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가족의 짧고도 길었던 태국여행 - 출발
출발하기 2, 3일 전부터는 이모들과 부모님이 돌아가면서 전화를 하신다.
"야, 지금 시장 왔는디 고추장 하나만 사믄 되까?"
"이모! 제가 고추장 사다 놨어요. 암것도 준비하지 마시고 그냥 오시라니까요?"
"그리도.. 혹시 모자랄랑가 모릉게 작은 거 하나만 더 사 노께"
"야, 집에서 된장 좀 퍼갈라고 하는디"
"아빠, 무슨 된장을 퍼 가. 된장 필요 없어. 글구 잘못 가져갔다가는 비행기에서 다 터진다구"
"집이서 만든 된장을 가지가야 든든할 판인디.."
"그럼 내가 마트에서 작은 거 하나 사 갈게"
"야, 큰 이모가 김 튀김 한 봉지 샀다고 하는디 나도 하나 사끄나?"
"이모.. 한 봉지만 있으면 돼요. 안 사셔도 되는데.."
"알었어~ 그럼 딱 한 봉지만 사께."
"-_-"
"야, 혹시 파라솔 가져가도 되냐?"
"네? 웬 파라솔이요? 어디다 쓰시게요?"
"혹시 뜨거믄 받고 다닐라고 허지"
"아, 양산요? 없어도 되지만 원하신다면 챙기셔도.."
"아하하하(특유의 웃음소리), 그려, 양산. 양산이란 말이 생각이 안 났네"
하도 이런저런 전화가 많이 와서 안 그래도 걱정이던 내 맘에 한 가지 걱정이 더 늘어나고
결국 난 마트에 가서 된장, 쌈장, 고추장, 초장까지 다 사다가 준비를 해 놓았다.
누웠다가도 문득 두려움에 떨면서 아, 한 분이라도 신종플루 걸리시면 어떻게 하지?
혹시 차가 교통사고가 나면?
여행자 보험 돈 좀 더 들어도 보상금 높은 걸로 들어놓을 걸 그랬나?
아냐아냐- 무슨 이런 불길한 생각을 하고 있어.
여행자 보험은 그냥 말 그대로 보험일 뿐이고 우리 가족에겐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암!
이런 생각들을 100번도 넘게 반복을 하다 드디어 출국일이 돌아왔다.
전날부터 '여권 잘 챙기시라'는 말을 수십번도 넘게 한다.
딴 건 다 없어도 되지만 여권 없으면 못 간다고.
나의 성화에 결국 출발하시면서 12번도 넘게 가방에 들어있는 여권을 검사하고, 또 검사하셨단다.
공항은 청주공항.
나는 서울에서 가고 어른들은 전주 쪽에서 오시니 위치는 그다지 나쁜 것 같지 않았다.
티켓 예약 하면서 "청주공항인데 괜찮으시겠어요?" 하는 직원의 말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는데
사실 약간의 불편함은 있었다.
일단 나는 실컷 인터넷 면세점으로 이런저런 쇼핑을 하고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는데
알고 보니 청주공항에는 인도장이 없어서 면세품을 받을 수가 없단다.
또 공항 자체가 워낙 작다보니 공항 내의 이용할 만한 시설도 별로 없고
공항이라기 보다는 그냥 버스터미널 같은 그런 느낌?

심사대 통과하기 직전의 모습이다. 인천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ㅎㅎ
출국장으로 들어가니 면세점이 딱 한 군데 있다.
약간 동네 화장품 가게 같은 수준의 작은 면세점인데
그래도 화장품, 향수, 썬글라스, 가방, 담배, 주류 등 꽤 많은 품목들이 있다.
게다가 원래 면세 가격에서도 30~50% 정도 더 세일을 하고 있다.
"엄마, 뭐 필요한 거 있어? 하나 사 드려?"
"아니~ 뭐가 필요혀. 암것도 필요없어~"
우리엄마의 전형적인 수법(?).
첨에는 무조건 필요없다고 하다가 '근디..'로 시작하시면서 뭔가를 요구하기.
역시나 이번에도 나온다.
"근디.. 아이크림도 있냐? 아이크림이 다 떨어지긴 혔는디.."
나는 얼른 아이크림을 하나 업어다 드리고 썬크림을 만지작거리는 막내이모를 위해
내 것 사는 척 하면서 썬크림도 하나 사서 드리고
큰 이모가 '호박엿 맛있을라나?' 하시는 말씀 듣고 바로 호박엿 한 봉지 사고.
