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나라, 낯 선 곳에서 한국인을 만난다는 것
(전 오늘 아침에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지금 막 내 집에 들어왔습니다)
어떤 친구가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하더군요.
불편하다,,라구요.
낯 선 곳에서 한국인을 만난다는 것이 말입니다.
저요?
솔직히... 동의합니다.
하지만, 초면에, 그것도 제 면전에 대고 그 말을 하는 자식 뻘의 젊은친구가 참 편협해 보이기는 했습니다. 적어도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친구이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젊은이일 거라는 편견을 떨쳐버리지는 못했습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많은 곳, 많은 사람을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이상하게 나이먹어 감에 따라 편견을 가지게 되고 편협해지는 자신을 종종 느낍니다. 이러다 험하게 늙어가겠다,,는 두려움에 가끔씩은 퍼뜩 놀라기도 합니다만, 그러다가도 이내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고, 이게 나란 인간이지 뭐...라고 얼버무리곤 합니다.
반 년 가까이를 떠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뻑하면 길을 나서곤 했지요. 말레이시아, 싱가폴, 태국이 거의 전부였지만, 수박 겉핥기 식으로라면 베트남, 라오스, 버마 등도 대충 눈요기는 했구요. 그러고보니 중국이나 일본 홍콩 등은 아직 가보지도 못했네요.
태국.....
정말 많이 변했고, 또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어쩌면 그곳은 그대로인데 단지 제가 변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변한 건 사실인 듯 싶습니다. 호주에서 발리를 거쳐 오셨고, 다시 발리를 거쳐 호주로 돌아가실 거라던 노년의 호주(서양)인 부부 역시 저를 앞에 두고 한탄을 하셨으니까요. 더이상 태국엔 오지 않을 거라던가요... 변해도 너무 변해서 슬퍼질 지경이랍디다.
물론 그 분들의 푸념이야, 단 몇 분, 혹은 몇 십 분 가량 대화를 나눈 사이일 뿐인, 낯 선 동양인 중년남자와의, 뭔지모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임기응변식 넋두리였을 공산이 크긴 합니다만.......
헐;; 제가 또 횡설수설 하는군요;; 제 글쓰기라는 것이 만날 이 모양이지요. (요점 정리가 도무지 안되는... 포인트가 없어, 포인트가!ㅋㅋ)
참 묘하게도, 이번 여행에서는 짧은기간(두 주일) 동안 많은 한국인, 특히 젊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치앙마이의 잉이라는 여성과, 그 여성이 운영하는 아주 작은 식당과의 인연때문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곳, 태사랑에서의 중요한 어느 분의 짧막하고 객관적인 평을 읽고, 제가 그 곳(잉의 작은 식당)을 찾아나서게 된 것이 그 인연의 시작이었겠습니다. 묘하게 사람을 끄는 그녀와 그녀의 음식, 그리고 그녀의 정서 덕에 우리는 정말 남매같은 사이가 돼버렸습니다. 누구 못잖게 낯가림이 심한 제게 일어난 작은 변화(?)같은 것이었습니다.
언제였던가......
이국을 떠돌며, 그것도 일부러 산골마을, 오지같은 곳을 떠돌아 다니다가, 음식이라면 일체 가리지 않고, 커리향 강한 동남아시아 음식을 제법 좋아했던 제게조차 눈물나게 고추장과 김치가 그리웠던 시절, 아무 것도 필요없고 그저 고추장에 맨밥을 썩썩 비벼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던 시절, 아니 그보다는 모국어가, 동포와 모국어로 나누는 대화가 절절하게 그리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북부던 남부던 간에 말레이시아 시골마을만을 떠돌던 제가 모처럼 쿠알라룸푸르를 들러, 바투 케이브를 오를 때였습니다. 인도인들의 힌두교 동굴사원인 그곳을 가려면 한참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저 위 어딘가에서 한국인 부부들로 보이는 단체 관광객들이 조잘조잘 나누는 대화가 들려오더군요. 전 그만 이성을 잃고, 패닉상태가 되어서는 미친듯이 뛰어올라가, 가뿐 숨을 몰아 쉬며 단 한 마디만 물었을 뿐입니다. 한국인이세요?!,,
그들의 그 놀랍고 두려운 표정이라니ㅋㅋ 나중에서야 전 깨닫게 돼죠, 이제 막 도착하여 들 뜬 기분으로, 그 냄새도, 분위기도, 사나운 원숭이들마저 신기하고 낯 선 곳에서 거지 꼴의 험하게 생긴 남자가 씩씩거리며 한국인이냐고 다짜고짜 물어오니 놀랍고 두려울 밖에요..ㅋㅋㅋ
이번의....
