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켓 - 15년 만에 만나는 푸켓 (사진 수정)
태사랑 회원님들 안녕하세요? 서울에 거주하는 마흔아홉살 철부지 아빠 푸켓 여행기입니다. 많은 선배 회원님들의 소중한 정보를 열심히 메모하고 2월 6일 푸켓으로 떠났습니다. 태사랑 회원님들께는 감사하다는 말씀 다시 한 번 드립니다. 무척 설레였느냐고요? 물론입니다. 15년 만에 첫 자유여행이었습니다. 사실 두 달전 회사 워크샵 핑계로 방콕/파타야 패키지를 다녀왔었는데 가이드분이 워낙에 돈고생 밥고생을 시켜서 패키지 트라우마가 생겨버렸습니다. 먹고 사니즘도 중요하고 어느 정도 이해해 줄 수 있지만, 알면서도 총을 맞는 것도 한계에 다다르고 이제는 무조건 자유여행이야, 하고 나선 충동적으로 시작한 푸켓 여행이었습니다.
출발 4일 전 인터넷으로 불현듯 비행기와 호텔을 예약하고 떠나는 게으름뱅이 가족의 충동 여행.
1.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담배를 두 보루 샀습니다. 끔찍한 사진이 인쇄된 태국담배각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국적기 A항공기을 타고 한국의 야경을 뒤로 하고 기내식을 만나봅니다. 흠, 아무리 시끄러워도 기내식은 땅콩항공이 조금 나은 듯 싶습니다. 747이 한 때는 꽤 인기가 있었는데 살펴보니 세월의 흔적이 시트 곳곳에, 세월은 세지 않아도 흐르는 강물과도 같나 봅니다. 새벽 푸켓 공항에 내렸습니다. 귀에 박히는 중국어, 지난 해 여름 제주도에 갔다가 중국사람들에 치인 기억이 납니다. 정말이지 시끄러운 민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대세가 되어버린 그들을 인정해 주어야 할 때인가요? 중국이 세계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2. 공항 픽업 차량에 올랐습니다. 파통비치에 위치한 <밀레니엄 호텔>은 생각보다 멀었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딸 어진이는 행복해 합니다. 여행사 가이드의 통솔이 없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면, 랜드사인 태국여행사 사장님들과 가이드들은 반성해야 할 문제입니다. 물론 한 사람 한 사람이 총제적인 난제를 풀어가기 어렵겠지요. 전체를 바꾸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필요할 겁니다. 어쨌든 이제 저의 영역이 아니므로 패스. 영어가 뛰어나지 않지만 해외생활 경험이 있기에 체크인은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서로 유창하지는 않아도 짧은 영어로나마 대화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는 사실을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아내가 제일 좋아했던 모닝 글로리 볶음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꽃게 커리 볶음입니다.
정실론 지하1층 그냥 재밌어서 한 번 해 봤습니다. 30분 100 바앝, 그러나 그 이상을 해도 추가 요금을 안 받더군요.
타이 마사지, 나이 든 분에게 마사지 받은 이 후, 현재까지 허리가 안 좋네요. 살살 받아야 겠습니다.
찰롱 사원인데 바로 앞, 바람이 정말 상쾌합니다. 습하지 않은 자연바람이 너무 좋아 30분을 여기서 머물렀습니다.
베스트 웨스턴 호텔에서 한 컷, 이 사진은 혐오스러워 올리지 않으려 했으나 비만아 인증 사진으로 올립니다.
밀레니엄 호텔 베란다에서 아내의 도도한 모습, 20년을 함께했는데 저만 할아버지가 되어가네요.
버드쇼에서 순박한 프랑스+영어사용 여인입니다. 몇마디 대화를 시도해봤는데 남자친구(?)와 더불어 부끄럼이 많았습니다. 열아홉 살 안팎으로 추정됩니다.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
이제 아가같지 않은 우리 아가와 함께 수영장에서 시달린는 중입니다.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나라와 태국국왕의 존경심과 종교심이 크기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아~!!!! 돈이다. 천원짜리도 있었습니다. 세계평화와 한반섬의 평화 그리고 모든 인류의 안녕을 기원했습니다. (로또 당첨되게 해주세요. 쬐끔(조금) 빌었습니다.^^)
아내와 딸, 10년 전, 싱크로율 100%인 그녀들은 지금 같은 종족이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우리 아가의 위장이 너무 커진탓입니다. 이제는 엄마보다 큰 덩치. 그래도 예쁜 아가입니다.
