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독촉 겸 보은 여행기) 도로시 & 동쪽마녀 IN 롬싹 (왓 파썬 깨우)
망고찰밥님 소도시 여행기 기다리다 제 풀에 지쳐 올립니다.
궁금해서 이미 여러 번 독촉을 드렸던 터라 죄송해서 더는 못 하겠어서요.
(파야오, 난 궁금해죽겠습니다.ㅠㅠ)
2010년 캄보디아 시엠립 여행기 이후 여행기는 10년만이구먼요.
2019년 1월 중순부터 2월 중순 사이 돌아본 곳들 중
가장 좋았던 두 곳 (콩찌암, 롬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녀온 곳들 전부 올리는 것이 아니어서 이야기가 듬성 듬성하니 양해해주세요.
백만년만에 친정에 보은합니다.^^
사실 이 날 도로시 대입 정시 발표날이었다.
예비번호 없는 대학의 포털이 열리지 않아서 애를 태웠다 에미만.
정작 도로시는 매우 태평하고.
학교 포털은 열리지 않아 합격 여부를 알 수 없고
친구 선애에게서는 메일도 문자도 없어서 솔직히 불안하였다.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내가 그리고 도로시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기 때문에
불안과 걱정은 접어두고 일정대로 움직이기로 하였다.
에미만 불안하고 걱정될 뿐 언제나 마음 편한 도로시는 오늘 테스코 로터스에 가보자며 전의를 불태웠다.
빅C 보다는 크지 않겠느냐며.
이 작은 롬싹에서 뭘 그리 기대하고 그러니, 어린이.
테스코 로터스에 도착하여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데 숙소 주인 언니에게서 전화가.
언니는 직접 테스코 로터스 앞으로 우리를 픽업하러 왔다.
가까울 줄 알았던 사원은 차로 막히지 않고 시원한 길을 30분은 꼬박 달려야 나왔다.
그리고 안 왔으면 서운했겠구나, 싶게 예뻤다.
사원 양식이 매우 독특해서 내용물은 태국 스타일인데
전체 모양은 어쩐지 이슬람 모스크 같기도 하였다.
사원 전체를 유리조각이나 벤짜롱을 붙여 장식을 하여 굉장히 다채롭고 화려하고 알록달록하였다.
하지만 이 화려한 장식은 일종의 양날의 검이라는 것을 나와 도로시는 이 날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사원 입구.
화려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
입구에서부터 신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형형색색 타일로 바닥을 장식하였다.
계단부터 바닥에 이르기까지 이 사원은 밋밋한 것이 없다.
벤짜롱을 통째로 붙여 놓았는데
치명적인 약점은 세월이 흐르면서 붙여놓은 장식이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깨어져 나가기도 한다는 것.
사원을 장식하면서 그런 당연해 보이는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것일까.
구석 구석까지도 화려한데 그것이 참 잘 어울리는 매우 아름다운 사원 왓 파썬 깨우였다.
"뙤약볕에 나가지 마라, 도로시.
얼굴 익는다."
"앗, 발바닥에 뭐가 붙었어.
아야!!"
도로시 발바닥에 붙었던 무언가는 매우 날카로운 것이었는지
발바닥을 발등에 쓸어 붙은 것을 떼어내려던 도로시는 발등을 꽤 깊게 긁혔다.
피가 맺히는 것이 아니라 발등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려 나는 당황하였다.
갖고 있던 휴지로 계속 닦아냈지만 피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너무 당황하여 우선 인포 센터로 달려가 밴드를 달라고 하였는데
없다면서 다섯 부처님 있는 곳으로 가보라고.
그곳은 사람들이 기도하는 곳으로 쓰일 뿐이어서
기도하는 사람이 없으면 정말이지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었는데
내가 뛰어갔을 때는 두 사람이 박스에 무언가를 넣고 테이핑 작업을 하고 있었다.
"딸아이가 발등을 베었어요. 피가 나요. 작은 밴드라도 주세요."
내 얘기를 듣던 오빠는 하던 일을 옆의 언니에게 넘기더니
테이블 아래에서 구급상자를 꺼내들고는 나더러 앞장 서라고.
마음이 급해서 내가 뛰니 오빠도 같이 뛰었다.
고맙고 미안하였다.