약 2주 간의 여행은 제게 도피같은 것.... 아니, 도피 그 자체였습니다. 일상으로부터의, 그리고 나조차도 모르겠는 그 무엇으로부터의 도망. 어쩌면 가장 두려운 스스로에게서의 도피, 혹은 탈출.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아무 것도 버리지 못한 채 돌아왔습니다. 아마도.... 그랬을 겁니다. 돌아오기 싫었어요.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만. 그래서 돌아왔습니다. 수완나폼 공항의 게이트에서도 역시 많은 한국인, 특히 많은 젊은이들을 만났,,다기보다는 보았습니다. 조금... 역겨웠습니다. 억센 영남 사투리를 구사하며 떼로 몰려 스모킹 룸을 드나드는 젊디젊은 아가씨들도, 어딘지 자폐적인 면과 근거없는 우월감을 함께 가진 듯이 웅성대는 젊은 숫컷놈들도 꼴뵈기 싫었어요. 단 한 마디의 영어도 구사 못하고 버벅대는 데다가, 무례하고 무식하기까지 한, 그 많은 한국인 중년부부들도 징글징글했습니다.
김포, 아니 인천공항에 내려 짐을 찾고, 담배가 그리워 밖으로 나가자, 아까 그 영남 아가씨들이 떼로 몰려 있습니다. 이상한 포스를 풍기며 어슬렁대던 놈들도 보입니다. 여객기 내에서조차 사소한 시비를 일삼던 중년부부도 보입니다. 참으로 남우새스러운 얘깁니다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다정하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내 동포, 내 이웃.... 그리고 내 나라. 우리 아이들.
게스트하우스에서 돈을 잃고, 배낭여행에 중독되어 현실감이 결여되고,현지 동포들에게조차 사소한 바가지를 쓰고, 얼마나 많은 케이스를 맞닥뜨렸던지.... 그 얘기를 여기에 다 쓰면, 여행 나서기 겁나 할 분들 참 많을 겁니다. 어쩌면 이미 그런지도 모르겠구요.
한 번도, 단 한 번도 그런 나쁜 경험을 한 일없는 저조차도 문득 경감심을 가지게 했던 뱃해픈스.... 팟퐁에 대한 나쁜 경험들이 그리 많다는데도 팟퐁에서라면 늘 행복했던 나....... 처음 태사랑에 들러, 참 좋은 정보가 많은만큼, 참, 기묘한... 이상한 사람들도 많네.... 싶었던 나...ㅋㅋ
작은나라,
어디든지, 누구든지.... 제게는 작은나라입니다. 한국도 태국도 아시아도, 현지사람들도 한국인들도, 그리고 나조차도. 저는 이 작은나라들을 쉬지않고 탐험할 겁니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할 겁니다. 제가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것은 그게 전부입니다. 해버 나이스 트립, 에브리원!
어떤 친구가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하더군요.
불편하다,,라구요.
낯 선 곳에서 한국인을 만난다는 것이 말입니다.
저요?
솔직히... 동의합니다.
하지만, 초면에, 그것도 제 면전에 대고 그 말을 하는 자식 뻘의 젊은친구가 참 편협해 보이기는 했습니다. 적어도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친구이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젊은이일 거라는 편견을 떨쳐버리지는 못했습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많은 곳, 많은 사람을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이상하게 나이먹어 감에 따라 편견을 가지게 되고 편협해지는 자신을 종종 느낍니다. 이러다 험하게 늙어가겠다,,는 두려움에 가끔씩은 퍼뜩 놀라기도 합니다만, 그러다가도 이내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고, 이게 나란 인간이지 뭐...라고 얼버무리곤 합니다.
반 년 가까이를 떠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뻑하면 길을 나서곤 했지요. 말레이시아, 싱가폴, 태국이 거의 전부였지만, 수박 겉핥기 식으로라면 베트남, 라오스, 버마 등도 대충 눈요기는 했구요. 그러고보니 중국이나 일본 홍콩 등은 아직 가보지도 못했네요.
태국.....
정말 많이 변했고, 또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어쩌면 그곳은 그대로인데 단지 제가 변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변한 건 사실인 듯 싶습니다. 호주에서 발리를 거쳐 오셨고, 다시 발리를 거쳐 호주로 돌아가실 거라던 노년의 호주(서양)인 부부 역시 저를 앞에 두고 한탄을 하셨으니까요. 더이상 태국엔 오지 않을 거라던가요... 변해도 너무 변해서 슬퍼질 지경이랍디다.
물론 그 분들의 푸념이야, 단 몇 분, 혹은 몇 십 분 가량 대화를 나눈 사이일 뿐인, 낯 선 동양인 중년남자와의, 뭔지모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임기응변식 넋두리였을 공산이 크긴 합니다만.......
