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왕이란?? 이런사람이였군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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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왕이란?? 이런사람이였군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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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사람들은 왕을 참많이도 존경하더군요 그래서 공부좀해봤습니다.

어디에 올려야될지몰라서 일단여기 올려봅니다.


당시 집권한 나이가 19세였는데 초기에 왕은 정치적인 영향력이나 힘이 없었고

국가는 총리가 다스리는 공화정을 채택하고 있었습니다.

왕이였지만 나이가 어려서 정치에 관여할 수가 없었고

또한 왕이 직접 다스리는 정치 시스템이 아니라 푸미폰 왕은 힘이 없는 왕이였고

당시에 다른 나라의 왕실들은 모두 뒤집히거나 권력을 상실하여 유명무실해지는 격동의 세월이였습니다.

또한 왕권이 흔들리던 때라서 지금과 같은 국민들의 절대 지지를 받지 못하고 한순간에 무너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였다고 합니다.

마치 조선왕조가 격동의 세월을 격으면서 힘을 잃고 열강의 식민정책에 의해서 이리저리 흔들리던 때라고 할 수 있죠.

왕은 집권하고 스위스로 유학을 떠나서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키를 타다가 큰 사고를 당해서 심한 부상을 입게 됩니다.

그때 왕을 간호하기 위해서 고국인 태국에서 파견된 간호사가 지극 정성으로

왕을 간호하게 되고 이때 왕은 이 간호사와 사랑이 싹트게

되어서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가 지금의 태국 왕비입니다.

왕은 여러 첩을 두는 관례를 무시하고 지금까지도 태국 왕비 하나만 두고 삶을 삽니다.

이것은 태국 왕조에서 푸미폰 국왕 한사람만 그렇게 했다고 하니

여성편력에서도 깨끗한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태국 왕비도 젊었을때의 사진을 보면 정말 미인이였습니다.

지금은 뚱뚱한 아주머니지만 말입니다.

스위스에서 유학을 하고

고국으로 돌아온 왕은 자신이 힘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결국 허수아비 왕이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렇지만 왕은 국민을 위해서 자신이 무었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왕이 스위스에서 돌아온 시기에는 왕권이 그리 강하지 못했고 지금처럼 국민과 군 그리고 여러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한순간에 왕권이 폐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였다고 합니다.

왕은 불교 신자였는데

불교적 가르침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고 가난한 사람들의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고 가난한 사람들과

일생을 함께 살고자 합니다.

왕은 카메라와 지도를 가지고 이때부터 고행길을 걷게 됩니다. 일년에 무려 200일 이상을 산간 오지를 찾아 다니며 고산족 마을 사람들이나

가난한 시골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그들의 고민과 고충을 듣게 됩니다.

수많은 소수 민족의 지도자들과 만나고 소수민족의 마을을 방문합니다. 

당시에 태국은 권력 암투로 인해서 푸미폰 국왕 집권기간내에 17번의 쿠테타가 일어날 정도로 혼란기였고 정치가 안정되지 못하고

정치 권력 싸움이 만연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하루라도 바람잘날이 없었지만 왕은 정치싸움에는 휘말리지 않고 오로지 정치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면서  오로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이 할 일만을 찾고 생활해 나갔습니다. 

왕이 젊은시절 전국의 가난한 시골 마을들을 둘러 보면서 가난한 시골민들이 생활을 하기 어려워

아편을 재배해서 팔고 가난에서 벋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왕은 함께 눈물을 흘렸고 이들이 살아나갈 수 있는 길을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시작된것이 바로 로얄 프로젝트입니다. 

왕은 고산족 마을에서 아편을 베어내고 그 자리에 커피를 심게 합니다.

아편을 재배해서 살아가지 말고 커피를 재배해서 살아가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커피를 재배한다해도 그 커피의 판로가 없으면 농민들은 다시 아편을 재배하게 되지요.

