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던 적 없는 혼자 떠난 여행 1. 방콕에서 빠이로 가는길.
1.29일. 일요일.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가는 기차를 타다.
자유여행 울렁증이 있는 친구들을 고려하여 나도 뜨랏에서 친구들과함께 수완나폼공항행 버스를 탔다. 그리고 애들은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나는 빨리 치앙마이행 기차를 타러 기차역으로 가야한다.
이제 결국, 드디어, 마침내 혼자가 되었다.
친구들과 헤어진 시각은 저녁 8시 10분 쯤. 공항철도를 타러 지하로 지하로 내려간다. 늘 혼자 다니던 여행이었다. 처음으로 북적북적 친구들과 방콕, 꼬창에서 7일을 함께 보냈다. 역시 혼자보다는 여럿이 덜 쓸쓸하다. 물론 함께이기 때문에 조율해야 하는 일들도 많지만. 마음이 너무 심란하고 슬퍼진다. 친구들을 따라 그냥 나도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만 싶다. 두렵고 슬픈 마음이지만, 나는 갈 곳이 있다, 마음을 다잡으며, 배낭을 다시 고쳐 매며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긴다. 밤 10시 기차니까, 부지런히 가야지. 늦지 않으려면!
공항철도 티켓을 사는데, 나 다음에 티켓을 사는 태국 할부지도 휠람퐁 기차역에 가시나보다! 히히 엿들었다. 그래서 나는 휠람퐁 기차역에 가는 방법을 알지만, 그래도 할부지를 졸졸 따라가보기로 한다. 공항철도에서 중간에 내려 일반 지하철로 갈아타야한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귀로는 안내방송을, 눈으로는 할부지를 주시한다.. 물론 할부지는 눈치 못채시게! 헤헷.
앗. 이제 내려야 한다. 서둘러 배낭을 메고 가방을 끈다. 혹시라도 할부지를 놓칠새라 빠르게 따라 나선다. 물론 혼자서도 잘 찾아갈 수 있는 쉬운 길이지만, 왠지 저 할부지를 놓치면 기차를 못탈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일반 지하철로 들어서는 순간,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가방 검사를 한다. 그냥 거의 형식적인 것이었지만... 그러느라 그만... 할부지가 저만치 간다. 엉엉. 빨리 뒤쫓아가지만, 할부지는 지금 막 떠난 전철을 타는데 성공하셨다. 나는 떠나버린 할부지와 전철을 원망스럽게 바라본다.
그 때, 바로 옆의 서양 여자애랑 눈이 마주친다.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금새 여행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 혼자하는 여행이란 이런것이다. 어느새 슬픈 마음은 홀연히 사라진다. 변덕도 참.. ㅎㅎ 그녀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온 크리스티나. 나와 일정이 정반대다. 나는 섬을 떠나 치앙마이로 가는데 그녀는 치앙마이에서 왔고 섬으로 간다고 한다. 나의 4년 전 스페인 여행얘기와 크리스티나의 치앙마이에서의 쿠킹클래스와 마사지클래스를 갔던 얘기며, 치앙마이의 밤은 추워서 담요를 샀다는 등의 얘기들로 금새 휠람퐁역에 도착. 짦은 만남이었지만, 여행자들 답게 반가움과 고마움을 표시하고 우린 금새 또 손을 흔든다.
휠람퐁역. 출발까지 30분 정도가 남았다. 그런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식당은 죄다 문을 닫았다. 힝.. 꼬창을 출발한 이후로 먹은게 과일 몇개 뿐이라 배가 몹시 고프다. 9시에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한 이후 밤 10시까지 제대로 된 끼니를 먹질 못한 셈이다.