사진 편집을 하는 것이 복잡해 몰아 올렸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3. 파통비치에서 그나마 괜찮다는 <밀레니엄 호텔>의 내부는 사진과 다르게 매우 협소했습니다. 사진과 똑같지만 왠지 모르게 행동반경에 제약을 받는 느낌. '괜찮아, 익숙해질 거야.' 벨보이에게 $1을 주고 예약한 간이 침대를 부탁했습니다. 5분 안에 가져다 주마 한 그는 그로부터 40분 후에 나타납니다. "베리 뷔지~" 웃는 얼굴에 어찌 화를 내겠습니까? 간이 침대가 셋팅이 되고 아내와 딸, 그리고 저는 순서대로 샤워를 마쳤습니다. 시계를 바라보니 한국 시간으로 5시 반이 넘어 있었습니다. 두 시간이 늦은 태국 시각은 3 시 반, 과연 우리 가족들은 조식을 만날 수 있을까요?
4. 일어나니 11시, 조식 시간을 놓쳤습니다. 10시 30분까지 조식 시간이라고 합니다. '괜찮아, 내일도 있잖아." 밀레니엄 호텔 (레이크스 사이드 기준) 프론트에서 맞은 편에 정실론으로 통하는 입구가 있습니다. 그 곳을 통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마치 한국의 서울랜드나 코엑스 분위기가 물씬, 우리가 꿈꾸던 베란다 창을 열면 고요한 바다가 보이는 따위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름 깨끗하게 정돈된 그 곳을 구경하다 우연히 태극기를 만나게 됩니다. 가까히 다가가니 한국 식당 이름 <마루>였습니다. 딸 어진이는 김치찌개를 외칩니다. 아침과 점심을 몰아 먹는 시간. 그런데 제육볶음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김치찌개도 나름 최상위급의 맛이였고요. 가격은 한국과 비교해서 조금 비싼 편이었지만 외국 생활을 해 본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고추가루나, 고추장 된장 공수는 비용이 세다는 것을. 중간 사장님이 제 아내와 인사를 나누었지만 저는 뵙지 못했습니다. 제육볶음 정말 환상입니다. 단 맛이 그리 강하지는 않지만 단 맛을 싫어하는 분들께는 추천에서 살짝 빼봅니다.
5. 밥을 먹고 호텔 수영장에서 놀았습니다. 러시아 아가씨들과 함께 수영을 즐길 생각을 했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들만이 해를 보고 누워 낮잠을 주무십니다. 해가 저물 무렵 파통비치를 향해 봅니다. "아악!~~~!!!!!!" 이 소란함이란, 사실 저는 소음방어기제가 상당히 폭력적인 성향입니다. 시끄러운 곳에 가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사소한 일에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나쁜 병을 앓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을 위해 참고 또 참습니다. 10여분 걸었을까? 생각보다 깨끗한 파통비치가 나타납니다. 러시아 30% 중국 70% 그리고 한국인팀은 어쩌다 한 번, 태국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중국과 러시아에 점령당했습니다. 제주도 뺨치는 중국인의 인산인해 그 중에 한 분이 술에 취해 해변에서 소변을 봅니다. "헐~" 화장실이 지척이지만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일행들은 말리지도 않습니다. 러시아 할아버지는 술에 취해 한 손에는 보드카를 꼭 쥔 채 누워 있습니다. 조금 더 가니 이번에는 중국인 아주머니가 또 소변을 봅니다. 지금 제가 똥꿈이라고 꾸고 있나 싶을 만큼 비현실적인 정경이 펼쳐집니다. 강대국 국민과 약소국 국민의 차이는 저런 것일까요? 국가의 기본적인 기초질서를 칼같이 지키는 한국인과 말이 공산국가이지 황금배금주의, 만능주의에 성공한 강대국 국민의 미친 행동에 절로 고개가 저어졌습니다. 공산당은 정말 싫습니다.
