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일동안의 가을방학 -8- 태국어를 잘하는 독일인, Mule형
여행 12일째
1. 오토바이 문제가 해결되고 어여쁜 내 여권을 다시 돌려받고는 아침배로 춤폰으로 향했다.
처음 왔을 땐 그렇게도 설레던 느낌의 섬이, 사고 한번 당하고 나니까 징글징글한 곳으로 변해있었다.
꼬따오에 도착했던 날, 풍랑이 굉장히 셌던 것에 비해 돌아오는 길은 아주 평탄했다.
선실 위에 달린 TV로 오래된 미국의 몰래카메라 쇼를 보면서 낄낄거리고 있는데 내 앞자리에 앉은 서양남자가 삐딱한 자세로 누워있다. 흘끔 쳐다보니 한쪽 발이 아픈가보다.
그의 얼굴이 내 시야의 화면을 조금 가렸지만 개의치않고 고개를 조금 움직여서 쇼프로를 보고있는데 갑자기 그가 내게 말을 걸었다.
"헤이, 암 쏘리. 보시다시피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서 말이야. 한쪽 다리가 불편해."
그리고 팔을 들어 찰과상을 보여준다.
나의 반응은?
"잇츠 오케이! 난 당신의 고통을 알거든!"
그와 엇비슷한 찰과상을 입은, 붕대를 풀은 내 왼쪽 팔을 당당히 치켜들었고, 우리는 금세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
독일 함부르그에서 온 그는 꽤 독특한 이력의 사람이었다.
우선 직업부터 남다르다. 그의 직업은 환경과학 연구원.
네팔, 베트남, 말레이시아 할것없이 한번 출장이 결정되면 그곳에서 6개월~1년 이상을 체류하며 시료를 채취하고, 해양환경을 연구, 분석하는 과학자라고 한다.
게다가 그는 태국이 좋아 태국에서 6년간 머물렀고, 치앙마이 랭귀지 스쿨에서 2년간 태국어를 공부해 태국어에 달변인 보기 드문 서양인이었다.
"내 별명은 뮬(노새. 암말과 수나귀의 잡종.)이야. 지금은 개명을 했는데 전에 사용했던 이름이 뮬러였거든. 그래서 친구들은 나를 뮬이라고 불렀지."
배에서 내려, 도색을 새로 하여 끈적끈적한 나무다리를 지나 (어느정도로 끈적거렸냐면 중국인 관광객 한명의 쪼리끈이 떨어져 나가는 걸 목겨했을 정도.) 롬프라야 선착장에서 점심을 먹고 버스를 탈때까지 우린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버스타기 전까지만 함께 할 줄 알았다. 왜냐하면 지정된 좌석이 다 있는데다가 배안엔 사람이 그득그득해서 빈자리도 없을것이므로.
하지만 태국어를 잘하는 그는 "다친 다리때문에 구부리고 장시간 가는 건 무리일 것 같아."라며 버스 직원에게 가더니, 태국어로 열심히 대화를 한 후 그의 자리뿐만 아니라 내 자리까지 맨 앞 좌석의 다리 쭉 뻗고 탈 수 있는 자리로 바꿔주었다.
"한국에 와 본 적 있나요?"
"서울에 한번 가본 적이 있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은 물김치, 그리고 반찬이야!
some 반찬s are good, but some are not good. 나는 한국의 반찬문화가 좋아."
"분단을 경험한 나라의 사람으로서, 한국의 남,북한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베를린 장벽 붕괴를 보았을 때의 감흥이 궁금해요."
"내가 어릴 적,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베를린 장벽 앞으로 데려간 적이 있었지. 아버지가 벽돌을 쓰다듬으며 머지않아 이 벽이 무너질 거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이 나. 그건 그렇고 태국음식 좋아하니? 난 이산지방의 매운 음식을 정말 좋아해."
"네, 저도 이산지방 출신들이 요리를 맛깔나게 한다고 들었어요."
정오에 출발한 버스가 저녁 9시도 넘어 방콕 카오산 로드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원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타국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은 사람이었고, 또한 배울 점이 많은 길동무였다.
우리는 카오산에 내려 길거리 음식점에서 뿌 팟퐁커리와 똠양꿍, 볶은 채소와 고기요리 등에 맥주를 곁들여 식사를 했고, 아픈 다리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의 게스트하우스 앞까지 나를 배웅해주었다.
(심지어 그의 숙소는 파야타이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알려준 카카오톡 아이디를 메모하고, "일단 숙소에 캐리어 맡기고 샤워좀 해야겠어. 내일 난 베트남 호치민으로 출국해. 샤워하고도 피곤하지 않다면 내가 카오산으로 다시 올게. 쌤쏭이라도 한잔하자구!"라는 그에게 당신은 정말 친절한 사람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매우 매우 안타깝게도 그가 알려준 아이디는 왠일인지 검색이 되지를 않았다.
나는 여행지에서 길동무를 만날 때도 함께 지내는 시간을 즐겼을 뿐, 그다지 연락처를 많이 주고받지는 않았는데, 뮬형의 경우는 여행이 끝난 지금까지도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인연이 닿는다면 베트남이건, 독일이건 마주치게 되지 않을까?
맥주를 좋아하는 나에게 독일은 한번쯤 가보고픈 나라였지만, 그를 만난 후부터 더욱 나에게 각별한 나라가 되었다.
어디에선가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하나의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그 말처럼, "한 사람을 제대로 사귀는 것이, 그 나라에 대한 인상을 확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오늘도 베트남 남부 어딘가에 있을 그가 건강하길 기원한다.
2. 이 날은 또한 태국 북부를 같이 여행한 멤버를 우연히 두명이나 만나게 된 날이기도 했다.
밤 10시 무렵 도착한 DDM의 테이블엔 싱가폴과 태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오가며, 디제잉으로 돈을 벌어 여행을 하는 J형과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세계일주 중인 E형이 술을 한잔하고 있었고
꼬따오에서의 고생담을 풀어내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던 나는 금방 자리에 합석했다.
이 날 연락처만 주고받고 기약없이 헤어진 E형,
그리고 나는 기억도 하지 못한 W누나와는 후에 치앙마이 트레킹 픽업차량에서 우연히 다시 조우하게 되어 일행이 되었다.
"우리 그때 DDM 로비에서 봤었잖아? 너가 오토바이 조심하라고 팔을 치켜올렸던 게 기억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