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빠이(Life Of Pai) 하나. 빠이로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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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빠이(Life Of Pai) 하나. 빠이로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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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시 만나 반갑다, 빠이!

 

 

상상력에 권력을! 모든 금지된 것을 금지하는 거룩한 이름 68혁명을 발판삼아 절정으로 치닫던 친자연 반체제, 기존의 가치를 전복하고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탈사회적 운동, 히피즘에 뿌리를 두고 깊은 산 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는지도 모를 생시골을 거점으로 하여 여기보다 어딘가에, 정체될 수 없는 불온한 유전자를 지닌 21세기적 유목민들이 하나 둘 흘러드는 것으로 인해 어느 틈엔가 이름이 나는가 싶더니만 어느 결엔가 예술가의 마을이라느니, 보헤미안의 낙원이라느니, 여행자의 무덤이라느니 하는 등등의 온갖 유혹적인 수사를 낳은 매혹적인 여행지, 빠이로 향하는 산길은 자체로 일종의 관문이었고 물론 험난한 관문이었으며 또한 강위력한 관문수호자였다.

 

 

빠이에 얼마나 있을 거야?”

떠나려는 즈음, 그녀는 물었다.

네가 올 때까지 있을 거야!”

헤어지는 아침, 나는 답했다.

 

 

쇼핑 타운으로 유명한 치앙마이 나이트 바자(Night Bazaar), 그 인근에 위치한 물 좋은 게스트하우스, 소 호스텔(So Hostel). 뇌쇄적인 눈빛과 도발적인 몸매, 화끈한 스타일로 온갖 서양 사내새끼들의 시선을 단박에 잡아끌던 그녀, 하여 남한의 호색한이며 무뢰배인 동시에 날건달인 어느 작자 하나가 차마 조신하게 앉아 삶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방랑이란 무슨 의미일까? 따위를 고민하게 할 수 없게 만들었던 중화대륙의 북방미녀 트레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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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호주에 있어서 작년에 호주에 갔었다는 말에 깜짝 놀라, 남편이 있어? 물었으나 지금은 이혼해 싱글로 살아가고 있다는, 그 바람직한 인류애를 구사하는 그녀와 함께 빠이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 냉혹한 세상사와 매정한 인간사에 쓰라린 상처를 입었을 그녀의 볼륨감 있는 가슴을 고이 어루만지며 삶이란 그저 즐기다 가는 것이라고, 우린 무상이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에 불과하다고, 방랑이란 진정한 실존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안내지침서라고 하는 둥 갖가지 개수작을 부릴 생각으로, 그 발기찬 마음으로 길을 나설 때만 해도 빠이로 향하는 산길이 그토록 악랄하게 변주되리라곤 생각 못 했다. 12인승 밴(van)에 몸을 실어 세 명의 이스라엘 아가씨들과 희희낙락, 말이면 다 말인 줄 알고 되는 데로 헛소리를 지껄일 때만 해도 그다지 걱정 없었다. 나는 처음이 아니니까.

 

 

빠이로 들어가는 방법은 보통에서 별반 다르지 않고 다른 여타의 몇몇 도시에서 스트레이트로 올 수도 있기는 하나 통상, 인근 대도시 치앙마이를 통해 들어오는데 그 이동 수단에는 기차를 제외한 대부분의 것들이 선택 가능하니 각자의 취향대로 골라잡으시면 된다. 나열하자면 비행기, 택시, (터미널)버스, (여행사), 오토바이, 자전거, 전력질주, 경보, 쪼그려 뛰기, 오체투지 등등이랄 수 있으나 어떤 말 못 할 태생적 비밀이라든지, 혹은 가슴 속 깊이 숨겨둔 회한이라든지, 범지구적인 음모라든지 하는 게 있지 않는 이상은 3시간 걸리는 버스나 밴을 이용하는 게 무난하다. 나 역시 특별한 비밀도, 회한도, 음모도 없었기에 밴으로 결정, 룰루랄라~ 만면에 희색을 가득 띄우고 몸을 실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해맑은 얼굴로.

