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극.복.여행기] vol.00 - 태국에 닿기까지...
#1. 실연[失戀] : 연애에 실패함 [broken-hearted]
“이게 뭐야?”라고 되물었어도 내밀어진 것이 청첩장이란 것은 알고 있었다.
그 달에만도 벌써 두 개나 받았을 만큼 청첩장은 더 이상 특별할 게 없었지만,
이걸 내민 상대가 5년을 사귄 남자친구였던 만큼 난 어떤 의미로든 간에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이 너무나 내 취향이라 그때까지도 눈치가 발치에 가 달려있던 난
그 청첩장의 의미가 청혼인 줄 알고 가슴이 뛰었었다.
하지만 아무런 대꾸 한 마디 없이 별 것도 없는 창밖만 보며 시선을 피하는 그와
그동안 수도 없이 불러왔던 그의 이름 석 자가 찍힌 신랑 측 아래의 신부 측 이름을 보고 나서야,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가까스로 파악할 수 있었다.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아 눈을 크게 뜨고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하고 나서도
난 “정말 이게 뭐냐고...”라고 밖엔 물을 말이 없었다.
한참의 무겁고 칙칙한 침묵 끝에 가까스로 입을 뗀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첫째, 나의 어머니는 너를 싫어하셨다.
둘째, 그런 어머니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선을 봤다.
셋째, 마지못해 본 선이었으나 상대가 마음에 들었다.
넷째, 너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인 조건은 그녀가 더 맞는 것 같다.
다섯째, 그래서 너와는 5년을 사귀었으나 결혼은 그녀와 한다.
여섯째, 죽일 놈인 거 안다, 미안하다.
아...! 이래서, 경구 오빠가 목에 핏대 세워가며 “비겁한 변명입니다!”를 외쳐댄 거구나.
“네가 그동안 줄기차게 떠들어대던 사랑에는 의리란 것도 없든?
세상천지에 지 애인한테 다른 여자랑 결혼한다고 청첩장 주는 놈이 어딨냐? 넌 순서란 것도 몰라?
선 보고 청첩장 찍고 이딴 짓 하기 전에 헤어지는 게 제일 먼저였어야지!!!
왜, 아예 혼인신고까지 하고 나서 차라리 등본을 떼다 주지 그랬어?!
비겁하게 똥 싸지를 거 다 싸지르고 구린내 나는 뒤처리는 나한테 다 떠넘기고 바지 올리면 끝이냐?!”
어안이 벙벙하고 황당하다 점점 분이 차올라 견딜 수가 없어서 앞에 놓인 물 잔을 들어,
크게 잘못하고 혼날까봐 잔뜩 겁먹은 아이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내 눈치만 살피는 그의 우유부단한 얼굴에
들입다 찬물을 끼얹어 주고 일어나 돌아섰다.
,라는 쏘so쿨cool한 모습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내게 닥친 현실은 드라마 속의 한 장면이 아니었기에 저런 준비된 대사 따위 있을 리 없었고
쏘쿨은 커녕,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등잔 밑이 어둡다, 죽 써서 개준다, 다 된 밥에 코 빠트리다’
등의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로 멍 때리다 끝까지 의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너도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 라는 진부해 빠진 말을 마지막으로
먼저 가버린 그의 망할 찻값까지 내야했다.
근래에 들어 부쩍 바쁘고 무심하던 그의 행보가 어쩐지 미심쩍었으나
요즘 같은 취업난에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자리 잡느라 힘들어 그럴 테지, 라고
이해하려 애쓰던 내 마음은 지나친 오지랖이었으며
함께한 세월과 정을 지나치게 믿고 당연히 결혼하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방목했던 애인에게
다른 여자의 이름이 찍힌 청첩장을 받는 것으로, 희로애락으로 가득했던 나의 5년 연애는 마침표를 찍었다.
#2. 맞선 : 결혼할 당사자들이 직접 만나서 보는 선 [meeting with a prospective marriage partner]
그 날을 기점으로 12박 13일쯤 매일같이 술을 퍼부으며 디오니소스와 맞짱을 뜨던 나는
결국 보름도 채우지 못하고 나약하게 14일째 아침 응급실에 실려가
급성 장염 판정을 받고 입원실 신세를 지게 되었다. (하마터면 디오니소스 옆에 신전 짓고 살 뻔 났다)
예기치 못한 입원으로 인해 내 핸드백에 그대로 쑤셔 박혀 있던 그의 청첩장이,
병원에 있는 동안 필요한 나의 물건을 챙겨다 주려했다던 완전 과잉친절한 우리 언니의 손에 발견되어,
성질 한번 불 뿜는 용가리처럼 시원시원하신 모친께 고스란히 전달되면서,
그와 헤어졌다(=채였다)는 사실은 물론이며
가족들에게만큼은 무덤까지 가져가리라 마음먹었던 실연의 이유까지 허무하게 까발려지고야 말았다.