6. 돌아오는 길에 이곳 저곳 살피다 보니 아내가 말합니다. 저쪽으로 식당들이 많을 것 같아. 깊숙히 들어가니 쌀국수 집입니다. 메뉴판을 보니 60바앝, 다섯 개를 시켰습니다. 골라 먹는 재미를 만끽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알고 보니 그 국수집은 옆집 고급(?)식당과 주인이 같은 곳, 그나마 영어를 조금 구사할 줄 아는 웨이츄레스가 와서 볶음게 카레 요리를 추천합니다. 두 마리에 900바앝, 볶음 모닝글로리와 볶음밥까지, 아내와 딸, 제가 쌀국수 다섯 그릇, 볶음밥에 , 뿟팡퐁 커리(?) 다 먹어치우니 웨이츄레스가 무서워 합니다. <우리는 먹으러 왔다.> 웃긴 것은 그들이 우리가 중국인인줄 안다는 것과 또 하나는 저러다 도망이나 가지 않을까 지속적으로 감시받는 기분을 느낀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와 제 딸은 비주얼 측면에서 중국인과 거의 흡사합니다. 아내는 예쁘고 날씬하지만 ㅠ.ㅠ
7. 빅씨 마트에서 과일과 음료수를 샀습니다. 호텔내에 투어담당자를 발견하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일은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 <버드쇼>를 보기로 했습니다. 1인당 1,400바앝 (나중에 안 사실은 호텔내 투어사는 정말 비싸다. 였습니다. 로컬이나 한국 여행사를 통한다면 훨씬 저렴합니다.) "피피섬따위는 개나 줘버려~" 네 그렇습니다. 저희 가족은 액티브한 여행을 극도로 혐오합니다. 보는 것을 좋아하고, 최소한 행동에너지를 비축하는 게으른 가족입니다. 어떻게 스노우 쿨링이나 바다 수영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바닷물에 젖은 수영복은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다리와 발사이게 끼는 산호 모래는 어떻고요. ^^ 호텔 베란다에서 빅씨 마트에서 몰래 공수해 온 두리안을 빨아 먹어봅니다. 흠~! 역시 이 맛입니다. 두리안의 1등품은 사실 싱가폴입니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1등품 두리안을 수입해 싱가폴 과일 시장에서 먹었던 그 맛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베트남 두리안도 뛰어나지요. 태국산 두리안은 그 맛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물론 필리핀 산보다는 뛰어납니다만, 꿩대신 닭입니다. 10여년 전, 말레이시아 산 속에서 먹었던 야생 두리안, 그 향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어찌되었든 두리안은 과일의 왕이 맞습니다. 중독성이 있는 몇 안 되는 과일. 그 맛 때문에 동남아시아를 자주 찾게 되나 봅니다.
어느새 또 우리는 곯아 떨어졌습니다. 뭘 했다고?
8. 일어나니 8시 30분. 드디어 첫 조식을 먹어봅니다. 기대한 정도의 뛰어난 메뉴는 아니었지만 인도식 카레(커리)와 난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밀레니엄 호텔 조식의 별점은 세 개 반이 적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식을 먹고 다시 정실론과 주변을 살펴 봅니다. 오후 1시 30분에 출발하는 버드쇼까지 시간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3층에 올라가니 전자 오락실이 있었습니다. 중국어로 인쇄된 캐릭터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게임 요령이 써 있었는데 딸 어진이는 어떻게 아는지 모든 게임을 한 번씩 다 해봅니다. 총 비용은 110바앝 시간은 40분 경제적으로 훌륭한 시간깨기였습니다.
9. 버드쇼장에 가는 길은 역시나 멀미길, 한참을 가다 까론비치쯤에서 한 팀을 더 만났습니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뒤섞어 쓰는 커플이었습니다. 나이는 19살 안팎, 예쁜 아가씨가 하체비만이었지만 잘록한 허리에 커다란 눈이 정말 귀여웠습니다. 미소년에서 청년으로 역변하는 총각역시 핸섬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느끼한 버터향이, 제가 주제도 모르게 질투를 한 것일까요? 버드쇼 관객 다섯 명, 와!!! 정말이지 이게 말이되나 싶을 만큼 관객이 꼴랑 다섯명. 싱가폴의 버드쇼보다 수준은 낮지만 적은 관객으로 인해 참여가 쉬워 너무 재밌었습니다. 10분 정도 지나니 7명의 러시아 아저씨 아줌마들이 왔고, 버드쇼는 흥을 더했습니다. 초등학생이라면 버드쇼는 강추입니다. 새 이름을 쉽게 지어서인지 외우기도 쉬웠습니다. 100바앝을 내면 사진을 무제한 찍을 수 있습니다. 