왕은 커피가 재배해서 생산되면 방콕으로

가져다가 판매를 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주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고산족 마을에서는 커피 재배가 되었고 고산족 가난한 농민들은 더 이상 아편을 재배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마을 저수지가 물이 맑지 못해 물고기가 못사는 곳이 있는데 그런곳에 정화 정수장치를 개발해서 물을 정화 시키고

물고기를 키우는 양식업을 하게 합니다.

그 물고기를 다시 방콕으로 가져다가 판매를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현재 우리가 많이 타고 다니는 타이항공 / 이 타이항공은 올해 영국의 한 평가기관에서 써비스 평가 1위를 먹은 항공사입니다.

이 타이항공의 커피가 바로 이 고산족 마을에서 왕이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재배한 커피입니다.  

이러한 로얄 프로젝트가 1000개인가 2000개인가를 왕은 평생을 거쳐서 수행하게 됩니다.

태국에는 수많은 소수 민족이 있습니다만 모두 평화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독립 투쟁을 하지도 않고 일반 타이족과 소수민족은 잘 어울려서 살아가는 편입니다.

이런것도 모두 소수민족들의 불만을 왕이 듣고 경청하였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의 농촌을 보십시요.

오늘날 농촌이 빚더미에 앉아 있고 과거 우리의 위정자들은 농민들을 위한 정책보다는 박정희 시대의 저곡가 정책을 유지함으로

농촌을 붕괴시켜 농촌 노동자들을 도시로 유입시키고 과도하게 유입된 도시의 노동자들로 인한 저임금 도시 근로자를 발생시켜서

 저임금에 기초한 경제 발전을 이루어갑니다. 이러한 저임금에 기초한 경제발전은 재벌을 만들고 재벌정책으로 잘사는 부유층은 엄청난

부를 획득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농촌을 위한답시고 모내기철에는 아낌없이 막걸리를 마시며 모내기를 하곤 했는데 우매한 국민들은 여기에 속아서

위정자가 농촌을 위한다고 생각한겁니다. 무슨 글이나 하나 써주면 그것이 가보인냥 나라의 최고 성군인양 떠 받드는데

그의 여성편력이며 권력욕을 살펴보면 얼마나 추악한 면도 있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저곡가 정책으로 농촌을 망가뜨려서 도시로 농촌 노동자들을 유입시켜서 도시의 공장 근로자들의 임금을 떨어 뜨려 생산 원가를

절감하는 정책을 쓰는 정권의 수장이 모내기 꼬박꼬박하고 막걸리 마신다고 농촌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농민들이 그만큼 희생되었고 결국 오늘날과 같이 가난을 세습하게 된 것이죠. 

우리나라가 이만큼 먹고 사는것도 이러한 위정자들의 정치 때문만은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 시대에 많은 분들이

안먹고 안쓰고 자신을 희생하셨기 때문이지 어떠한 위정자들이 정치를 잘해서 잘먹고 살산다고 보지 않습니다.

결국 빈부의 격차만 크게 만들어 놓아서 더욱더 소외되는 계층만 많아지는게 오늘날 현실입니다. 

태국왕은 심한 가뭄이 들어서 농민들이 굶주리고 고생을 할때 

그 지역을 방문해서 함께 먹지 않고 마시지 않으면서 고통을 함께 했습니다.

함께 밭을 갈면서 비가 오기를 기원했구요.

결국 왕은 이런 가뭄을 영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인공강우를 연구하게 됩니다.

그 연구 업적이 대단하여 지금은 세계의 학계에서 세계적인

인공강우 권위자로 평가 받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세계적인 과학자인셈이죠.  

우리는 어떻습니까? 최근에 수해 때문에 모든 시골 지역이 물난리에 고통을 당할때 골프를 치거나

유흥을 즐긴 정치 지도자들도 있구요. 그러면서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고 하죠. 

태국은 왕의 집권기간중에 17차례의 정치 쿠테타를 격게 됩니다.

