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녀들 4. One night in Bangkok
(카오산. Nap Park Guest House)
#1. 아직 그녀는 거기에 있을까?
어둠 속에서 유독 제 가치를 발휘하는 것들이 있다. 국제법상 여행자의 밤은 생활자의 낮보다 아름답다. 여행자들을 맞이하는 카오산의 밤은 연지곤지 찍고 단장하는 처녀처럼, 또는 창녀처럼 간판에 불을 밝히고 조도를 높이며 흥겨운 음악으로 이국에 놓인 심장을 단근질한다. 이 밤을 이대로 흘려보낼 수 없다는 굳은 결의에 찬 여행자들로 거리는 인해를 이뤘고 활기를 띠었다. 그 밤이 불그스레했다.
크레이지 시티 방콕이 담보하는 환락과 환장, 쾌락과 향락에 아낌없이 정신줄을 놓아보고자 정성스런 꽃단장에 임했으니 정갈하게 틀어 올려져 7대 3 비율로 맹렬하게 나뉜 허리께의 기다란 머리카락과 함께 색상은 블랙, 빳빳하게 다려진 한 벌의 슈트는 먼지 하나 없이 반반한 낯짝을 유지하며 오만한 듯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착, 하고 매끄럽게 감겨오는 재킷에 노란색 행커치프를 찔러 넣어 마침표를 찍었다.
“와! 형 어디 가세요?”
중국 국제학교에 다니고 지금은 세계여행 중이라는 한 무리의 고삐리들은 느닷없는 블랙 슈트 차림으로 등장한 내게 감탄과 경탄의 눈빛을 보내왔다. 대개는 그러했으나 개중 어떤 아이는 한숨과 탄식을 섞은 미묘한 시선으로 내 충만한 똘끼를 감상했으며, 다른 어떤 아이는 오늘 더러운 꼴 여러 번 보네, 하는 눈길로 보는 둥 마는 둥 했고, 또 다른 어떤 아이는 저건 당최 뭐하는 자식일까? 싶은 뉘앙스를 담아 “근데 형은 뭐하는 사람이에요?” 묻기도 했다.
호스텔을 빠져나와 유유히 걸음을 옮기다 툭, 담배 불똥을 튕겨낸 후 손모가지를 묵직한 블랙 슈트에 꽂아넣고 네모 반듯하게 후까시를 잡으며 날 보러 와요, 소리치는 현란한 불빛을 등에 졌다. 마치 내 것인 양 멈춰서는 택시, 뒷좌석에 앉아 경쾌하게 몸을 젖혔다. 제니를 만나러 간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예쁠 수가 있는지! 열대기후에 입각한 태국인 특유의 진하고 원색적인 느낌은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을 잔뜩 받은 중국인 아버지 덕분인지 가장 적절한 농도로 중화되어 있었기에 적당히 하얗고 또한 뚜렷하며 결국 화려했다.
‘직업의 특성상 많은 미녀를 봐온 경험으로’라며 매끄러운 서두를 장식하고 싶지만 내 직업과 미녀는 하등 관련이 없으므로 부득불 이실직고하자면 미녀를 보면 환장하는 호색한의 입장에서 적잖게 봐왔던 미녀 중 응당 한 손에 꼽아야 마땅할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와 함께한 방콕의 몇 시간은 그간 그토록 의미 없이 흘려보내야 했던 지난 몇 년보다 월등한 가치를 지녔다고 단언하는 것과 동시에 식습관의 변이로 인해 갈수록 비대해져가는 무절제한 21세기에선 이미 멸종위기에 처한 정의로운 몸매를 밀착 마크하던 내 싸구려 몸뚱이도 분에 넘치는 황홀에 젖었다고, 하여 마땅한 수사를 찾지 못하도록 행복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으니 아아! 꿈속에서도 누차 그리고 그려봤던 그녀를 다시 만나는 일이란 생애 다시 오지 못할 순간 하나를 거머쥐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담배 하나를 깊게 태우며 시선을 멀리 던지던 택시 안에선 이런저런 생각이 요동쳤다. 앙증맞은 하트모양과 함께 그녀가 새겨준 전화번호가 담긴 수첩을 놓고 오는 바람에 미리 연락하지 못한 것이 내심 불안하였으나 어차피 엎질러진 물! 나름으로 극적인 해후가 제공하는 드라마가 있지 않겠는가. 수없이 그려본 재회의 풍경, 아! 꽃이라도 사가야 하나? 일단 팟퐁Pat Pong으로.