한국 돈 3,500원의 팁이 아깝다고 사진을 찍지 않는다면 비효율적인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끼다 총맞는 것이 여행지의 현실입니다. 내어 줄 때는 내어 주어야 합니다. 큰 것을 아끼는 전략, 작은 것을 내어 주는 전략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10. 버드쇼가 끝나고 새를 구경하는 데 안내인 아가씨가 우리 일행을 부릅니다. 빨리 가야 한다며, 생각지도 못한 큰부처상 관광, 차를 갈아타고 부처가 모셔져 있는 얕은 산을 올랐습니다.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면 스님께서 성불을 기원해주는 간단한 예식이 있었습니다. 무신론자이지만 이때만큼은 참여 해 봅니다. 헉!!!! 시주를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 아내는 저에게 100바앝을 건네 줍니다. 모태 카톨릭 신자인 아내는 제 사진을 찍어 줍니다. 힘들지 않은 계단을 오르자 웅장한 불상이 나타납니다. 대리석으로 옷을 해 입은 부처, 내부는 아직 완공이 되지 않았습니다. 안에서는 예불을 드리는데 조금 시끄럽습니다. 부처상 입구에서 대리석 위에 기원문을 쓰면 돈을 받습니다. 작은 것은 300, 큰 것은 1,000바앝. 그런데 말이죠. 한국어를 단 한 개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어, 태국어, 심지어 러시아 글도 만나게 되는데.....큰 마음 먹고 1,000바앝을 시주하고 한국어로 기원문을 썼습니다. (쓸데 없는 국가적 또는 국수주의적 자존심인가요?) 대한민국의 평화통일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제 일가의 안녕을 지켜봐 달라고 썼습니다. 원래 이렇게 쓰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의 모든 신앙은 기복신앙이 원조인지라.....쿨럭~!
11. 부처상을 뒤로 하고 원숭이 쇼를 보여줍니다. 단 한 마리의 원숭이가 보여주는 원숭이 쇼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조련사도 지치고, 원숭이도 지치고, 멘트 치는 아가씨도 지치고, 우리관객 다섯 명도 지치고 패키지에 끼여 있어서 봤는데 원숭이랑 찍은 사진을 200 바앝에 사라고 합니다. 서양 커플은 단호히 거절하고, 저는 깍아달라고 했습니다. (필요없지만, 가족 사진이 그대로 남겨 두는 것이 싫었습니다.) 양빼이~ 아엠 코리안~ 어디가도 중국인 취급을 받는 비주얼이란 쩝~ 50바앝을 깍았는데 거스름 돈 대신 제로 콜라를 받아 왔습니다. 이번에 안 사실인데 태국 제로 콜라는 한국 제로 콜라보다 조금 단 맛이 더 합니다. 기분 탓일까요? 호텔까지 드랍해주는 기사 녀석의 인종차별주의자 느낌이 물씬, 백인커플에게는 웃음을 보이고, 우리 가족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서비스 차별이 느껴졌습니다. 아까 픽업할 때, 자동차 밧데리 고장으로 20분도 무탈하게 기다려 주었건만, 너희들이나 우리들이나 서양인들만 보면 스스로 고개를 숙이는 이 노예적 습성은 언제쯤 고칠 수 있을까? 한국 같았으면 몇 대 맞았겠지만 여기는 태국. 똥개도 자기네 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가니, 대충 참고 넘어가야만 했습니다.
12. 호텔로 돌아오니 딸 어진이가 또 김치찌개 합니다. 엄마 아빠는 외국에 나와도 음식 영향을 받지 않는데, 김치찌개를 너무도 사랑하는 딸의 식성으로 인해 다시 마루에 가서 삼겹살과 김치찌개를 먹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태국 돼지고기와 닭고기는 한국 돼지고기와 닭고기와 맛의 큰 차이가 있습니다. 동남아시아 돼지고기는 정말이지 고소하고 입에 쩍쩍 붙습니다. 열심히 흡입 중, 처음으로 마루 사장님을 뵈었는데 헐! 너무 마르셨네요. 서비스로 계란찜 주시니 감사했습니다. 마른 체격이지만 인상이 좋은 분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 여행 중에 애로점을 토로 하니 바로 한국 여행자 센터(?)에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13. 그리고 찾아 간 한국 여행자 센터(이름이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찾기 쉽습니다.) 박소장님께서 다른 한국분들과 일정 상담 중이었고, 상담이 끝나고 저희의 일정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피피섬을 갈까 하니 호텔내에서는 일인당 3,300 바앝이 이곳에서는 그 절반 이었습니다. 