 정치 격변기속에서 학생운동가들과 시민운동가들이 정치 권력에 대항해서

시위를 할때 정부는 발포를 하게 되는데 이때 도망치는 학생들을 위해서 푸미폰 왕은 자신의 왕궁의 문을 개방해서

이들이 자신의 집으로 들어와서 무사하게 생명을 건질수 있게 합니다.

아무리 정부군이나 정부의 경찰이라도 왕궁에서 발포를 하거나 체포를 못하기 때문에 이들은

무사할 수 있었구요.

이 문을 열어준 사건 때문에 왕의 의중이 시민들의 뜻과 일치하다고 시민들은 판단  독재정권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왕은 가난한 사람들과 한 평생을 함께 합니다. 

왕이 왕궁에 초대를 해서 연회를 베푸는 사람들 가운데는 서민들이 대부분이며 정계나 재계 그리고 아주 유명한

권력자들과 푸미폰왕은 늘 거리를 두어 왔습니다.

쓰나미가 태국에 덥쳤을때 한국인 탤런트 정모씨가 그는 유디티 출신으로 살아 움직이는 119라 불리는 사람이죠.

태국을 여행하다가 쓰나미가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서 허우적 거릴때 많은 사람들을 구조했습니다.

귀국을 하지 않고 한 일주일간을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왕은 이 소식을 듣고 감동해서 자신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 자원봉사를 한 한국인 탤런트 정모씨를 나중에 왕의 연회에 

초대하는데 이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중에서 한국에선 정모씨 부부만이 유일했고 각국의 여러 사람들이 모인 중요한 모임이였습니다.

이런 점만 보아도 왕은 권력을 쥔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것이 아니라 늘 소외되고 백성을 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였고

그들과 함께 하기를 좋아한 사람입니다.

태국에선 기차역에서 저녁 6시면 태국군인들과 경찰들이 왕의 초상앞에 도열하고 경례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여행객들이 일어나서 도열하는데 극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외국인들이 일어나서 존경을 표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무척 어리둥절 했습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외국인들이 일어납니다. 태국인들은 말할것도 없구요.

이렇게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외국인들에게까지도 국왕은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일어나지 않는다고 처벌이나 잡아가진 않습니다.

또한 일본왕과는 달리 자신이 사는 집인 왕궁을 개방합니다.

우리가 태국에 여행을 가서 가보는 왕궁이 바로 태국왕의 집입니다. 일본에 가보세요. 걸어 잠그고 안에 얼씬도 못하게 합니다.

일년에 단 두번 정도 며칠 개방을 할뿐입니다. 태국 국왕은 자신이 다른곳으로 이사를 가고 자신의 궁궐을 개방을 해서 공개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외국인들이 왕궁에 방문합니까? 그 수입을 왕이 가지는 것이 아닐진대도 자신의 집을 개방하기 위해서 이사를

하기란 쉬운것이 아닙니다. 왕궁에 딸린 왕 전용 사원에는 온갖 귀중한 보물들이 다 있구요.

왕이 여행을 하면 왕이 묶는 전용 숙소는 곳곳에 있습니다. 단지 식사를 주요 호텔들에서 하게 되는데 왕은 서민적인 식당들을

많이 방문해서 식사를 했습니다. 정말 허접하고 서민적인 식당인데 왕이 방문해서 식사한 사진이 걸려 있는 곳들을

저는 태국서 여러번 보았구요. 왕비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좋은곳도 많이 가본 사람들이겠지만 서민적인 곳도 많이

이용하는 왕입니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가끔 서민들 위한답시고 재래 시장을 찾곤 하는데 어디 평상시 식사를 서민식당에서 합니까?

얼마전 야당 최고위원은 수해지역에 가서 삽질을 하면서 하룻동안 자원봉사를 하던데 뉴스로 나왔습니다.

만약 거기서 일주일이나 한달씩 살면서 삽질하면서 수재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가 몇이나 될까요?

아마 정치 일정이 바빠서 못한다고 할 것입니다.

태국 국왕은 가뭄 지역에서 같이 밭을 갈고 비가 내려 달라고 기도하고 굶주리는 백성을 위해서 같이 굶은 일화는

참 유명합니다. 결국 왕이 기도를 해서 그런지 어떤지 몰라도 비가 왔다고 합니다. 

