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푸꿕] 도시, 섬, 사람을 여행하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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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푸꿕] 도시, 섬, 사람을 여행하다 (4)

빈&영 2 3396

아~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1년전 세월호가 올해 메르스로 나타나고, 그 와중에 정부는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하고,

 

그 때 가만히 있으라던 말이 이제는 집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로 바뀌어 강요하고,

 

이러다 내년에 또 어떠한 일이 우리에게 닥칠지 불안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무리 안된 블로깅은 마저하라는 어명이 있기에...

 

가자! 인생 뭐 있냐!!! 까르페디엠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번 베트남 여행은 사람이 핵심이다.

 

푸꿕섬은 휴양으로서의 목적이었지만 호치민에 온 가장 큰 이유는 인연을 만나는 것이다.

 

'굿윌', '나와 우리'로 이어진 인연이 부산의 인연으로 이어지고, 다시 그들을 만나기 위해 호치민을 찾은 것.

 

 

 

주말을 맞아 호치민 젊은이들을 만나기로 한 우리 부부.

 

데땀거리에서 두 명의 뚜이(성조가 틀린)를 만나 잠시 저녁먹고 바로 담날.

 

이들이 영어를 배운다는 홈스쿨을 찾았다.

 

 

 

 

호치민의 부유한 집으로 추정되는(집안에 연못 만들어 놓았더라... 건물 전체가 집 한채였던..@.@) 쌤집에 불쑥 찾아갔더랬다. 사진의 할아버지가 영어 쌤인데 그 역시 베트남 분. 연세에 맞게 인생역정이 다양했던 분이시다.

 

책과 이슈로 프리토킹하는 수업에 불쑥 끼어든 우리(미리 허락은 받은 것이지만)가 어색해서인지, 당일 영어수업은 우리와의 대화가 전부였다. 세명 다 한인업체에 근무하고, 한국어과를 나와 한국어 소통이 어렵지 않지만, 영어 수업이니만치 영어로 대화를 하며 2시간여의 시간을 보낸 후... 

 

 

 

 

복잡한 시내를 돌고 돌아 한창 공사가 마무리 중인 응이엔훼 도로 광장에서 사진도 찍어보고.

 

 

 

 

본격적인 호치민 오토바이 투어에 나섰다. 위험하다며 굳이 오토바이 대여를 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 부부를 뒤에 태우고 다녔다.

 

사이공강에 앉아 사이공맥주를 한잔하며 잠시 머문 그 시간.

 

프랑스풍 건물과 저 멀리 보이는 호치민의 새로운 빌딩이 이채롭다. 

 

 

 

 

한가로운 개와 늑대의 시간. 강변에는 산책나온 시민들과 데이트하는 선남선녀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바로 이 친구들을 만나러 호치민에 왔다.

 

2008년 세계여행때 이 곳 호치민에서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들과 일주일여 보낸 추억이 있기에, 7년여 지난 오늘 다시 이들을 보고 싶었다.

 

2008년을 기억해보면 '나와우리'라는 단체에서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끔찍한 만행에 희생된 마을을 도와주고 사과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후배 하나가 마침 그 사업에 함께 하였고, 우리와 만나 호치민에 머무는 동안 숙식을 해결하게 되었다. 당시 대학생들이었던 이들과 함께 얘기나누고 놀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그런 그들이 7년이 지나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으로 베트남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한명은 베트남 TV에서 PD로 일을 하고 있고(당시에도 이 친구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다큐를 출품해 상을 받기도 했다), 은행에 다니고, 한인업체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으니, 내가 그만큼 늙어버렸나...

 

 

 

 

딥은 한국어를 못하지만 결혼한 와이프가 한국어과 출신이라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또 하나, 당시 나는 영어를 아주 못하는 여행자였다. 그런 나에게 충격적인 말을 한 것이 이들이다.

