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러시아 여행기
공연 덕분에 평생 가볼 일 없을 것 같던 러시아에 가게 되었다. 처음 5일은 공연으로 바빴고, 이후 7일은 자유를 얻어 여행을 하고 돌아온 것이 그저께.태국만 다니던 나에게는 처음으로 진정한 ‘시차 적응’이 무엇인지 알려준 여행. 혹시 모를 다음을 위한 기록.
1. 국제선 항공
개인적으로는 항공사에서 직접 여행하는 편인데 어쩌다보니 여행사를 통해 예약하게 되었다.
아에로플로트로 여행사 수수료 포함 1인당 80만원 조금 안 되게 12일 일정을 예약했다.
(직접 했으면 예약 시기에 따라서 60만원 안으로도 가능했던 일정-굉장히 아쉬웠으나 항공료 지원이 나오기 때문에 잊기로 함)
인천 발 기내식은 맛있었는데 모스크바 발은 영... ‘귀리 죽’ 단어에 속아서 요상한데 먹을수록 땡기는 음식을 먹게 되었다.
2. 국내선 항공
공연 이후에는 개인 여행 일정이어서 아에로플로트 공식 사이트에서 상트 > 모스크바(SVO) 예약.
처음 알아볼 때보다 가격이 2만원 정도 내린 타이밍에 1인당 6만원 초반에 성공.
24시간 전에 웹체크인 할 수 있으니 미리 하는 것도 방법. 대신 프린트 해야 한다. (숙소에 부탁)
몇 시간 만에 환승해서 한국으로 가야하는 일정이 걱정되었으나 다행히 지연, 연착 없이 시간 넉넉하게 성공!
같은 터미널이라 국내선 내려 바로 위로 2개 층을 올라가면 국제선이다.
15:25 상트 출발
16:45 모스크바 도착
17:00 국내선 빠져나옴
17:30 국제선 체크인
20:55 모스크바 출발
+1 11:20 인천 도착
3. 기차
2등실 1인당 4만원 정도에 한 칸을 네 명이 다 차지하는 형태로 이용했다.
네 명 모두 28인치 캐리어를 가지고 갔는데 1층 아래에 다 들어갔다. (꽉 참) 대신 신발 놓을 자리가 부족할 수도 있다.
티켓은 혹시 몰라 한국에서 미리 프린트 해갔다.
4. 숙소
모스크바에서는 공연 기간 동안 극장 근처로 잡아 놓은 숙소를 개인 여행 일정까지 연장해서 워크인으로 지불했다.
새로 생긴 숙소라 그런지 깨끗했지만 뜨거운물과 와이파이가 왔다갔다 해서 다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곳.
왜인지 우리 빼고는 전부 러시아인들, 그것도 장기거주자들로 보임.
4인실 도미토리 간단한 조식 포함 1인당 2만원 중반.
개인 여행 일정에서는 조식 불포함으로 하고 근처 마트에서 아침거리와 저녁 식사 재료를 사다 먹었다.
상트 숙소는 넵스키 대로 중심에 있는 트리플룸으로 1박에 8만원, 세 명이 나누면 하루 3만원이 안 되는 가격.
조식도 간단하지만 (나름) 핫밀, 콜드밀이 나눠져 있고 종류가 다양했다.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본 것과 실제 사진이 똑같은 곳은 거의 없는데 여기는 거짓없이 일치함.
평가가 좋아서 믿고 예약한 곳인데 역시나.
직원들이 굉장히 다정하게, 하지만 챙길 것은 다 챙겨주는 곳이었다.
만약 다음에 또 상트에 갈 일이 있다면 이곳에 다시 가려고 한다.
주변에서 간다고 해도 추천할 만한 곳.
5. 유심
모스크바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있는 MCT 부스에서 10기가 주는 것으로 600루블에 구입.
통역과 같이 있던 때라서 모스크바와 상트에서 2주 정도 넉넉하게 쓰는 정도면 된다고 했더니 직원과 얘기해서 알아서 줬다.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 설명지도 있는 듯했다.
LTE보다는 3G로 하는 것이 잘 터지고 더 빨랐다.
데이터를 열심히 소진하려고 길에서 보이스톡도 해봤지만 거의 7기가 이상 남은 것 같았다.
6. 시내 교통
모스크바에서는 트로이카 카드를 50루블에 구입(보증?), 300루블 충전해서 3일간 사용.
버스, 전차, 지하철 모두 가능하고 카드를 찍으면 잔액도 알려준다.
