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K 4일 - 26일 MK가는 택시 안
2008년 봄 중국
나보다 한 학기 먼저온 태성이는 나보다 한단계 높은 반 수업을 듣는다.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같은 반 수업을 들을 수도 있었는데 참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같은반 한국인 누나... 이고 싶지는 않아서 그랬나? 아님 수업시간에 어리버리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거나.
그래도 같이 듣는 수업이 하나쯤은 있어야지 싶었다. 매일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치길 기대하는 것도 참 불쌍하잖아? 그래서 나는 수요일 선택수업을 택했다. 솔직히 내 수준에서 듣기엔 많은 무리가 있는 수업이었지만 그건 이미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한시간 반의 수업시간동안 그 아이와 같은 강의실 안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어느날은 그냥 인사만 해서 더더욱 우울해졌던, 어느날은 게이코와 내 자리로 다가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도 하고 또 어느날은 게이코가 내 옆자리에, 태성이가 내 옆자리에 앉기도 했던 그런 행복한 순간이 더 많았던 시간.
우리는 우연히 마주치면 여느 외국인 친구들과 같이 그냥 你好~(니하오-만날때 하는 인사), 헤어질땐 再见!(짜이찌엔-헤어질때 하는 인사, 또 보자는 의미이다.) 이었다. 언제 다시 볼 지 모르는 사이니까.
그러던 어느 화요일 태성이와 학교에서 서문까지 같이 내려온 적이 있다. 서문 앞에서 헤어지며 인사를 했다. 나는 '再见!(또보자)‘ 했는데 태성이는 ‘明天见!(내일 봐)‘이라 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인사에 놀라 다시 돌아봤고 태성이는 늘 그렇든 예쁜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런 태성이를 보고 나도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明天见!"
내일 보자니... 우리가 내일 보자는 인사도 할 수 있다니.
26일 MK에 가는 택시 안
이놈의 택시는 뱅뱅뱅 돌아간다며 언니는 분통을 터뜨렸지만 난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조금 불안했다. 혹시 태성이를 못 보는 건 아닐까. 아냐, 연락 오겠지... 오겠지... 했지만 이내 불안해져서 문자를 보낸다.
- 태성, 너 언제 시간 되? 밤에 괜찮으면 내가 너 있는데로 갈게.
비굴하군. 그래도...
그래, 뭐 이렇게 보내놓으면 어떻게든 연락이 오겠지. 피곤해서 아무 생각없이 차 창밖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웨이, 니하오!"
"웨이, 안녕, 너 어디야?"
"어, 나 지금 택시 안이야. 밥먹으러 가려구. 넌?"
"나 지금 가족들이랑 밥 다 먹었어. 일본 대사관에 갈거야. 비자땜에... 언제 보지?"
"아... 그래? 나 밥 먹고 일단 호텔에 다시 들어갈거야. 너 비자 다 받고 끝나면 연락해."
"그래 알았어. 一会儿见(이따 봐)."
一会儿见...
기쁘다. '내일 보자!' 이 한마디에도 기뻐 어쩔 줄을 몰랐던 나였는데. 머리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하는데 마음은 자꾸만 조금 더 원한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욕심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