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딱서니 부부의 도둑여행] 삼십대에도 삽질은 계속되어야 한다.
치앙마이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은 "10밧식당"에서 해결해야지.
허름한 로컬식당인데 모든 메뉴가 10밧이고 물도 공짜인데다 맛까지 좋다는 고급정보를 입수하고
라차담넌 쏘이5로 들어섰다.
우리가 가진 단서라곤 골목길로 들어가 세탁소 바로 옆집이라는 거밖엔.
그리고... 이날 아침부터 삽질은 시작되었다.
분명 간판 없는 식당이라고 들었는데 외쿡인 몇명이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는,
그 시각 유일하게 문을 연 첫번째 식당을 발견하곤 우린 "유레카~"를 외치며 착석해버렸다.
메뉴판을 받았는데... 뭔가 이상하다...
아무리 5년 전 정보이고 가격이 올랐기로서니 10밧짜리 메뉴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비로소 주방 위, 식당 앞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PEPPERMINT COFFEEHOUSE"

억울해하는 나를 달래며 돼지는 그냥 먹자고. 여기도 분위기 좋고 맛나보인다고 설득했다.
메뉴판을 보고 고를까 하다 모를 땐 남이 먹는 거 따라먹는 게 진리라며
옆 테이블 아저씨가 드시는 샌드위치로 추정되는 무언가와 무슬리를 시켰다.
근데 막상 우리 테이블에 나온 건, 빵 쪼가리와 오믈렛....
잘못 나온 건가???
알고 봤더니 아저씨가 먹던 건 샌드위치가 아니가 그냥 빵에 오믈렛을 싸 먹은 거였음. OMG...
그래도 맛은 썩 나쁘지 않았다.
오늘은 아침부터 뭔가 일이 자꾸 꼬인다. 빨리 다음 일정이나 진행해야지.
원래 오늘 계획은 썽태우 대절해서 싼깜팽온천-도이수텝-보쌍마을 등을 둘러보는 거였는데...
엊그제 강제동원된(?) 사원투어로 인해 사원이라면 치를 떠는 돼지 때문에
도이수텝 이후 일정은 포기해야만 했다^^;
뭐 어차피 트레킹 후유증으로 종아리가 땅땅해져 계단 내려갈 때마다 앓는 소리도 절로 나고
유적이나 꾸며놓은 관광지 따위엔 별 감흥을 못 느끼는지라
걍 온천이나 하면서 빈둥거려야지 맘먹고
어제 먹고 남은 치킨이랑 과일, 꽝꽝 얼린생수병 등을 들고 일단 와로롯 시장으로 향했다.
도이수텝도 안 가기로했으니
경비도 아낄겸 와로롯 시장에서 노란색 썽태우를 타고 가기로 했다.
태사랑에서 본 금은방을 찾아가 싼깜팽 온천행 썽태우 정류장을 물어봤더니
자기네 금은방 사진이 우리 프린트에 떡 하니 있는 걸 보고 겁나 신기해하며
근데 막상 정류장에 서서 기다리다보니 노란색 썽태우가 너무 많아서 멘붕.....
조신하게 기다리지못하고
노란 썽태우 지나갈 때마다 안절부절, 쪼로록 달려가서 온천 가냐고 물어쌌는 나를
보다못한 노점상 아주머니가 와서 한마디 거든다.
정류장에 썽태우가 알아서 와서 선다고, 오면 알려줄테니 가만히 있으라고.ㅋㅋ
* 태국어로 된 목적지 간판만 있는 다른 노란색 썽태우와 달리, 온천행은 Hotspring 이라고 써있어요~
노점에서 땡모빤 한잔 사서 빨대로 쪽쪽 빨아대며 얌전히 기다리다보니
아줌마 말씀처럼 때가 썽태우가 정류장 바로 앞에 선다.
대략 30분 간격으로 오는데, 와서 5~10분정도 정차해서 손님 태우고 출발하는 듯 싶다.
