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마흔살, 애늙은이 열세살의 동행 11
아들녀석의 개학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불구하고 여행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큰일이다. 며칠전 마트에서 손난로를 바라보다가 겨울 동남아 여행에서 사용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으로 한박스나 사버렸다는.... 내가 왜이러지???
1월 2일
무슨일이 있어도 도이수텝에 가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며칠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이놈의 몸뚱아리가 너무도 느긋한 생활에 재빨리 적응해 버리는 바람에 눈뜨니
체크아웃 시간이다.
아침먹고 나니 도이수텝 가는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지고 귀찮다.
아~~ 몰라... 몰라...
그냥 시내 돌면서 빼먹었던 사원이나 둘러보다가 토요시장 보고 방콕으로~~
사원들은 거의 다 본 듯한데 한군데 빠진곳이 생각나서 무조건 갔다.
손에 들려 있는 지도는 햇빛가리개일뿐.... 저 멀리 사원인듯한 지붕 꼭대기가 보여서 뒤도 안보고 정~~말 열심히 걸었다.
"아들! 나를 한번만 믿어봐.... 저기가 분명해"
라고 완전 잘난척 해가면서.
내가 못살아. 분명히 사원처럼 보였는데, 가까이 가보니 호텔이다.
뭐야~~ 아니 호텔을 왜 요모양으로 지어 놓은거야? 사람 헷갈리게...
무조건 지붕만 쳐다보면서 걸어 왔더니,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할수 없이 네비의 도움을~~
"아들아~~ 여기가 어디냐? "
눈초리가 따갑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네 엄마인것을~~~
이름모를 탑(?) 귀퉁이 그늘에 내겐 쓸모없는 지도를 방석 삼아 앉아 있는데, 옆으로 스쳐가는
낯익은 동양인의 모습이..... 넌 누구냐? J 다.
"야~~ 너 어디가? "
"누나? "
J와 우린 필연이 분명하다. 정말 이동네엔 외국인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어젯밤에 밥먹으러 가면서 알려줬던 삼왕상을 찾으러 길을 나섰다가 길을 잃었단다....
삼왕상은 반대편에 있는데, J 도 나못지 않은 길치임이 분명하다 ㅎㅎ
울아들이 감정표현을 잘 안하는 편인데, 형을 만난것이 정말로 반가운 모양이다.
나는 뚝 떨어뜨려 놓고 형하고 둘이서만 앞장서서 삼왕상까지 데려다 준다. 친절도 하지...
뒷담화도 하고 있네
"형~~ 엄마땜에 못살겠어요. 길치이면서 남의 말은 듣지도 않고 그냥 막 가요....
호기심은 얼마나 많은지 골목길은 다 들어가서 어딘지도 모를곳에 와 있다니까요..."
짜식!!! 진짜로 자기 형인줄 착각하는 모양이다. 조만간 의형제 맺는거 아닌지...
오늘 난 태국에서 생활한지 열흘이 넘은 J 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선물했다.
"대형 요쿠르트"
아들과 내가 아무리 얘기를 해도 믿지를 않는거다. 그렇게 커다란 요쿠르트를 본적이 없다고...
편의점에 가면 널려 있는데, 물사러 갈때 눈감고 다닌거니???
세븐일레븐에 델꼬 가서 직접 보여 줬다. 27살이나 먹은 청년이 요쿠르트를 그렇게 좋아하다니...
꼬마 요쿠르트와 비교샷도 한장!
아들과 요쿠르트 러브샷도!
누가 볼까 창피스럽더만..... J 는 울아들보다 더 해맑게 요쿠르트 사랑을 표현하더라.
형따라서 라오스로 다시 갈테니 편도 항공권을 끊어 달라는 아들의 말을 무시하고
진짜로 작별인사를 했다...
난 원래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연락처를 주고 받거나 하지는 않는다.
우연한 인연이고 추억으로 만족할 뿐이었다. 그러나 J 는 예외다.
전번과 멜을 알려주고 반드시 연락하라고 협박했다.
J는 지금 베트남 므이네에서 비싼 물가 때문에 식겁하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아~ 보고싶다!!!
메뚜기처럼 이곳 저곳을 돌던 우리는 드디어 토요시장으로 갔다.
썬데이 마켓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물건 고르기는 오히려 편하다고 해서 가봤다.