그러나 배를 타기 싫어하는 우리 가족, 차라리 렌트를 하여 푸켓을 돌자 쪽으로 일정을 잡았고, 밀레니엄 호텔에서 풀북이라 레이트 체이크 아웃을 실패한 우리는 <베스트 웨스턴 호텔> 1박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렌트카는 기사 포함 하루 2,700 바앝, 베스트 웨스턴 호텔은 2,800 바앝이었고 호텔에서 공항 센딩 1,000 바앝이었습니다. 이 금액 안에 한국 여행자 센터 마진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인정, 비싼지 싼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타당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지금은 하이 시즌 성수기이고, 호텔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니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날씨지만 그래도 더운 날씨에 베스트 웨스턴 호텔 앞까지 길 안내 해주시는 박소장님, 감사했습니다.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오게 되었네요. 살 좀 찌세요. ^^
14. KFC에서 5콤보 셋트를 포장해서 호텔에서 먹었습니다. 컵라면과 볶음 김치도 얌얌, 맥주를 즐기는 아내와 제로 콜라를 사랑하는 우리. 이렇게 많이 먹어 치우는데도 호텔내에 전자 저울은 하루에 -1kg씩 저를 가볍게 해 줍니다. 그렇게나 많이 걸었던 것일까요? 원래 이런 여행이 아니었는데 조용한 시골마을 같은 호텔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조용히 쉬었다 오는 여행이 목적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이드의 통제가 없는 현실은 너무도 달콤했고, 우리의 행동 주체가 우리라는 사실에 너무 행복했습니다. 내일 아침 10시 우리는 렌트카를 타고 푸켓 해변 곳곳을 다닐 것입니다. 무뚝뚝한 나이 많은 운전기사보다는 젊은 운전기사 친구로 부탁을 드렸기에, 더 재밌지 않을까요?
여기서 부터는 경어를 생략하겠습니다. 경어 생략은 글의 가독성이나 이해도가 높아집니다.
15. 호텔에서 아침을 먹는데 나타난 녀석 이름은 <나스>, 나이는 대충 20대 중반, 성격은 매우 급하고, 운전도 과격하지만 엄청난 순둥이, 결정적인 멘트를 이해하지 못하는 영어 무식자. 아는 단어는 "어디가세요?' 의 한국어와 아는 영어단어는 30개도 안되는 녀석, 그런 녀석을 믿고 우리는 한 팀이 되었다. 처음엔 영어로 말해 주었다. "너는 운전기사가 아니라 우리 가이드이다.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곳을 안내해다오. 내가 만족하면 너는 오늘 많은 팁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이 녀석이 걱정 말란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착각이었다. 녀석은 뭐든지 오케이였고, 뭐든지 '노프라블럼'이었다. 알아 듣는척 했지만 목적지는 언제나 황당한 녀석. 하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녀석과 나는 친밀해졌다. 내 나이 절반 정도의 녀석의 종교는 무슬림. 태국인인데 무슬림이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일들이 있어왔고, 앞으로도 그럴테니, 나스와 푸켓타운을 갔다. 나는 주말 야시장이 열리는 오후 5시쯤에 오자고 했는데 녀석은 낮 1시 반에 그곳에 데려가 나를 보고 방실 방실 미소 지었다. 낮에 야시장투어라니, 기특하다. 아내와 나는 웃었다. 녀석도 웃고, 우리 넷은 가족이 되어 정말 크게 웃었다.
16. 길가에 차를 세우고 과일을 샀다. 망고스틴 1kg 150바앝, 싼 가격도 비싼 가격도 아니다. 아직 시즌이 아닐 것이다. 3kg를 샀다. 그리고 우리 몫의 망고스틴 1kg, 나머지 2kg는 나스의 몫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나스는 그 망고스틴이 자신의 몫인 것을 몰랐다. 한국어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영어 공부 조금만 더 해라.
나스에게 해변가 식당에서 밥을 먹자고 했다. 비치사이드 정도쯤은 알 거라고 생각했다. 로컬 푸드로 먹자고 했다. 오케이 하고 녀석이 찾아간 곳은 길가에 쌀국수집. <솜찟> 또는 <쏨짓> 이란 한글이 붙어있는 쌀국수 집, 우리 가족의 출현에 조금 긴장한 기운이 들었다. 왜지? 뭣 때문이지? 알고 보니 영어 공포증, 영어를 최대한 자제하고 손가락으로 음식을 주문했다. 나스도 옆에 앉으라 했더니 따로 앉겠다고 한다. 관광객과 운전기사는 겸상하면 안되는 것인가? 내 조카같은 나스와의 어쩔 수 없는 거리감.
