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마흔살, 애늙은이 열세살의 동행 10
끝없는 기억력의 상실로 이젠 정말 가물가물~~~
이럴줄 알았으면, 여행기간 동안의 행적을 꼼꼼히 기록해 두는건데....
내 수첩에 남은 여행의 흔적은 딱 한가지... 어느 식당에서 뭘 먹었는지, 얼마인지 뿐이다.
시간나면 여행중 돌아다닌 식당과 음식에 대한 품평을 한번 해볼까???
1월 1일
요란한 불꽃놀이를 끝으로 2009년을 마무리했던 우리는 시체놀이중....
하긴, 하루종일 끌려다닌 트레킹에 온몸이 파김치였는데, 12시가 넘도록 놀았으니~~
부지런한 울아들도 시체놀이 삼매경...
시체놀이를 끝내고 우아하게 브런치 마치고 나니, 해는 한가운데 걸려 있다.
오늘은 뭐하고 놀지?
온천가는 길에 잠시 스쳐 지나갔던 와롯롯시장에서 놀기로 했다.
연휴기간이라 그런지 상점들도 문을 거의 닫아서 거리가 조용하고 한가롭다.
지금껏 내가 경험한 여행중 가장 조용한 날이다. 심심하다.
다행히 시장은 정상 영업중.
그냥, 우리네 동네 시장인데 규모가 좀 큰 것 같다.
사실 시장이 뭐 볼것이 있는건 아닌데,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재미 아니겠어?
시장이라 그런가 물가가 아주 맘에 든다.
파인애플이 10밧에 평소 먹던양의 두배다! 울아들 신났다.
여행시작후 하루도 빠짐없이 파인애플 챙겨먹던 녀석이 그냥 지나칠리 없지.
내가 좋아하는 어포.
요것도 양은 2~3배는 많아 보이는데 가격은 딸랑 20밧.
왕창 사가지고 쟁여 놓고 싶었지만, 일단 하나만 사서 맛을 보고 내일 다시 와야지~~~
그러구선 다시 못 갔다. 지금 생각해도 아깝다. 나 어포 진짜루 사랑하는데. 술안주로 딱!!!
구석 구석 돌다보니 장난감 도매상가 같은 곳까지~~
별다른 지도도 없는데다 천부적인 길치 감각을 자랑하는 내가 어쩌다 보니 가게 된곳이다.
난 여기서 추억의 장난감 많이 봤다.
어렸을때 가지고 놀던 종이 인형 옷 갈이 입히는 것도 보구,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잡하기 짝이 없는 여자아이 인형... 그때는 그것도 귀했지... 좀 사는집 애는 마로니 인형을 들고 나와 엄청스럽게 목에 힘주던 시절~~
울아들도 추억의 장난감을 발견했다.
라면땅같은 과자에 플라스틱 장난감이 하나씩 들어있는거...
"엄마, 이 장난감을 갖으려면 애들이 얼마나 많은 과자를 먹어야 하는지 알아?"
"내 어린시절에 스티커 모으려고 빵 먹던 기억이 나네..."
나 참 기가 막힌다. 불과 몇시간전에 14살된 녀석이 할 소린 아닌데? 만으로 12살이구나...
그리고 아들이 봉지 뜯어 스티커만 홀랑 챙긴 그빵 내가 다 먹었다... 그래서 이렇게 부은건데.
대충 시장에서 놀다가 한가한 길거리 배회도 하고 눈에 띄는 사원 구석 구석 둘러보면서,
평온한 하루를 보내는 듯 했다. 그때가지는....
"왓째디 루앙"이라는 사원에서 아들이 사고 쳤다..
초절정 건망증에도 불구하고 사원이름을 기억하는걸 보면, 사고 친거 맞는거다.
"아들~~ 여기가 사진이 잘 나올것 같......"
말을 끝내기도 전에 무슨 소리를 들은듯 했다. 그러구선 얌전히 서 있는 아들과 그옆에 역시나
얌전히 땅바닥에 누워있는 카메라. 카메라가 땅바닥에서 뭘하는걸까?
항상 사진찍기가 취미인 아들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난 가끔 인증샷만 한컷!
깜작 놀라 카메라를 살펴보니 "렌즈 에러 !"
메모리는 멀쩡한가보다. 에구 다행이다..... 아니지, 요거 내동생 남편이 아끼는거 빌려준건데....
카메라 동호회에서 활동한다는 J 의 말에 의하면 DSR 기능을 갖춘 비싼 카메란데....
카메라의 생명은 렌즈 아니겠는가? 암것도 모르는 내가 생각해도 레즈 에러는 작은 일이 아닌듯.
