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뇽이의 태국-라오스 여행기(4)
- 타라 하우스 -
2018년 1월17일(수). 간만에 잠을 푹 잤다. 그래봐야 6시 좀 넘어서 기상. 다들 나이가 오십을 넘으니까 젊었을 때처럼 늦잠을 자진 못한다. 오늘은 타라 하우스를 떠나는 날이다. 여기는 태사랑 운영자님도 좋아하신다는 말을 들은, 어찌 보면 검증된 곳이다. 실제로 대로상에 있어 오가기 좋고, 방값도 저렴했다. 특히 리셉션이 아주 친절해서 항상 웃는 얼굴로 맞아주니 아침마다 기분이 참 좋았다. 응당 그래야 할 일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매일 그렇게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은 법이다. 트리플룸은 108호에 있어서 무거운 트렁크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릴 일도 없었다. 그 외에 아침에 무료로 빵도 하나 먹고, 커피는 무료로 자주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 옆에 있는 가게에서 나오는 음악 때문에 시끄럽다는 이야기도 들었으나 실제로는 경험하지 못했다.
타라 하우스 입구. 어디나 저렇게 현금인출기가 있던데, 한국에서 만들어온 카드로도 저게 잘 되나? 그렇기만 하면 많은 돈을 소지할 필요가 없어서 참 좋을 것이다.
- 아침시간 -
아침에는 어제처럼 방람푸 시장에 다녀왔다. 과일을 좀 사서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싶다는 의견이 있었다.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본 뉴월드백화점. 옛날부터 태사랑 지도를 보면 [폐쇄]라고 되어 있어서 사연이 궁금했었다. 1993년 8월19일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 백화점은 원래 4층으로 건축허가가 났는데 실제로는 8층으로 지어져서 안전상의 문제가 제기되자 폐쇄되었다고 한다.
과일 두어봉지를 들고 프라쑤멘 거리(Thanon Phra Sumen)를 따라 걸었다. 싼띠차이 프라칸 공원(Santichai Prakan Park)의 누각은 언제보아도 멋드러졌다.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프라아팃 거리(Thanon Phra Athit)의 아침을 여는 사람들은 역시 노점하시는 분들이다.
아침에는 반드시 밥을 먹어야 하는 나는 숙소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노점을 기웃거렸다.
마침 서양인 여자 한 사람이 거리의 돌계단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옆에서 보니 그렇게 맛있어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똑같은 것으로 주문했다.
우리말로는 닭고기 덮밥이라 해야 옳겠으나 이것은 [까우만까이]가 분명 아니다. 그런데 매콤한 맛으로 양념을 해서 그런지 맛은 상당히 좋았다. 닭냄새가 조금 나기는 했으나, 닭에서 닭냄새가 나지 그럼 돼지 냄새가 나겠는가?
- 차이나타운 -
오늘은 오전에 차이나타운을 보고 기차를 타고 롭부리에 들렀다가 밤에 야간기차를 타고 내일은 치앙마이로 들어가는 강행군을 하는 날이다. 먼저 프라아팃 거리 정류장에서 59번 버스에 올랐다.
아직도 방콕의 버스에서는 요금을 안내양이 걷었다. 나이도 꽤 있으시고 영어는 전혀 못했지만 친절했다. 내가 차이나타운 간다고 몇 번을 얘기하니까 나중에는 웃으면서 알았다고 하셔. 내가 하도 보채서 귀에 딱지가 생긴 모양이다. 그러나 버스 안의 TV 모니터에서는 교통카드 사용에 대한 안내가 계속되고 있었다. 조만간 직장을 잃겠구나... 한국에서도 1984년부터 1989년까지 단계적으로 안내양이 사라졌었다. 그러니까 이런 부분에서는 태국이 우리보다 35년 정도가 늦은 셈이다.
야왈랏 거리(Thanon Yaowarat)의 로열방콕호텔 맞은편에서 우리들은 버스를 내렸다. 시끌벅적한 거리의 한 가운데에서 방향감각도 잃어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 수 없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Quo Vadis Domine...
누군가는 가이드북을 보고, 또 누군가는 구글맵을 작동했지만, 나는 우리들의 구세주로 스님을 지목했다. “폼 약 짜 빠이 왓 뜨라이밋 크랍?” 설마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마당에 모르시기야 할까? 아니나다를까.. 우리의 통큰 스님. 우리보고 따라오라고 하시고는 앞서 걷는다.
차이나타운에서 구경할 꺼리는 왓 트라이밋 말고도 더 있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그나저나 트렁크를 끌고 스님의 뒤를 따르는데, 놀라운 것은 스님에 대한 시민들의 공경심이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길에서 마주치는 경우 그냥 외면하기보다는 합장을 하며 인사하는 신도들의 수가 생각보다 많았다.
- 왓 뜨라이밋 -
멀리 왓 뜨라이밋의 자태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원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세계에서 가장 크고 비싼 황금불상을 보유하고 있다.
쑤코타이 양식으로 만들어진 황금불상은 라마3세 시기에 미얀마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회반죽을 씌워 놓았던 것이 1955년에 운송하는 과정에서 회반죽이 깨지면서 원래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냈다고 한다.
황금불상은 높이가 3m이고 순금 5.5톤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 금시세가 1g에 47,022원이므로 2,500억원이 넘는다.