쌀국수와 음료, 이것 저것 시켜 먹었더니 560 바앝, 40바앝은 팁으로 주었다. 그 작은 가게에 다섯 명의 아가씨들이 일하고 있었다.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고맙다고 무엇인가 싸 주는데, 돼지껍데기 튀긴 것, 나름 고소한 맛. 다 먹지 못하고 가방에 넣었다.
17. 찰롱사원에 들렀다. 역시나 중국관광객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중심부 3층까지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때 들려오는 받침 누락 한국어, 일본인이었다. 한국지부에서 5년을 지냈다는 그 분은 50대 중반의 남자. 완벽한 한국어는 아니었지만 이곳에서 일주일을 지내는 동안 한국인을 처음 만났다며 놀라워 했다. 사실, 나도 그러했다. 그 사람이 첫 일본인이자 마지막 일본이었다. 가만 있어보자, 그러고 보니 나 역시도 한국인을 많이 만나지 못했다. 한국 식당 <마루> 말고는 파통비치, 푸켓타운, 심지어는 정실론 내부에서도. 우리들은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18. 더 이상 나스와의 렌트카 여행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국어 가능자인 사무실에 전화를 넣으면 계속 진행이 가능하겠지만, 무리한 운행에서 오는 멀미 현상과 커미니케이션 부족에서 오는 허탈감, 나스와 나는 분명 친밀했지만 언어소통으로 인해 더 이상 일정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철수를 하자고 나스에게 말했다. 미안했는지 나스는 어디론가 우리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 곳은 바로 어제 갔었던 큰 부처 상 입구, "아~~~!!!!!!" 내 탄식이 녀석에게는 만족감으로 느껴졌나 보다. 어제 봤던 곳, 녀석은 우리에게 칭찬을 기대하는 표정이었지만 땡볕에서 또 올라 갔다 온다는 것은 내 체력으로 문제가 있었다. 미안하지만 "대단하군" 이란 표정으로 그의 노력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호의의 표정만을 지었다. 내려 오는 곳에서 사발오토바이차가 보였지만, 우리는 너무 지쳐 있었다. 차 안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피곤했던 것이다.
19. 호텔 앞에서 나스와 헤어졌다. 망고스틴 2kg 넘기자 녀석은 환하게 웃었다. 팁으로 100바앝만 주라고 박소장님께서 말했던 것이 생각났지만, 녀석도 마음 고생이 많았을 터, 200 바앝을 더 얹었다. 그리고 녀석과 함께 사진을 찍고, 귀여운 녀석, 내가 만난 태국인 중에서 가장 가식없는 녀석. 정말 나스와 함께 한 다섯 시간이 소중했다. 호텔에서 간단 샤워를 마치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딸 어진이는 수영을 못하지만 물 속에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이제 겨우 열 네살, 키 168 누구를 닮아 저리 큰가 싶은데 마음은 아직 초등학교 6학년, 며칠 후면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겠지? 딸 어진이의 졸업여행. 수영장 물은 차가웠다. 동남아시아 여행 중 12월~2월은 수영까지는 부적합하다. 그래도 재미있게 놀았다. 딸이 행복하다는데 부모된 입장에서 무엇이 부럽겠는가?
20. 수영을 마치고 정실론 지하에 있는 마사지 샵에 들렀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들렀는데 우리는 타이 마사지만을 고집했다. 오일 마사지가 짱이라 하지만, 이물질이 몸에 닿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가족들, 독립된 마사지 샵인 줄 알았는데 어느정도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지 싶다. 자리가 없으면 건너편 가게에 가서 마사지를 받는다. 몸이 큰 까닭에 주로 남자 마사지사를 선택하는데 내가 만난 네 명의 마사지사 중에 갑중에 갑은 <켄리>이다. 나름 카리스마가 있고 거들먹 거리는 스타일이지만 <켄리>의 마사지는 말 그대로 맞춤형이다. 소질을 넘어서 하늘이 준 재능이라고 할까? 50대 초중반의 마사지사가 가장 잘한다기에 받았는데 그때부터 몸이 안 좋아졌다. 바우바우를 외쳤지만 그는 자기 스타일을 고수했고 덕분에 내 몸 망가졌다. <켄리> 20대 초중반의 마사지사가 최고이다. 근육의 이해도가 뛰어난 친구.
