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품에 안겨있는 듯한 느낌
(2003년 글입니다.)
“자연의 품에 안겼다”.. 이 얼마나 진부하고 지루한 표현인가...(동급으로 “대지의 품에 안겼다” 등등도 만만치 않게 진부하다..낄..)
하지만 표현의 진부함과는 달리 나는 지금까지 정말 저러한 느낌을 실제로 느껴본 적은 없다. 도시에서 뚝~ 떨어져 나와 빽빽한 밀림속의 좁은 산길을 지날 때 조차도 , 자연의 품에 폭 안겨 있는 듯한 느낌은 커녕 혹시나 뱀이나 거머리가 들러붙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과 차오르는 숨가쁨 때문에 어찔한 호흡곤란을 느낀적은 있다.
전날 숙소에서 만난 3명의 여행자들과 합류한 우리 부부는 썽태우 한대를 빌려 근처 야외 온천으로 물놀이를 갔다. 야외 온천이라니 너무 거창하게 들리긴 하지만 작은 계곡을 따라 뜨건물이 멀멀~ 흘러나오니 그 외에 달리 뾰족한 표현이 없다. 온천은 몸을 담그기에는 너무 뜨겁고, 계란을 삶아먹기에는 너무 온도가 낮아서 우리는 온천욕도 제대로 못하고 가지고 간 달걀도 제대로 삶아 먹지 못했다. 잠시 발을 담궜을 뿐인데도 피부는 금새 벌겋게 익어서 온천물에서 끄집어낸 내 발은 붉은색 돼지족발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올때 쯤에야 알고 보니 우리가 달걀을 담근 곳 바로 옆에 섭씨 80도씨의 온도를 자랑하는 샘이 하나 있긴 했지만..쯥)
잠깐씩 발을 담궜다 빼는 걸로 온천에 놀러온 기분을 내고 있는 동안 사람들은 제각각 흩어졌다.
그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두둑 내리는 비로 온천물의 온도는 약간이나마 낮아졌고 그틈을 타 얕은 계곡물에 나는 드러누웠다. 뜨거운 물에 등을 담그고 얼굴에는 차가운 비가 흘러내리고 살짝살짝 눈을 떠보면 녹색의 나뭇가지 사이로 회색 하늘이 빗방울을 뿌려되는 것이 보였다. 귓가에는 고요한 정적과 묘한 새 지저귐이 뒤섞인 산의 소리가 맴돌았다.
아마 그때 였던건 같다...지금 내가 자연의 품안에 안겨 있구나.. 라고 느낀건...
“ 이제 그만 일어나서 계란이나 먹자 ” 라는 요왕의 산통 깨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허겁지겁 계란 껍질을 까보니 흰자가 뭉글뭉글한 상태로 주르륵~ 흘러 내려 버린다. 아~ 아침도 제대로 안 먹고 허기가 져서 계란이나 까 먹을려고 했더니만 그것도 여의치가 않구먼~
배는 고프고 몰골은 형편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지만 잠시 잠깐의 낮설고 행복한 느낌을 받은 것으로 모든 것이 보상 되는것만 같았다. 약간 들뜬 기분으로 다시 빠이로 돌아와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이곳에서 장기 체류를 하면 어떨까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해보기도 했다. 결론은 이곳에서 오래 살게 되면 너무너무 심심한 나머지 한달로 체 견디지 못하고 도시로 도망치거나 것도 아니면 할일 없이 매일 먹고 자는 동안 돼지가 되고 말거라는 조금은 비관적은 이야기 뿐이었다.
역시 여행지는 여행지로서만 남아야 그 기억이 이쁘게 남는거 같다....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