 

언제나 늘보를 통해서만 대화를 하게 되니 한번은 '영어 꼭 배워. 나보다 못하면 안되니까. 나중에 볼 때는 영어로 얘기하자' 요따우 말을 했고, 30대 중반의 혈기에 여행을 잠시 접고 바로 필리핀으로 방향을 선회해 영어연수를 하게 된 것이다.

 

 

 

아래부터는 식당에서 만난 현지 음식들. 이름들은 생각 나지 않지만, 관광객으로 먹기는 힘든 베트남음식들이다.

 

 

 

 

 

 

 

 

 

 

 

 

 

 

현지 친구들과 다니니 관광객으로서는 절대 모를 이런 현지 식당에서 푸짐하게 맛난 현지음식도 먹고...

 

 

 

 

올 때도 친구들이 오토바이 뒤에 태워 왔는데...

 

자기보다 두 배는 더 나갈 아저씨 태우고 다니느라 고생 마니 했다.

 

 

 

 

나름 술 깬다고 데땀 부근 커피숍에서 찌~인한 '쓰어다'(베트남식 냉커피)로 해장을 하고.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게 된 우리.

 

다시 말하지만 과거를 잊으면 미래는 없다. 우리 지금 세상에도 적용되는 말이지만,

 

과거 베트남전쟁 당시 우리 부모세대가 돈을 벌기 위해(혹은 자유를 위해라고 하지만) 이 전쟁에 끼어들어 전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끔찍한 학살을 많이 저질렀다. 이는 역사적 사실 아닌가... 4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아픔은 이들 베트남인들의 가슴과 몸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하나이다. 일본처럼 무조건 모른척하고 희생을 강요하지 말고,

 

독일의 자기반성을 교훈삼아 베트남에 사과하고 그들과 보다 발전적인 관계를 갖고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얼마전 한국을 찾은 베트남 양민학살 피해자들에게 우리가 한 일이라곤 군복입은 할배와 아저씨들이 행패를 부린 것이니,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갈길이 멀다. 

 

 

 

 

그렇게 일주일 간의 사람내음 나는 베트남 여행을 마치고 데땀거리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창밖으로 보이는 오토바이 행렬에 손을 흔들고 도착한 호치민 공항. 여기는 아직 외국인 혹은 출국인외에는 내부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덕분에 더운 날 배웅나온 친구 가족들은 저 멀리 보이는 것처럼 밖에서 아쉬운 이별을 하고는 한다.

 

 

 

 

역시나 올만에 타보는 마법사항공 낮 비행으로 편하게 오는 길.

 

베트남과 한국의 역사를 다시 생각해 본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짱과 영국인 맥 아저씨. 젊은 베트남친구들, 그리고 길에서 만난 다양한 현지인들의 모습.

 

아직도 호치민에는 오토바이들이 무질서하게 다니고, 길거리에는 70년대 우리네처럼 유치하고 난잡한 선동문구와 그림들이 넘실대지만, 40대이하가 60%를 넘는 젊은 나라다운 패기와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거기에 빗대 본 한국은 국가의 경제력은 높아졌다고 하지만 국민들은 점점 살기 힘들고, 정부의 존재는 사라지고 있으며, 남과 북으로 나뉘고, 동서로 나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나이와 신념으로도 나뉘는 안타까운 현실뿐이다.

 

베트남이 부럽지는 않다. 하지만 2015년의 한국이 부끄러운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해외에서 한국이라하면 메르스 보유국민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

 

서점에서는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의 얘기가 책으로 선보이는 나라에 사는 우리.

 

 

 

그래도, 하는데까지는 해보자. 사람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 

 

 

2 Comments
필리핀 2015.06.26 14:34  
오호~ 나와우리와 인연이 있으시군요...

저도 한때 나와우리에 재능 기부를 한 적이 있는데... ^^

뜻 깊은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ㅎ
빈&영 2015.06.26 19:39  
나와우리를 아시는군요! 최근에 만난 이길보라 감독도 그렇고, 인연이 겹치는 사람들이 많네요. 없어져서 아쉽습니다. 읽어주셔서 저희가 감사하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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