백 장면이 눈 앞에 휘몰아치겠지요...

이따보자,
한국에 돌아가서도 수없이 되뇌이게 될테지요, 아마..?

여행기 잘 읽고 있어요.
저에게도 온 마음을 다해 누군가를 생각했던 시간들이 있었고,
냠냠이 님의 글 읽다보니
그 기억들이 하나씩 다시 살아나 마음을 찔러대네요.
필리핀 2009.03.27 14:21  
아우~ 너무 감질나요...
왕창 좀 올려주셔용~~~

siasiadl 2009.03.27 17:03  
친구한테 이런저런 얘기들을 해줬거든요. 그랬더니 친구가 이러더라구요.

"이건 뭐 남자친구 자랑이면 부러워나 하겠는데..."
"왜, 그냥 넌 격려를 해주면 되. 절절하잖아~"
"그래, 너무 절절해서 눈물이 난다.ㅋㅋㅋ"

다들 많이 안쓰러워 하시는 듯...하하~;;
그래도 전 제 얘기 저만 재밌는줄(;;) 알았는데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예요~^^
카와이깡 2009.03.27 20:41  
님의 커플 응원하는 사람 많네여~
어여 만남의 정점을 이루길!!
홧팅여~
라비스 2009.03.27 21:41  
님 글을 읽으면서 예전의 저의 모습이 생각이 나네요~
저는 대학때 뉴질랜드로 어학연수 갔었는데.. 한 반이었던 일본 남학생한테 한 눈에 반해서 아침잠 많은 제가 옆자리 앉으려고 매일 새벽 일어나 꽃단장하고 학교 갔던 기억이 나요.. 어쩌다 한번 지나치거나 말을 하게 되면 얼마나 행복하던지... 우연이라도 자주 마주치길 바랬었죠.. 그렇게 같은 반 친구로 지내다 어느날인가. 저보고 주말에 영화보자고 해서 엄청 흥분했던 기억이 나네요.. ㅋㅋㅋ 그때 함께 본영화 제목만 기억이 나요 ^^
 그 이후 차츰 친해져서 그 친구한테 수영도 배우고, 같이 공부하고 했었는데...
 그 친구 만난지 거의 7년이됬는데 서로 나라에 몇번씩 여행가서 만나고.. 현재는 좋은 친구로 잘 지낸답니다.. 지금은 처음 만날때의 떨리고 설렘은 없지만 그때보다는 더 편안한 관계가 된 지금이 더 좋아요....
 님도 너무 마음을 들킬까 조마조마 하지마시구요... 적당히 마음도 보여주시고, 좋아한다고 표현도 해야 나중에 후회 없을거예요. 사랑이란게 숨기려 한다고 숨겨지는건 아닌거 같아요. 태성이도 님이 좋아하고 있다는거 눈치채서 알고 있을거 같아요 ^^  태성이를 향한 님의 모습이 참 순수하고 예뻐 보여요..

 그때보다 나이를 먹은 지금의 전 그 당시의 순수하게 사랑하던 그때가 그리워요..

 님 화이팅!!
siasiadl 2009.03.27 23:07  
태사랑 역시 멋진 싸이트예요!! >_<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