길을 쭉~~ 따라서 열리기 때문에 나같은 길치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다.
가격은???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싸다고 느끼지 못할 만큼 많이 부른다.
딱히 맘에 쏙 드는 물건이 있는것도 아니구, 흥정하기도 귀찮구해서 구경만 했다.
쇼핑 좋아하는 아들도 여기에선 쇼핑대신 간식 먹기 삼매경에 빠져서...
아이스크림으로 시작해서 스프링롤, 과일쥬스, 오징어 꼬치, 찹쌀밥(요건 한국의 약식 같다)...
더 많이 먹은것 같은데 기억이 잘..... 얘는 저녁 굶었다!
맡겨논 짐을 찾아서 방콕행 버스 타러 아케이드로 go~
쌩테우에서 득템했다. 누군가 포테이토 과자를 떨구고 갔는데, 줍는 사람이 임자지 뭐~~
나 한국에선 떨어진 100원짜리 동전도 잘 안줍는다.
그런 내가 과자 한봉지 주웠다고 좋아라 하다니.... 그지가 따로 없구나!!!
치앙마이에서 휴가를 보내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은건지, 원래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케이드근처가 꽉 막혀서 꼼짝도 하지 않는데다, 안에도 사람이 진짜루 많았다.
내가 탈 버스가 들어올 승강장 입구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데.... 이상하다?
9시 20분 버스를 예약했는데, 9시 10분 버스가 떡하니 나타난거다. 내것과 똑같은 VIP 999.
그사이에 버스시간이 바뀐건가? 내가 승강장 번호를 잘못 안걸까? 지금 9 신데 어떻하지?
관계자(?)인듯한 사람에게 티켓을 내밀었더니, 이 아저씨가 잘 모르는 듯한 표정이다....
그 다음 행동이 기가 막혔다....
어떤 사람의 안경을 자기가 뺏어서 티켓을 보더니 옆 승강장을 알려준다ㅎㅎ
웃겨 죽는줄 알았다. 아저씨가 눈이 나빴던거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안경으로 글씨가 보이나?
어쨌든 친절한 아저씨덕에 치앙마이의 마지막이 더욱 아쉬웠고 그리움도 두배가 되었다.
말로만 듣던 VIP 버스는 대박이다. 너무 좋아서 사진 찍고 난리를 쳤다.
고장났던 카메라가 잠깐동안 살아나는 바람에~~ 마치 비행기 비지니스석인것처럼 위장했다.
울아들이 친구들한테 비지니스 탔다고 뻥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넓직한 좌석. 짧은 내 다리는 편안하게 뻗을 수 있고. 따뜻한 담요가 있고,
에어컨은 내 맘대로 조절 가능하니 춥지도 덥지도 않다.
예쁜 유니폼 차려 입은 언니가 물도 준다. 쥬스도 주고 빵도 주고 커피도 준다.
12시까지 비디오 한편 틀어준다. 태국어 더빙으로... 숙면에 쬐끔 방해 되지만
비디오 끝나면 곧바로 취침 모드.... 실내등 꺼 준다.
첫번째 휴게소에서 식사를 한다. 사실 난 몰랐다. 버스 티켓에 식사 쿠폰이 있는건 봤는데,
언제 밥을 먹는지 아무도 말해 주지 않으니 모를 수 밖에.... 이 버스에는 외국인은 오직 우리뿐..
아무 생각 없이 화장실에 다녀 오는데,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분이 휴게소 식당안에서
밥을 먹고 있는걸 봤다... 순간, 내 식사 쿠폰을 써야 할 곳이라는걸 알았다.
난 밥 먹기 싫은데? 돈으로 바꿔주나? 가게안 음료수 코너에 사람들이 쿠폰을 들고 있다....
쿠폰 금액만큼 음료수를 고르면 끝~~ 좀 비싼거 고르면 현금으로 더 주면 되는거다.
난 쥬스와 사이다를 골랐다고 울아들은 알고 있다. 얘가 차에서 시체놀이 하느라 바빠서....
사실은 맥주 한캔 골라서 가방에 숨겨두고 ㅋㅋ 완전범죄ㅎㅎ
첫번째 휴게소 이후에 차가 또 멈췄는지 그냥 쭉~~ 갔는지 난 모른다.
내가 눈을 떴을땐 이미 방콕에 들어서고 있어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