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일동안의 가을방학 -7- 꼬따오에서의 맨땅에 다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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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일동안의 가을방학 -7- 꼬따오에서의 맨땅에 다이빙

시와11 6 2062
출국 10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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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 C는 일주일 안팎의 짧은 휴가를 왔기에 아침배를 타고 방콕으로 떠났다. 
좀 더 일정이 길었다면 좋은 길동무가 되었을텐데, 싶어 아쉬웠지만 간 사람은 가는 것이고
남은 사람들은 여행을 즐겨야 하는 법!

오토바이를 렌트해서 사이디 비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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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는 스무살때 아르바이트하면서 탔던 이후로 오랜만이긴 했다. 
하지만 감각을 되찾는 데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비록 꼬따오의 도로사정은 썩 좋지못했지만 바람을 가르며 즐겼다. 

사이디 비치쪽은 조용한 우리 리조트 쪽과는 달리 휴양지 분위기가 만연했다. 
수영복 차림의 우리는 바로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남자 둘이서 수영하는 것이 뭐 그리 신이 나랴? 
게다가 치명적으로 나는 맥주병이었으므로. 

수경을 챙겨오지 않은 K형에게 수경을 건네고 나는 걸어서 반대편 끝까지 해변을 거닐었다. 
튜브를 대여해주는 상점, 노천카페들, 수많은 외국인들. 아무래도 서양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파도가 밀려왔다 돌아가는 얕은 수심에서도 고기들은 노닐었고, 해변가에서 조깅을 즐기는 커플도 볼 수 있었다.
그중 가장 인상깊었던 건, 남미풍의 글래머러스한 누님. 
번잡하지는 않아도 주변에 사람이 오가는데 수면밖에서 비키니 상의를 벗더니 그대로 얕은 물로 입수...
여유로운 동작이었고, 물안으로 들어가봐야 어차피 다 비치는데 말이다. 

여행와서는, 한국에서 즐겨했던 산책이나 조깅을 한적이 별로 없었던 듯 하여 반환점을 지난 후에는 나도 해변을 뛰어보았다. 
너무 열심히 뛰다가 짐을 놓아둔 곳을 지나쳐버렸다가 다시 돌아오니 K형은 이미 수영을 마치고 그늘에서 휴식중이었다. 

폰 스피커로 듀스의 "여름안에서"를 듣기도 하고, 풀어놓은 수탉을 관찰하다가 야자수 사진도 찍고...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보니 몸의 물기도 어느새 다 말라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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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럭키가이

슬슬 숙소로 돌아가자는 일행의 말에, 나는 섬을 한바퀴 돌고 천천히 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반대편으로 갔던 것이 화근이었다. 

가다보니 차 한대 지나갈 좁은 폭의 오르막길이 계속 되었는데 내 뒤로는 사이디 비치쪽 리조트 차량인 듯한 밴이 오고있었고, 속도를 조금 높여 안전거리를 유지한 후 고갯길이 갑자기 내리막으로 바뀌는 딱 그 길목, 

도로 한쪽이 어이없이 움푹파여있었던 것이다.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다가 갑자기 드러난 구덩이에 나는 고꾸라질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토바이에서 튕겨져 나와 세네바퀴를 데굴데굴 굴렀던 것 같다. 

서러웠던 것은, 데굴데굴 구르다 몸을 일으켰을 때 어디 다친 데 없나 하는 생각보다
'여기 보험처리도 안되는데 오토바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었다는 것. 

갑작스러운 사고에 놀란 심장은 요동쳤지만 얼른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토바이를 세우고, 구덩이에서 오토바이를 끌고 나오려는데 얼이 빠져서였을까 
핸들의 액셀을 살짝 돌린다는 게 힘이 들어갔나보다. 이번엔 반대편으로 고꾸라진 것.

설사가상으로 이번에는 백미러가 깨져 한쪽 손에는 피가 철철 나기 시작했다. 

뒤늦게 따라온 아까 리조트 차량이 나를 보고 서더니 괜찮냐며 차량을 불러줄테니 오토바이를 싣고가라고 하였다. 
나는 괜찮다고 차라리 피를 닦을 손수건이나 휴지가 없는지 물었고 휴지 한통을 통째로 건넨 기사는 연신 정말 괜찮은지 물었다. 자신이 대신 오토바이를 운전할테니 뒤에 타고 가라고. 

나는 고맙지만 정말 괜찮다고 말하며 방향을 틀어 오르막길을 올라가려 했으나 근육이 놀랐는지 두 팔이 덜덜 떨려왔다.

"그럼 미안하지만 이 오르막길 고개까지만 오토바이를 몰아주시겠어요? 내리막은 제가 타고 가겠습니다."

휴지를 간이붕대처럼 감았지만 조금 깊게 베었는지 피는 자꾸만 새어나왔고, 나는 정신을 다잡고 주변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머리와 팔에 온통 붕대를 감은 아일랜드 아저씨가 있었다. 
그 와중에도 '태국 병원은 이렇게 생겼구나... 왜 간호사들이 유니폼을 안 입고있지?' 관찰하다가, 아무말 않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더 심란해져서 좀 가라앉힐 요량으로 말을 걸어봤다.

