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Vietnam: ep02 - 호치민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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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Vietnam: ep02 - 호치민에서 길을 잃다.

세계테마기행을 보고 울림으로 남아있던 베트남의 항공권을 끊었다.
원래부터 베트남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친구가 좋다며 같이 가자 장기간 들쑤석거렸으나,
비행기를 예약할 땐 그 친구는 얌전히 새 회사로 기어들어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급하게 떠나는 여행인만큼 미친듯이 일들을 해치워야 했기에
새벽까지 잠을 뒤척였다. 반나절 만에 6개월치 부가세를 신고하고,
입사서류를 전송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처음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이라는 부담감은 촉박한 시간 앞에 느껴질 새도 없었다.
심지어 환전도 못해서 머리를 쥐어박으며 공항점에서 급하게 환전을 했다.
100불짜리 여행자 수표 3장과 10불 열 장, 5불 열댓 장, 그리고 스물 다섯 장의 1불.
14일간 나를 재우고 먹여줄 든든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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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창문으로는 무이네의 사막으로 추정되는 노란 땅이 보였다.
호치민에 다다랐을 때,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자그마한 점들이
오토바이로 변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드디어 베트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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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남아있었던 첫 날, 원래 일정은 호치민 투어였지만,
4시간의 장기간 비행으로 인한 jet lag이 찾아와(프하;) 맘 같이 되어주지 않았다.
캐리어 하나, 배낭 하나에 원시 부족 한 가족 정도는 먹여살릴 수 있을 것 같은 짐을
주렁주렁 달고 데탐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숙소를 찾다가
결국 13달러에 자그마한, 그닥 예쁘진 않지만 운치있는 야경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은 미니호텔로 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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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잡을 겸 로컬 식당을 찾아 나서자 의외로 골목 하나만 들어가도 한산하다.
게다가 내 또래의 동양애들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여행오면 친구도 저절로 만들어질 줄 알았더니 여행자들은 바쁘게 제 길만 오간다.
너는 해외나가면 인기 많게 생겼다고 천오백번쯤 들었었는데,
그게 단지 위로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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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떨어져서 보여서일까. 만나는 사람들이 소매치기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다.
여행사나 게스트하우스에서도 그렇고,
머리카락도 덤으로 줬다는 그 식당에서 옆에 앉아있던 아줌마도 그런다.
괜히 싸돌아다니다 오토바이탄 스내치들한테 소매치기 당하지 말라고.
현지인인줄 알았는데 영어를 너무 잘해서 물어보니
타이페이에서 왔고 중국어와 대만어, 베트남어에 영어까지 구사하시는
수퍼 코스모폴리탄! 김치는 맛이 너무 스파이시라며 잘 못먹는다고.
그녀는 포 잘하는 가게 약도를 얼룩 진 테이블 위에 손가락으로 연신 그려주었다.
덕분에 이튿날에는 정말 진국인 로컬식당을 찾아서 배 두드려가며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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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밤이다.
질주하는 오토바이들 사이로 여기가 호치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저 오토바이들을 뚫고 어떻게 길을 건너야 할지 망설이는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것 같다.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조금 겁나지만,
20년 전 서울의 미니어쳐 같은 이 도시에 곧 매혹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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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종업원과 맛있는 커피가 있는 Highlands Coffee에서 랩탑을 켰다.
스타벅스나 커피빈 쯤 되는 분위기다. 된장질은 이역에 와서도 멈추지 않는다.
때마침 후덥지근한 비가 내린다. 창 밖에서 구경하는 재미가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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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토바이들의 경적소리에 느즈막히 잠을 깼다.
숙소는 테라스가 있어서 활기찬 부이비엔의 풍경을 담을 수 있었다.
근데 테라스가 있다는 것 외에는 전혀 내세울 게 없다.
심지어 구멍이 숭숭 난 수건에 화장실에는 휴지도 없다.
빤한 장삿속에 Wi-Fi도 된다더니 짐 풀고 나니 그런거 없단다.
자기는 Wi-Fi가 뭔지도 모른단다. 뻔뻔해서 하루만에 짐싸들고 나왔다.
1년이 지나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데탐의 게스트 하우스 중에 Wi-Fi가 되는 곳은 별로 없다.
그래서 안 돌아가는 머리를 짜내서 Wi-Fi가 되는 Bobby Brewer’s Coffee옆의
게스트하우스 Hong Noi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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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셉션의 싹싹하게 생긴 남자아이가 염소처럼 담배를 피워댄다.
대가족이 사는 호텔이다. 창을 열면 들떠있는 여행자거리 대신
현지인의 일상이 눈에 들어온다. 더 마음에 든다.



짐 풀고 무작정 나가 아담하게 지어진 공원을 끼고 헤메다보니 -_-
어느새 벤탄시장이다.
클린턴도 먹고 갔다는 Pho2000에 들어가는 순간
여행자수표를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터덜터덜 걸어서 뉴월드 호텔쯤 갔을 때
가이드북 사이에 다소곳하게 끼워져있는 수표를 발견했다.
손발아.. 니들이 고생이 많다.
덥고 짜증나고 오토바이 뎀비는 것도 지치지만
꾸준히 먼거리를 헤맨 끝에 벤탄 시장을 드디어 찾았다.
화장품, 쌀국수, 생선, 과일, 커피, 옷, 천까지 다 있는 종합시장이다.
벤탄시장, 여기 재밌는 구조다.
시장 바깥 쪽으로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정찰제 상점들이고
안쪽으로는 흥정이 가능하다.
바깥 쪽을 먼저 둘러본 뒤 안으로 들어가서 구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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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똑같은 물건이래도 벤탄보다 데탐거리의 소브니에 샵들이 훨씬 싸다는 말씀.
가족들을 위한 옷가지를 몇 가지 샀다.
알고보니 몇 개 아이템은 적지 않은 바가지를 썼더라.소심해서 역시 흥정에는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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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탄에서 나와서, 또 길을 잃었다.
여기는 오토바이를 쎄옴이라고 부르는데,
걸어가고 있으면 지겹도록 따라와서 타라고 한다.
이런 교통환경에서 오토바이를 탄다고?로 시작되어
으악.....납치되는거 아냐!! 말도 안통하고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근데 리멤버투어 사장님이 137 맛사지 추천해주시면서 머니까 쎄옴 타고 가라고
아는 기사분으로 소개해주셔서 첨 타봤는데 완전 재밌다.
나중에는 지겹도록 탔다 ㅎㅎㅎㅎ


..to be continued.

5 Comments
dandelion 2009.06.15 10:13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기대되는 여행기에요... 저에겐 너무나 그리운 베트남..... 담 여행기도 기다리고 있을께요...
boraby 2009.06.18 13:16  
사파랑 달랏은 남겨두고 왔어요. 언젠가 다시 갈 때 둘러볼려구요 ^^
물고기날다 2009.06.17 12:12  
전 호치민 첫날 소매치기를 만나 오토바이라면 질렸지만 결국 세옴 뒤에 메달려 호치민을 돌아다녔다죠 ㅋㅋ 베트남, 다시 가고 싶은 곳이예요.
boraby 2009.06.18 13:17  
흔들흔들 불안한게 타다보면 재밌어요. 엉터리 헬멧도 그렇고...
rladlfeh 2009.07.10 02:08  
""정말 진국인 로컬식당""  기억 나시면 꼭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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