- 후아람퐁 기차역 -
왓 뜨라이밋에서 후아람퐁 기차역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이다.
역이 워낙 크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어서 놓칠 가능성도 적다.
안으로 들어와서 롭부리까지 가는 3등석 표를 끊었다. 11시20분에 출발해서 14시23분에 도착한다. 요금은 불과 28밧.
승강장에 오니 출발을 기다리는 열차들이 늘어서 있다.
- 기차 여행 -
태국에 와서 기차를 타 보기는 16년만인데 그 시절에는 아내와 1등석 침대칸을 타서 지금과 같은 소소한 즐거움이 없었다. 차량에 오르니 옆 좌석에는 인상 좋아 보이는 태국 아줌마가 앉아 있다. 내가 연신 밖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가 마침내 돌아앉자 재미있는지 혼자 웃으신다.
차 안에서도 승려는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차량에 오르면 Reserve for monks and novices 라는 팻말이 걸려 있는데, 거기 앉으면 승무원에 의해 다른 곳으로 밀려난다. 처음에는 비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승려들로 자리가 채워졌다.
3등 완행열차이니 모든 역에 선다. 그 중에는 쌈쎈역도 있다. 거기는 내가 어제도 아침에 일어나서 걸어 다닌 곳이다. 그러나 구글지도로 검색해 보면 쌈쎈역은 카오산 부근에서 꽤 멀다. 이름 모를 간이역의 모습과 차창 밖의 풍경이 정겹다.
그렇게 3시간 반을 달려서 마침내 롭부리(Lopburi)역에 도착했다.
- 롭부리 시내 관광 -
롭부리는 아유타야 왕국의 나라이 대왕(King Narai The Great) 시절에 궁전을 건립하고 그 안에서 생활하면서 역사의 중심에 섰던 곳이다. 그러나 후대에는 다시 수도가 아유타야로 옮겨져서 잊혀졌다가 최근에는 도시를 점령한 원숭이들로 다시 각광받고 있다.
기차역 맞은 편에 있는 사원. 이름은 왓 프라 씨 라따나 마하탓(Wat Phra Si Ratana Mahathat)이라고 꽤 길다. 라테라이트(laterite)로 만든 전형적인 크메르 양식의 사원이다. 지금은 일단 배가 너무 고파서 패스.
롭부리의 한낮은 매우 뜨거웠다. 그렇다보니 가게가 있는데도 장사를 안 해. 따라서 문만 열려 있으면 어디든 들어가겠다는 마음으로 식당을 찾았다. 그리고 이왕이면 쌀국수보다는 스테이크가 좋다. 그래서 결국 여기를 찾았다.
벌써 외관부터가 근사하다. 이곳은 분명 굶주린 우리들의 배를 채워줄 것이다. 우리 셋은 모두 티본스테이크를 시켰다. 그러나 주문 20분 후... 소고기가 없으니 다른 걸로 바꾸란다. 그래서 돼지로 바꿨다. 다시 20분 후... 우리가 주문한 게 뭔지를 확인하러 왔다. 우리는 포크 스테이크라고 했다. 그동안 그리스로 보이는 열댓명의 관광객이 들이닥쳤다. 볶음밥을 시킨 서양인 가족만 음식이 나올 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숟가락만 빨고 있었다.
나는 배가 고픈 것보다 원숭이 사원이 문을 닫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먼저 사원 구경을 다녀와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종업원은 당연히 된다고 하면서 오히려 환영을 했다. 그래서 프라 쁘랑 쌈욧(Phra Prang Sam Yot)으로 향했다. 벌써 사원 부근에 이르자 분위기는 이렇게 변한다.
프라 쁘랑 쌈욧은 크메르 제국이 이곳을 점령하던 시절에 지어진 힌두교 사원이다. 세 개의 쁘랑은 각각 힌두교의 3대 신인 브라만, 비슈뉴, 시바를 상징한다고 한다.
여기 원숭이들은 매우 사납다. 바나나를 비롯한 각종 음식은 들고 있으면 바로 빼앗아간다. 특히 유념할 것은 썬글라스. 그냥 안경은 괜찮은데 썬글라스는 뺏어간다. 나는 겁이 많아서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금방 적응하고 원숭이를 팔이나 어깨에 올리고 음식물을 준다. 당연히 사진 촬영도 가능하다. 이게 힘들면 사원을 관리하는 분에게 얘기해도 된다. 그러면 그 분이 새끼 원숭이를 골라서 기념촬영을 할 수 있게 도와 준다.
이렇게 원숭이 구경을 하고 돌아오니 음식이 나온다. 그런데 옆집에서 가져온다. 그러니까 확실히 오늘 이 집의 주방에는 뭔가 문제가 있었다. 5천원짜리 돼지고기 스테이크.
롭부리에선 유명 사원의 경우에는 울타리도 쳐 놓고 입장료도 받지만, 그렇지 않은 사원의 경우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고, 실상은 걸인들의 생활공간으로 쓰이고 있었다.
이렇게 구경을 마치고 역 부근에 생긴 야시장에서 요기 겸 맥주 한 잔을 했다. 밤이 무르익었을 때 역사에 맡겨놓은 짐을 찾아왔다. 가로등 아래 견공들도 군데군데 잠들어 있는 롭부리의 역의 풍경은 차분해 보였지만 동시에 쓸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