"어쩌다가 다쳤나요?"

"오토바이 타고 가다가 고꾸라졌어. 정신 차려보니까 병원이더라고. 넌 정말 럭키가이야."

"what? 하하. 그렇지, 나는 럭키가이에요. 이정도 다치길 천만다행이지." 
사실 빈말은 아니었던 것이, '그래도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다.'는 생각이 마음 한켠에 있었기 때문이다.

두명의 혼성 간호사가 달라붙어 이윽고 내 몸 여기저기에 붕대를 감기 시작했는데 이건 감아도 감아도 너무 감아주신다!
조금은 미심쩍고, 조금은 어이가 없어서 이렇게 심하게 감으면 더운 날씨에 오히려 상처 곪겠다고 말하려는데 두 간호사 모두 영어는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유일하게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간호사는 아일랜드 아저씨 전담. 

붕대를 다 감고 밖으로 나와 계산을 하니 930밧. 
평소 도난을 방지해 동전지갑 밖에 들고다니지 않는 나였기에, 지갑안엔 800밧 남짓밖에 없었다.

"800밧 밖에 없는데? 추어이 롯너이 나캅~"
"그래? 그럼 그것만 내고 가."

병원비도, 그것도 한번에 너무 쉽게, 흥정이 되는 이노무 태국이라는 나라. -.-;;
도대체 에누리안되는 게 뭐야? 

숙소로 가기까진 15분 남짓. 
그 길을 달리면서 나는 일부러 크게 웃었다. 
흥분한 신경탓도 있고, 아직 일정이 구만리나 남은 여행인데 웅크리고 있으면 나만 손해니까.
웃고나면 좀 풀릴 것 같아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더운 나라임에도 작은 상처에 붕대를 둘둘 감는 건 파리가 알을 깔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차라리 염증나는 게 낫지, 쉬슬면 더 위험해진다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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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Title : The korean idiot in koh tao


사진으로 볼땐 중환자같지만, 사실 타박상 말고는 별 외상이 없었다. 우리나라 과자만큼이나 과대포장이 심한 붕대탓. 


어쨌거나 그 꼴을 하고 숙소로 돌아갔더니 잠깐 마사지 받고 돌아온 일행은 아연실색한다. 
하지만 지금 나한텐 그게 문제가 아니다. 

몸뚱이는 고쳤으니, 오토바이 수리비가 얼마나 나올지가 더 큰 문제! 
우선 인터넷에서 대처 요령을 숙지한 후, 숙지한 그대로 최대한 웃는 얼굴로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수리비 표를 훑어내렸다. 
렌트샵 여사장은 사람이 다쳤다는데 돈 벌 생각으로 신난건지 입이 귀에 걸렸다. 

백미러 하나 고치는데 500밧. 
이건 바가지도 특대급 바가지다. 내일 아침에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을 먹으면서 어이가 없다고 웃으면서  부주의했던 내 탓이지만 도로사정도 너무 안좋고.... 
등등의 타령을 늘어놓기 시작하니 일행이 피식 웃는다.

웃으려면 대놓고 웃어라! 웃는 거 참는 게 보이니까 자존심 상한다! 고 버럭하자 일행 曰

"그게 아니라... 신기해서 그래. 넌 참 성격도 좋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계속 웃고있냐?"

사실 어이없음의 헛웃음이라기엔 지나치게 내 웃음이 헤펐나보다. 
위기상황에서 방출된 엔돌핀 탓이었을 게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될 것이다.'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인용했던 명언이 귓가를 스쳐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씻지못해서 얼굴엔 개기름, 몸에는 소금기, 그리고 옷도 해변에서 해수욕하던 수영복 차림 그대로 가라입지도 못했지만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은 맛이 훌륭한 집이라 위안이 되었다. 


저녁을 먹고 돌아온 후부터는 와이파이가 터지는 해변 레스토랑, 레스토랑이 문을 닫은 저녁 이후부터는 마사지샵 앞 벤치에서 자정이 넘을때까지 적정 수리비용, 대처법 등을 검색했다. 
오토바이의 파손부분을 모두 찍어 사진과 함께 게시판 등에 문의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 도중에 수리센터를 찾으러 섬을 돌아다녔지만 2,3군데 모두 돌아오는 대답은 "No."

"왜 수리가 안된다는 거죠? 안되면 대략의 견적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돌아오는 대답은 아이 돈노의 반복. 
렌트샵 로고 스티커를 떼어낼까 고민도 하고, 그 다음에 들른 센터에선 렌트샵에서 통째로 구입한 오토바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나 허사. 
섬지방이라 고립되어 있어서 모종의 담합이 아주 끈끈했다.
중간에 수리센터가 어딘가를 물어봤을 때 "수리센터에선 수리가 불가능해. 렌트샵으로 가야 해."라며 수리센터 위치조차 모른다고 고개젓던 동네주민들이 "여기 장기거주하는 사람이다. 렌트한 것이 아니라 내 오토바이다."라고 하자 금세 "여기, 여기, 여기로 가면 있어."라며 태도를 바꿨을 정도니 말이다. 