근데 버스가 1분 뒤에 온다고 하고 15분 있다가 오는 건 소련식 계산법인가...ㅋㅋㅋ
상트 지하철이 깊기로 유명하다는데 어쩌다보니 탈 일이 없어서 버스와 전차를 이용.
우리나라 식으로 ‘차장’이 있어(전용 좌석도 있음) 편도 40루블씩 내고 탄다.
관광지가 넵스키 대로 20분 안에 몰려있어서 편했다.
북촌~인사동 안에서 다니는 느낌?
숙소 > 기차역 이동과 숙소 > 공항 이동은 Gett 택시 앱을 받아서 사용했는데 위치 정보가 꽤 정확하게 찍히고 미리 금액을 알 수 있었다. 미터로 가는 경우에는 구글맵에 나오는 것보다 요금이 적게 나오는 편인 듯하다.
4인 + 28인치 캐리어 4개 이동이라 미니밴이 딱 맞았다.
7. 일정
검색을 통해 대략적으로 3일치 일정을 정했다. 그리고 매일 저녁 다음날 갈 곳을 날씨와 거리에 따라 나눠서 다시 완성.
하루 일정을 빡빡하게 짜는 스타일도 아니고 일찍 일어나는 것도 아니라 9시 정도에 일어나서 10시반쯤 시작하고 저녁 시간이 돼서 숙소에 들어오는 식이었다.
밖에서 계속 돌아다니면 추워서 체력이 금방 떨어지는지 10시쯤에 곯아떨어져서 본의 아니게 바른생활 행.
<모스크바>
1일차
(팀 단체 관광)
푸시킨 동상
굼 백화점
붉은 광장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
2일차
이즈마일로보 시장
집 근처 마트 구경
3일차
아르바트 거리
4일차
고리키 공원
표트르 대제 동상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5일차
(첫 날이 아쉬워서 다시 간)
붉은 광장
굼 백화점
레닌 묘
모스크바 > 상트 이동
<상트 페테르부르크>
1일차
성 이삭 성당
시내 구경
2일차
에르타미주 미술관
시내 쇼핑
3일차
카잔 성당
피의 구원 사원
마트 구경
4일차
상트 > 모스크바 이동
모스크바 > 인천 이동
한국에서 국내선 항공, 기차, 숙소를 내가 다 예약했고 관광지로 가는 길을 구글맵으로 다 안내했기 때문에 관광지에서는 일행이 알아서 블로그 찾아본 걸로 안내하겠지, 착각이었다. 여행은 스타일 맞는 사람이랑 다녀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낌.
8. 음식
조식은 숙소에서 주는 것을 먹었다. 상트 숙소 조식 최고! 커피가 완전 찐해서 정신차리기 좋다. 한국에서는 잘 안 마시던 홍차도 러시아에서는 자주 보여 마시게 됨.
일행들은 러시아 음식이 입에 안 맞다 하지만 고수만 빼면 다 먹는 나는 좀 느끼하고 짜고 달았지만 맛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같이 시킨 메뉴를 혼자만 먹고 있는 상황도 발생ㅋㅋㅋ
버거킹, KFC에 은근히 자주 갔는데 이유는 ‘얼음 있는 콜라’가 필요해서.
가게에 얼음을 구비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패스트푸드 행.
모스크바에서는 숙소에서 파스타 해먹기, 숙소 근처 이탈리아 식당, (나중에야 체코 족발이 유명하다는 걸 알게 된) 치킨이 맛있는 집 필즈네르, 한식당 하이트에서 삼겹살, 김밥천국 같은 무무, Grabli 등에서 식사를 했음.
상트에서 매일 찾아간 마켓플레이스.
일행들이 본 어떤 블로그에서 ‘여기만 매일 갔다’고 해서 도대체 뭐길래 싶었는데,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냥. 좋음. 뭔지 모르겠는데. 맨날 새우샐러드 만들어 먹고 라자냐 먹고. 메뉴 세 개씩 시켜 먹어서 1200루블 나옴...목살스테이크 맨날 없어서 맨날 감. 삼일 째에 겨우 먹고 편한 마음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휴. 한국에도 런칭했으면 좋겠다. 고수만 싹 빼고.
공연하는 극장 앞에 있던 ‘러시아의 이디야’ 느낌이 나는 체인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커피하우스’였다. 상트에서 저기는 뭔데 싶어서 가본 곳. 러시아에서 까페는 커피 마시는 곳이 아니고 그냥 식당이었음을 깨달은 곳.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메뉴들.