갑자기 급 서글퍼진다. 수퍼에 들어가 우유와 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계산대로 간다. 역시 비닐봉다리의 나라 태국. 라면을 쏟지 않고 들고가기 용이하게 좁다랗고 긴 라면 맞춤 비닐봉다리에 라면을 넣어준다. 헤헷. 또 금새 기분이 풀린다. ㅎㅎㅎㅎ
차장 아저씨에게 표를 보이니 저쪽으로 가라면 왼쪽 기차 플랫폼을 가리킨다. 플랫폼으로 건너가는데, 앳되보이는 여자애들, 적게 잡아도 한 70명은 되보인다. 모두 군복을 입고 기차를 기다린다. 여군들인가? 후훗. 귀엽다. 사진 찍자니 다들 등보이고 있다.. 그냥 기차를 타러간다. 자.. 이제 기차다! 자리를 찾아 들어간다. 기차 안은 무지 후덥지근하다.
내 자리 윗층은 동양인 아주머니다. 국적은 알수가 없다. 그리고 맞은편 자리는 아들 둘을 데리고 온 한쿡 아저씨다. 한국말로 인사하려다 아저씨가 넘 바빠보여 그냥 말기로 한다. 종종 일행이 있는 한국 여행자들은 다른 한국여행자들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그럴까봐 나는 입을 열지 않는다.
자.. 드디어 기차 출발한다. 세수하고 콘텍트 렌즈를 빼고 안경을 쓴다. 책을 꺼내고 수건을 말리기 좋게 펴서 가방위에 얹어둔다. 편하게 침대에 몸을 누이는데.. 헙.. 뭔가 잘못되었다. 기차안은 찜질방... 아니 불가마다. 어...라....이게 아닌데... 애초에 에어컨 칸으로 예약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방콕-치앙마이 침대기차에 대한 여행기에서 선풍기칸, 창밖에서 바람과 함께 벌레가 조금 들어오는 것 말고는 전혀 문제 없다고. 덥지 않다고. 그래서. 그렇다면 돈도 좀 아낄겸 선풍기칸을 타자,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덥다. 그냥 더운게 아니고. 무지 덥다. 머리털 나고 이런 더위는 처음이다. 진짜 죽을것만 같다. 헥헥.. 아..... 어무이... 저 이렇게 이 기차 안에서 질식사 하나봅니다...... 정말 죽는줄 알았다. 한시간여를 더위와 사투하느라 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누가 태국에서 선풍기칸 기차를 탄다고 하면 가방 싸들고 따라다니며 말리겠다. 도대체 어떤 놈의 시키야.. 이게 괜찮다고. 덥지 않다고 한놈 누구야.. 한국 돌아가면 그눔 시키부터 찾아내 니킥을 날리고 싶다. 이런 개드립으로 더위와 레슬링을 한다. 기차가 달리면 바람이 솔솔 불어 들어와 좀 살만하다. 근데 이 놈의 기차는 서는 곳도 왜 이리 많은지. 설때마다 다시 그 살인적인 더위가 되살아난다.
시간은 점차 흐르고 어느새 새벽 1시나 넘었을까.. 드디어 나는 더위를 잊고 잠이 든다.
1.30.화. 치앙마이 기차역에 도착! 빠이로 갑니다!
여전히 기차 안이다.슬핏 잠에서 깨 시간을 보니 오전 10시쯤 되었다. 치앙마이 도착시간은 12시45분. 물론 당연히 지연되겠지만 암튼 도착까지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다. 잠에서 깨 조금더 누워 뒹굴거리고, 창문도 더 열어 바람도 쐬고 나무 향내도 맡고 하늘도 보고.. 그렇게 있다보니.. 배고프다. 어제사둔 우유를 마저 마시고. 가방에 있는 드래곤프룻을 꺼내,, 칼이 없다. 손으로 껍질을 깐다. 그리고 홀랑 하나 다 먹는다. 배가 좀 찬다. 그리고 세수를 하고 렌즈를 낀다. 다시 침대에 누워 뒹굴거린다. 그러기를 또 한시간.. 12시쯤 되자 차장 아자씨가 다가와 이제 침대를 접자고 한다. 힝.. 침대 좋은데. 쭈뼛쭈뼛하기엔 시간이 완전 정오이긴 하다. 아저씨는 예의 그 장인의 손놀림으로 후다닥 의자를 만들어놓으신다. 아저씨 따봉!
