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티걸의 태국 생존기 미션 1: 대만 공항에서 노숙하라.
그래.. 나는 이 선택을 가장 후회했다.
2011년 1월 8일 아침.
막상, 출발일이 되자 별의별 걱정이 들어서 환불되는 티켓이었다면 환불하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행여나 물고기에 물릴까, 익사한 시체라도 있는 곳에서 수영할까 오로지 투명한 수영장에서만 수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정도로 소심하고, 겁이 많다는 것이다. 쓸데없이.
그래도 이왕 떠나기로 한 거, 나는 유언 아닌 유언까지 남겼다.
‘ 엄마, 혹시 딸내미 죽더라도 하고 싶은 거 하다 죽는 거니 슬퍼하지도 말고. 나 가있는 동안 보험은 좋은 걸로 들어둬’ 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한테 맞을 만 했다. 오바는...
짐도 당일 날 아침에 부랴부랴 챙겨서 공항 리무진 시간 딱 맞춰서 나왔다.
20인치 트렁크 하나, 카메라 가방 하나, 아빠 배낭, 내 배낭 각각 짊어 메고.
공항에 도착하니, 시간을 너무 딱 맞춰왔는지 아빠 담배 한 보루 살 시간 밖에 없었다.
어쨌든 이렇게 후다닥 비행기 탑승해서 에바 공항에 도착했다.
오~ 이 smell~! 어디서 보고 배운 건지 나는 꼭 공항에만 내리면 이렇게 냄새를 쭉 들이 마셔본다.
일본 나리타공항에서도, 뉴질랜드 공항에서도, 심지어 제주도 공항에 내렸을 때도 그랬다.
냄새를 마시고 공항에 첫 발을 디딘 것까지는 좋았으나, 애초 계획과는 다르게 면세구역 밖.
즉, 출국장으로 나와 버렸다.
이때부터 미치는 줄 알았다.
호텔이나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가려고 해도 대만에 대해 아는 게 조금이라도 있어야지.
공항 밖으로 나갔다가 내일 아침 7시 비행기 타러 못 돌아 올까봐 감히 나간다는 생각도 못하고 ‘노숙’이
다 했었는데 공항이 참 열악했다.
이때 정말 패키지 여행 온 관광객들이 부러웠다.
누군가 데릴러 와서 호텔까지 태워다준다는데! 아니 부러울 수가.
어쨌든, 안내데스크를 찾아 가서 ‘게스트하우스’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갈 수 있는지 묻고자 했다.
그래 묻고자 했다.
‘Excuse me .....점점점.....' 누가 혀에 자물쇠라도 달았는지 왜왜왜 말이 안 나오는 건데.
그렇게 5분. 안내데스크양은 나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의 질문에만 귀를 기울였다.
정말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영어 배운 게 ’헛‘ 배웠다 싶었다.
그런 내 옆에 나타난 구세주- S군.
‘한국분이세요?’ 묻더니 유창한 영어로 날 무시하던 안내양과 대화하더니
게스트하우스 갈 거라고 같이 가실래요? 했다.
따라갈까 했으나 멀리 떨어져있다는 시내까지 가서 다시 돌아올 자신이 이젠 바닥이다.
그래 이왕 노숙하기로 한 거 하자. 해서 출국장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옆 자리에서 혼자 노트북을 하며 역시 불쌍해 보이는 외국인 아저씨에게 쌀 과자를 내밀었다.
난 속으로 ‘아저씨도 노숙이구나.’ 했다. 나는 말없이 우리는 통했다 생각했지만 그는 30분 뒤에 마중 나온
친구들의 전화를 받고는 Bye~ 하면서 사라졌다. 진심 부.러.웠.다.
그렇게 담요를 덮고 바퀴벌레가 왔다 갔다 하는 출국장 의자에 앉아서 인터넷도 하고 있는데 아까 본 S
군과 그의 친구 k군도 노숙하려고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게스트하우스 가려다가 절약할 겸 노숙
하기로 했다고 했다. 게다가 비행기도 우리와 똑같은 비행기! 이야기 나누다가 보니 돌아가는 날까지 똑
같은 날에 똑같은 시간인 것을 알게 되었다. 갖고 있던 간식도 나눠먹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도 잘
갔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아침! 우린 누구보다도 빠르게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 탑승! 이코노미 좌석조차
너무도 안락하게 느껴졌던 건 노숙 덕분이리라. 어쨌든 나는 공항 노숙은 절대 20대 초반의 여성이 혼자
한다고 감행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 아버지는.. 오로지 그림자처럼, 혼자 배낭여행하는 듯 느낄 수 있게 해주시겠다며...
딸내미 사진만 열심히 찍어주셨답니다 하하;; 혹은, 성격이 비교적 점잖은 K군과 말씀을 나누셨지요.
노숙할 때,담요도 덮어주시고요^^
워낙, 낚시를 좋아하셔서 노숙(?)을 저보다 자주 하셔서인지 굉장히, 괜찮아(?) 하셨어요 하하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