가격은 인당 50밧.
아이를 앉고 탄 할머니, 교복을 입은 학생, 장바구니를 든 아줌마...
탈 때만 해도 사람이 만원이었는데 어느새 다들 내리고
우리 둘만 남았다.
그렇게 한시간 이상 계속 달리다보니 슬슬 유황 냄새가 몰려온다.
드디어 온천에 도착했군.

입구에서 입장권을 사고 정원을 따라 걷다보니 분수처럼 물줄기를 뿜어내는 온천이 보인다.
조형물까지 계란&메추리알!
주변 매점에서 대나무 바구니에 담겨진 날계란(3개 20밧)부터 샀다.
그리고 삶은 계란엔 역시 사이다지!
사이다 대신 스프라이트 먹자 했는데, 여긴 콜라랑 환타밖에 안 판다.
스프라이트나 콜라나 같은 탄산이라며 뱃속에 들어가면 똑같겠지 위안을 삼고
일단 계란바구니를 탕에 걸어놓은 뒤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표지판에 계란 삶는 시간까지 표시해뒀다.
완숙으로 먹겠다며 15분 후에 가서 건져냈는데... 속았다.
테이블에 톡 쳐서 껍질을 깼는데 흰자가 하나도 안 익었다. 아까비~
나머지 계란을 다시 탕에 넣었다가 또 10분 후쯤 꺼냈는데
흰자가 여전히 물컹물컹... 근데 신기하게 노른자는 탁구공처럼 탱탱하게 익었다.
이럴 줄 알았음 빨랑 익는 메추리알을 살 걸.
계란을 사면 찍어먹을 간장을 주는데
우린 기내식 줄 때 나온 소금&후추를 따로 챙겨뒀다가 가져왔다.
(음식에 있어서만큼은 유비무환 정신!)
삶은계란에 과일, 치킨까지 먹고 있으니 제법 소풍온 기분이 난다.

밥먹다 돼지가 주변에 온 개 한 마리한테 남은 치킨을 좀 던져줬는데
그 개가 배채우고 나서 돌아댕기며 동네 개들한테 소문을 냈는지
먹을 거 하나도 안 남았는데 개들이 다 우리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
뭐라도 내놓으라며 으르릉 거리는 탓에 겁먹은 우린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39도 날씨에 온천욕? 내 몸이 지금 유황온천이다~ 라는 명언을 남기며
돼지는 극구 온천욕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때타올도 챙겨왔는데 사실 나도 더위먹기 일보직전이라 현지인들 옆에서 발만 담구기로 협상타결.
뜨끈한 물 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앉아있으니 오히려 열이 나는게 아니라 시~원한 느낌이 든다.
진짜 유황온천이긴 한지 계란 썩는 냄새 같은 게 나면서 물도 미끈미끈~
오후 1시쯤 슬슬 시내로 돌아갈까 해서 아까 썽태우 내린 곳으로 돌아갔다.
삼십분을 넘게 기다려도 노란 썽태우는 코빼기도 뵈질 않는다.
혹시나해서 매표소에 물어봤더니 4시에 온단다.
막차가 4시라길래 그전에도 30분~1시간 간격으로 올 줄 알았더니
그냥 4시 차가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차편이었음.ㅠㅠ
추측컨대, 와로롯마켓에서 출발한 핫스프링행 썽태우 전부가 온천까지 오는 게 아니라
태운 손님이 원하는 곳까지만 운행하고, 막차인 4시 썽태우만 온천까지 오는 거 같다.
물론 그 시간 전에 노란 썽태우타고 온천에 오는 사람이 있으면 운좋게 그 썽태우를 타고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세시간을 땡볕에서 기다릴 순 없고...
근처에 빨간 썽태우 한 대가 서 있길래 시내까지 갈 수 있냐고 했더니
다른 손님을 태우고 온거라 3시반까진 대기 중이란다
근데 지금 바로 출발할 거면 500밧만 달라고.