헐;; 제가 또 횡설수설 하는군요;; 제 글쓰기라는 것이 만날 이 모양이지요. (요점 정리가 도무지 안되는... 포인트가 없어, 포인트가!ㅋㅋ)
참 묘하게도, 이번 여행에서는 짧은기간(두 주일) 동안 많은 한국인, 특히 젊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치앙마이의 잉이라는 여성과, 그 여성이 운영하는 아주 작은 식당과의 인연때문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곳, 태사랑에서의 중요한 어느 분의 짧막하고 객관적인 평을 읽고, 제가 그 곳(잉의 작은 식당)을 찾아나서게 된 것이 그 인연의 시작이었겠습니다. 묘하게 사람을 끄는 그녀와 그녀의 음식, 그리고 그녀의 정서 덕에 우리는 정말 남매같은 사이가 돼버렸습니다. 누구 못잖게 낯가림이 심한 제게 일어난 작은 변화(?)같은 것이었습니다.
언제였던가......
이국을 떠돌며, 그것도 일부러 산골마을, 오지같은 곳을 떠돌아 다니다가, 음식이라면 일체 가리지 않고, 커리향 강한 동남아시아 음식을 제법 좋아했던 제게조차 눈물나게 고추장과 김치가 그리웠던 시절, 아무 것도 필요없고 그저 고추장에 맨밥을 썩썩 비벼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던 시절, 아니 그보다는 모국어가, 동포와 모국어로 나누는 대화가 절절하게 그리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북부던 남부던 간에 말레이시아 시골마을만을 떠돌던 제가 모처럼 쿠알라룸푸르를 들러, 바투 케이브를 오를 때였습니다. 인도인들의 힌두교 동굴사원인 그곳을 가려면 한참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저 위 어딘가에서 한국인 부부들로 보이는 단체 관광객들이 조잘조잘 나누는 대화가 들려오더군요. 전 그만 이성을 잃고, 패닉상태가 되어서는 미친듯이 뛰어올라가, 가뿐 숨을 몰아 쉬며 단 한 마디만 물었을 뿐입니다. 한국인이세요?!,,
그들의 그 놀랍고 두려운 표정이라니ㅋㅋ 나중에서야 전 깨닫게 돼죠, 이제 막 도착하여 들 뜬 기분으로, 그 냄새도, 분위기도, 사나운 원숭이들마저 신기하고 낯 선 곳에서 거지 꼴의 험하게 생긴 남자가 씩씩거리며 한국인이냐고 다짜고짜 물어오니 놀랍고 두려울 밖에요..ㅋㅋㅋ
이번의....
약 2주 간의 여행은 제게 도피같은 것.... 아니, 도피 그 자체였습니다. 일상으로부터의, 그리고 나조차도 모르겠는 그 무엇으로부터의 도망. 어쩌면 가장 두려운 스스로에게서의 도피, 혹은 탈출.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아무 것도 버리지 못한 채 돌아왔습니다. 아마도.... 그랬을 겁니다. 돌아오기 싫었어요.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만. 그래서 돌아왔습니다. 수완나폼 공항의 게이트에서도 역시 많은 한국인, 특히 많은 젊은이들을 만났,,다기보다는 보았습니다. 조금... 역겨웠습니다. 억센 영남 사투리를 구사하며 떼로 몰려 스모킹 룸을 드나드는 젊디젊은 아가씨들도, 어딘지 자폐적인 면과 근거없는 우월감을 함께 가진 듯이 웅성대는 젊은 숫컷놈들도 꼴뵈기 싫었어요. 단 한 마디의 영어도 구사 못하고 버벅대는 데다가, 무례하고 무식하기까지 한, 그 많은 한국인 중년부부들도 징글징글했습니다.
김포, 아니 인천공항에 내려 짐을 찾고, 담배가 그리워 밖으로 나가자, 아까 그 영남 아가씨들이 떼로 몰려 있습니다. 이상한 포스를 풍기며 어슬렁대던 놈들도 보입니다. 여객기 내에서조차 사소한 시비를 일삼던 중년부부도 보입니다. 참으로 남우새스러운 얘깁니다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다정하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내 동포, 내 이웃.... 그리고 내 나라. 우리 아이들.
게스트하우스에서 돈을 잃고, 배낭여행에 중독되어 현실감이 결여되고,현지 동포들에게조차 사소한 바가지를 쓰고, 얼마나 많은 케이스를 맞닥뜨렸던지.... 그 얘기를 여기에 다 쓰면, 여행 나서기 겁나 할 분들 참 많을 겁니다. 어쩌면 이미 그런지도 모르겠구요.
한 번도, 단 한 번도 그런 나쁜 경험을 한 일없는 저조차도 문득 경감심을 가지게 했던 뱃해픈스.... 팟퐁에 대한 나쁜 경험들이 그리 많다는데도 팟퐁에서라면 늘 행복했던 나....... 처음 태사랑에 들러, 참 좋은 정보가 많은만큼, 참, 기묘한... 이상한 사람들도 많네.... 싶었던 나...ㅋㅋ
작은나라,
어디든지, 누구든지.... 제게는 작은나라입니다. 한국도 태국도 아시아도, 현지사람들도 한국인들도, 그리고 나조차도. 저는 이 작은나라들을 쉬지않고 탐험할 겁니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할 겁니다. 제가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것은 그게 전부입니다. 해버 나이스 트립, 에브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