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 Together ::: story 004. 빠이, 정전된 밤.
road to Pai...기억들,
빠이로 가는 로컬버스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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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나의 여행은, 5월, 12일_
잠으로 점철된 네시간이 지나자 내 앞에 PAI가 와있다.
로컬버스 안에서 느끼던 감상적인 기분은 접어두고,
배낭을 들쳐메자 다시 짜증이 밀려온다.
무거워.
더워.
여긴 어디?
나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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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YA옆에 있는 노란 은행 앞에 짐을 내던지고 바이크를 빌리는 그를 기다린다.
다시보니 짐이 정말 심플하다...노련한 백팩커 KATE. (...)

AYA옆에 있는 노란 은행. 잠이 덜깨서 있는대로 짜증이 났던지라 오만상을 찌푸리고 앉아있었던;;;

내가 앉아있던 곳의 맞은편 풍경_ 줄을 잘 맞춰 놨길래 이뻐보여서 ;-)
여러나라의 말들이 들려온다.
여러나라 사람들이 지나간다.
웃고 있거나, 피곤해 하고 있거나, 무표정이거나.
모두 저마다의 감상을 가지고 이 곳에 와있겠지.
궁금하지는 않다.
내 여행의 주인공은 나니까.
빠이...
나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이 곳을 마주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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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를 빌려 묘기라도 하듯 배낭을 싣고, 메고,
"어디서 묵을지 생각해 봤어요? 좀 둘러볼래요?"
라는 말에 시내와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을 구석구석 훑고 나서야 내가 말한다,
"타운에 있을래요, 조금 벗어나니까 너무 멀다."
17:00 PM

게스트하우스 안쪽 정원_
빠이강 근처에 있는 Baan Suan Rim PAI에 체크인을 하고 짐을 내려놓고 나서야,
조금은 여유가 생기는 기분이다.
오늘, 정전 중이라던데..다섯시 반쯤 들어온다고...
선풍기도 안돌아가고 물도 안나오고.
씻고 싶은데.
그래놓고 600밧?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나는 너무 피곤 했던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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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바이크를 타고 가까운 곳을 둘러보기로 하고,
필름카메라 하나만 달랑 챙겨서 가볍게 바이크 뒤에 올라탄다.
마을의 이곳 저곳을 바이크를 타고 둘러본다.
아기자기하다...
오래전에 몇주간 머물렀던 남반구의 red cliff라는 마을이 겹쳐 보인다고 하면, 조금 과장일까.
우리가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빠이 저녁시장, (16:00부터 일몰무렵까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이번 여행에 잠자는 강아지 사진을 잔뜩 찍어왔다 (...왠지 편해보여서;;;)

편해보인다...

돌아다니다 불량해 보이는 음료를 발견한다. 군것질 대마왕 KAT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게 포인트.

읽을 수 없었으므로 색깔보고 고른 음료....무슨 맛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맛있었다.
블루베리도 아닌것이...타로맛인가? (...)
어느 나라를 가도 가장 생기발랄한 곳이 바로 시장인 것 같아,
어딜 가도 꼭 들러보게 되는 곳인데, 빠이의 시장도 역시 들러보니 사람냄새가 물씬 났다 ;-)
"지금 쯤이면 시간이 딱 맞겠네..."
"어디가는데요?"
"일몰보러."
시장 구경을 적당히 마친 후, 달콤한 음료까지 먹고는 이동 중 피로로 인한 짜증이 사그라 들었다.
"일몰보러," 라는 말에. 목적지도 묻지 않은 채 그냥 바이크에 올라탄다.

시원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빠이 캐년으로 가는 길-
시간 감각을 상실해가고 있던 중이라 얼마나 걸렸는지 짐작도 안가네...
한참을 바람을 맞으며 달려가다가 쓰레기통을 못찾아 손에 들고 있던,
시장에서 마셨던 음료 뚜껑이 바람에 날아간다...; 안녕-;;;
(뚜껑은 수습 못했지만 나머지는 쓰레기통 찾아서 잘 버렸습니다)
얼마나 달렸을까?
드문드문 바이크 탄 여행객들이 반대 방향에서 지나쳐가고...
드문드문 바이크 탄 여행객들이 반대 방향에서 지나쳐가고...