팟퐁. 방콕 최대의 번화가라는 실롬Silom의 뒷골목에 위치, 다양성에 있어 다방면으로 명성과 소문이 자자한 야시장으로 ‘롤랬으’부터 ‘어매가’, ‘조지도 알잖니’, ‘구짜’ 등등 각종 짝퉁을 비롯하여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태반의 것들은 물론이고 인간이 살아가는 데 이런 것들까지 필요한가 싶은 오만가지 잡동사니들이 총천연색으로 구비된 시장골목, 그리고 그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홍등가로 이름 높아 호색한이며 무뢰배인 동시에 날건달인 내가 제법 즐기는 곳이랄 수 있다.
조촐한 차림새로 무장한 잘빠진 언니야들이 현란한 조명을 따라, 소리 높은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손을 잡아끄는 흐뭇한 풍경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게이 바와 라이브 쇼장, 기괴한 섹스 체험장 등등이 좌우로 정렬, 나란히 늘어서 있으며 이중 가장 대표적인 형태는 고고바, 그중 나는 킹00으로 간다. 왜냐? 그녀가 거기 있으니까. 제니는 창녀니까.
풍부한 지식 대신 풍만한 가슴과 선량한 허리사이즈를 지닌 반라의 여인들이 건네는 유혹의 손짓, 미혹의 발짓, 매혹의 눈짓을 외면(한다기보단 즐겁게 마주)하며 유유히 킹00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직 그녀는 거기에 있을까? 잠식해있던 불안이 수면으로 떠오른다. 역시나 답은 같다. 가보면 안다. 없으면 찾는다. 이상.
어깨에 내려앉은 먼지를 가볍게 불어 날리고 양손은 주머니에, 슬쩍 추켜세운 눈썹과 설핏 새긴 웃음, 주둥이에 물린 담배 한 모금 깊게 빨아 재끼며…… 자, 선수 입장.
(시암. Lub D)
#2. 제니는 실상 우리 모두의 스타일이니까
왜 그럴까?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인간의 불안이란 무엇으로 하여금 이토록 놀라운 적중률을 선사하는 것일까? 묻고 싶다. 어디 들판이나 야산에 묻어버리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내 목덜미에 그녀의 입술 자국이 묻었으면 좋겠다는 것도 아니라 질문을 던져 대답을 듣고 싶다는 뜻으로 묻고 싶다. 이 장난 같은 인생사의 저의를!
제니는 없었다.
입장과 동시에 제니의 위치를 스캔하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그 익숙한 얼굴들은 대번에 나를 알아보곤 너 안다, 너 기억한다며 우르르 몰려들었고 그래 나도 알겠다, 더불어 다시 보니 반갑다, 가볍게 대꾸하며 자리에 착석하기까지의 짧은 시간, 제니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 수시로 살폈다. 일단 한 번 보면 전후좌우 360도 고출력, 고화질의 결과물을 딱 내놓는 게 모진 세월 속에서 섬세히 다듬어진 눈동자의 위력. 아직 출근 전인가? 그때까지만 해도 참담한 결말은 전혀 염두에 두지 못했었다.
일단 자리를 잡고 앉자 대략 열댓 명의 아가씨들이 주위를 에워싸며 나를 선택해달라는 갖가지 퍼포먼스를 연출하기 시작하는데. 몸을 배배 꼬는 애교와 교태, 이래도 나를 버릴 테냐는 추파와 아양, 간간이 엿보이는 수줍음과 쑥스러움, 도가 지나친 대범함과 화끈함이 하나의 그림으로 맞물려 그리스 신화 같은 데서 등장할 법한 살색의 축제를 선보이고 있었으니, 어찌 아니 미소 지을 수 있단 말인가! 제니를 다시 만나기까지의 긴 시간을 나는 지나왔다, 실감했다. 그것도 국경을 넘어.