근데 무슨 호박엿이 한 봉지에 8000원이 넘냐고..ㅠㅠ
비행기는 연결통로 문제로 30분이나 지연된 후에 출발을 한다.
좌석은 예상하고 익히 들었던대로 정말 슬림(?)하고 타이트하다.
통로도 무척 비좁아 스튜어디스가 그 뭐라고 해야 하나, 끌차?를 가지고 나오면
사람이 비껴갈 작은 틈조차도 없다.
밥 먹은 지가 꽤 되어 배가 출출하다.
어른들께도 저녁식사 할 때, 기내식 나오니까 굳이 많이들 안 드셔도 된다고 말씀드려서
배부르게 드시지 않아서인지 다들 시장해하신다.
곧 기내식(?)이 나오기 시작한다.
근데 이건 정말 내가 이제껏 봐 왔던 기내식 중 최악의 기내식이다.
종이로 만든 박스에 '도시락'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고 열어 보니 차갑게 식어 버린 김밥 두 개와
바닥이 보일 정도로 얇게 깔아 놓은 얼음장 같은 밥.

이게 바로 기내식이다. 그래도 사진으로 보니 꽤 먹음직스러워보이는 것 같기도 한데
실제로는 영~아니올시다,였다는 것 ㅠ
제주항공이라서 큰 기대를 하지 않긴 했다.
그런데 우리는 저가로 탄 것도 아니었다.
무려 497,000원이라는 거금(?)을 지불하고 탄 것이었는데 기내식이 이 따위라니.
도대체 그 돈은 중간에서 누가 낚아 챈 것일까?
항공사에서 원래 비싸게 내 놓은 요금일까, 아니면 여행사에서 커미션을 많이 뗀 것일까?
어쨌든 어른들께 너무 부끄럽고 죄송하기만 하다.
이게 내 잘못은 아니지만도 이 여행을 계획한 나로서는 그저 내가 죄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양도 너무 적어서 울 아부지는 모자르실 것 같아 나는 김밥만 두 개 먹고
속이 안 좋아서 못 먹겠다고 핑계를 대고 아빠를 드린다.
비행기 좌석이 3/3 열이라서 기체가 작아 흔들릴까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기체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잠이 오질 않아 책 한 권을 다 읽어 버린다.
그런데도 방콕에 도착하려면 아직이다.
배도 고프고 출출하기도 해서 호박엿을 꺼낸다.
뒤에 계시던 아저씨가
"아이고, 아가씨. 그 엿 참 맛나게 생겼네. 나도 좀 주소"
하셔서 한 주먹 집어서 드린다.
"근데 모자라네. 우리가 팀이 좀 많거든. 좀만 더 주면 안 될까?"
"네^^;"
한 주먹을 더 집어 드린다.
나도 먹으려고 하나 깠다가 혹시 먹다가 이빨 때운 거 또 빠질까봐 도로 집어 넣는다.
어른들도 엿 잘 사왔다고 하시며 맛있게 드신다.
잠시 후, 뒤에 계시던 아저씨께서 인사를 하신다.
"아이고.. 내가 이제껏 먹어 본 호박엿 중 최고네. 어쩜 이렇게 맛있대?"
나는 그냥 그 인사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네~^^"
상냥한 미소를 지어드리는데 울 아부지 하시는 말씀.
"야, 그거 더 돌란 소리여. 더 드려"
"어? 어..ㅡㅡ;"
다시 한 주먹을 집어 드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받으시며
"아이고, 고맙소, 아가씨"
하신다.
어쨌든 호박엿 덕에 모두들 기분이 좋아지고
무려 6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달려 드디어 수완나폼에 도착한다.
첫째 날 숙소는 카오산로드의 '오방콕'이다.
방콕에 도착할 시간을 생각했을 때 어차피 잠은 2~3시간 밖에 못 잘 거라서
비싼 호텔에서 자는 건 생각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공항에서 가까운 호텔에서 잘까, 카오산로드 쪽으로 나갈까, 아님 제 3의 장소로 갈까
몇 번이나 고민하다가 카오산로드로 숙소를 정했다.