21. 키 175에 몸무게 130kg 이게 나의 외형적 질량이다. 원래 군 입대 전에는 67kg의 보통 체중이었으나 앉아만 있어야 하는 사무직에 탄산음료 중독인지라 어느새 저런 비만아 형의 몸이 되었다. 물론 노력하고 이번 태국여행을 통해 10kg 가까히 감량은 되었지만, 문제는 이러한 비호감적인 질량을 가진 나에게 도전하는 무리가 있었다. 바로 빅씨 4:1 싸움. 싸움의 발단은 사소한 것이었다. 계산대에서 중국인 여자가 있었고, 캐시어가 계산대 리프트 버튼을 누르자 자신의 짐이 넘어졌다. 그런데 이 여자가 뒤에 있는 나에게 큰 소리를 욕을 하는 것이었다. 평소 나는 고요하고 얌전하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정당치 못한 위해요소가 가해지면 나는 용납치 않는다. 내일모레 지천명이란 나이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것은 오토매틱이다. 자동이기에 네 짐이 넘어진 것과 나는 하등 상관관계가 없다. 왜 나에게 욕을 하고 화를 내는가? 사과해라~" 그때 그녀의 뒤에서 아메바 번식하듯 그녀의 가족들이 몰려왔다. 그리고 30대 중반의 녀석이 내 멱살을 잡는다. 이런 어이없는 경우가 있나? 나보다 어린 녀석이 내 멱살을 잡아? 이래뵈도 군대에서 특공무술도 배웠고, 너보다 더 많은 홍콩영화에서 성룡의 몸놀림을 보고 자란 나다. 나는 그의 손은 제압하고 밭다리 치기로 넘어뜨렸다. 그리고 또, 그 길고 좁은 계산대에서 순간 네 명의 나에게 달려들자 모두 그렇게 넘어뜨렸다. 더불어 나의 초급 영어는 순간 중급영어가 되어 그들에게 호통을 쳤다. 외국에 나오면 가장 기본적인 질서와 매너를 지켜라. 너희들의 모습은 타국인 눈에 쓰레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국인이기에 화를 냈다는 것이 핑계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함부로 대하면 그만큼 당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변명이지만, 거기에서 참는 것은 비겁하다는 생각을 했다.)
22. 맞아 죽나 싶었다. 그들은 떼다. 황비홍이 와도 이길 수 없다. 다행이도 그들 중 일행이 내게 영어로 말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사실 그대로 설명했고, 캐시어도 내 편을 들어 주었다. 상황 설명을 중국어로 이야기 하더니 그 아주머니는 부끄러움없이 태연히 자리를 떠났다. 4명의 건장한 중국남자들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긴장이 풀리는 순간 뒷머리가 저릿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내와 딸 앞에서.......그냥 참아야 했을까? 아니면 그들의 무례함에 합당한 의사표현을 해야 했을까? 중국인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단순히 언어가 시끄러운 민족 정도, 하지만 지난 해 제주도에서, 올해 태국 방콕에서, 푸켓에서 그들의 실체를 가까히 경험해 보면서 그들이 무서워진다. 예의없는 민족이 세계의 경제를 지배한다면, 생각만으로 끔찍한 미래가 열릴 것이다. 중국의 지배층은 깨달아야 한다. 너희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국민적 소양이라고, 대한민국이 처음 해외여행이 개방되었을 때의 부작용과 시행착오를 바로잡는데 수십 년이 걸렸다. 하지만 인구 수가 스무 배 가까운 중국은 지금 바로 잡지 않으면 바로 잡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이 진심 무서웠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하지만 양심과 공공의 룰때문에 그 이기심을 밖으로 내어놓지 않는다. 하지만 양심과 공공의 룰의 부재할 때에는 이기적인 시스템만으로 세상이 돌아간다. 그것은 끔찍한 일이다.
23. 르 시암 레스토랑에서 크랩과 볶음밥, 튀긴 새우와 치킨, 그리고 모닝글로리, 총 2,700바앝. 세부에서 먹었던 르시암 음식과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없으나 크랩+카레 볶음은 오히려 세부가 더 맛있는 듯 싶다. 물론 인도네시아 빈탄과 싱가폴 칠리크랩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아내는 모닝글로리 볶음을 너무 좋아한다. 일정을 조금 길게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곳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아쉬운 것일까? 우리가족이 만난 태국인, 중국인, 러시아, 미국인, 그날 밤 아내와 맥주와 콜라를 나눠 마시며 이번 여행을 복기했다. 대체로 만족, 하지만 무례한 중국인과 안하무인 러시안들이 여행의 복병이었음을, 다음 여행에서는 그들을 최대한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로 했지만, 이제는 틀렸지 싶었다. 하지만 시간은 잡지 않아도 흐르는 법. 세상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가능한 정도로 궤도로 진행된다고 나는 믿는다.