뒤늦게 대열에 합류한 한 여자아이가 유독 소리 높여 말한다.
“I remember you!”
그래 나도 너 확실히 알겠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동행이 둘 있었는데 한 분은 사회적 위치와 명망, 그로 인한 파장과 여파를 고려하여 신분을 밝히기 무엇하고 다른 한 분, 아니 한 놈은 오타 켄트라고 일본에서 손꼽히는 게이오 대학 정치학부를 다니는 스무 살 꼬마였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게이오 대학 정치학부를 다녀서인지 녀석은 어린 나이에도 꽤나 똑똑했고 일본에서 손꼽히는 게이오 대학 정치학부를 다녀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파트너 선정에도 신중을 기했으며 일본에서 손꼽히는 게이오 대학을 다녀서인지,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저 낯짝이 두꺼워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얻어 마시는 처지에도 과감하게 칵테일을 주문하던 귀여운 녀석이었는데 그 녀석의 파트너였다, 그 여자.
“나 제니 만나러 왔어.”
“제니 지금 없는데.”
덜커덩, 가슴은 무너져 내렸고 동시에 정신은 아득히 엷어지고 시야는 뿌옇게 흐려졌다. 순간으로 너무 놀라 이게 지금 농담인지 장난인지 그게 그건지 뭔지, 쟤가 하는 말이 영언지 한국언지,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건지 잘 못 들은 건지…… 걷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치달았다. 그녀를 처음 만나고 다시 만나러 오는 데까지 걸렸던 시간이 일순간에 파노라마를 그렸다. 이럴 순 없다. 이래선 안 된다.
“어디 있는데?”
“지금 싱가포르에 있어.”
아아,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일단 너 좀 앉아 봐. 그리고…… 음…… 그래 너, 너도 앉아 봐. 양옆으로 한 쌍의 비키니를 대동하고 맥주와 레이디 드링크(말이 레이디 드링크지 그냥 얼음 탄 콜라) 둘을 주문하며 급하게 담배를 태우는 동시에 바삐 물었다. 이게 지금 뭔 얘긴지, 무슨 의미인지, 어떤 상황인지. 대답은 극적이었다. 안타깝게도 비극적이었다.
“제니, 일하러 갔어. 싱가포르에. 한 달 동안.”
“그래서 언제 오는데?”
“한 달 뒤에.”
제니가 싱가포르에 한 달 동안 일하러 갔다? 제니를 생각하는 쓸데없는 공상과 망상 중에는 그런 게 있었다. 그녀를 통으로 고용하여 내 여행에 고스란히 동반시키는 것. 물론 그런 돈이 내게 있을 리 없고 있다고 해도 그럴 리 없겠지만 가끔이나마 인생 뭐 있어? 하는 심정이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그러고 싶다고 울부짖곤 했다. 나 아닌 누군가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딱 내 스타일인 제니는 실상 우리 모두의 스타일이니까. 위안이라면 제니가 돌아오고 나도 돌아왔을 때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는 것, 게이오 대학 정치학부를 다니는 오타 켄트의 파트너였던 여자애가 전화를 했고 다행히 제니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넉넉한 팁은 물론 예쁘다는 한마디에 티셔츠까지 벗어준 호구였으니.
실망이 크긴 컸던 모양. 반라의 여인들이 여럿인데도, 사이키델릭한 음악이 빵빵한대도, 맛깔스러운 맥주가 지천인데도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혼자만의 상념으로 추락하곤 했다. 주변 모든 것들이 이미 사라진 채로 손짓하는 환시幻視 같았다. 인제 그만 갈까, 조금만 더 있어볼까를 고민하는 내 의중과는 아무런 관련 없이 함께 앉은 아가씨들은 무슨 학구열에 불탔는지 뭘 그렇게도 열심히 물어봐댄다.