우리가 푸미폰 국왕을 잘 모르는 것은 태국을 무슨 후진국 취급하고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치부하면서 쉽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태국이란 나라는 그리 허접한 나라는 아닙니다.

우리가 6.25때 태국에서는 전투병을 파견해 주었고 많은 쌀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이 태국의 안남미를 먹으면서 자란것이 바로 얼마전 이야기 입니다.

우리의 국민소득이 높아져서 사는것이 좋아졌다고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를 무시하고 그들의 것이라면 다 후지고 별로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태국 국왕은 통치를 할수는 없지만 태국의 헌법에 보면 태국의 국왕은 나라의 중요한 사한이 있을때 개입할 수 있다라는

애매 모호한 조항이 있어서 이것을 빌미로 정치에 관여 하는 경우를 보일 수도 있는데

푸미폰 국왕은 정말 정치에 관여하기 보다는 자신이 솔선 수범해서 가난한 사람들의 애로점들을 듣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자신이 연구해서

개발해서 접목하고 그들이 가난에서 벋어나서 인간답게 살수 있도록 하는데 한평생을 바친 사람입니다.

정치에 개입해서 권력을 휘두르며 한평생을 살았다면 아마 태국인들이 그토록 존경하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왕이 참 힘든 고난자의 삶을 살았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그들의 삶이 개선되도록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태국왕은 존경을 아직까지 받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태국의 일반 국민들은 왕이 오래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제 80세가 되어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지만 왕이 죽는다면

격변의 시기가 있을 듯하고 지금의 왕자가 왕권을 물려 받기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어서 태국민들은 왕이 죽지 않고

오래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성군 즉 정치 지도자가 있다면 정말 부러울 것이 없는데 태국을 보면서 이러한 성군을 가진 태국민들이 부럽습니다.

나라는 국민 소득이 높다고 수준이 높은것도 아니며 국민 소득이 우리보다 낮다고 후진 나라도 아닙니다.

국민소득은 하나의 경제 척도일 뿐이며 그들의 사상이며 삶도 중요합니다.

좋은 지도자인 푸미폰 왕을 가진 태국은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못해도 국민들의 만족도는 더 높습니다.

그런면에서 태국인들이 국왕에 대해서 가지는 존경 그리고 국왕이 국민들을 위해서 하는 일들을 보면 정말 부러울 뿐입니다. 