(우리 데려다주고 다시 시간 맞춰 돌아올 생각인 게지???)
50밧 주고 온 곳을 500밧 주고 돌아갈라니 넘 아까워서 그냥 기다려볼까 하다가
땡볕에 서있자니 너무 덥고 힘들어서 다시 흥정 시도했다.
근데 그 기사 콧방귀 뀌며 이젠 늦어서 안 된다고 인심쓰듯 3시반까지 기다리면 태워줄테니 350밧 달라질 않는가.
그럴 바에야 4시까지 기다렸다 썽태우를 타고 말지;;;
오기가 생겨서 돌아섰다가.....
갑자기 용기(?)가 생겨서 히치하이킹 시도~
주차장을 어슬렁거리며 타깃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SUV 차량을 노렸으나 가족이 많아서 실패...
혼자서 중형차 몰고 온 사람이 있길래 가봤더니 얼마후 스님들 태우고 썡~하니 출발...
굴하지 않고 다시 미니트럭 타고온 현지인 부부에게 접근했다.
글로벌앱 태국어까지 들이밀며 손짓발짓눈짓까지 총동원...
택시가 없어 숙소로 돌아갈 수 없다며 징징대자 선뜻 태워준닥 한다! 올레~
멀리서 계속 우리를 주시하고 있던 빨간 썽태우 기사에게 의미심장한 썩소를 날려주곤 차에 올라탔다.
운전석&조수석까지 2인용이긴 한데, 좌석을 제끼면 뒤에 아주 좁게 2명이 더 탈 수 있었다.
그래도 거기 타긴 염치가 없어서 걍 트럭 뒤에 탄다고 우겼다.
히치하이킹의 묘미는 트럭 뒷자리니까!
근데.... 근데....
막상 뒤에 타니 제대로 달궈진 쇳덩어리 바닥에 엉덩이가 익어가고
머리 위에 내리쬐는 햇볕을 피하고자 펼쳐든 우산은 바람에 수천번 뒤집어지고 머리는 그야말로 산발....
더이상 참지 못하고 백미러를 통해 아저씨와 아이컨택을 시도했다.
하다하다 뒷유리창 두드리며 얼굴에 손부채질을 해대는 기괴한 퍼포먼스로 동정심을 유발하니
그 착한 부부는 또다시 갓길에 차를 세우고 가여운 우리를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앞자리로 인도해주셨다.
민망함과 어색함, 고마움 등등이 뒤섞인 채 우리는 '차비값'을 하기 위해
트레킹 사진도 보여주고 쉴새없이 조잘대며 재롱도 떨었다.
차비를 드리기엔 그분들 호의를 무시하는 거 같기도 하고 뭔가 보답할 게 없나 가방을 뒤적뒤적이다보니
다행히 한국에서 챙겨온 전통엽서가 딱 한장 남아있다.
봉산탈춤인지 뭔지 춤추는 장면을 찍은 사진엽서인데...
신기해하며 뭐냐고 묻는데 짧은 영어실력으로 설명하기도 힘들고 (사실 아는 것도 별로 없었음^^;)
치앙마이 깐똑쇼랑 쌤쌤 이라며 대충 둘러대고 말았다.
그분들 가는 방향이 우리랑 달라 치앙마이 시내까진 못 가고
중간에 썽태우가 많이 다니는 곳에 차를 세운 뒤,
아주머니가 내리셔서 직접 목적지랑 금액도 확인 후 우리가 무사히 떠나는 걸 본 후에야 그 차도 출발했다.
온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다 하얀 썽태우도 다니는 걸로 봐서 아마 싼깜팽 마을 부근이었던 듯.
암튼 덕분에 우린 와로롯마켓에 내렸고 차비도 단돈 20밧(인당)에 해결했다.^^
이번 여행은 준비가 부족해서인지 각종 돌발상황과 예기치 못한 변수들로 가득 했다.
그래서 더 미련도 기억도 남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