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앗간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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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 추억~

향고을 6 644

방앗간 추억 

내가 살던 고향 마을은 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휘감듯 능선을 이루고 
마을 앞은 넓은 시냇물이 또아리를 틀듯 수리산 아래 쌍바위에서 
한번 휘돌아 커다란 느티 나무가 있는 아랫 마을로 흘러 내려간다. 

우리 동네에서 새마을 사업으로 확장한 신작로를 따라 내려 가다 보면 
넓은 냇가가 나오고 아카시아 나무가 빽빽히 들어선 뚝방을 따라 내려 가면 
방앗간이 나오는데 이방앗간은 내친구 대철이 아버지가 방앗간을 운영하는데 
대철이 아버지는 힘도 좋고 쌀가마니도 번쩍번쩍 들어올려 말이 끄는 수레에 
척척 쌓아 올리기도 하지만 대철이 아버지는 발동기 돌릴때 보면 팔뚝이 
울룩불룩 한것이 힘께나 쓰게 보인다. 
이방앗간은 매일 매일 발동기 소리가 들리는건 아니고 방아를 찧는 
가을 추수가 끝나는 늦가을이나 이른 봄에 발동기 소리가 나고 
방앗간에 방아를 찧으러 오는 윗동네 사람들, 아랫 마을 사람들로 분주 하지만 
농한기인 겨울 철에는 방아를 찧으러 오는 동네 사람들도 없어 발동기는 
자동적으로 맥없이 멈춰 있다. 

내가 그러니까 고등학교 입학 시험을 치른 해이니까 
아마 1977년도 겨울 이었나 보다. 
그해 대철이는 고등학교 입학 시험을 치렀는데 성적이 전체 1등 
수석으로 3년 장학금을 받으며 수업료 한푼 안내고 공부 할수 있게 되었다. 
그때 우리 동네 친구들은 모두 시골 구석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오직 대철이만 집안 형편이 넉넉한지 대전에 집도 한채 있었고 
대전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평소 대철이 하고 만날수 있는 기회는 더군다나 없었고 
어쩌다 한번 얼굴을 마주치는 정도 였는데 대철이는 고등학교 
입학 시험에서 전체 1등 수석을 안고 의기양양 어깨를 으시대며 
고향 마을을 찿아왔다, 

그때만 해도 중학생 우리 주머니를 털어봐야 돈10원 나오기도 힘든 시절이었다. 
그런데 대철이는 고향 마을에와 친구들에게 자기가 한턱 쏜다는식으로 말을 하며 
밤에 자기 방앗간에서 여자 친구들 데려 다가 놀자는것이다. 
우리 동네 친구들 대여섯명은 좋아서 입이 벌어질 대로 벌어졌는데 
우리는 어둑어둑 해지는 저녁에 산아래 홍식이네 집에 모여있다가 
다같이 냇가 섶다리 건너 수리산 밑에 있는 발동기가 멈춰 있는 
대철네 방앗간 집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방앗간에는 아랫 동네 여자 친구들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친구들은 다들 실망한 눈빛으로 낙담을 하고 있을때 대철이가 
아랫 동네로 여자 친구들을 데리러 가자고 제안을 하는것이었다.

  

그래서 대철이를 따라 아랫 동네로 가서 여자 친구들중 그래도 집도 좀 먹고 
살만하고 얼굴도 반반한 복희네 집으로 갔더니 복희는 남자 친구들을 
보고 수줍어 어쩔줄 모르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는데 옆에 있던 복희 엄마가 
소문으로 고등학교에 수석으로 입학 한다는 대철이를 알아보고 
놀러 갔다가 오라고 하는데야 어찌나 고마울수가 없었다. 
그래서 얼굴 반반한 복희를 앞세워 여자 친구들 집을 일일이 방문하여 
불러내고 보니 얼추 남자 숫자와 비슷 해졌다. 

그런데 여자 친구들 하고 놀려면 소주 댓병도 필요하고 새우깡 부스러기며 
콜라나 환타등 음료수도 준비를 해서 방앗간으로 가야 하는데 
대철이가 통크게도 주머니에서 몇백원 떡 내놓는게 아닌가. 
그래서 그돈으로 아랫마을 중앙에 있는 구판장으로 가서 소주 댓병에 
환타 서너병하고 새우깡이며 라면땅,자야를 한보따리 사들고 수리산 아래에 있는 
방안간 집으로 갔는데 미리 대철이가 장작불로 안방을 뜨끈뜨끈 하게 덥혀 놨는지 
방으로 들어가자 마자 따뜻한 온돌방 온기에 저절로 추위가 녹아 내렸다, 

좁은 방안에 여자 친구 한명에 남자 친구 한명씩 사이사이 껴 빙둘러 앉자. 
사가지고온 과자 봉지를 모두 뜯어 방안 가운데 신문지를 깔고 쏟아 놓고 
소주 댓병 짜리도 마개를 열고 한되짜리 찌그러진 노란 양은 주전자에 
반쯤 붇고 환타 두병을 따서 섞어 놓으니 그주황 색깔 하며 소주 냄새가 
달착지근 코끝을 자극하는데 친구들이 과자 부스러기를 연신 줏어 먹으며 
스텡 그릇에 환타와 혼합한 소주를 따라 돌려 마시는데 기분은 정말 째지게 좋았다. 

스텡 그릇에 한잔 두잔 돌려 마신 우리들은 "감자에 싹이나서"란 게임을 
하였고 겨울밤 깊어가는줄 모르고 놀다가 여자친구들은 새벽녘에야 
아랫 마을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날밤 홍식이와 J는 눈빛이 달랐었다. 

그날밤 이후로 아랫 동네 사는 J 하고 우리 동네 친구 홍식이는 한동안 
버스가 다니는 새로난 신작로옆 우리 동네와 아랫 동네 중간 사이인 
왜솔 나무로 둘러 싸인 묏부리에서 밤마다 사랑을 나누었고 
멀찌기서 둘의 사랑 놀음을 지켜보던 동네 친구들은 
침만 꼴깍꼴깍 삼킬 뿐이었다. 

다음날이면 친구들은 홍식이에게 달려가 사랑 놀음에 대한 결과를 
추궁 하였고 홍식이는 거짖말을 하는지 참말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손가락 장난을 했노라고 이실직고를 하는데 동네 친구들은 
홍식이가 부럽다는듯 실실거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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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타이거지 2016.11.20 21:11  
jaya...zzz
its very interesting^^.
you are good writer~!!!
향고을 2016.11.20 23:26  
Thank you ~
You are a good man!
You are a free man!
Good have a save~
돌이킬수없어요 2016.11.22 17:47  
ㅎㅎㅎㅎㅎㅎ 재밋어요
수리산은 안양에도 잇는대.. 그곳?에도 잇군요 향고을님하고 저하고 나이차이 생각만큼 많지 않은대요?
시골과 도시의 차이점이 잇어서 세대차이가 느껴졋나보네요^^;;
향고을 2016.11.22 20:35  
저번에 한번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안양에서 열차타고
대전으로 내려온적있네요.
안양역 역사에 비해 매표소는 아주 작았던 기억이있네요.

아마 돌이킬수없어요님 나이가 40대인듯...ㅎㅎ
돌이킬수없어요 2016.11.23 09:55  
ㅎㅎ 추리력이 대단 하신대요
제가 1980년에 어머니가 은행에 예금하라고 5000원 주셧는대..
장난치며 가다가 잃어버려서.. 비안오는날 집앞에서 먼지 나게 맞앗던 기억이 나네요^^
향고을 2016.11.23 11:09  
80년대 5천원이면 작은돈이 아닌데...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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