일단은 다음날 루트가 깐짜나부리였기 때문에
카오산 로드에서 한 번에 이동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혹시 왕궁을 보게 될 경우의 수도 생각하여 카오산로드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카오산로드 내에서도 어디서 잘까 수도 없이 고민을 한 끝에-물론 일정이 촉박하여 그렇게 내 입맛대로 고를 형편도 아니었다. 원래 묵고 싶었던 곳은 조용하고 깔끔한 람푸하우스였는데 거긴 이미 풀이었다-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오방콕으로 숙소를 정했던 것이다.
오방콕이 새벽부터 닭이 미친 듯이 울어대서 잠을 자기 힘들다는 후기를 많이 읽어서
예약할 때 특별히 안쪽 방으로 배정해달라고 두 번씩이나 부탁드려 놓았다.
마음 같아선 택시를 타고 가고 싶었지만 첫 날이고,
내가 동승하지 않은 택시를 타신 어른들은 심히 불안해 하실 것 같아서
한인 업소에 차를 대절해 놓았다.
우리가 새벽에 도착하는 거라 혹시 피곤하셔서 사고라도 날까봐
미리 푹 주무시면서 쉬시고 오게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려 놓았다.
또 절대 빨리 도착하지 않아도 되니
과속이나 추월을 하지 않고 천천히 가게 해 달라고도 부탁해 놓았다.
사실 태국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공항에서 총알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 것이다.
택시기사들에게 아무리 무섭다고 우는 소리를 하고 달래고 화를 내 봐도
입으로는 '오케이, 오케이'하면서 결코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요리조리 추월하면서 쌩쌩 달리는 택시 안에서는
부디 살아서 한국에 돌아가기만을 기도해야만 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나는 겁이 많은 편이다.
어쨌든 비행기도 연착되고 입국심사도 늦어져서 예정 시간보다 1시간 가까이 늦게 나갔음에도
운전 기사분은 전혀 싫은 내색 하지 않으시고 친절히 우리를 맞아주신다.
살짝 무서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매우 점잖게(?) 운전을 하시어 우리를 안전히 데려다 주셨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약 40분 정도 걸렸고, 숙소에 도착하니 새벽 4시가 다 되어 있었다.
체크인을 하는데 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한꺼번에 휙휙 해 주면 좋으련만 방 하나에 대한 거 작성하고 들어가서 여권 복사하고 디파짓 받고
또 다른 방 작성하고 들어가서 여권 복사하고 디파짓 받고..
디파짓도 한 방 당 300밧인데 네 방 치를 한꺼번에 1200밧으로 지불하려 하였더니
계산이 안 되는지 한 방 당 300밧 씩만 받기를 고집한다.
그것도 나한테 500밧짜리를 내밀면서 100밧짜리로 바꿔달라고 하면서-
어차피 1200밧 받으면 돈 바꾸고 말고 할 일도 없는데 그 계산이 그렇게 힘든가보다.
나야 워낙 익숙해져서 상관없지만
어른들은 피곤하기도 하시고 처음보는 생소한 광경에 분통을 터뜨리신다.
"우리나라 같었어봐. 하이고.. 깝깝증 나 죽겄네"
"저거를 언제 저렇게 일일이 하고 있다냐. 한꺼번에 착 가져가서 히야지.."
"하하;; 조금만 참으세요. 그리고 아무리 한국말로 해도 나쁜 말 하면 자기한테 안 좋은 말 하는지
다 알아 들으니 안 좋은 말을 삼가해 주세요^^;"
결국 모기에 뜯겨가면서 지루하게 30분 이상을 기다려서야 방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씻고 나오니 새벽 4시 반.
다행히 어른들이 쓰시는 방 3개는 다 안쪽 방이고 나랑 막내이모가 쓸 방만 도로 쪽에 위치해 있다.
이모랑 몇 마디 주고 받다보니 벌써부터 부지런한 분들이 비를 가지고 나오셔서
"쓱쓱쓱쓱"소리를 내면서 도로를 쓸고 계신다.
개들도 잠에서 깨어나는지 컹컹거리기 시작한다.
이모는 딸내미 일과 관련하여 심각하게 내게 상담을 하고 계시는데
나는 잠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꿈과 현실을 오락가락 하다 결국 잠에 빠져들고 만다.
동이 터 올 때 쯤, 남들은 하루를 열 때 우리는 겨우 하루를 닫는다.
하지만 몇 시간만 지나면 우리도 곧 그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기다려라, 태국아. 내가 왔다!!