울아들 자기가 사고친거 알고는 울기 직전이다. 혹시 메모리가 잘못됐을까봐서~~~
솔직히 처음에는 화 쬐금 냈다. 하지만, 애가 잔뜩 풀죽어 있는걸 보니 안쓰러워서...
"이런걸 액땜이라고 하는거야..... 1월 1일에 이렇게 안좋은 일을 겪은걸 보니
우린 이제 남은 364일동안 좋은 일만 있을꺼야. 잊어버려. 그리고 메모리는 멀쩡해"
라고 위로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좋은 엄마다. 카메라 수리비는 49500원 나왔는데,
아들이 30000원 부담했다. 나머지는 보호자인 내가 부담하구...
친정엄마는 아들한테 카메라 수리비 받는다고 나보고 나쁜 엄마라고 하는데, 무슨소리!
자기 잘못은 책임을 져야지. 이젠 중학생인데...
대형사고 한건 친후, 어제 약속한대로 J를 만났다. 언제나 우연히 만나기만 하다 약속 정하고 만나려니 왠지 어색한건 뭐지?
며칠전에 아들과 난 태사랑 여행기에 올라온 맛집을 미리 알아 봤었다.
삼왕동상 뒤쪽에 있는 아주 커다란 현지인 식당인데, 당최 영문 이름이 없어서....
삼왕동상에서 10여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을 길치인 나때문에 1시간 30분만에 찾았던 기억이 ㅋㅋ
어쨌든, 오늘은 미리 봐둔 길이니까 한번에 go~
물론 난 어느길로 가는지 모른다. 든든한 네비 울아들이 알아서 가니까.
식당 규모가 왠만한 예식장 피로연장만큼 크다. 예약이 되어 있는 자리도 한가득~
1월 1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엄청 많다. 가족끼리 오붓하게 식사할려고 온듯한데 분위기가 완전 도떼기 시장 저리가라 한다. 정신도 없고 시끄럽고 날을 잘못 잡은 듯하다.
맛있는거 사주고 싶었는데, J 의 촌스러운 입은 볶음밥...
여행 내내 볶음밥 먹었다면서?? J 가 델꼬온 B 는 볶음국수... 으이구 내가 못살아.
그럼, 고급스런 우린??? 그이름도 유명한 "푸팟풍커리" ㅎㅎㅎ
촌스런 이녀석들 "푸팟풍커리"가 뭔지 모르고 들어보지도 못했단다. 그래서 내맘대로 주문했다.
사실 난 푸팟풍커리를 좋아하는데, 아들하고 둘이만 먹기엔 양이 조금 부담스러워서 못 먹고 있었다. 거리에서 싼것만 먹던 얘들을 위해 볶음국수는 특별히 새우들어간 거루.... 고급스럽게.
볶음밥엔 게살을 넣어서.... 내가 게살을 좋아하니까 ㅎㅎ
똥양꿍을 먹고 싶었는데, 어제 트레킹에서 점심 식사때 보니 J 가 향신료를 못먹더라...
식당에 사람이 많아서 써비스는 포기해야 했다. 밥 한공기 추가 하면 옆사람이 반공기쯤 먹었을때야 도착한다. 성질 급한 사람같으면 추가 추문은 아예 하지도 말아야 할듯.
어쩜 그렇게도 맛있게 잘~ 먹는지 너무 예쁜것들....
여행을 하다보면 마음이 맞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마음이 가는 친구가 있다.
나에게 J 는 마음이 가는 친구다. 그냥 뭐하나라도 챙겨주고 싶은 그런 친구...
이젠 여행지에서의 만남은 끝인듯 싶어서, 내가 다녀왔던 라오스와 베트남에 관한 정보를 간략히 적어주고 베낭묶을 수 있는 와이어도 챙겨줬다. 물갈이할때 먹으라고 녹차티벡도 함께...
내 막내 동생보다 3살이나 어린 J 가 무사히 여행을 마치길 바라면서~~
내일이면 난 방콕으로 가니까 왠지 섭섭해서 밥 한끼는 꼭 챙겨주고 싶었던 건데...
그런데, 밥 한끼 얻어 먹어버렸다. 화장실 간다던 J 가 계산을 해버린거다.
앞으로 남은 여행은 어떻하려구 그렇게 돈을 펑펑 쓰는건지... 내 돈은 절대 받지 않는다.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저녁을 함께 한 후 아쉽지만 이별했다.
정말루~~ 그냥 잘가라는 인사만하고 헤어졌다.
울아들이 많이 섭섭해 했지만, 여행지에서 만나고 헤어지는건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오늘따라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운건 J 와의 작별이 아쉬워서 일까? 아니면,
내일이면 떠나는 치앙마이와의 이별이 이쉬워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