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 23박24일간의 인도네시아 투어(자바섬,발리,롬복)3일차 코타, 플라자 인도네시아.
2013.11.02. 3일차 코타, 플라자 인도네시아.
앙콧타고 코타 가기
호텔을 나와 망가베사르정류장을 향해 걸어가는데 웬 아이가 버스정류장 같은 곳에서 앉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의 오늘 목적지는 코타였으므로 원래는 망가베사르에서 코타까지 트랜스자카르타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다른 교통수단으로도 갈 수 있다면 그것을 이용해 보는 것이.
우리는 다마스를 개조한 듯한 작은 버스를 탔다. 이것이 바로 앙콧이다. 앙콧의 요금은 3,000루피 우리 돈으로 300원이다. 승객에게 역시 물어 코타에서 내린다고 하니 친절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아주머니께서 우리를 코타 박물관 거리 앞에 인도해 준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다 이렇게 친절하구나! 감탄 감탄을 하면서 우리는 코타 시내를 걸어서 돌아 다녔다. 만디리은행박물관, 인도네시아 은행박물관, 인형박물관을 보고 보행자거리에서 튀김을 2,500루피에 사 먹었다. 보행자 거리는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난전이 벌어져 있었다. 운동화, 옷, 머리핀등 악세사리, 등 다양한 품목들을 팔고 있었다. 한 켠에서는 영화촬영도 한창이었다. 현지의 유명배우가 영화를 찍는지 드라마를 찍는지 모르지만 촬영에 열중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뮤시움 파타휠라(museum fatahillah)에서 트랜스 자카르타를 타고 코타정류장에서 블록엠
이 정류장은 바로 어제 그렇게 해매다 자카르타 시민의 도움으로 1호선인 코타 블러엠구간으로 갈아탄 그 환승정류장이다. 정말 감회가 깊었다. 낯선 곳에서 외국인인 내가 마치 어린 아이처럼 방황하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어두운 밤, 비는 내리고 날개마저 비에 젖어 겁에 질린 새 한 마리가 애처로이 떨고 있던 그 시간! 두려움과 온몸을 파고들던 위기감!
어제의 암담하던 기억은 오늘 다시 그 자리에서 밝은 자신감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에 미소가 입가에 번진다.
이 것이 여행이다.
분데란하이정류장은 육교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곳을 내려오니 빵을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출출한 배를 빵으로 채우기에는 미흡했지만 허기를 조금이나 달래려고 얼마냐고 물으니 빵 1개에 4,000루피란다. 하나씩 손에 들고 한입 베어 무니 매콤하기도 하면서 달달한 빵 맛이 혀끝을 머문다. 플라자 인도네시아 입구를 찾다가 경비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영어가 짧은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우리를 맞는 것은 구찌, 루이비통등의 가게가 우리를 먼저 반긴다.
물건을 달리 살 것은 없는데 여기는 어떤가 저기는 어떤가 보니 우리나라 백화점과 뭐 별 다른 것은 없다. 물건도 그게 그거고 그런데 우리나라 백화점 가격과 비교해서 싸다는 느낌은 별로 못 받는다. 바겐세일하는 것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주 바겐세일을 하는 터라 뭐 가격메리트가 별로 없다.
공항에서 집사람이 가져온 카드로 현금을 인출하려고 하다가 안 되었었다. 그래서 다시 시도하려고 ATM기를 찾았다. 6층으로 올라가서 시도해 보았다. 역시 불가다. 그래서 부스에 가서 물어보니 아가씨말이 여기는 비밀번호가 6자리란다. 그래서 안 되는 것인가? 그런데 6자리때문이라면 다시 한번 더 시도해 보았다. 00를 앞에 붙이고 시도해 본 것이다. 그러나 역시 그래도 안 되었다. 우리는 좀 심각했다. 가지고 온 돈이 700불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걱정이 되는지 어떡해야 하나 하면서 안절부절이다. 심각하긴 하다. 앞으로 21이나 남았는데 돈이 모자라면 어쩌나 돌아갈 비행기와 국내선과 발리 롬복에서 일부 숙소는 마련되어 있지만 그 외 숙소가 정해져 있지 않은 날들과 교통비 식사비 등 해결되지 않은 것이 많다. 그러나 나마저 걱정을 하면 아내의 근심이 커질 것 같아 일단 배도 고프니 식사를 하자고 했다. 어찌어찌 될 것이니 너무 걱정 말라고 하면서. 내 카드도 있으니 되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어디가 맛이 있는지 몰라 헤매다 돈카스와 우동을 파는 가게를 갔는데 그곳 점원에게 우리는 사실 인도네시아 푸드를 먹고 싶다고 했더니 카페 베따위로 가라면서 가르쳐 주었다. Kafe Betawi에서 나시우둑(Nasi Uduk Semur Daging), 사테 얌(Sate Yam), 환타, 콜라를 주문했다. 배가 고파 정말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른 채 흡입했다. 정신을 차리고 바라보니 폐허가 되어 있었다.
배도 채웠고 이제 또 길을 나섰다. 자카르타의 CBD(central business district)가 궁금했다. 발전하는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모습! 이런 것들이 궁금했다. 플라자인도네시아를 돌아 나오니 분데란 하이 기념탑을 중심으로 오고가는 차량들과 곳곳에 젊은이들의 모습이 젋다. 인도네시아의 평균연령이 30대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젊은 나라, 인구 2억5천만의 세계 4위의 국가, 석유, 가스, 고무, 석탄 등 풍부한 천연자원 보유국가! 이 나라의 중심을 보고 싶었다.
분데란하이 광장에서 작년에 강남스타일 몹이 있었다는 사실을 한국에 돌아와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곳이 자카르타사람들의 중심이라는 느낌은 당시에도 들었다. 플라자인도네시아 분수대를 돌아 나가는데 앞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하이! 하면서 인사를 건넨다. 난 그냥 외국인이라서 인사하는 줄 알고 있는데 우리 집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때도 난 그녀가 누군지 몰랐다. 그녀는 바로 어제 Kartini를 걸으면서 감비르역을 물었던 그 애기 엄마였다. 이런 우연이 있나? 어제 만난 사람을 다시 만나다니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하! 그녀는 아이를 셋이나 데리고 있었다. 어제는 어린 아이만 있었는데 오늘은 큰아들 둘째아들 그리고 어제 본 막내아들까지 대동하고 시내구경을 나온 모양이었다. 집사람이 아이들에게 초코하임을 하나씩 쥐어 주었다. 아이들은 우리가 신기한 모양이다. 특히 둘째의 똘망똘망한 눈이 나를 계속 쳐다본다.
그녀가 기념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여 우리는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녀와 헤어지면서 우연이라는 단어를 다시 떠올려 보았다.
여느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고층빌딩과 화려한 백화점 옆에는 항상 서민들의 공간이 있기 마련인데 자카르타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곳에는 본래 먹거리가 풍부하다. 좁은 골목 골목에는 각종 사테와 soto bakso를 파는 와룽(Warung-인도네시아 포장마차 내지 작은 가게)들이 즐비하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공존하는 곳 이것이 도시이다.
트랜스자카르타를 타고 망가베사르로 돌아오니 벌써 자동차의 라이트가 불빛을 밝히기 시작했다. 정류장에서 내려 그랜드 파라곤(Grand Paragon)쇼핑몰에 들어가서 우리는 오늘 먹을 것들을(맥주와 수박,망고, 음료 등) 샀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