아마 나는 꿈에서도 그렇게 외쳤을 것이다.
"야, 지금 시장 왔는디 고추장 하나만 사믄 되까?"
"이모! 제가 고추장 사다 놨어요. 암것도 준비하지 마시고 그냥 오시라니까요?"
"그리도.. 혹시 모자랄랑가 모릉게 작은 거 하나만 더 사 노께"
"야, 집에서 된장 좀 퍼갈라고 하는디"
"아빠, 무슨 된장을 퍼 가. 된장 필요 없어. 글구 잘못 가져갔다가는 비행기에서 다 터진다구"
"집이서 만든 된장을 가지가야 든든할 판인디.."
"그럼 내가 마트에서 작은 거 하나 사 갈게"
"야, 큰 이모가 김 튀김 한 봉지 샀다고 하는디 나도 하나 사끄나?"
"이모.. 한 봉지만 있으면 돼요. 안 사셔도 되는데.."
"알었어~ 그럼 딱 한 봉지만 사께."
"-_-"
"야, 혹시 파라솔 가져가도 되냐?"
"네? 웬 파라솔이요? 어디다 쓰시게요?"
"혹시 뜨거믄 받고 다닐라고 허지"
"아, 양산요? 없어도 되지만 원하신다면 챙기셔도.."
"아하하하(특유의 웃음소리), 그려, 양산. 양산이란 말이 생각이 안 났네"
하도 이런저런 전화가 많이 와서 안 그래도 걱정이던 내 맘에 한 가지 걱정이 더 늘어나고
결국 난 마트에 가서 된장, 쌈장, 고추장, 초장까지 다 사다가 준비를 해 놓았다.
누웠다가도 문득 두려움에 떨면서 아, 한 분이라도 신종플루 걸리시면 어떻게 하지?
혹시 차가 교통사고가 나면?
여행자 보험 돈 좀 더 들어도 보상금 높은 걸로 들어놓을 걸 그랬나?
아냐아냐- 무슨 이런 불길한 생각을 하고 있어.
여행자 보험은 그냥 말 그대로 보험일 뿐이고 우리 가족에겐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암!
이런 생각들을 100번도 넘게 반복을 하다 드디어 출국일이 돌아왔다.
전날부터 '여권 잘 챙기시라'는 말을 수십번도 넘게 한다.
딴 건 다 없어도 되지만 여권 없으면 못 간다고.
나의 성화에 결국 출발하시면서 12번도 넘게 가방에 들어있는 여권을 검사하고, 또 검사하셨단다.
공항은 청주공항.
나는 서울에서 가고 어른들은 전주 쪽에서 오시니 위치는 그다지 나쁜 것 같지 않았다.
티켓 예약 하면서 "청주공항인데 괜찮으시겠어요?" 하는 직원의 말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는데
사실 약간의 불편함은 있었다.
일단 나는 실컷 인터넷 면세점으로 이런저런 쇼핑을 하고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는데
알고 보니 청주공항에는 인도장이 없어서 면세품을 받을 수가 없단다.
또 공항 자체가 워낙 작다보니 공항 내의 이용할 만한 시설도 별로 없고
공항이라기 보다는 그냥 버스터미널 같은 그런 느낌?
심사대 통과하기 직전의 모습이다. 인천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ㅎㅎ
출국장으로 들어가니 면세점이 딱 한 군데 있다.
약간 동네 화장품 가게 같은 수준의 작은 면세점인데
그래도 화장품, 향수, 썬글라스, 가방, 담배, 주류 등 꽤 많은 품목들이 있다.
게다가 원래 면세 가격에서도 30~50% 정도 더 세일을 하고 있다.
"엄마, 뭐 필요한 거 있어? 하나 사 드려?"
"아니~ 뭐가 필요혀. 암것도 필요없어~"
우리엄마의 전형적인 수법(?).
첨에는 무조건 필요없다고 하다가 '근디..'로 시작하시면서 뭔가를 요구하기.
역시나 이번에도 나온다.
"근디.. 아이크림도 있냐? 아이크림이 다 떨어지긴 혔는디.."
나는 얼른 아이크림을 하나 업어다 드리고 썬크림을 만지작거리는 막내이모를 위해
내 것 사는 척 하면서 썬크림도 하나 사서 드리고
큰 이모가 '호박엿 맛있을라나?' 하시는 말씀 듣고 바로 호박엿 한 봉지 사고.
