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다리...
(2003년 글입니다.)
우리부부가 늘상 그렇듯이 현명한 생각은 왜 우둔한 결정을 내리고 난 담에야 나는 걸까...
방콕에서 매홍쏜까지 줄창 버스를 타고 갈게 아니라..카오산의 싼 여행자 버스를 타고 치앙마이까지 가서 비행기로 매홍쏜까지 들어가는게 훨씬 더 기특한 방법인데..북부정류장에서 표를 끊고 나서야 그 생각이 떠올랐다. 사실 돈 차이도 별로 안난다...카오산의 여행자 버스가 워낙 싼 가격에 나온탓에 말이다..
방콕에서의 행복한 이틀을 보내고..오후 6시에 매홍쏜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니 버스 안에서 지낼 시간이 너무나 막막해져서 갑자기 비장해지기까지 할 정도 였다. 태국의 버스는 일관성이 없어서 일등급 에어컨 버스라도 어떤건 시설이 다른회사 이등급 버스만도 못할때가 가끔 있는데, 이번 매홍쏜 행 버스가 딱 그 모양 인거다.
장장 17시간에 걸친 좁디좁은 좌석에서의 버스여행은 그다지 할말이 없다..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는 것 하난 확실해 진 듯...
다음날 매홍쏜에 도착해보니 발이 퉁퉁 부어올라 발등에 뼈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된되다가 혈액순환이 잘못됐는지 무릎근처가 시큰거리기까지 한다. 뭔가 위로가 필요한 내게 요왕은
‘우악! 발이 꼭 코끼리 발 같잖아..코끼리 코끼리~‘라면서 낄낄 거리더니 자기발은 하나도 안부었다며 엄청 뿌듯해 한다...흐흑...방콕에서 지뢰를 잘못 밟아 발이 엉망이 된 코끼리를 위한 도네이션 장려 포스터를 본적이 있었는데 내발이 그 모양이라면서 놀리다니....
하지만 밤이 되자 내발은 정상을 찾았고 요왕의 뱃속은 난리가 났다...흐흐흐
우리가 묵은 곳은 쫑깜 호수가 바로 보이는 쫑깜게스트 하우스인데 공동욕실인 탓에 가격이 80밧 밖에 안했다.. 그 전전날 방콕에서 마신 술 덕분에 과민성 대장염이 재발한 요왕은 새벽에 컴컴한 복도와 계단을 지나 화장실 들락날락 하느라고 몸과 마음이 다 피폐해졌다는데, 그러던지 말던지 나야 뭐 싼데다가 바로 앞에 호수가 보이는 멋진 전경 덕에 꽤 만족스런 게스트 하우스라고 생각하며 잠만 잘 잤다. 하지만 시설이 죄금 열악한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인 듯......
매홍쏜에서는 밥 세끼 사 먹은 거 이외에는 한일이 거의 없다. 근처의 갈만한 곳(목 긴 빠동족마을이나 물고기 동굴 등등)은 이미 예전에 다 가본데다가 지금은 우기여서 트레킹을 하기에도 너무나 고생스럽고 적당치 않은 탓에 그저 매홍쏜 시내를 사부작사부작 걸어다닌게 다였다. 빠르게 변화가 일어나는 태국의 전반적인 모습과 달리 매홍쏜은 오년전이나 일년전이나 지금이나, 그다지 달라진 게 없는 마을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다음에 찾아와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을것만 같다.
사진1 : 매홍쏜 시내 한가운데 있는 쫑깜호수
사진2 : 쫑깜 게스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