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표를 찾아서 - 20. 꽃이 핀다 on 몽족의 설날 in 비엔티앤
꽃이 핀다.
높고도 후미진 자리에서
세상이 버린 이름의
꽃이 핀다.
1월의 날카로운 추위,
얼어서는 안되었다.
4월의 뜨거운 햇살,
녹아서는 안되었다.
7월의 긴 빗줄기,
흩어져서는 안되었다.
9월의 거친 바람,
날려서는 안되었다.
11월의 마른 대기,
말라붙어서는 안되었다.
그리해서야 꽃이 된다.
곧 질테지만
다시 그 자리에
그 이름으로 돌아가겠지만
같은 그 시간에
같은 그 고통을 겪겠지만
섣달 그믐말, 오늘은 꽃이 되어야 한다.
오늘은 그 높고 후미진 자리에 내가 살아있고,
오늘은 세상이 버린 나의 이름을 외치고,
내가 꽃이란 것을 증명해야 한다.
마지막 달의 마지막 날, 가장 외로운 곳에서 태어난 꽃이 핀다.
하찮게 여겼던 가장 아름다운 꽃이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