도로 위의 표지판에 PAI CANYON이 보인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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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세계 3대 CANYON이라는 빠이캐년이야, 올라가보면 그 규모에..."
"규모에..?"
"이런...캐년, 소리가 절로 나올거야."
응?

빠이캐년 올라가는 길, 도로시가 사자랑 걸어 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던 길...
마치 오즈의 마법사에나 나올 것 같은 길을 따라 올라가니,
이미 자리를 차지한 몇몇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소박한 규모의 빠이캐년.

저 길을 걷기 위해서는 인디아나 존스한테 빙의라도 당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한테는 너무 좁은 길;)
"이런....캐년......소리가 절로 나오기는 하네요, 이쁘다.

보석 같은 하늘, 석양에 물들어 가는 빠이캐년은, 정말 예뻤다. ;-)
어린시절 아빠와 함께 여행했던 미국 서부,
아마도 그가 말한 3대 캐년(진짜 그런게 있긴 해?)에 들어갈
그랜드 캐년을 처음 봤을때와는 사뭇 다른 소박한 감동이 밀려온다.
일부만 똑, 잘라 옮겨 놓은 듯한 소박함.
해가 지는 방향에 드라마틱하게 물들어 가는 하늘을 보며 셔터만 연신 눌러대는 나,
반대쪽 하늘이 더 예쁘다며 그 곳을 바라보며 정신을 잃어가는 그.
아무런 인공적인 소리도 없던 그 공간에서 바라 본 일몰은...
당분간 잊기 힘든 감동이 되기에 충분했다.


예뻐요...예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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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타운으로 돌아오는 길,
아직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하네? 정전 되도 한시간이면 늘 불이 켜지곤 했는데...오늘 유난히 긴데요?"
타운으로 돌아오니 모두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먹고 있다.
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등장한 가스등이 타운의 일부만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집에 돌아와 그야말로 "쫄쫄쫄" 나오는 샤워로 대충 땀을 닦아내고,
간단하게 요기를 한 후에 정전 된 빠이 타운의 일부가 되기로 한다.
빛을 잃은 마을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쏟아질 것만 같은 별....
언젠가 이런 풍경을 본 적이 있어...
이 곳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 순간에 JJ아저씨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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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 할까요?"
로띠를 사먹고 근처에 있던 노천 테이블에 앉아 모히토를 마시고,
집 근처의 버팔로 힐에 앉아 쌩쏨 버킷을 마시며 지금까지의 감상을 짧은 대화로 이어나간다.
이런 분위기라면, 음악이 있어야 하는데.
랜턴과 가스등, 빨간 초에만 의지해 배경음악 없는 영화를 찍는다.
"이런 분위기라면, 역시 JJ아저씨 목소리여야만 하는데....
Jack Johnson은 나의 여행길에 동행하기 위해
노래를 해주는 느낌이 들어서 여행을 떠나면 더 듣고 싶더라구요."

Buffalo Hill_
22:30 PM
드라마틱하다, 라는 말을 몇번이나 더 쓰게 될까?
뭔가 깜빡깜빡 하더니 전기가 들어온다.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환호와 박수.
"유난히 길다 했더니 다들 신났네-"
그 순간, 내 귀에 들려오는 익숙한 기타소리,
그리고 그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
In times like these... In times like those...what will be will be...
and so it goes and it always goes...on and on and on and on and on and on....it goes,
uhmmm hmm hmmm...
눈물이 날뻔했다.
Jack Johnson을 이 상황에서....
(On and On 앨범 첫 곡인 Times like these)
이 곳, 태국 PAI. 내가 처음으로 발걸음을 한 곳...
우연히 지나가다가 들어온 PUB에서 작은 촛불에 의지해 대화를 나누다 문득,
목소리가 듣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빛을 되찾은 동시에 그 목소리를 듣게 되다니. 기적에 가까운 우연 ;-)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한동안 그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앨범채로 다 들려주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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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길다.
그리고, 이제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느낌에...
나는 한동안 이 평온한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나즈막히 지금 내 곁의 그에게 말해본다.

밤이 깊어서야 불이 켜진 빠이 ;-) 우리의 밤도 이제부터 시작인거다.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