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인생의 축소판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여행기

길은 인생의 축소판

고구마 1 567
(2003년 글입니다.)



배를 빌려 섬을 한바퀴 돌기로 했던 계획은, 아침부터 쏟아지는 폭우와 너무 비싼 배 삯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포기를 하고 날이 개이면 오토바이를 몰고 아오 힌웡까지 가서 우리끼리 스노클링을 하기로 결정했다. 곧 날씨가 좋아지기 시작하자 우리는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시동을 걸었다. 아오 힌웡까지 가는 길은 울퉁불퉁하고 폭우로 인해 깊게 골이 패인 곳도 여럿 있어, 결국 요왕은 미끌어 지는 오토바이에 종아리를 긁혀 다치기도 했다.
막상 힌웡 해변에 도착하자 있어야할 힌웡(둥그런 바위란 뜻... 우리끼리는 대머리 바위라고 불렀다. 둥근 바위 주변으로 자잘한 조개껍질이 붙어 있는 모양이 꼭 소갈머리 없는 대머리 모양과 비슷했기에...)이 보이질 않는다.
“ 여기가 아닌게벼...”
“ 어쩌나.. 되돌아 나가기에도 버거운데....내 생각에 저기 저쪽에 있는 배 뒤로 바위가 숨어 있을 것 같애.. 어쨌든 저기까지 가보자..”
요왕이 가르키는 곳을 보니 거리가 상당하다. 구명조끼를 껴입고 가는 거긴 하지만 수백미터는 돼 보여 어쨌든 힘이 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람의 방향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과 반대로 불어서 오고 가는 동안 발바닥에 쥐가 날 정도로 힘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출발지(우리가 물로 뛰어 든 곳)인 힌웡 해변 선착장에서 힌웡으로 가기까지의 바다는 무척이나 깊고 어두운 나머지 두려운 마음에 숨이 더 벌떡벌떡 쉬어졌다.
어둡고 탁한 가운데서도 뭔가 설렁 설렁되는 움직임이 보였고, 무서운 생각에 나는 앞서 헤엄쳐가는 요왕을 향해  ‘같이 가~~’ 라고 소리치며 핀을 사정없이 빨리 움직였다.
왕복을 끝내기까지 약 2시간 반 정도 걸렸을까... 우리는 몇 번의 스노클링 경험으로 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무척 배가 고프다는걸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스니커즈 같은 초코바를 준비하는걸 늘 게을리 하곤 한다.
“ 요왕....”
“ 왜......”
“ 니 종아리가 닭다리로 보여....당장 입대면 물어뜯을 수도 있을 거 같애.....”
“ 나도 진즉부터 니가 무양(돼지고기 꼬치)으로 보이더라...”
“ 아아...버럭 하고 화낼 기운도 없구려....”
싸이리로 돌아온 나는 늦은 점심으로 볶음밥과 햄버거까지 두 개나 먹어치우고 나니 온통 피곤과 졸음이 몰려온다. 아.... 운동과 체력이 부족한 도시인에게 겨우 두 시간이 넘는 스노클링 조차 너무 무리였던 걸까... 나는 항상 운동부족인 상태로 지냈던 서울에서의 생활이 조금 후회스러웠다. 큰맘 먹고 카드로 구입해서 장만한 나의 러닝 머신은 대략 일주일에 30분 정도도 채 가동되지 않았다. 흐흑~

저녁이 되자 스노클링 장비를 돌려주기 위해 요왕이 오토바이를 몰고 매핫까지 갔다. 돌아올 시간이 넘어서도 한참을 오지 않더니, 곧 문 두들기는 소리가 나고 땀에 흠뻑 절은 요왕이 들어섰다.
“ 나..매핫에서 여기까지 걸어왔어..”
“ 걸어와? 오토바이는 어쩌고? 헉..사고라도 난거야?”
“ 아니..그건 아니고..갑자기 오토바이가 안 움직이더라. 시동을 죽어라고 한 스무번은 걸었을 꺼야.... 근데 알고 보니까 기름이 하나도 없는 거 있지. 게다가 돈도 한 푼 안 가지고 나갔잖아..”
“ 그러게 내가 아까 기름 좀 넣자고 했잖아... 내 말은 지지리도 안 듣더라니...”
방안에는 마침 물이 조금 밖에 담기지 않은 물병이 하나 있어, 우린 남은 물을 마셔버리고 빈 물통을 들고 어두운 길로 나섰다. 어두운 길을 터벅터벅 가려니 짜증이 조금 난다.
“ 오토바이는 어디 서 있는데....” 걱정스럽게 내가 물었다.
“ ...............”
“ 아..사람이 물으면 빨리 빨리 좀 대답해!!”
“ 지금 위치 설명하려고 생각 하고 있는데 왜 그걸 못 참고 징징 대는 거야!!!”
“ 잘못은 지가 해놓고 왜 나보고 성질이람!!”
“ 너 같음 화 안 나겠어? 왜 그렇게 매사에 신경질 적이야!!!”
짜증 나고 힘든 상황은 우리의 인내심과 배려를 종종 시험하곤 한다. 무겁고 어색한 기운이 서로 간격을 두고 걷는 우리 사이에 불쑥 끼어 들었다.
하지만 가로등이 없는 깜깜하고 울퉁불퉁한 길 그리고 불쑥불쑥 나타나는 무서운 개로 인해 나는 몇 번이나 뒤뚱거리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 했다. 곧 따로 뚝 떨어져서 가는 것보단 서로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가는 게 우리 둘 다 에게 훨씬 더 이롭다는 걸 느끼고, 요왕 곁으로 가 나란히 발걸음을 맞추었다..
나는 이 좁고 러프한 길이 인생살이의 조그만 축소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어려움과 큰 갈등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지금처럼  서로 할퀴고 상처 내기보다는, 서로 손을 꽉 잡고 의지하고 격려해 주면서 등을 다독여 줄 수 있는 배려심과 현명함이 우리 맘속에 꼭 존재하기를 바랬다.
빈 물통에 받아온 20밧 어치의 기름을 넣자마자 오토바이는 곧 움직이기 시작했고, 숙소로 돌아온 후 내일 방콕으로 올라가기 위해 짐을 대충 꾸리기 시작했다.  

오션뷰의 350밧짜리 방
12.JPG

뉴헤븐 아래쪽에 있는 해변
12_1.JPG

싸이리의 노을
12_2.JPG

비 내리는 매핫
12_3.JPG 

1 Comments
동쪽마녀 2020.08.17 20:09  
언제나 좋은 때만 있었겠어요.
그 긴 세월 함께 타넘었다는 것만으로도 부부는 상 받을 자격 충분하다고 저는 늘 생각합니다.
좁고 어두운 길 손에 손 꼭 잡고!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