몇 살이냐? 뭐하는 놈이냐? 결혼했느냐? 애인은 있느냐? 등등을 거쳐 결국 나랑 자자! 로 귀결되는 이야기들에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웃는 둥 우는 둥, 그렇게 시큰둥. 그러나 나름의 성의를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랬던 때였다. 우연히 날아간 시선은 멀리 향했고,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나비처럼 날아와 벌처럼 쏘듯이 순간에 콕 박힌 그녀, Y.
(빠이)
#3. 잠깐만. 할 말 있어
제아무리 흉포한 살인자라 할지라도 저물녘의 하얀 꽃을 보고 욕을 하거나 침을 뱉진 않는 것처럼 세상엔 절대적으로 좋은 것들이 있다. 내겐 여인의 미소가 그렇다. 독점 자본의 미운 오리 새끼로, 신자유주의의 희생양으로 세상에 불만과 불평이 많기도 하거니와 인상 쓰고 다니는 게 멋있는 줄 아는 나는 좀처럼 웃지 않지만, 결핍이 낳은 동경일까? 유독 웃는 여자가 좋다. 34년 살면서 그렇게 예쁜 웃음은 처음 봤다. 수미일관한 치열로 활짝 웃고, 크게 웃고, 힘껏 웃고, 얼굴로 웃고, 몸으로 웃으며 동료들과 얘기 나누는 그녀에게 반하는 데는 3.4초도 걸리지 않았다. “저기 쟤, 아니 쟤 말고 그 뒤에. 그래, 쟤. 쟤 영어 좀 해?” 물으니 그렇단다.
복권이라도 맞았는지 연신 웃음 짓고 있는 그녀를 지켜보고 있자니 맥주는 시원했고 담배는 달았다. 다른 테이블로 향하는 그녀를 불러 옆자리에 앉히자 예의 가득한 웃음과 함께 두 손을 모아 “컵쿤카.” 콜라가 아닌 맥주를 마시고 싶어 하는 것도 마음에 들어 그나마 비싼 술인 하이네켄을 두 병 주문해 그녀의 잔에 따르고 건배. 맥주의 청량감을 몸으로 공명하듯 하~, 발음하는 모습도 꼭 광고같이 예쁘다.
“제니가 우리 가게 넘버 1이야. 킹스 코너에 있을 때도 그랬고.”
“그럼 네가 넘버 2야?”
“아니, 나는 그보다 아래야. 저기 쟤가 넘버 2야.”
“네가 더 예쁜데.”
“나 별로 안 예쁜데. 근데 왜 날 선택했어?”
“예뻐서. 특히 네 웃음이 판타스틱해서.”
웃고 떠들며 마시는 시간은 이어졌다. 허투루 살아온 내 인생에도(십수 년, 공예가로 살아온 게 도움이 됐는지는 몰라도) 어디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게 있다면 직관이다. 청진기 대볼 것도 없이 명확한 진단을 내리는 나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몇 있고 스스로도 자신하니 그야말로 자타공인, 그녀의 웃음에는 거짓이 없었다. 진정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이 더없이 예뻤다.
“진, 너랑 섹스하고 싶어. 2,500밧.”
이건 영업용이다. 참고로 진Jin은 내 이름이다.
“섹스하고 싶은 마음은 없고 밥이나 먹자.”
밥이나 먹자던 놈은 드물었던 것일까, 얼마를 불러야 하나? 시선을 조금 높이 향하고 입술을 모으며, 모은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붙이며 생각에 골몰하더니,
“음…… 그럼 1,000밧.”
“오케이. 나가자.”
클래식한 꽃무늬 원피스 차림으로 내 팔짱을 끼고 걷는 Y의 표정이 하도 밝아 나도 밝았고 거리도 밝았고 (달도 밝았던가?) 무엇보다 마음이 환했다. 골목을 조금 벗어나 걷다가 스타일이 나쁘지 않은 큼지막한 레스토랑에 들어서니 일하는 여직원과 서로 반가워 손을 잡고 겅중거리며 인사를 나눈다. 친한 사이인 모양, 그래서 여기 오고 싶었구나!