 

 

일종의 불가지론이랄까, 도심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자 762 커브라는 가공할 수치로 이뤄진 관문은 불특정하게 굽어져있었고 불필요하게 휘어져있었으며 불가해하리만치 꺾여있었으니 재차 겪어봤음에도 그 실재적인 각도와 실질적인 의중은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내처 굶었음에도 불구, 몸속에선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용솟음치려 했고 머릿속은 하얀 백지가 되는가 싶더니 온갖 낙서들이 무분별하게 새겨지기 시작해 심신이 쌍방으로 난감해졌다. 야한 생각을 하면 좀 나아질까 싶어 노력했으나 상상력이 빈약해서인지 별반 무소용, 그저 잠에 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을 뿐 달리 방도를 마련하지 못했다.

 

 

모든 노력은 허사였다. 나 하나 잘 한다고 모든 게 잘 풀리는 인생이면 그 얼마나 심플하겠는가. 허나 뒤통수에 눈이 달리지 않았으니 예고 없이 들어와 홀연히 작렬하는 돌멩이를 피하기란 어려운 법, 변수는 후면에서 치고 들어왔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팀플레이로 전환된 세상에서 나 홀로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 들을다짐해 봐도 혼자가 아닌 열둘로 이뤄진 빠이 행 빌어먹을 미니밴 안엔 다양한 국적을 가진 유럽인들과 함께 몇몇의 중국인들이 있었고 개중 한 중국인 아줌마인지, 아가씨인지 경이로울 정도로 구별이 안 가는 아줌마인지 아가씨인지는 꾸역꾸역 처잡수던 모든 것들을 재확인 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선 흡사, 몰려드는 경찰병력과 무자비한 탱크를 앞에 두고 필사의 항전에 들어간 어느 민주투사의 자세를 재연하고 있었다. 아주 그냥 배 째라고! 그러게 좀 적당히 처자실 것이지 휴게소에서 부단히도 쑤셔 넣더라니.

 

 

때 마침, 이스라엘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세 여학생, ! 남한 사람 처음 본다며 남한은 어떤 나라야? 묻기에 일단 남한은 지구에서 열 번째로 잘 사는 나라인지라 물가는 더럽게 비싸고, 아시아에 속해있지만 북아시아인지라 겨울엔 더럽게 춥고, 종교는 기독교가 다수인지라 더럽게 배타적이고...... 등등, 마침 할 일도 없고 전날 마신 술도 안 깨고 하여 정치, 경제, 역사, 문화를 넘어 결국 인간이란 모두 다 죽는다는 하나마나한 얘기를 거쳐 왜 사는지를 모르고 살면 그건 사는 게 아니라는 둥, 우리는 모두 꿈에서 내려온 존재라는 둥, 모든 극단은 불온해서 아름답다는 둥 내키는 대로 지껄였더니 여왕개미와 코뿔소 간 사랑과 전쟁의 삼각함수, 불륜과 애증의 쌍곡선에 대한 소고라고 듣는다는 듯 생판 처음이라는 낯짝을 하고 있던 그 세 여학생이,

 

 

대략 한 시간 반에 걸쳐 당을 섭취케 하고 몸을 따스하게 만들며 여기저기를 주무르고 통에 그나마 운신이 가능해졌으나 버스에 오른 지 얼마나 되었을까,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다는 심산인지 더 이상 나올 것도 없어 보이더니만 끊임없이 구역질을 해대는데 것을 신호탄으로 하여 줄줄이 소시지처럼 연이어 버스를 정차시키고 밖으로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그 하나 감격스러울 것 없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어 한 번 줄 때까지 매달려본다는 결연한 심정으로 견디고 버티기를 얼마, 생각은 느려졌다 치고 솟기를 반복했고 전신의 힘은 정신의 혼과 함께 들락날락 반복했으며 눈치 없이 배는 또 왜 그리고 고파오는지, 여하튼 근본 없이 과격한 체육선생의 호전적인 매질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어느 비행청소년의 인내와 끈기, 오기와 곤조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마음을 다독여봤으나 빠이로 향하는 길은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 했다.