알고보니 내 윗침대칸은 일본인 아줌마다. 아줌마는 치앙마이에 타이 마사지를 배우러 가신단다. (생각해보니 이 아줌마, 내가 이후 여행에서 만난 어떤 일본인 보다도 영어를 잘하신다! 일본 젊은 애들은 영어공부를 좀 안했나-_-) 타이마사지를 제대로 배워서 뉴질랜드로 이민가서 일할거란다. 아주머니가 사시는 곳은 도쿄 근교. 후쿠시마 원자력 사태 이후로 창밖으로 빨래도 널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매우 안좋았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그 일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신다... 거의 삼십분여 동안 우신것 같다. 제대로된 대책을 내놓지 못한데다 심지어 진실을 왜곡하기까지 하는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 삶의 장소를 잃어버린 슬픔과 통탄이 느껴진다. 더 이상 일본에서 살기 어렵다고 하신다. 일본 내에서는 후쿠시마 근교 주민들에 대한 오끼나와 이주 여론들이 있지만, 사실 그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다. 하긴.. 지금 나더러 갑자기 제주 가서 살라고 하면...나는... 뭐먹고 살아? 하던 공부는 어떻해?
휴.... 내가 체감하고 있던 후쿠시마 사태는... 이렇게 바로 그 로컬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을 통해 전혀 다른 문제로 다가온다. 그것은 이제 내게 그녀의 삶, 친구와 가족, 이웃들의 문제이다. 단순히 일본의 일이 아니다...
슬픈 이야기 후에는 남은 여행 얘기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여행책자를 꺼내 나에게 다녀온 곳과 앞으로 갈 곳을 체크해달라신다. 전부다 일본어다-_- 물론 조그맣게 지명은 영어로 되어있다. 눈꼽만한 영어지명을 찾아가며 설명을 해드린다. 그러기를 또 두어시간...
기차는 어느새 속도를 늦춘다. 치앙마이다! 꺄호! 어젯 밤 플랫폼에서 만난 여군언니야들도 같이 도착했네~ 십대로 보이는 여자애들만 북적북적대는 것이 문득 여고시절 생각이 나 급히 사진 한장 박고. 이제 빠이를 가야한다. 치앙마이 버스아케이드로! 지나가는 썽태우를 잡고, 일본인 아주머니와는 방향이 달라 헤어진다. 행운을 가득담아 긴 포옹을 하고.
기차역에서 버스터미널까지는 금새다. 한 십분이나 걸렸나. 빠이행 버스표 창구로 갔더니 로컬버스는 아침시간 뿐이고, 미니밴은 한시간 단위로 출발한다. 나는 3시30분 버스. 출발까지 50여분 정도 남았다. 맞다. 어제 아침 이후로 밥을 못먹었다. 짐을 차에 싣고 식당을 찾으러 출동한다. 적당한 식당에 들어가 국수로 한끼 식사 해결. 그리고 수퍼에 들러 멘토스 하나를 사고 버스를 탄다. 빠이로 간다...! 약 세시간여를 엄청난 커브들을 넘어넘어넘어.. 빠이다.
사실 처음 도착했을 땐, 빠이 지리를 전혀 모르니, 버스에서 내리자 여기가 어디고 나는 누구.... 라는 심정이었다. 알고보니 그곳은 빠이 경찰서. 무거운 가방을 질질 끌고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나선다. 에잇.. 날 밝을 때 빠이 숙소 골라둔 노트를 봤어야 했다. 어딘지 하나도 모르겠다. 엉엉. 이제 날도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일단 기억나는 게스트하우스 이름을 대며 한 아주머니께 물어본다. 아주머니는 다른 아주머니를 불러 얘 좀 가르쳐달라고 한다. 돕고싶으신데 모르시는 듯했다. 새로운 아주머니가 길을 가르쳐주는데 못알아듣자 직접 데려다주신다. 의외로 가깝다. 그곳은 팜게스트하우스였다. 그런데.... 방이 없다.