커피는 대부분 스타벅스에서 마셨는데, 아마 텀블러와 시티컵이 있는지 파악하다보니... 그리고 리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어서... 여기는 얼음 안 먹는구나...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아메리카노에도 시럽이나 휘핑이 필요하냐고 물어본다. 끔찍한 혼종...
모스크바 공항에서 TGIF에 갔는데 서비스차지는 현금만 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고 남은 돈이 없어서 못 낼뻔 했는데 일행의 주머니를 털어 겨우 냈다. (안 그랬다면 나의 100달러를 깰 뻔, 뚝배기도 깰 뻔)
9. 옷
자고로 조상님들께서 의식주가 중요하다 하셨는데, 여기 소련에서는 그딴거 개나 줘야한다. 웃도리 아랫도리 챙길 시간에 외투 하나 더 챙기는 게 사진 상으로 봤을 때 이득이다. 어차피 밖에서 찍은 사진은 다 코트나 패딩만 보이기 때문에 안에 뭐 입었는지는 알빠가 쓰레빠. 그러므로 겨울에 여행을 한다면 상하의는 트위스트 아니고 세 개 정도, 외투는 최대한 많이 챙겨서 ‘이 날이 언제더라’하는 기억상실증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추위를 많이 탄다면 모자, 스카프, 목도리, 장갑 등을 꼭 챙기고 핫팩도 있으면 좋다. 얇은 스카프라도 바람 많이 불 때 할머니들처럼 머리에 두르면 머리카락도 덜 흩날리고 덜 춥다. (진짜) 핫팩 안 붙인 날과 붙인 날이 다르다. 그리고 워커는 없는 편이 나을지도... 발바닥에도 핫팩을 붙이는 게 아니라면 워커가 딱딱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그부츠가 있으면 나을지도. 대신 실내에서는 덥다 싶을 정도로 난방을 많이 해서 감기 걸리기 좋은 조건이었다. 그리고 실내에 들어가면 코트룸이! 가벼운 차림으로 다닐 수 있어서 편했다! (안에 입은 옷이 안 중요하다는 것은 아님...)
10. 깨달음
상트 > 모스크바 겨울 오후 3시경의 비행기 이동은 DEF 좌석 추천. 특히 창가인 F가 해지는 것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대신 선글라스가 필요해 보였다.
상트의 하늘에는 갈매기, 땅에는 비둘기, 물에는 청둥오리가 다닌다. 제각기 귀여운 구석이 있음. 도시 한 가운데서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보는 게 생각보다 신선하다. (경기도 거주자 기준)
아이폰 이용자에게 보조배터리는 필수. 밖에 나가는 순간 30퍼센트 닳아 있는 배터리, 한 장 찍으면 꺼진다. (한숨)
(항상 느끼는 거지만 새삼) 주변 사람들 나눠 줄 기념품 많이 사지 않아도 된다. 요즘은 다들 쉽게 해외여행을 가기 때문에 옛날처럼 마트료시카에 흥분하거나 하지 않는 듯하다. 자기가 다녀온 지역 아니면 그냥 ‘와.신.기.하.다.끝’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마그넷, 엽서, 볼펜, 열쇠고리 등등. 감동도 없고 그런거 모으는 스타일이 아니면 처치 곤란. 화장품 종류는 쓰던거 쓰기 때문에 구석에 처박히거나 본래의 용도를 상실해 몸, 손, 발에 발라질 가능성이 높다. (핸드크림 예외) 알룐카 초콜렛이 대량으로 뿌리기 좋고 먹는 거라 웬만한 사람은 거절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드카는 술 좋아하는 사람 선물로 필요해보인다. 스스로를 위한 선물은 한도 끝도 없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함.
간단한 말은 꼭 알아둬야 하겠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아니요, 네, 알겠어요 > 현지에 가서 통역한테 속성으로 다섯개 배웠는데 ‘오케이’ 보다 ‘하라쇼’ 하면 서로 빵터지면서 분위기 급 좋아지는 걸 느낌. (무수한 건배 요청이..!)
흥정할 때 필요한 말 ‘비싸요’ 외우는 법
> 비싸니까 ‘돌아가’
> 도rrrㅏ가
비행기에서 덥다고 바지 벗고 담요 덮는 사람은
신고했어야 한다. 생각해보니 공연음란죄 아니었나 싶다. 11월 9일 13:20 SU 타신 어떤 분 반성 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