이번 추석에도 인사 와서 내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던 그의 변심에 대한
심한 충격과 배신감으로 당장 쫓아가 그의 다리몽댕이를 분질러 버리겠다고 이를 가시는 모친을
닥치는 대로 선봐서 어떻게든 그놈보다 먼저 식장 들어가겠다는 조건으로 겨우 말린 나는
그날 밤 내 인생에 중매결혼이란 없다, 라는 철옹성 같던 신념(?)을 변기물에 떠내려 보내야했다.
그리고 퇴원과 동시에 내 인생의 bgm은 맨날 술이야, 오늘도 술이야에서 맨날 선이야, 오늘도 선이야로 바뀌었으며
그날도 난 맞선 장소로 조금도 내키지 않는 걸음을 향했다.
“서른이 넘으신 거 치고는 꽤 동안이시네요.
근데 키가 좀 작으시네요, 전 키 작은 여자는 만나 본 적이 없는데...”
- (나불나불) 과거 연애사 중략.
“전 지금 회사에 4년차라 연봉이 XX 정도 되는데, 그쪽은 어느 정도 되세요?”
- (나불나불) 잘난 척 중략.
“전 XX 쪽에 전세 아파트 하나 해뒀는데, 혼수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계세요?”
- (나불나불) 또 잘난 척 중략.
“결혼하면 맞벌이 하실 거죠? 요즘 남자 혼자 벌어서는 집장만 하기 힘들잖아요.”
- (나불나불) 이상한 설교 중략.
“그나저나 서른이 넘어서 결혼하면 애부터 가져야 할 텐데, 큰일이네요.”
이런 말까지 들어가면서 결혼이란 걸 해야 하는 건가...
솔직히...비참했다. 갑자기 눈가가 뜨거워지며 바보처럼 한 순간 왈칵 눈물이 나버렸다.
한 사람을 사랑한 것뿐인데, 나는 문득 혼자 남겨져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낯선 이들에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나이 먹은 여자가 되어버린 게 너무 억울하고 서글펐다.
그때, 불현듯 그곳이 떠올랐고 그곳이 그리워졌다.
후끈하고 더운 열기 속에서도 자유의 바람이 멈추지 않는 거리.
모두가 낯선 이방인이지만 여행이라는 공통분모로 친구가 될 수 있는 거리.
아무도 나이, 직업, 연봉 따위의 사회적 기준에 연연하지 않는 거리.
차가운 비어 싱 한 병에 하루 종일 행복해 질 수 있는 거리.
바로, 카오산 로드.
단 하루만이라도, 때(가급적 서른 이전)가 되면 적당한 자리(전세 아파트라도 있는)에 맞춰 시집을 가고
그때부터는 삶의 지표가 육아와 내 집 장만이 표준이 되는 삶을 암묵적으로 강요받는
대한민국의 서른 살 여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최소한, 한때는 당연히 내 인생의 반려자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5년을 사랑하고 솔직히 지금도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되는 그 순간만큼은
같은 하늘 아래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놈의 따귀를 수천 번은 처 올리고 싶던 분노와
알고 보면 그 놈 고자라고 말도 안 되는 깽판이라도 부리고 싶은 객기를 밑천 삼아
무작정 카오산으로 가기로 한다.
눈치 보지 않고 숨 쉬고 싶어서.
맘 놓고 더는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고 싶어서.
다시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할 수 있는 열정을 되찾고 싶어서.
어딘가에는 평생 내 곁에 있어줄 내 사랑도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되찾고 싶어서.
그리고, 돌아올 때는 정말 행복하게 웃고 싶어서.
#3. 모정[母情] :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정 [maternal love]
여행을 갈 때면 한 일주일 전부터는 짐을 쌌다. 항상 빈 가방을 열 때의 마음은 꼭 필요한 것만, 이지만
막상 챙기기 시작하면 이것도 필요할 것 같고 저것도 필요할 것 같아서
쌌다 풀렀다를 열 번은 반복하고 나면 내 짐은 언제나 이민자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든 걸 포기한다. 멋이고 뭐고 귀찮다.
한류의 중심인 대한민국 여성의 아름다움은 어리고 잘빠진 다른 여성 동지들이 힘써 줄 거라고 생각하고
가서 입다 버리고 와도 아쉽지 않을 수준의 편하고 오래된 옷가지만 대충 챙겨 넣고 있는데
모친이 들어오셔서 언제나처럼 짐 수색을 하신다.
언제나 쓸 데 없는 짐들로 미어터지려는 내 짐을 보실 때면,
모친 : 니한테는 무슨 짐 못 싸들고 댕겨 죽은 귀신이 붙었는갑다,
자고로 여행은 가푼한 게 최곤데 니는 무슨 장사치 맹크롬 뭔 놈의 짐이 이래 많노!