어흑. 서글픈 마음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햄버거 가게 앞에서 오토바이 위에서 통화중인 어떤 아줌마가 내게 방 구하냐고 물어본다. 갑자기 너무 반갑다. 흑흑. 같이 가서 보자신다. 나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가고싶으시지만 이번 여행에서 나는 캐리어를 들었다. 오토바이를 탈수가 없다. 결국 아줌마는 천천히 오토바이를 몰고 나는 뒤를 따라 걷는다.
도미토리방은... 별로 묵고싶지가 않다. 물론 묵는다고 해도 나 혼자 쓸것만 같은 곳이다. 지저분하거나 나쁘진 않지만, 여행객들이 잘 모르는 곳인것 같다. 2층엔 혼자 쓸 수 있는 방이 있다고 해서 올라간다. 역시 깨끗하고 있을건 다 있다. 화장실도 안에 있고, 상태도 매우 좋다. 타월도 주고 물과 커피도 맘껏 마실수 있다. 그런데 정원이 없다. 이틀 묵으면 깎아준단다. 첨엔 하루 500밧인데 이틀묵으면 400밧 해준다고 했는데, 내가 더 깎아달라고 졸라서 하루 350밧씩 이틀 묵기로 한다.
일단 나는 캄캄해지면, 불안해지기 시작해서 숙소를 구하러 찬찬히 돌아다닐 용기가 싹 사라진다. 그곳은 백퍼 맘에 드는 숙소는 아니지만, 용기가 없어 그냥 그 숙소에 이틀 묵기로 한다. 주인 아줌마는 한국에도 여행왔었다며 한국여행기를 늘어놓는다. 무척 친절하고 쾌활하시다.
나중에는 빠이 지도를 가져와 하이킹 코스를 숫자 1번부터 18번까지 넘버링하며 하나하나 가르쳐준다. 오토바이 빌려서 꼭 가보라고. 내가 한번도 타본적 없다고 했더니 쉬우니까 이번참에 해보란다, 꼭꼭. 너무 좋다고 강추하신다. ㅎㅎㅎ
사실 빠이에서 오토바이를 탈 요량으로 친구들과 꼬창에 있을때 오토바이를 탈줄 아는 친구에게 운전법을 사사받았었다. 그런데 불안불안하게 타니까 친구가 친절하게 그랬다. 이번엔 가서 타지말고 서울에서 다시 연습하고 내년엔 가서 타렴. 그래서 나는 빠이에서 오토바이 탈 생각을 접었었다. 아줌마가 이렇게 강추할때까지만 해도 오토바이 탈 생각은 단 10% 뿐이었다. (그런데, 그 생각은 다음 날 바뀌고, 많은 일을 만나게 해주었다.)
짐을 풀고, 일단 씻는다. 어제 오전 꼬창을 떠난 이후로 꼬질꼬질이다. 이틀만에 샤워를 한다. 감격이다 ToT 그리곤 밖으로 나간다. 소박한 빠이의 야시장이 펼쳐진다. 팟타이로 주린 배를 채우고 천천히 구경하기 시작한다. 옥수수 구운 것도 사먹고, 닭꼬치도 먹는다. 꿀을 탄 뜨거운 우유도 한잔 마신다. 배가 터지겠다. 저기 풍등을 날리는 사람들도 있네.
일단 불밝힌 곳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녔다. 슬 피로가 몰려온다. 라이브바에 갈 생각이 아니라면 일찍 가서 자는게 좋겠다 싶다. 아...캐 피곤하다. 어제 아침 꼬창에서부터 빠이 도착 때까지 계속 이동했으니.. 저질체력 대견하다 싶다. 무..물론 침대기차 10시간 숙면이 큰 공을 세우긴 했다. ㅎㅎㅎ 숙소로 들어간다. 와이파이가 잡힌다. 반가운 와이파이!! 가족과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잔다... 오........추운 빠이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