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처럼...(27) 돌아오다
잠을 도통 이루지 못한다.새벽 3시에 한 번, 4시에 한 번, 4시반에 한 번...
그렇게 선잠을 자다가 그냥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신새벽부터 샤워를 한바탕 해본다.
이모님들이 당신들 화장도 마치기 전에 혼자 방을 나서는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신다.
내 몫의 조식쿠폰을 쥐고 이른 아침의 방콕공기를 마시러 나선다.
어젯 밤 빗님까지 오셔서인지 더 상큼한 방콕의 아침이다.
일부러 혼자서 조용히 아침식사를 한다.
평범한 A스타일 아침밥이지만 오늘은 되도록 남기지 않고 다 먹기로 한다.
그렇게 다 먹고서 방에 올라가니 그제서야 이모님들이 식사를 하러 내려가신다.
혼자 침대에 벌러덩 누워서 바둥바둥 거려본다.
'날자보더식 이별 퍼포먼스야~'
후딱 일어나서 짐정리를 하고 공항으로 데려다줄 차를 타러 내려간다.
수완나품공항이다.
10시40분 비행기인데 8시 갓넘어 도착하니
체크인하는 곳에 대기중인 사람도 없어 1분만에 수속끝이다.좀 더 바깥에 있을까요, 면세지역으로 갈까요 이모님들에게 여쭤보니 얼른 들어가자하신다.
(아직 살게 남아 있던거다)
공항면세점에 가면 그리웠던(?) 극동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면세점 쇼핑을 참 좋아하는 극동 사람들인가 보다.
이모님들은 쇼핑의 즐거움에 흠뻑 빠지시라 내버려두고
홀로 탑승게이트로 걸어간다.
아주 바쁜 발걸음의 여행객은 없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서두를 이유는 하나도 없다.
약간 이른 시각.
이동하는 이곳저곳도 참 한산하다.
(게이트 C5.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 한다. 저 위에 걸음을 재촉하는 그림...보이나??)
그렇게 비행기가 떴다가 잠시 홍콩에 내린다.
경유비행기는 처음 타 보았는데...같은 비행기이기에 비행기에 그대로 대기하고 있으면 될까 했더니
일단 죄다 내려야 한다.
홍콩에 발도장 찍는다 생각하고 기꺼이 내린다.
(한자어로 병기된 푯말들을 보면서 아, 여기가 홍콩이로군...한다)
35분여를 그렇게 홍콩공항에서 추위와 싸우며 대기를 한다.
잠깐의 시간을 이용하여 네톤으로 동생에게 도심공항터미널로 마중을 나오도록
면세점에서 구입한 선물을 인질삼아 그렇게 협박하기를 20여분...마침내 쟁취한다!
탑승이 시작되었다.
그 많던 외국인들은 홍콩에서 죄다 내리시고, 그 빈자리를 우리나라 분들이 메우신다.
경유편은 기내식을 2번 먹더군.
한번은 좀 가벼운 것으로 줬으면 좋겠더만...2번 다 포만감 100쁘로...그러므로 난 200쁘로 느낀다.
(안받아 먹으면 될 것을...닭과 해산물의 차이는 어떤걸까? 궁금하기도 했고...꾸역꾸역 다 먹는다)
이어폰 없이 무성으로 <The Departed>란 영화를 본다.
(언니들이 이어폰을 안준게 아니라...내가 이어폰으로 들으면서까지 영어로 내용을 이해할 내공은...
아직은 부족하다.)
'그래도 연기는 맷 데이먼보다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야.'를 속으로 연발하며 또 비몽사몽.
8시가 조금 못 된 시각.
사뿐히 영종도에 내려 앉는다.
전주로 가는 리무진버스를 타시는 이모들을 배웅하고
난 도심공항터미널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88올림픽대로를 따라 가는 길.
강너머 보이는 여의도 윤중로길엔 벚꽃이 화사하다.
아직도 이렇게 추운데 벚꽃이 벌써 만개했구나.
조금 밀리는 도로를 한시간여 달려 도착하니 못난이 내동생이 알맞게 마중을 나와 있다.
야참을 먹자고 동생집 근처 분식점엘 들어갔다.
내가 아닌 딴사람이 한국말로 주문하고 있는걸 지켜보는데 참...기분 오지다.
뭘 먹겠냐길래...조금 고민하다 한국식 매운맛 <쫄면>을 시켜본다.
흠...
확실히 매운맛이 부족하군.
" 태국 식당에선 말이야~ "로 시작한 내 20여일간의 <남들 다하는>태국여행무용담을
그렇게 질긴 쫄면면발을 씹으면서 언니 마중나온 죄밖에 없는 내 동생에게
왓챠라탄 폭포의 물줄기마냥 끊임없이 쏟아붓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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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냈네요.
개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