결전(?)의 내일을 다짐하며 심란한 맘으로 나는 잠을 청했다. 

3. 결전의 날 

온,오프라인 동시에 문의해본 결과 견적은 저마다 의견이 분분하였는데, 1천밧 남짓일거란 댓글부터, 공통된 의견은 많이 나와도 5천밧까진 안 나온다는 의견. 

그중 전날 밤, 그리고 그날 아침 현지의 교민들에게 몇가지 조언을 듣게되었던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이거 견적 정식 대리점에서 수리하면 4,5천 정도 나올거다. 렌트샵은 수리가 아니라 흠집난 부품을 아예 새거로 교체하는 비용을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렌트샵에서는 2만밧 이상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느긋하게 하루 숙박연장해놓고, 밥 챙겨먹고 오늘 하루 흥정에 투자해라."

그날 아침 출발예정이었던 방콕행 티켓을 취소하고 일행을 먼저 보냈다.
다행히도 취소 수수료는 들지않았다. 그리고 근처 도미토리에 방을 얻어넣고 아침을 먹고 시간을 좀 보냈다. 

"당신이 렌트샵 사장이라고 가정해 봐요. 마수걸이도 안한 아침 댓바람부터 망가진 오토바이 끌고 오면 좋던 기분도 안좋아지겠죠? 그리고 표정이 너무 어두워요. 그런 표정으로 가면 "나 잡아 잡숴라."하는 꼴 밖에 안되니까, 남자가 어깨 펴고. 밥도 든든하게 챙겨먹고, 점심쯤 가봐요."

그렇게 그날 하루는 꼬박 흥정에 쏟아부었다. 

오전 11시반에 시작한 가게문 닫기 10분전인 오후 6시 50분에 종료되었다. 

여사장이 처음 제시한 수리비는 2만 6천밧. 
사고를 계기로 검색을 좀 해보았더니 혼다의 그 모델 오토바이의 정품신형은 5만밧. 
2만 6천밧이면 공매에 나온 새것같은 중고를 한대 뽑을 가격이라고 했다. 

바가지이긴 하지만 여긴 한국이 아니다. 내가 약자이므로 처음엔 미안하게 되었다며 유화정책으로 나가다,
경찰서도 들렀다가, 말싸움도 했다가, 어르고 달래기도 했다가... 

그리하여 막판에 지불하게 된 금액은 6700밧. 
몸도 다치고, 하루종일 씨름하느라 진도 빠졌고, 예산에 차질도 생겼지만
꼬따오에선 현지인 친구가 있어도 어렵다며, 그 정도면 선방한 것이라는 댓글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얻은 교훈.
1. 오토바이 렌트할 땐 꼭 보험여부를 확인하자.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지역에선 타지말자.
2.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 최우선이다. 여긴 게다가 국내도 아니니까. 



6 Comments
누텔라 2013.12.02 08:31  
산악바이크로 다운힐 가능할정도의 실력 아니라면

섬에서의 오토바이 렌트는 적극 비추합니다.

누누히 말씀드려도 귀담아 듣는분은 아무도 없더라구요....

크게 안다치신게 그나마 다행이세요.

그리고 ATV 렌트하시는분들.... 이건 오토바이보다 더위험합니다.

오토바이와는 타는 방법이 전혀 다른데 타는법도 안배우고

코너돌다 전복되서 밑에 깔리는 사고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시와11 2013.12.04 10:16  
네. 저도 사고당한뒤에야 섬쪽 도로사정이 안좋고, 수리비 바가지가 심하단걸 알게됐어요. 남부는 어딜갈지 고민하다 일행이 꼬따오 기자해서 급히 정해진 코스였거든요. 어딜가나 사전정보가 어느정도 있어야 좋은것같아요
호루스 2013.12.02 21:03  
큰 부상이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여행 접고 귀국길에 올랐거나 병원에 입원했으면 많이 억울했겠죠.

앞으론 좀 더 좋은 일이 가득한 여행이길 기원합니다.
설악방 2013.12.02 21:41  
오토바이 한번타보고 스쿠터라도 렌트해볼까하다 여행기 보고 맘 접었습니다

흉터 안생기게 관리 잘하세요 ^ㅡ^

부럽네요
유령냥이 2013.12.02 23:58  
헉.. 오토바이 사고나면 정말 엄청 다쳐요..
저도 예전에 봤는데.. ㅜㅜ 이빨 나가고 입 찢어지고.. ㅜㅜ 조심조심...
후유증 없게 치료 잘 하세요.
svitvanana 2018.12.31 16:31  
이번에 방문 예정인데 정말 조심해야겠네요 ㅠㅠ 다이빙하다가 개인 여행할 시간 많이 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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