도로시는 계단 한 켠에 가만히 쪼그려 앉아 있었는데 불쌍해서 마음이 아팠다.
취향 독특하고 극성맞은 에미 때문에
남들 가지도 않는 온갖 작은 동네는 다 따라다니며 궂은 것 지저분한 것 다 보고
그것도 모자라 꼭 한 번씩 다쳐서 피를 보는구나.
오빠는 구급상자에서 면봉과 알콜을 꺼내 우선 상처 주변을 소독한 뒤
다른 면봉으로 피가 흐르는 상처를 다시 소독하였다.
상처에 주황색 약을 바르고 거즈로 상처를 덮은 뒤 반창고로 거즈를 고정하는 것으로
오빠는 응급 조치를 마쳤다.
너무 너무 고마워서 우리나라였으면 큰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치는 사람이 가끔 있나요?"
(다치는 사람들이 많나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치료해 준 사람에게 실례인 것 같아서)
"아, 저는 이 곳 직원이 아니예요.
저는 간호사이고 난에서 이리로 여행을 왔어요.
저도 여행자예요."
이런 것을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늘 밖으로 나도는 나를 위해 기도하는 선애와 혜윤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어린이, 발도 아픈데 우리 그만 숙소로 돌아갈까요?"
"무슨 소리야, 엄마.
여기까지 왔는데.
간호사 오빠가 엄청 치료 잘 해줘서 피도 안 나고 아프지도 않은데 다 보고 가야지."
장한 의지의 한국 어린이 도로시.
다쳐 치료 받은 통통 애기발.
에미 따라다니느라 와칸다 왕국 전사 무늬가 발에 생겼다며
여행 내내 "와칸다 포레버" 를 외치게 하였던 도로시의 통통발이
이 번에는 피 흘리고 상처까지 입었네.
숙소로 돌아가 씻은 다음
집에서 가져간 마데카솔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고서 나머지 여행 일정을 소화하였는데
도로시는 신발이 발등 상처를 스쳐 아프다는 말 한 마디 한 적 없었다.
무던하고 착한 도로시.
'왓 파썬 깨우' 를 대표하는 다섯 분의 부처님들.
무슨 의미가 있을텐데.
도로시가 발을 다친 쪽에서 바라본 다섯 분의 부처님들.
다섯 부처님이 계신 건물 1층 내부는 기도하는 공간일 뿐 아무 것도 없다.
엥, 웬 뜬금없는 타마린드야, 그랬는데 아마도 롬싹 지역 특산물이 타마린드인 것 같았다.
열심히 사원을 다 돌아본 도로시와 나는 주차공간에서 쉬고 있던 언니에게 돌아갔다.
1시간 15분 쯤 돌아본 것 같았다.
언니는 차를 다시 2, 3분 쯤 달려 'Pino Latte' 라는 커피숍에 나와 도로시를 내려주었다.
전망이 다 하는 커피숍이었고 그런 입지를 무기로 태국 물가를 파괴하는 곳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90밧 아이스 레몬티 100밧.
하지만 전망 때문에 용서해줘야지 어쩌겠어, 싶은 곳이기도 하였다.
커피숍 '피노 라떼' 전경.
넓고 시원하다.
지금까지 만난 태국 작은 동네 물가 파괴 커피숍 중 탑 3 안에 드는 곳이었다.
하지만 전망이 이러하니 이해하기로.
언니들은 많이 좋아할 듯한 곳이었는데 내게는 그저 그랬던 것을 보면
역시 나는 무늬만 아줌마인건가.
'피노 라떼' 에서 내려다 본 '왓 파썬 깨우.'
전망만큼은 훌륭하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 시장이 설 때까지 잠깐 쉬는 동안 메일을 확인해 보니
선애가 도로시의 합격 소식을 보내왔다.
마침 학교 포털도 열려서 도로시 스스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음 편하고 태평한 것 같아도 제 일인데 당연히 마음이 쓰였겠지.
참 감사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도로시도 나도 롬싹 체류는 이 번 여행 중 유독 기억에 남는다.
롬싹 시내 간이역에 있는 롬싹 --> 컨깬 버스 (2등) 시간표.
실제 체감하는 이 번 여행은 이곳 롬싹에서 끝이 났다.