24. 밀레니엄 호텔에서 마지막 조식. 늦은 아침을 먹고, 가벼운 산책을 소핑센터 안에서 했다. 호텔로 돌아 와 짐정리를 마치고 체크아웃, 두개의 짐과 세개의 가방을 들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혹시나 짐바퀴가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에 깨질까싶어 택시를 불렀고, 역시나 200 바앝. 베스트 웨스턴 호텔 체크인, 깨끗함은 밀레니엄 호텔보다 훨씬 나았다. 안내 받은 방은 밀레니엄보다 더 좁았지만 어차피 10시에 체크아웃을 해야 하기에 군말없이 방안에서 쉬다가 수영장과 빅씨를 들러 선물을 샀다. <야돔>도 샀고, <가죽팔찌>도 샀다. 딸 어진이는 마지막으로 김치찌개를 원했고, 4박 6일 일정동안 3일을 <한국 식당 마루>를 찾았다. 김치찌개와 제육, 떡볶이 마지막으로 사장님과 다음을 기약하며 호텔로 돌아와 푸켓에서의 마지막 샤워를 했다. 물을 내려 가지 않아 확인 해보니 부실 공사임을 깨닫고 호텔에 알려 주었으나 영어가 서로 부족하여 거기까지, 약속된 샌딩 시간은 10시, 하지만 9시 30분에 나타난 성실한 운전기사. 우리는 푸켓공항으로 향했다.
25. 세 시간 정도면 티켓팅에서부터 보딩까지 충분한 시간인데 샌딩 기사의 성실함으로 아직도 4시간이 남은 상황. 더욱이 놀라운 것은 A항공사의 비행기가 딜레이 되어 날아오는 중, 허참, 이민국을 지나 들어서 협소한 공항에 많은 중국인들이 포진, 그들이 없는 4번 게이트까지 가서 쉬고 있었지만, 화장실에 갔을 때의 놀라움, 빤스조차 안 입고 씻고 있는 중국인, 화장실 청소원으로 보이는 여자는 화장실 어딘가로 숨어 있고, 여자 화장실은 문도 안 닫고 용변을 보는데 재래식 화장실양 물을 내리지 않는다고 했다. 아내에게 물 내리고 닦고 용변을 보지 그랬냐? 물었더니 물을 내리는 순간 수많은 똥들이 화장실 바닥을 범람할 것이라고.....식수대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데 까닭인 즉, 빈 물병에 물을 채우기 위함이라. 돈 천원도 안 하는 생수 사 먹지, 몇 백만원짜리 쇼핑도 잘하는 사람들이.....보딩 게이트 앞에서 태국 안내원의 마이크를 뺏어 자신의 일행을 부르는 중국 남자, 그를 제지하면서 얼굴을 찌뿌린 태국 안내원. 그 상황을 말리지 않는 주변인. 뒤 늦게 나타난 중국여자는 태국 안내원에게 방송을 하지 않았다고 여권으로 뺨을 때리지만 이 또한 그 누구도 제어하지 않는다. 이것이 진정한 대륙인들이었다.
26. 연착된 비행기에 올랐을 때 비로소 소음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처음 도전 해 본 <푸켓> 자유여행, 우려했던 호텔 예약이나 비행기 티켓팅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소 수동적인 가족 문화 덕에 많은 곳을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어떻게 해야 저렴하고 좋은 환경에서 여행을 즐길 수 있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막연히 두려웠던 일들과 조우하면서 큰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호텔 투어사보다는 로컬 또는 한국 여행사를 통해 투어를 진행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는 사실, 푸켓 전체는 지쳐보였다. 생각보다 많은 관광객들과 매너가 실종된 관광객들로 하여금 관광객 종사원들의 다크서클은 무게감이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10여년 전, 푸켓은 평온했었다. 지금의 푸켓은 쉬어야 한다. 돈만 준다면 몸도 파는 세상이지만, 돈만 쫓다가는 푸켓의 아름다움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까?
27. 그래도 나는 태국을 또 찾을 것이다. 태국은 아름답다. 사람들이 좋다. 한국에 없는 멋진 풍광과 자연이 있다. 나는 아직 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이번 여행을 시작함에 태사랑의 소중한 정보 공유 회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은 전해 드린다. 이 글 또한 또 하나의 정보로 쓰여지기를 소망한다.
2015년 2월 12일 이틀에 걸쳐 쓰고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