왕이 신이 아닌이상 왕도 사람인지라 실수가 있고 잘못이 있습니다만 최근에 왕은 태국법으로 불경죄라는 왕에 대해서

비판을 하지 못하는 법때문에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법을 없애라고

역정을 낸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 정도라면 절대권력의 왕권이 무너진 현대 사회에서도 훌륭한 왕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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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Comments
코난 2011.04.09 00:28  
철저히 우상화된 내용만 배우셨군요.ㅋㅋㅋ
이건 비난인데요
좀 제대로 공부좀 하시고 이런 글 올려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도 알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fact중 일부라도 언급하면 저도 무사치 못하기에 이만 입조심할랍니다
홈보이 2011.04.09 03:01  
많이,,,,,공감이 가네요.....
윗 두분 댓글에.......
마살이 2011.04.09 03:34  
이제 여행기를 보여주세요..ㅡㅡ;;
hyukjin 2011.04.09 04:13  
왜들 그러세요 ㅋㅋ ^^;
써있는거 복사해다옴긴건데 ㅎㅎ
저내용이 사실이라면 정말 부럽다는 생각을했습니다.
디어디어 2011.04.09 13:04  
표면적으로 보여주길 원하는 내용만 추려낸 내용입니다.
왕궁에서 의문의 총격으로 급사한 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고 스위스유학과
귀국후 유명무실한 왕권과 국민과 소수민족을 위해 노력한것은 사실이나..
현 왕조와 국왕이 세계 국왕중 가장 재산이 많은 왕이라는 점이 빠져있습니다.
세계 국왕이란 입헌군주제를 택한 서유럽국가를 포함한
실권력을 가지고 있는 석유대국 중동국가를 포함한 내용입니다.
태국왕의 그많은 재산은 다 어디서 나왔을까요?
태국의 중요기업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왕족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태국의 서민의 평균급여는 만바트를 넘어가고 있지 않습니다.
10년전에도 20년전에도..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새마을운동할때부터 저정도의 소득이었으니까요..
이제 막 태국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찾아보시다가 얻게된 정보이신거같은데요..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더 관심을 가지다 보면 모르던 내용이 더 보이게됩니다.
물론 태국내에서 태국사람들과 국왕에 대해서 얘기하는건 터부시되는 내용입니다.
곰돌이 2011.04.09 13:58  
진실은 저 너머에..... ㅜㅜ
이열리 2011.04.09 16:35  
음.................그럼 진실을알려주세요
내이보같은데 검색해도 왕실얘기도
고로 2011.04.09 22:09  
태국내 빈부의 차는 한국보다 훨씬 큽니다. (심지어 미국 보다도)
국왕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나라에 그 어떠한 변화도 있을 수가 없겠지요...
지구상에서 태국 왕족, 귀족이상의 권력을 가진 이들을 찾는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될겁니다.
kush 2011.04.11 10:52  
북조선 있지 않습니까... 같은 핏줄..
공심채 2011.04.13 00:03  
CIA Fact Book 2008년 Data에 의하면 미국의 Gini 계수는 45, 태국은 43.. 40이 넘었으니 불평등 정도가 심한 건 맞지만 미국보다는 낫네요. 우리나라는 31정도로 양호한 편. 최근에는 중국이 지니계수 50을 기록해서 이슈가 되고 있죠.
고로 2011.04.13 12:59  
그렇습니까, 미국이 97인가 98 년 데이타가 40 이였던 것 같습니다.  UN 지니는 2007 에도 미국은 40으로 나오네요. 아마 둘 다 지금은 더 심해졌으리라 봅니다.
rosana 2011.04.11 11:47  
태국 국민이 아니니 잘은 모르겠지만 분명 존경할만한 점이 많은 분이십니다. 특히 인공강우와 관련해서는 놀고 먹고 스캔들 뿌리느라 바쁜 다른 나라 왕들이나 독재자들과는 분명 차별이 가지요. 진정으로 가뭄을 걱정했기에 그런 기술을 연구한 거겠지요.
그리고 태국 시민들의 왕을 존경하는 모습을 보면 분명 북한과 같은 우상화랑은 틀린 것 같습니다. 습관이 아닌 진심이 보인다고나 할까요.
7~8년전 한창 태국에 관심이 있을 때 얼마 안 되는 관련 기사와 책 들 꼼꼼이 챙겨 봤었는데요,  국왕 관련해서 빠지지않고 나오는 것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선행이었습니다. 그리고 태국의 산업이 농업 중심인 것도 카지노가 없는 것도 이 분의 뜻이었다고 하더군요. 농산물이 풍부한 태국이 무리하게 다른 것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 도박을 좋아하는 국민성 때문이었다고 하더군요. 전문가가 아니니 이것이 옳다 그르다 판단은 못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옳은 판단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국왕 사후 혼란해질 태국을 걱정하더군요. 그 아들들이 너무 못나서.. 대중적인 인기는 둘째 공주가 좋다고 하더라구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집권 기간이 길다보니 명암이 같이 존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하지만 가장 혼란스런 시기에 잦은 쿠데타를 겪으면서도 국민의 존경을 받으면서 굳건히 왕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분명 암보다는 명이 더 많은 증거가 아닐까 싶네요.
자오아소 2011.04.13 11:38  
세상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함께 있습니다. (존재 자체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는) 예수나 석가 조차도 절대선일 순 없지요.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태국의 소수민족이 사실 많은 차별을 받고있습니다. 지나에서 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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