스테이크 둘과 맥주를 가져다준 여직원은 Y의 안부로 추정되는 얘기를 나누다가, 안부가 아닌 얘기로 추정되는 대화를 나누며 웃고 떠드는 중 나를 쳐다보고 꺌꺌 거리다가, 귓속말을 나눴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끄러워도 하는데…… 그 상황이 대충 짐작이 갔다.
“쟤 누구야?”
“그냥 아는 애야.”
“괜찮다. 잘 해봐.”
“우리 그런 사이 아니야.”
“남녀 사이에 그런 사이 아닌 사이가 어디 있어!”
태국을 위시하여 동남아 일대에서 크게 유행하는 식물인 팍치라는 게 있는데, 한국어로 고수, 중국어로 샹차이, 영어로 코리앤더라고 불리는데, 현지 사람들은 이걸 무척이나 좋아해서 약방의 감초처럼 어디 안 들어가는 데가 없다는데, 그건 그 나라 사람들 취향이고 태반의 여행자들은 차라리 굶지. 이건 못 먹는다, 할 정도로 향취가 그악스럽고 맛이 경악스러운데, 글로벌은커녕 전라도 광주스러운 입맛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이 팍치를 싫어하는데, 그런 내 취향과는 아무 상관 없이 Y가 주문한 스테이크엔 팍치향이 질퍽한 소스가 버무려져 있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내 스테이크를 잘라 그녀에게 먹이니 이에 질세라, 제 스테이크를 잘라 내 입에 넣어주는데 자칫하면 뱉어버릴 뻔했으리만치 아, 이건 못 먹는 거구나! 강력한 결론에 도달했음에도 불구, Y는 자꾸만 내 입에 스테이크를 버리며 필요 이상으로 좋아했고 나만 당하고 있을 수 없어 나도 내 스테이크를 그녀에게 투척했으나 내가 주는 만큼 그녀도 내게 건네는 상황이 연이어져 남 보기엔 참으로 알콩달콩할 수도, 또는 저것들 지랄 염병을 하고 있구나 싶을 수도 있었겠지만 실상은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캔디의 정신으로 이를 악물고 버티다가 종국에는 배가 불러서 못 먹겠다며 스테이크의 절반 이상을 남겨야 했다. 저녁에 밥 많이 먹었다고.
겨우 스물을 넘긴, 아직은 어린 나이여서일까. 뭘 그렇게까지 수줍어하는지 똑바로 쳐다보고 있자면 자꾸 고개를 떨어뜨리곤 했다. 물론 내가 지나치게 끈적하고 느끼하게 쳐다본 탓도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왜 자길 선택했느냐는 질문을 두어 번 더 했고, 예뻐서 그랬다 대답하자 믿지 않는 눈치. 이에 나는 예술가라서 보는 눈이 정확하다며 너 예쁘다! 못 박으니…… 행복하다는 답과 함께 눈물이 그렁그렁.
그러더니 뚝, 굵게 떨어지는 한 방울을 급히 수건으로 훔쳤다. 이 무슨 느닷없는 오버인가 싶어 잠시 어안이 벙벙, 멍청하게 있다가 사태를 파악하기 시작. 나는 이미 그녀에게 약속한 금액이 있고 그 금액에 이 술과 식사를 합하면 굳이 힘들여 2,500밧을 버는 것보다 크게 나쁘지 않을 텐데, 그러니까 섹스하자고 저러는 건 아니라는 결론. 그럼 정말로 해피해서 그렇거나 그에 가깝다는 건데 뭐가 그렇게 눈물을 흘릴 정도로 좋단 말인가?
“Hey lady~. Please don't cry for me. I want to see your smile.”
그녀의 대답 역시 영어로 쓴다. 내 아무리 낯짝이 두꺼워도 차마 이걸 번역할 순 없다. 걱정 마시길. 중학교 수준의, 아니 요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