근데 무슨 호박엿이 한 봉지에 8000원이 넘냐고..ㅠㅠ
비행기는 연결통로 문제로 30분이나 지연된 후에 출발을 한다.
좌석은 예상하고 익히 들었던대로 정말 슬림(?)하고 타이트하다.
통로도 무척 비좁아 스튜어디스가 그 뭐라고 해야 하나, 끌차?를 가지고 나오면
사람이 비껴갈 작은 틈조차도 없다.
밥 먹은 지가 꽤 되어 배가 출출하다.
어른들께도 저녁식사 할 때, 기내식 나오니까 굳이 많이들 안 드셔도 된다고 말씀드려서
배부르게 드시지 않아서인지 다들 시장해하신다.
곧 기내식(?)이 나오기 시작한다.
근데 이건 정말 내가 이제껏 봐 왔던 기내식 중 최악의 기내식이다.
종이로 만든 박스에 '도시락'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고 열어 보니 차갑게 식어 버린 김밥 두 개와
바닥이 보일 정도로 얇게 깔아 놓은 얼음장 같은 밥.
이게 바로 기내식이다. 그래도 사진으로 보니 꽤 먹음직스러워보이는 것 같기도 한데
실제로는 영~아니올시다,였다는 것 ㅠ
제주항공이라서 큰 기대를 하지 않긴 했다.
그런데 우리는 저가로 탄 것도 아니었다.
무려 497,000원이라는 거금(?)을 지불하고 탄 것이었는데 기내식이 이 따위라니.
도대체 그 돈은 중간에서 누가 낚아 챈 것일까?
항공사에서 원래 비싸게 내 놓은 요금일까, 아니면 여행사에서 커미션을 많이 뗀 것일까?
어쨌든 어른들께 너무 부끄럽고 죄송하기만 하다.
이게 내 잘못은 아니지만도 이 여행을 계획한 나로서는 그저 내가 죄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양도 너무 적어서 울 아부지는 모자르실 것 같아 나는 김밥만 두 개 먹고
속이 안 좋아서 못 먹겠다고 핑계를 대고 아빠를 드린다.
비행기 좌석이 3/3 열이라서 기체가 작아 흔들릴까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기체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잠이 오질 않아 책 한 권을 다 읽어 버린다.
그런데도 방콕에 도착하려면 아직이다.
배도 고프고 출출하기도 해서 호박엿을 꺼낸다.
뒤에 계시던 아저씨가
"아이고, 아가씨. 그 엿 참 맛나게 생겼네. 나도 좀 주소"
하셔서 한 주먹 집어서 드린다.
"근데 모자라네. 우리가 팀이 좀 많거든. 좀만 더 주면 안 될까?"
"네^^;"
한 주먹을 더 집어 드린다.
나도 먹으려고 하나 깠다가 혹시 먹다가 이빨 때운 거 또 빠질까봐 도로 집어 넣는다.
어른들도 엿 잘 사왔다고 하시며 맛있게 드신다.
잠시 후, 뒤에 계시던 아저씨께서 인사를 하신다.
"아이고.. 내가 이제껏 먹어 본 호박엿 중 최고네. 어쩜 이렇게 맛있대?"
나는 그냥 그 인사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네~^^"
상냥한 미소를 지어드리는데 울 아부지 하시는 말씀.
"야, 그거 더 돌란 소리여. 더 드려"
"어? 어..ㅡㅡ;"
다시 한 주먹을 집어 드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받으시며
"아이고, 고맙소, 아가씨"
하신다.
어쨌든 호박엿 덕에 모두들 기분이 좋아지고
무려 6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달려 드디어 수완나폼에 도착한다.
첫째 날 숙소는 카오산로드의 '오방콕'이다.
방콕에 도착할 시간을 생각했을 때 어차피 잠은 2~3시간 밖에 못 잘 거라서
비싼 호텔에서 자는 건 생각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공항에서 가까운 호텔에서 잘까, 카오산로드 쪽으로 나갈까, 아님 제 3의 장소로 갈까
몇 번이나 고민하다가 카오산로드로 숙소를 정했다.