(색조까지 챙겨진 화장품을 보면) 하이고, 호박에 백날 색칠해 봐야 호박잉기라. 빼라마.
(원피스 종류의 정장을 보면) 니 무신 외교하러 가나? 이기 아직 할부도 안 끝난 거 아이가? 빼라마.
이랬던 모친이었기에 처음으로 홀랑한 내 트렁크 안을 보고 만족스러워 하실 줄 알았더니만,
이번에는 또 반대다.
모친 : 화장품은 잘 넣었나? 니 서른 넘드니만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 하다.
니는 얼굴이 타믄 섹시하게 까무잡잡한 게 아이라 누리끼리하니 촌빨 나니까
맨 얼굴로 대니지 말고 썬크림이랑 듬뿍듬뿍 바르래잉.
이 꼬질꼬질한 옷들은 또 뭐꼬? 아니, 영감 등짝 긁어대끼 듯이 벅벅 카드 긁어싸트만
좋은 옷 다 놔두고 이 넝마 같은 옷들은 와 싸들고 가노?
니 실연당했다고 남의 나라까정 가서 광고 하고 싶나?
자고로 맴이 초라할 때는 의복이라도 때깔 나야 들 후지게 보이는 기다.
이딴 거 다 빼불고 젤루 좋은 걸루 쫙쫙 빼입고 가서 태국 가스나들 야코 좀 직이봐라.
해서 나의 트렁크는 이번에도 여전히 미어터지기 직전까지 쑤셔 넣고야 겨우 지퍼를 닫는다.

국적 : 한국인 입양아 여자친구의 고향과 부모님을 찾아주겠다고 온 아메리칸.
관계 : 우리 집 완소 형부가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때 절친했던 룸메이트.
4년 전 한국에 오면서 현재 언니 부부 내외 집에서 함께 기거.
그런 이유로 이제는 제사, 명절, 결혼식, 휴가 등의 우리 집 행사에 당연히 함께 할 정도로
거의 한 가족 같은 분위기의 동갑내기 친구.
첫인상 : 또래 미국남자가 온다고해서 브래드 피트 > 다니엘 헤니 > 줄리엔 캉 등의 훈남을 기대하였으나
커다란 배낭을 매고 체크 남방에 무릎까지 양말을 올려 신은 한 마리의 흰 곰 같았음.
성격 : 부지런하고 근심걱정이 길지 않으며 화내는 걸 본 적이 없는 유순한 성격.
말만 할 줄 알면 친구가 되는 친화력의 소유자. 이 동네에서 15년을 산 나보다 아는 사람이 더 많음.
한국화 : 1. 두부 넣은 김치찌개와 상추에 마늘 잔뜩 넣어 먹는 삼겹살을 좋아한다.
2. 맥주보다 소주를 훨씬 더 좋아하고 술에 취하면 노래방에 가고 싶어 한다.
3. 유창하지는 않아도 쓰고 읽고 말할 줄 알고 웬만한 말은 거의 다 알아듣는다.
4. 한국여자와 결혼해서 한국에서 살고 싶어 한다.
이름 : David. 김덕수.
(한국에 온지 한 달 즈음 어느 날)
David - 나 한국 이름 갖고 싶어, 한국 이름 지어 줘.
나 - (이리보고 저리봐도 시골스럽게 생겼기에) 김덕수, 라고 해.
김은 우리 집안 성씨고, 덕수는 오래전부터 쓰던 좋은 이름이야.
David - (아이처럼 좋아하며) 진짜? 고마워, 나는 이제 김덕수야.
(한 달 즈음이 더 지난 어느 날)
David - 나 김덕수 안 할래. 다른 이름 지어 줘.
나 - (이 자식 귀찮게 왜이래 또) 왜?
David - 내가 김덕수, 라고 하면 사람들이 자꾸 웃어.
그래서 왜 웃냐고 물어봤더니 젊은 사람들은 안 쓰는 촌스러운 이름이래.
나 - (그러니까 너한테 딱이지, 짜샤...) 그러니까 특색 있고 좋지, 한 번 들으면 기억에도 확 남고.
그리고 덕수라는 이름은 인품이 너그럽고 빼어나다, 라는 뜻(즉석에서 지어낸)이거든?
너한테 (외모에) 딱 어울리지 않아?
David - (완전 뿅갔다) 정말??? 고마워, 역시 좋은 이름이구나.
나 - (미안하지만 아무리 봐도 넌 김덕수처럼 생겼어)
이후 지금은 덕수궁도 있고 김덕수 사물놀이패도 있다고 도장도 파서 가지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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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라는 게 보통 정성으로 쓰는 게 아니네요... 헥헥...
심적으로 너무 힘들 때 다녀온 탓도 있고 여러가지 이유로 참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어서
처음으로 여행기라는 걸 한 번 써봅니다.
재미없겠지만...읽어주시는 분 계시다면 감사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