 

 

한 존재의 기원, 그녀의 기원으로 인한 생의 개박살, 그 개박살이 이끄는 황홀한 자폐의 시간, 그 자폐의 시간으로부터 태동한 인식의 확장과 형식의 재편, 자각이 곧 자멸이 되는 살벌한 세상을 깨치고 나와 떠돌았던 길 위의 삶들, 그리고 그녀들...... , 그때 확실히 마무리를 지었어야 했는데, 탄력 하나는 걔가 끝내줬었지, 그래도 기술력으로 치자면 아무래도 그래, 사람은 역시 기술을 배워야 해! 다짐하고 선서하던 즈음이었다. 까딱하면 전생에 대해 고민하고 신과 인간에 대해 탐구할 뻔 했던 그 즈음이었다.

 

 

보통은 세 시간, 늦어도 세 시간 삼십 분이면 떡을 치고도 남는 거리를 무려 다섯 시간 반에 걸쳐 드디어, 마침내, 이윽고 도착한 빠이의 다운타운. 아아! 그간 얼마나 애타게 그리워했던가, 내 남은 생을 투신하고 싶었던 소읍, 빠이!

 

 

우두둑, 스트레칭으로 구겨진 몸을 펴고, 옷차림을 바르게 여미고, 담배 한 개비 과격하게 빼어 물고 캐리어를 질질 끄집고서 산발한 머리카락을 마구 휘날리며 자아, 선수입장!

 

 

다시 만나 반갑다, 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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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하얗고, 여리고, 가녀리고 청순할뿐더러 섹시한

    

 

여행에 있어 호텔이 아닌 호스텔을 지독하게 신뢰하고 더블 룸이나 싱글 룸이 아닌 도미토리, 적게는 넷에서 보통은 여섯이나 여덟, 많게는 열둘, 미치도록 많게는 스물여섯이나 서른 명이 여러 침대를 놓아두고 한 방에서 자야하는 비개인적이고 불편리한 공간을 철저하게 고집하는 까닭이란?

    

 

값비싼 호텔에서 만난 노인네들에게 철지난 무용담, 70~ 80년대 그 격동의 시절엔 말이야...... 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땐 여행자들이 뭐 어쨌다느니, 세상이 이러지 않았다느니, 지금은 너무 변했다느니, 유의 구닥다리 자서전, ! 옛날이여, 시리즈를 듣고 있는 건 날건달에 호색한을 겸하는 자의 스타일이 명백히 아닌 바, 통상 주둥이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인간들이 아니라면 나이가 어릴수록 주머니가 서운하게 마련, 서운한 주머니 사정에다 배낭여행자의 천형과도 같은 가난이 합쳐진다면 이는 반드시 근검, 절약 정신을 장착할 수밖에 없으니,

    

 

청춘이라는 표피를 지닌 파릇파릇한 얼굴들, 콕 집어 하얗고 여리고 가녀리고 청순할 뿐더러 섹시한 언니야들이 등허리에 큼지막한 배낭을 짊어지고 향할 곳이란 필연적으로 저가형 숙소일 것, 그 하얗고 여리고 가녀리고 청순할뿐더러 섹시한 언니야들과 한 방에 떼로 둘러앉아 나는 누군데 너는 누구실까? 매끄러운 자기소개의 시간을 거쳐 밥과 술을 매개로 한 동행에 임하는 가운데 어스름을 배경삼아 사람과 사랑, 생과 사, 존재와 실존 따위를 논하며 거푸 들이켜다 몹시 인류애적인 운동,

3 Comments
Kensin 2014.08.07 01:24  
글 읽다가 팬심이 생기네요 ㅎㅎ 너무 재미나고 즐겁게 보았습니다.
다음 여행기도 부탁드려요~~^^
다동 2014.08.07 19:01  
네이버에 "빠이 이야기"라고 치면 블로그 나올 거예요.
혹여 보시려면 거기서 보셔도 좋습니다.
까티 2014.10.15 18:57  
사진도 신나보이고 글의 표현도 재밌고 좋아요 ㅎ
여행기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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