일단은 다음날 루트가 깐짜나부리였기 때문에
카오산 로드에서 한 번에 이동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혹시 왕궁을 보게 될 경우의 수도 생각하여 카오산로드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카오산로드 내에서도 어디서 잘까 수도 없이 고민을 한 끝에-물론 일정이 촉박하여 그렇게 내 입맛대로 고를 형편도 아니었다. 원래 묵고 싶었던 곳은 조용하고 깔끔한 람푸하우스였는데 거긴 이미 풀이었다-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오방콕으로 숙소를 정했던 것이다.
오방콕이 새벽부터 닭이 미친 듯이 울어대서 잠을 자기 힘들다는 후기를 많이 읽어서
예약할 때 특별히 안쪽 방으로 배정해달라고 두 번씩이나 부탁드려 놓았다.
마음 같아선 택시를 타고 가고 싶었지만 첫 날이고,
내가 동승하지 않은 택시를 타신 어른들은 심히 불안해 하실 것 같아서
한인 업소에 차를 대절해 놓았다.
우리가 새벽에 도착하는 거라 혹시 피곤하셔서 사고라도 날까봐
미리 푹 주무시면서 쉬시고 오게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려 놓았다.
또 절대 빨리 도착하지 않아도 되니
과속이나 추월을 하지 않고 천천히 가게 해 달라고도 부탁해 놓았다.
사실 태국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공항에서 총알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 것이다.
택시기사들에게 아무리 무섭다고 우는 소리를 하고 달래고 화를 내 봐도
입으로는 '오케이, 오케이'하면서 결코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요리조리 추월하면서 쌩쌩 달리는 택시 안에서는
부디 살아서 한국에 돌아가기만을 기도해야만 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나는 겁이 많은 편이다.
어쨌든 비행기도 연착되고 입국심사도 늦어져서 예정 시간보다 1시간 가까이 늦게 나갔음에도
운전 기사분은 전혀 싫은 내색 하지 않으시고 친절히 우리를 맞아주신다.
살짝 무서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매우 점잖게(?) 운전을 하시어 우리를 안전히 데려다 주셨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약 40분 정도 걸렸고, 숙소에 도착하니 새벽 4시가 다 되어 있었다.
체크인을 하는데 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한꺼번에 휙휙 해 주면 좋으련만 방 하나에 대한 거 작성하고 들어가서 여권 복사하고 디파짓 받고
또 다른 방 작성하고 들어가서 여권 복사하고 디파짓 받고..
디파짓도 한 방 당 300밧인데 네 방 치를 한꺼번에 1200밧으로 지불하려 하였더니
계산이 안 되는지 한 방 당 300밧 씩만 받기를 고집한다.
그것도 나한테 500밧짜리를 내밀면서 100밧짜리로 바꿔달라고 하면서-
어차피 1200밧 받으면 돈 바꾸고 말고 할 일도 없는데 그 계산이 그렇게 힘든가보다.
나야 워낙 익숙해져서 상관없지만
어른들은 피곤하기도 하시고 처음보는 생소한 광경에 분통을 터뜨리신다.
"우리나라 같었어봐. 하이고.. 깝깝증 나 죽겄네"
"저거를 언제 저렇게 일일이 하고 있다냐. 한꺼번에 착 가져가서 히야지.."
"하하;; 조금만 참으세요. 그리고 아무리 한국말로 해도 나쁜 말 하면 자기한테 안 좋은 말 하는지
다 알아 들으니 안 좋은 말을 삼가해 주세요^^;"
결국 모기에 뜯겨가면서 지루하게 30분 이상을 기다려서야 방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씻고 나오니 새벽 4시 반.
다행히 어른들이 쓰시는 방 3개는 다 안쪽 방이고 나랑 막내이모가 쓸 방만 도로 쪽에 위치해 있다.
이모랑 몇 마디 주고 받다보니 벌써부터 부지런한 분들이 비를 가지고 나오셔서
"쓱쓱쓱쓱"소리를 내면서 도로를 쓸고 계신다.
개들도 잠에서 깨어나는지 컹컹거리기 시작한다.
이모는 딸내미 일과 관련하여 심각하게 내게 상담을 하고 계시는데
나는 잠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꿈과 현실을 오락가락 하다 결국 잠에 빠져들고 만다.
동이 터 올 때 쯤, 남들은 하루를 열 때 우리는 겨우 하루를 닫는다.
하지만 몇 시간만 지나면 우리도 곧 그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기다려라, 태국아. 내가 왔다!!
아마 나는 꿈에서도 그렇게 외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